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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화공도담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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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법을 익힘에 있어 느리디 느린 둔재.
법식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을 다하며,
술을 익히는 데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빨리 도에 이를 기재.
형식과 필법을 익히는 데는 둔하나 참다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게 된 화공 진자명의 강호유람기가 펼쳐진다.

 
6 화
작성일 : 16-07-13 13:06     조회 : 724     추천 : 0     분량 : 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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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두 달 동안 자명은 전이모사(轉移模寫)의 공부를 해야 했다.

 전이모사란 고화품록(古畵品錄)에 나온 육법 중 하나로, 선인들의 명화를 보고 그 기법을 배우는 공부를 말한다.

 기법의 명칭을 잘 모르는 자명에게 전이모사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공부였다.

 전이모사가 어려운 이유는 또 있었다.

 본래 전이모사의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법보다 그림에 배인 정신과 기운(氣韻)을 배우는 것, 자명은 그림의 기운을 관찰하는 데 모작할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문방사우를 정리할 때쯤에야 모작을 시작했던 자명은 ‘나는 재능이 없나 보다’ 하고 울적해하곤 했다.

 자명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모작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모작이 끝나면 이자언은 자명에게 온갖 심부름을 다 시켰는데, 자명은 은근히 그런 심부름을 기다리곤 했다. 고화를 가져다 두라는 심부름을 맡기면 무명도원도를 구경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석 달 동안 할아버지를 한 번도 뵙지 못한 자명에게 무명도원도는 그리움을 달래주는 고마운 그림이었다. 자명의 마음에 할아버지에게 무명도원도를 보여 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조금씩 움터갔다.

 “저기, 의원님. 할아버지를 뵈러 왔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본당을 찾은 자명이 조심스럽게 의원의 눈치를 살폈다.

 의원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오채문의 증세가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넘기기 힘들 거라던 오 년을 넘어 칠 년이 다 되도록 생존해 계시니 오늘내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늘도 안 되나요?”

 실망한 자명의 어깨가 추욱 늘어졌다.

 의원은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생각해 보면 자명이라는 아이와 오채문 대화백의 정이 유난히 두텁다.

 어쩌면 오채문 대화백이 오 년을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아이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쯧쯧, 그리도 할아버지를 뵙고 싶으냐?”

 문득 의원의 마음에 한줄기 측은지심이 일어났다. 면회를 자주 허락할 수는 없으나, 더 늦기 전에 한 번쯤은 대면을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내 오늘만 특별히 허락하마.”

 “예? 정말이요?”

 자명의 얼굴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의원은 애써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며 몇 가지를 경고했다.

 “알다시피 오채문 화백의 병증은 결코 가볍지 않느니라. 그러니 너는 긴 시간을 있어서도 아니 되며, 혹시라도 심기를 상케 할 이야기는 해서는 아니 된다.”

 자명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신이 난 자명은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감사할 것 없다. 오늘만 특별히 허락해 준 거라 했잖느냐.”

 자명이 자신을 못됐다고 욕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또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의원은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명은 재빨리 본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할아버지!”

 본당 안의 침상에는 오채문이 누워 있었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린, 아니, 아예 가죽밖에 남지 않은 오채문이 잠을 자듯 누워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단 석 달, 석 달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오채문의 얼굴은 새카맣게 죽어 있었고, 눈 밑에는 검은색 기미가 진하게 져 있다. 깡마른 피부엔 검버섯조차 유난히 늘어나 있었다.

 “자명이 왔느냐.”

 하지만 웃음만은 예전과 똑같았다. 자명은 뭔가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할아버지.”

 “네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다가 의원에게 꾸중을 들었다. 역시 그 의원은 못된 게 틀림없어.”

 할아버지의 기운 없는 어조를 들으며 자명은 침상 앞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목이 메어 무어라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어디 보자, 우리 자명이는 석 달 동안 많이도 컸구나.”

 새 다리마냥 앙상한 팔을 들어 오채문이 자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명은 큰 키를 애써 숙여 할아버지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네. 흑. 네에.”

 “저런, 왜 우는고?”

 할아버지가 혼을 내는 듯한 시늉을 하며 자명을 바라보았다. 자명은 애써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래, 울 것 없느니라. 내게도 겨울이 찾아온 것뿐이야. 이제 곧 봄이 오겠지. 네 이야기나 좀 해보려무나. 최근에 조 화공에게 그림을 배운다고 들었느니라.”

 봄이 온다는 소리를 희망이 있다는 것으로 알아들은 자명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요즘에 조운고 화백님께 그림을 배우고 있어요. 다른 아이들은 여러 가지 기법을 알지만, 저는 알지 못해서 매번 물어봐야 돼요. 그래도 몇 달이 지나 이제 기법의 이름은 알아요.”

 “그건 잔재주일 뿐이지. 본래 잔재주는 며칠이면 익히는 법이다. 너는 이 할아비와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그림을 보지 않았느냐? 그때에 진짜 재주를 배웠으니 걱정할 것이 없느니라.”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보는 법과 아름다워지는 법, 그리고 마음을 다하는 법 같은 요상한 것들뿐이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것도 모르고 그게 진짜 재주라고 하신다.

 “그보다 너도 못됐어. 모작을 한 점 그렸으면 이 할아비에게도 보여주지 않고서.”

 “사실 아직 모작을 완성한 적은 없어요. 기법의 이름을 물어보느라 바쁜데다가, 그림을 관찰하느라 모작할 시간이 없는 걸요.”

 “그렇다면 물어보지 말고 막무가내로 그려보지 그랬느냐. 그랬다면 시간이 있었을 텐데.”

 자명의 얼굴에 갑자기 흥분이 감돌았다. 드디어 무명도원도에 관해서 말할 때가 왔다.

 “사실 며칠 전에 고화당에 들렀다가 신기한 그림을 봤는데, 그림 안에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할아버지와 너무 닮은 인물이요.”

 “나와 닮은 그림이 있단 말이냐? 그거 영광이로구나.”

 오채문이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본래는 언젠가 그 그림을 모작해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왕에 모작을 한 번도 완성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그림을 제일 먼저 모작할 거예요. 다 그리면 꼭 보여 드릴게요.”

 자명의 마음속에서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고 보니 몇 달 동안 조운고 화백을 귀찮게 한 결과 제법 기법들을 알고 있으니 이제 그 그림을 모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 꼭 보여주어야 한다.”

 오채문이 피곤한지 눈을 스르르 감으며 말했다. 알고 보면 자명이 오기 전부터 이미 잠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네. 그림을 그리면 꼭 보여 드릴게요. 나으시면, 다 나으시면 저와 함께 할아버지를 닮은 그림을 보러 가요.”

 자명이 울적한 얼굴로 잠드는 오채문에게 속삭였다. 오채문은 깊이 잠에 빠져들었는지 듣지 못한 듯했다.

 자명은 할아버지의 손을 한 번 꼬옥 쥐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본당을 빠져나왔다. 마음속에서는 당장 오늘 모작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꼭 보여주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 때문이었다.

 “응? 벌써 가느냐?”

 의원이 본당 밖으로 나온 자명에게 물었지만, 자명은 그것도 듣지 못했다. 평소에 가던 우진당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고화당으로 향했다.

 자명은 고화당에 도착하자마자 목청껏 모영찬을 불렀다.

 “모 화원님! 모 화원님!”

 “응? 오늘은 어쩐 일이냐? 가져간 그림은 아직 우진당에 있을 텐데?”

 모영찬이 의아한 얼굴로 걸어와 자명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만, 고화당에 들여보내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아직 배우는 제자들은 고화당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자명이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며 절실하게 말했다.

 “꼭 모작하고 싶은 그림이 있어요. 그것을 그려 할아버지에게 보여 드려야 해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채문 대화백님께 말이냐?”

 모영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명의 표정을 보고는 곧 떨떠름하게 바뀌고 말았다. 평소에는 흐르는 물처럼 담담하던 아이가 이토록 초조한 것을 보니 어딘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혹시 오채문 대화백을 뵙고 왔느냐?”

 “예. 모작을 하면 보여 드리기로 약속했어요.”

 자명의 표정이 한층 더 간절해졌다. 그 바람에 모영찬의 마음이 약해졌다.

 잠시 갈등하던 모영찬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본래 제자들은 고화당에 함부로 드나들 수 없지만, 그것은 본래 고화당을 관리하는 이 모영찬의 결정에 달린 것이랄 수 있지. 내 특별히 허락해 주마.”

 “감사합니다.”

 자명은 고개를 한 번 빠르게 숙여 보이고는 고화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특별히 허락하긴 했지만 혹시나 잘못될 일이 있을까 싶었던 모영찬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자명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송대의 고화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족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고화당의 관리자인 모영찬도 모르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족자를 물대에 척 걸어놓더니 뒤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화선지를 펼쳐 문진으로 누르고는 물통에서 달을 담은 물을 부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자못 경건했다.

 ‘그동안 열심히 배웠으니까 이제 할 수 있어.’

 자명은 고개를 들고 무명도원도를 바라보았다. 인자한 두 신선과 안개에 휩싸인 장중한 고산의 모습이 자명의 눈에 오롯이 들어왔다.

 먼저 산을 분본(粉本:밑그림)한 다음, 세부적으로 기법들을 사용해 가며 산과 도원을 그린 후 두 명의 신선을 점경(點景)하듯이 그려야겠다.

 ‘할아버지는 설혹 조금일지라도 반드시 기운생동하여야 한다고 했었지.’

 자명은 무명도원도 중에서도 고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세상 만물을 지켜보는 듯 고고하고도 허허로웠다. 기운생동하여야 한다고 했으니 그 허허로움이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자명은 붓을 화선지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자명은 자신이 고화당에 있다는 것도, 자신의 자세를 보고 그럴듯하다며 감탄하는 모영찬의 존재도 잊어버렸다.

 예전에 할아버지와 그림을 그릴 때부터 보였던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기운생동. 그림이 살아 있으려면 먼저 산의 기운이 살아 있어야 한다.’

 자명이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획을 그을 때에 호흡을 함부로 내쉬면 획이 삐뚤어지는 법. 자명에게는 산을 오가며 쌓은 체력이 있었다.

 ‘허허로움을 담아야 해.’

 자명의 손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명의 결의가 곁에서 지켜보던 이에게도 전해졌나 보다. 모영찬은 저도 모르게 긴장한 듯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런데 자명의 손은 느려도 너무 느렸다. 기운생동하도록 획 하나에 마음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획이 끝나지 않았으니 호흡도 한층 더 길어졌다. 느리게 들이마시고 느리게 내쉬는데 점점 느려져 아예 호흡을 하는 것 같지도 않게 보였다.

 호흡이 느려지자 모영찬은 점점 걱정이 되었다.

 “자명아?”

 자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호흡이 느려져 마치 죽은 것만 같았다. 붓이 계속 움직이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 괜찮은 게냐?”

 자명의 붓만이 조금의 움직임을 보였을 뿐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니, 이 녀석은 뭘 배웠기에 숨을 쉬지 않는 게야? 획을 그을 때는 숨을 쉬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더냐? 작게라도 내쉬어야지. 자명아? 자명아!”

 자명의 전신에 팥죽 같은 땀이 송골송골 솟아났다. 획을 긋던 팔도 부르르 떨렸다. 신기하게도 붓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명아, 이러다 생사람 잡겠구나. 자명아!”

 마침내 참지 못한 모영찬이 끼어들어 자명의 어깨를 잡아갔다. 다행히 그 직전, 자명이 붓을 놓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자명은 땀을 줄줄 흘리며 호흡을 거칠게 내쉬었다. 보통 사람의 인내력으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숨을 느리게 쉰 결과였다. 오죽하면 구경하던 모영찬이 숨을 안 쉬는 줄 알았겠는가!

 범인의 경지를 넘어선 과욕을 부린 결과는 탈진이었다.

 자명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허억! 나, 난 바보인가 봐.”

 자명이 숨을 몰아쉬며 혼잣말을 주워섬기고는 억지로 기운을 내어 그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후, 후아―”

 모작이 처음이니 잘 안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한 획도 긋지 못할 줄은 몰랐다.

 산을 그린 획 중 고작 하나만을 모작했을 뿐이다. 그것을 보니 마음이 갑갑해졌다.

 아무래도 자신은 정말 바보인가 보다. 다른 아이들은 쑥쑥 잘만 모작하던데, 왜 자신은 이 모양일까.

 “이래서야 언제 할아버지에게 그림을 보여 드리지?”

 실의에 잠긴 자명이 머리를 바닥에 기대고 고화당의 천장을 바라보며 울먹였다.

 “으이그, 땀 냄새. 이처럼 지독한 땀 냄새는 처음이다.”

 난생처음 맡게 된 악취에 모영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땀 냄새가 이렇게 지독한 녀석은 처음 본다.

 땀 색깔이 거무죽죽한 것이 몹시 이상했지만, 모영찬에게는 이처럼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집중력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과연 오채문 대화백쯤 되면 보는 눈도 범인과는 다른 모양이다.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아이를 제자로 삼았다 들었을 때 이상하다 여겼거늘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어. 자질이 없어 한 획밖에 긋지 못한다 해도 탈진할 정도의 집중력을 가졌다면 능히 대성할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모영찬은 그렇게 말하며 자명을 일으켜 등에 업으려 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렇게 그렸다가는 완성하기도 전에 네가 먼저 비명횡사하겠다, 인석아. 업어줄 터이니 기운 내거라.”

 “제가 일어날게요.”

 자명이 울적한 얼굴로 속삭이며 제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다시 모영찬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

 “탈진한 게 아니었더냐? 손가락 하나 못 드는 줄 알았는데.”

 “일어날 수 있어요.”

 내가 잘못 본 건가, 하고 모영찬이 중얼거렸지만, 실의에 잠긴 자명은 그것도 듣지 못하고는 주섬주섬 붓과 벼루를 챙겼다.

 모영찬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가운데, 짐을 모두 챙긴 자명이 침울한 어조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휘청휘청 고화당을 벗어났다.

 “자, 잘 가거라.”

 모영찬이 자명의 뒷모습에 대고 떨떠름하게 중얼거렸지만, 자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모영찬은 한참 동안 자명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그가 모습을 감추었을 때에야 천천히 일어났다.

 “허참, 이상한 놈이로고.”

 모영찬은 자명의 기괴한 행동을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자명이 미처 치우지 않은 무명도원도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별거 아닌 그림인데 왜 모작하지 못했을까.”

 모영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림을 바라보다가 그것을 둘둘 말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머릿속에 자명에 대한 생각이 꽉 차 있었기에 모영찬은 무명도원도의 귀퉁이가 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것이 이전에는 없었던 상처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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