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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아노케의 힘
작가 : 이타카
작품등록일 : 2020.9.11

악의(惡意)의 시대에 맞선 기석과 마리. 아노케의 힘으로 거대 악(惡)을 넘어설 수 있을까.

 
# 1.부 아노케 힘의 시작 - 2.마리 공주
작성일 : 20-09-12 15:03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5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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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히 원초적인 아프리카 비트에 어깨와 발바닥이 알아서 움직이고, 목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머리가 흔들렸다. 사람들이 일어서 무대로 몰려 나갔다. 그들에게서 본능에 이끌린 열정적인 몸짓이 튀어나왔다. 전구가 빙글빙글 돌면서 빛 다발을 쏘야대고. 가난한 나라라고 하지만, 댄스클럽은 그럴싸했다.

 

 “피터! 아산티 공주님은 언제 오시나?”

 

 “오면 연락해준다고 했어. 아 잠깐, 전화가 온 것 같네.”

 

 피터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일어서서는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웨이터는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와 식탁에 늘어 놓았다. 서너명은 충분히 먹을 만한 양. 그런데, 부르키나파소에서 유명하다는 닭요리는 그 모양이 불량스러웠다. 기름에 너무 튀겨 육즙이 빠지고 껍질은 거무스름한 갈색이었다. 싼 가격으로 승부하는 동네 어귀 치킨집이 떠올랐다. 히야시된 맥주도 같이 나와 불량 치킨 옆에 놓였다.

 

 내가 아프리카에 와서 느낀점 중 하나는 우리나라 맥주는 정말로 독보적이란 사실이엇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로컬맥주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우리 맥주의 밍밍함. 부르키나파소 로컬 맥주의 시원하고 아싸한 느낌이 입안을 적시며 목구멍을 꿀떡 꿀떡 넘어갔다. 살짝 불량 닭요리 맛이 궁금해졌다. 금방 아산티 공주가 올테니 먹어도 티 나지 않을 만한 작은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눈이 환해졌다. 매콤, 짭짤, 쫄깃. 이건 그동안 알던 닭이 아니었다. 왜 부르키나파소 하면 닭요리를 꼽는지 그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기내식으로 아침을 때운 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바로 꼬치를 집었다. 채소, 감자, 고기가 줄지어 끼어 있고 그 위에 붉은빛이 도는 꺼먼 소스가 떡칠해져 있었다. 불량스럽기보단 위험해 보이는 외모. 하지만 맛있는 집은 뭐든지 맛있다는 경험이 외모를 무시하게 만들었다. 한 입 가득 우겨 넣었다. 순간 입술부터 불이 확오르더니 불길이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사정없이 번졌다. 깜짝 놀라 맥주를 들이부었다. 그러나 불길은 이미 거세게 활활 타올라 바로 진화되지 않았다. 눈물이 핑돌았다. 학. 학. 학. 눈물이 가린 시야가 크고 까만 눈과 얽혔다.

 

 입은 학 학 대고 눈은 늘씬한 키, 풍만한 가슴, 굴곡진 허리,탱탱한 엉덩이, 쭉 뻗은 다리를 훑었다. 검은 피부의 바비인형. 노란색 원피스의 옷감결에 따라 방방하게 강조된 가슴과 살짝드러난 가슴골이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걸리며 하얀 치아가 빛을 발했다. 그리고 옆에는 우는 듯 웃는 피터가 서 있었다. 컥. 컥. 사래가 들렸다. 사래가 잦아지자 어느새 바로 앞까지 온 피터는 얼굴을 억지로 환하게 펴고는 바비인형을 소개했다.

 

 “기석씨 아산티의 마리 공주님을 소개하지. 마리 공주님 이쪽이 한국에서 온 이 기석씨입니다.”

 

 마리 공주는 웃는 얼굴을 억지로 굳히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 바로 앞에 앉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매워서인지, 민망해서인지. 첫 인상이 학학대고 켁켁 대는 모습이라니. 피터는 앞 접시 네 개를 달라고 하고 맥주도 더 내오게 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피터는 마리 공주 일행이 곧 도착한다고 설명했다.

 

 잠시 후 머리가 희끗한, 사각모자를 쓰고 줄무늬 바탕의 전통옷을 단정히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사람 부리는 일에 능숙한 듯한 눈빛과 여유로운 표정은 그가 단순한 보디가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줬다. 그는 오세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리공주의 삼촌이자 현 아산티 부족왕의 동생이었다. 오세이는 한국드라마에 푹 빠진 사람으로, 드라마 주몽의 열혈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세계 양궁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한국 대표단의 팬이기도 하고.

 

 “아 한국을 잘 아시는 군요. 한국 남자라면 전통무술 한 개쯤은 배우죠. 저도 소시적에 합기도, 태견, 검법 같은 걸 해봤습니다.”

 

 “그러면 활도 쏠 줄 알겠네요.”

 

 “아... 그게. 대신에 총은 쏠 줄 압니다. 군대에서 복무를 하면서 배웠지요.”

 

 “주몽에서 보니까. 한국인은 활이던데.”

 

 오세이의 얼굴에 실망감이 번졌다. 주몽이란 드라마를 보지 안아 그의 코드를 읽지 못했다. 대화가 끊기며 어색해졌다. 마리공주는 웃음을 참는 듯 얼굴이 묘하게 이그러져 있었다. 은근히 신경쓰이게 하는 여자. 다시 볼일 없으니 오늘 밤만 너머가면 되겠지, 싶었다. 잠잠했던 음악이 다시 달리자 가라 앉은 분위기가 들뜨기 시작했다. 댄스클럽은 이야기하자고 오는 장소가 아니었다. 피터가 일어나 마리 공주를 무대쪽으로 이끌었다. 나도, 오세이도 따라 나갔다. 마리 공주의 춤이 궁금했다. 힐끗 바라봤다.

 

 사지가 길쭉길쭉한 8등신 비율로 추는 춤은 관광버스 춤과 비슷했다. 좀더 힘있고 좀더 관능적이고 좀더 뇌쇄적인 게 다를 뿐. 피터도 종마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둘은 잘 어울려 보였다. 나는 땀이나 흠뻑 빼야지 하는 마음으로, 탈춤흉내를 내며 팔다리를 휘저었다. 얼싸. 얼싸. 피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리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세이는 흥미로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렇게 아프리카의 원초적 템포에 마음과 몸을 내던졌다.

 

 마리가 몸을 흔들며 다가왔다. 가슴과 골반이 찰지게 떨리고 있었다. 눈이 게슴프레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여자한테 왜 이러지. 머리를 흔들었다. 아프리카 여자에게 처음으로 매력이란 게 느꼈다. 거의 2년 만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웠고, 그 다음에는 경계가 되어 접근하지 못하게 했는데. 어쩔수 없는 수컷의 본능인가. 저 여자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마리가 바로 코 앞까지 왔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는 춤을 더 추고 싶다는 말이 안떨어졌다. 당연한 듯 춤을 멈추고 마리와 같이 자리로 돌아갔다. 피터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너 왜 내가 찍은 여자한테 찝쩍대니?’ 하는 표정이었다. 이건 찝쩍이 아니라 예의라고 속으로 반박했다. 나는 너 같은 인간이 아니야라고도 속으로 말했다. 그런데 얼굴 근육이 제 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헤벌레 웃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표정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맥주를 더 시켜 줄 수 있나요. 시원한 맥주가 당기는 데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바로 일어나 총총 걸음으로 웨이터에게로 다가갔다. 시원한 맥주 두병 더. 문득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 오래전 지숙에게 정신 없이 빠졌을 때와 비슷한 느낌. 다시는 그런 감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영향력 있는 대부족의 공주를 건드리는 건 누가봐도 모험이었다. 그것도 한국의 공무원 신분으로. 만약 이 사실이 공개된다면 방송매체와 인터넷 상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거였다. 마음을 차분하게 끌어내려야 했다.

 

 냉정해지자고 마음먹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마리공주가 팔을 턱에 괴고 커다란 눈으로 그윽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래도, 여자가 관심을 표한다는 사실을 알만하게. 그런데 왜 나를. 웨이터가 맥주를 가져왔다. 마리공주가 컵에다 맥주를 붓고는 나에게 건너 주었다. 엉겹결에 받았다. 공주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 맥주병 주동이에 입을 댄채 꿀꺽댔다. 나도 공주가 준 잔을 한숨에 비웠다. 정신이 번쩍 났다. 써도 너무 썻다.

 

 “기석 씨, 오늘 운이 좋은 거에요.”

 

 “예에?”

 

 “나랑 만났잖아요.”

 

 “무슨 말씀을.”

 

 마리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나 같이 첫인상을 강하게 남긴 남자는 처음이라는 말을 꺼냈다. 학학대고 컥컥 댔으니.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뭐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닐거 같습니다만.”

 

 “그냥 기석 씨가 재미있네요. 하지만 아쉽네요. 오늘 저녁 이후로는 볼 일이 없을 테니.”

 

 하마터면 나도 아쉬워요 란 대꾸가 나올뻔 했다. 입이 썻다. 정말로 입이 썻다. 음악의 템포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나가요.”

 

 “뭐라고요?”

 

 “나가자고요.”

 

 마리공주는 먼저 일어나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자리에 막 돌아온 피터의 눈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나도 이쯤은 해 하는 표정으로 지어보이고는 공주를 따라 나섰다. 댄스클럽 같은 데서 여자한테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있었나? 딱 한번 있었던 것 같다. 여자가 내 옆에 있던 친구를 찍었는데, 웨이터가 난 줄 알고 불렀다. 난 그 사실을 클럽을 나갈때가 돼서야 알았지만, 잠시나마 기분은 좋았었다. 그런데 이번은 잘못 찍은 게 아니라, 바로 나를 꼭 찍었다.

 

 부드러운 것이 가슴을 눌렀다. 살내음과 향수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이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둘데가 없는 내 손은 자연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을 수 밖에. 부르스 템포에 맞추어 마리의 허리와 골반이 흐늘거렸다. 그리고 귀에 그녀의 숨결이 느껴졋다.

 

 “기석씨, 꽤 귀여운 느낌인데.”

 

 이런 때는 뭐라고 대꾸해야 하나. 지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마음에 담긴 말이 입으로 튀어나옸다.

 

 “난 좀 부담스러운데요.”

 

 마리는 흐느적거리던 몸을 멈추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내 눈을 똑바로 봤다. 조금은 황당한 표정으로 조금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마지막은 환하게 웃었다.

 

 “역시 당신은 재미난 사람에요. 사정이 이렇지 않았다면 충분히 사귈만 한데 말에요.”

 

 그래 사정이 있겠지. 그런데 생각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감각도 마비되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나를 그녀는 꼭 껴안았다.

 

 “다시 볼일은 없을 거에요”

 

 뺨에 그녀의 입술이 느껴졌다. 모든게 깜깜해졌다.

 

 몸이 내팽개쳐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충격에 눈이 게슴프레하게 떠졌다. 온몸에 힘이없고 몸은 무거웠다.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켜 세워보니 호텔 로비에 있는 소파였다. 흐릿한 시야에는 오세이가 호텔직원하고 이야기 하는 모습이 잡혔다

 

 팔에 힘이 빠져 다시 털퍼덕 너부러졌다. 급히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어느틈에 오세이가 나는 부축하고 있었다. 큰소리로 라운지에 있는 직원에게 무슨말인가를 하고는 나를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직원은 서둘러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어가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오세이는 나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떠 ㅎ ---게....”

 

 오세이에게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팅’ 엘리베이터가 9층에 섰다. 정신이 계속 흐릿하고 힘은 없었다. 오세이는 객실문을 열고 들어가 나를 침대에 눕혔다.

 

 "이상하군. 적어도 하루는 정신을 못 차릴 줄 알았는데... 약이 부족했나? "

 

 “무--스-ㄴ--.”

 

 " 굳이 정신을 차리려고 하지 말라고. 당신에게 좋은 일이니까. ”

 

 오세이는 내 입을 벌리고는 가루를 쏟아 부었다. 쓴 맛이 입안에 가득해졌다. 맥주에서 느꼈던 바로 그 쓴맛. 마리가 맥주에 이 가루를 탔던가? 생각이 다시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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