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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상아탑 : 신의 인형
작가 : 린비
작품등록일 : 2020.8.28

현대 주술사가 변방 지대에 세운 초인력자 교육 기관 '상아탑'. 소속 간 경쟁이 치열한 상아탑에 초인류의 존재조차 모른 한 아이가 중도 입학을 하는데, 이 아이가 세계의 유일 능력자임이 밝혀지며 마주하는 세계의 비밀과 감춰진 역사, 그리고 그와 함께 등장하는 베일에 쌓인 도적. xlxl0103@naver.com 미계약작입니다.

 
거짓의 탑
작성일 : 20-09-10 20:13     조회 : 312     추천 : 3     분량 : 6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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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아탑』

 W.린비

 

 

 

 

 

 

 <9> 거짓의 탑

 

 

 

 

 

 

 

 

 

 소문은 빛처럼 날았다.

 

 전학생이 어제는 적 소속 출입증을 훔쳐 기숙사에 들더니, 오늘은 고뇌하는 여인을 협박해 교양실로 들었다더라. 아주 '문 사냥꾼'이 따로 없다더라.

 

 말들은 입이란 프리즘을 거치며 사실과 다르게 굴절되기도 했다.

 

 

 수업이 파한 후 소녀는 온조, 벤더와 나란히 학생 쉼터로 끌려갔다. 몸통이 비틀린 나무가 천공을 향해 솟은 녹색 지대였다.

 

 세 학도를 그곳에 인도한 은사는 잘못의 형량만큼 꽃과 나무를 심을 것을 지시했다. 또한 할당량을 모두 끝낼 때까지 ‘절대 침묵’을 지킬 것을.

 

 

 “ 그 벌, 100년째 내려오는 거 보면 여기 설립자가 대단한 자연 애호가였던 모양이죠? ”

 

 

 벤더가 침묵에 대한 명령을 곧장 질문으로 받아치자 은사는 도리질했다.

 

 

 “ 인간이 여전히 자연 파괴자이기 때문이지. 자네처럼. ”

 

 “ 제가요? 그럴 리가요. 전 이름만 해도 자연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데요? ”

 

 

 온조가 녀석을 제지하려는 듯 학교 측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삽을 내려보며 물었다.

 

 

 “ 심을 것들은 어디 있죠? ”

 

 

 그러기 무섭게 한 학도가 종자식물이 그득한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소녀는 그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외모가 수려한 탓도 있었지만 이미 안면을 튼 까닭이었다. 우경우란 이였다.

 

 

 녀석을 본 벤더의 낯이 매우 살가워졌다(온조는 안경을 치키며 녀석에게 손 인사했다).

 

 

 “ 여어, 우경. 박 장군은 어디 가고 너 혼자냐? 오늘 혼자 근로임? ”

 

 

 학도의 근로는 상단이라는 학도복 상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경우는 말없이 수레의 바퀴를 고정했다. 서로 친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경우의 반향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벤더가 툴툴거렸다.

 

 

 “ 저 자식은 박열매한테만 대꾸가 길어. ”

 

 “ 벤더 자네한테만 짧은 것이라네. 그리고 침묵하게. 징계는 이미 시작됐으니. ”

 

 

 은사는 조건을 어긴 순간 더한 엄벌(관심 학도 처분)이 내려질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고 사라졌다. 학도 우경우에게 셋을 감시하라는 권한을 맡긴 채.

 

 그러나 경우는 은사의 모습이 점이 됨과 동시에 수레에 걸터앉아 완벽히 신경을 껐다.

 

 학도복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필첩을 꺼내 무언가를 무심하게 끄적일 뿐이었다.

 

 

 남은 학기 동안 정령의 감시를 달고 산다는 건 생각보다도 꺼림칙한 일인지 벤더는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남은 둘도 수레의 꽃과 풀을 명령 받은 곳에 옮겨심기 시작했다.

 

 

 소녀는 열심히였다. 그 새 죄책감이 생겼다기보단 한시 빨리 고요한 방에 틀어박히고 싶었다.

 

 허나 심는 것들이 일반적인 식물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것들은 푸른 잎과 줄기, 그리고 생식기관인 꽃을 매우 산만하게 움직여대었는데, 소녀의 손길만 골라 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겨우 하나를 집어다 뿌리를 땅에 묻으려는데 몸부림이 여간 심한 것이 아니었다.

 

 곁을 보니 두 녀석은 익숙한 듯 식물의 발악을 삽으로 두드려 잠재웠다.

 

 소녀가 그 모양을 따라 했으나, 화초가 진정하지 않고 갑자기 면전을 향해 씨를 뱉었다.

 

 

 고약한 성질에 당한 소녀는 놀라 나자빠졌고, 동시에 식물이 손을 떠나 날아갔다.

 

 운 없는 누군가가 그것을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소녀가 돌아보았을 때, 수레에 앉은 이의 몸이 흙투성이였다. 그이의 머리에는 날아간 화초가 방긋, 뿌리를 내리고 앉아있었다.

 

 

 “ 푸,푸크,크흐하하하하하! ”

 

 

 벤더가 크게 웃어젖혔다. 온조는 입을 꾹 다물었으나 면전에 웃음기가 다분했다.

 

 그 순간 ‘우경’의 눈빛은 정말이지 소녀를 때려죽일 것 같았다.

 

 

 어째서 적 소속과는 자꾸 이런 무례로 얽히게 되는지.

 

 소녀는 경우가 든 수첩이 거세게 날아올까 무서우면서도 목구멍이 발작으로 떨리는 탓에 사과를 뱉지 못했다.

 

 

 실컷 웃은 벤더가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 뭘 그렇게 죽일 듯이 봐, 우경. 전학생 지구 출신이라 능화초 다룰 줄 모르는 모양인데. ”

 

 

 벤더가 너스레 좋게 말하여도 경우의 낯은 험악해질 뿐이었다. '출신'이라는 대목에서 특히 그랬다.

 

 검은 고양이도 지구인을 칭할 때 그런 눈이곤 했는데. 이곳 이들에게 그 행성은 달갑지 않은 이웃쯤 되는 모양이었다.

 

 

 온조가 말했다.

 

 

 “ 보건소 가야겠다, 경우. ”

 

 “ 크흑, 그래, 야. 능화초 아무렇게나 떼면 안 된다더라. 잘못하다 대머리 된대. ”

 

 

 녀석들은 잔디에 삽을 꽂아 두더니 가자는 듯 경우의 어깨를 쳤다. 은사의 으름장은 이미 안중 밖에 둔 듯 했다.

 

 경우는 여전히 소녀를 노려보았다. 녀석의 정수리에 둥지를 튼 식물도 다시금 소녀에게 씨를 뱉을 듯한 자세를 취하였다.

 

 소녀가 용서를 구하려 했으나 경우가 한발 빨랐다.

 

 

 “ 따라와, X발. ”

 

 

 

 

 

 ***

 

 

 

 

 소녀가 교정을 나서는 온조와 벤더를 쫓았다. 교문의 육중한 소리보다도 제 뒤로 걷고 있는 녀석이 더 무서웠다.

 

 경우는 소녀의 뒤통수에 시선을 가시처럼 꽂았고, 그를 돌아본 벤더가 실실대었다.

 

 

 “ 저거 지 머리에 꽃 달린 거 보지 말라고 우리 앞세운 거지 지금? ”

 

 

 그렇게 마을로 가는 길녘을 내리는데, 중간쯤 우람한 기척이 들린다 싶더니 귓가로 익숙한 소리가 날아들었다.

 

 

 - 와학학!

 

 

 뒤편에서 팔척장신이 사지를 휘날리며 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허연 무언가를 든 채였다.

 

 

 벤더가 입을 벌렸다.

 

 

 “ 겁나 공포스럽다. 사람이 뛰는 게 저렇게 무서운 거였냐? 갈기 단 미친 사자 같아. ”

 

 “ 우리가 여깄는 건 어떻게 알았대. ”

 

 “ 저 보폭이면 10분 내에 교정 다 둘러보고도 남을 거 같지 않냐. 그리고 여기 온 거겠지. ”

 

 

 아니나 다를까 열매는 마하의 속도로 당도해 소녀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 와학, 그대를 즉시 처부운. ”

 

 

 그러면서 수중의 것을 불쑥 소녀의 시야에 들이밀었는데, 웬 그림이었다.

 

 금일 교양 수업에서 벌어진 일생일대의 사건을 묘사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소녀는 저로 추정되는 그림 위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전날 루안이 적의 빨래터에 널어놨던 제 얼굴이자, 사진의 파편이었다.

 

 버릴 심산으로 그저 두었는데 열매는 어찌 발견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놓았다.

 

 

 열매가 외쳤다.

 

 

 “ 과거에 머무는 건 정신 성장이 덜 된 거라고? 와학, 그러는 여인 지는! 그놈의 시간 질문을 몇 년째 우려먹고 있는데. ”

 

 

 벤더가 맞장구쳤다.

 

 

 “ 오늘도 우리 소속 추구가 휴식과 평정이라더라. 반세기 전이야 그랬지. 지금은 협동과 평화인데. ”

 

 “ 관습만 고집하는 건 인격이 성장 못 했다는 증거야. 발바닥 인격인 거지. 낯빛도 탁하고 거무튀튀한 게 냄새날 것처럼 생겨가지고, 와학. 고로 잘했다, 묘족! ”

 

 

 큰 덩치가 더 이상 위협의 용도가 아닌 것 같았다. 소녀를 '소매치기'라 부르던 기세는 어디 가고 열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 와학, 그런 의미에서 우리 소속 계속 있지 않을래? 우리 통성명 제대로 할까? 난 박열매야. 능력은 발화. 불을 피우고 날리지. ”

 

 

 벤더가 끼어들었다.

 

 

 “ 얜 얼굴은 미녀인데 활동력은 야수급이야. 3년 봐왔는데 정상인 적이 별로 없었어. 그냥 우리 소속 와. 거인에게서 구원해줄게. ”

 

 “ 사돈 남말 하시네. 어디서 수작이야. '정상'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인 거거든? ”

 

 “ 주관에도 보편이 있지. 여튼 난 번개 능력자 라벤더. 외우기 쉽지? 꽃 이름 가진 남자가 어디 흔하냐. ”

 

 “ 이렇게 광대 큰 남자도 흔하지 않지. 이마도 태평양이야. ”

 

 “ 야, 박장군 어디서 인신공격이야. 깔 게 그렇게 없냐? ”

 

 “ 너도 내 외모 평가했잖아? ”

 

 “ 난 좋게 했잖아! ”

 

 

 온조가 다투기 시작한 둘을 피해 악수를 건넸다. 벌판에서 사진을 집을 때도 느꼈지만 손이 참으로 섬섬옥수였다.

 

 

 “ 백온조야. 빛 능력자. ”

 

 

 그에 투닥대던 두 녀석이 귀신 같이 참견했다.

 

 

 - 와학, 어둠은 제 발로 물러가지 않지만, 이 자식은 잡기도 전에 물러가지.

 

 - 명색에 '빛'의 능력자인데 겁쟁이야, 겁쟁이. 얘 밥 먹듯이 기절한다?

 

 

 친분을 흉 보는 걸로 보이는 게 녀석들의 공식인 것 같았다.

 

 모두가 제 소개를 하고 나니 경우만 남았다. 소녀가 두려운 낯으로 흘끗대자 녀석은 거북한 인연에 얽힌 것마냥 미간을 좁혔다.

 

 

 “ 뭐. ”

 

 

 열매가 풀죽은 소녀에게 팔을 고쳐 걸었다.

 

 

 “ 축하해. 넌 방금 우경의 천 번째 ‘뭐’를 들었단다. 그리고 이해하렴. 이 녀석이 누가 쳐다보는 걸 싫어하거든. ”

 

 

 그러는 ‘우경’ 본인의 시선은 매우 빤하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방어기제일까.

 

 녀석은 극히 잘 빚어진 외모였고, 쉼터만 해도 그 얼굴을 훑고 가는 시선이 상당했다.

 

 보는 이 입장에선 저 하나여도 녀석의 관점에서는 수십의 시선일 테니, 괴팍한 반응을 납득해주는 게 현재로썬 최선일 듯 했다.

 

 

 “ 와학, 근데 다들 어디 가는 중? ”

 

 

 ‘우경’이 등 돌려 가며 열매에게 답했다.

 

 

 “ 무덤. ”

 

 

 소녀에겐 그것이 저를 묻겠다는 말로 들렸다.

 

 온조가 친히 해석해주었다.

 

 

 “ 보건소에. 능화초 떼러. ”

 

 “ 와학, 우경 꼴이 좀 이상하다 싶긴 했어. 근데 묘족은 왜 데려가? ”

 

 “ 타 학도 과실로 인한 방문은 사유서를 같이 적어야 하잖아. ”

 

 “ 뭐야, 저거 묘족 너가 그런 거야? 출입증 절도에, 야반도주에, 능화초 투척에, 도대체 너의 끝은 뭐냐! ”

 

 

 소녀는 소란한 귀청을 흘려보내며 경우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녀석이 지나는 자리로 지반이 움푹움푹 꺼져갔다. 아마 땅에 관련된 능력자인가 보다.

 

 

 - 싱크홀 만들겠네. 이게 저렇게까지 화낼 일임?

 

 - 와학, 옷 저거 한 벌인 거 티 낸다 또. 같이 가 우경!

 

 

 금세 다섯이 된 무리는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마을 초입부터 어김없이 환대를 받은 녀석들은 꼭 성격대로 주민들에게 맞인사를 보내었다.

 

 어느 큰 건물 곁을 지날 때였을까, 라벤더가 혀를 찼다.

 

 

 “ 가짜 책들을 어떻게 저만큼 쌓냐. ”

 

 

 왠 책 타령인가 했더니, 온조가 그 거대한 건물을 가리켜 ‘도서관’이라 하였다. 소녀는 문득 그를 ‘거짓의 탑’이라 했던 루안의 말이 떠올랐다.

 

 전날 보기엔 지붕이 저리 높지 않았는데, 날카로운 형세가 당최 어디 숨어있던 건가 했다. 생각해보니 어제는 구름이 많은 날이었다.

 

 

 “ 저 안에 있는 건 모두 역사 왜곡 도서야. ”

 

 

 듣자 하니 그 도서관은 어느 가문의 사업이라 했다. 한 순수 가문의.

 

 온조가 소녀의 의아를 눈치채고 설명을 붙였다.

 

 

 “ 하나의 능력을 하나의 집안만이 갖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순수 가문이라 해. ”

 

 

 벤더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었다.

 

 

 “ 우리 가족들은 능력이 다 다르거든. 백온조네도. 반면 순수 녀석들은 가족이 싹 다 동종의 능력을 가졌어. ”

 

 “ 저런 걸 만드는 놈들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니, 와학. ”

 

 “ 위씨들이 그렇지 뭐. ”

 

 

 열매가 보기 드물게 성을 내면 경우가 도서관 방향으로 침을 뱉었다. 모르긴 몰라도 탑은 많은 질타를 받는 대상인 듯 했다.

 

 소녀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 어,어떤 왜곡인데? ”

 

 

 온조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 본인들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변명. 옛날에 아주 큰 전쟁이 있었는데, 그 주체는 다 순수 가문들이었어. 전쟁 이유가 순전히 그들 탐욕 때문이었고. ”

 

 

 벤더가 녀석의 말을 이어 받았다.

 

 

 “ 베르제타만 불쌍하지. ”

 

 

 ‘베르제타’. 이곳 이들에겐 자명해 마지않는 이름이 나왔을 때, 소녀의 고개가 다시 비스듬해졌다.

 

 온조는 또 친절히 서설을 했다.

 

 

 “ 사라진 순수 가문 중 하난데, 시간을 관장했고 유일하게 그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어. ”

 

 “ 동조하지 않은 걸로 저들이 멸망시켰고 말이야. ”

 

 

 벤더가 도서관의 창흑빛 융단을 가리켰다. 그곳에 ‘위’라는 이 세계의 글씨가 웅대하게 적혀 있었다.

 

 온조가 말했다.

 

 

 “ 엄밀히 말해 저들만은 아니지. 오씨와 한씨, 그리고 가씨도 있잖아. ”

 

 “ 와학, 루안 오빠네는 이미 200년 전부터 뉘우쳤거든. 이 세계에서 자선 사업 제일 많이 하는 집안일 거라고. 나도 그 수혜자인데? ”

 

 

 ‘가루안’. 소녀는 성을 생략하지 않은 적 관할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세계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거론될 정도면 얼마나 막대한 집안인 걸까.

 

 

 온조가 반박했다.

 

 

 “ 그렇게 치면 한씨도 그랬어. 후손들이 다른 행성에 고립된 능력자들을 구하는 데에 생을 쏟았지만, 지금은 대가 끊겨 사라졌잖아. ”

 

 

 벤더가 도리질했다.

 

 

 “ 신은 대체 왜 그러는가 몰라. 뉘우친 사람은 끝내 불행을 겪게 하면서, 저렇게 악독한 놈들은 그저 냅두고 있다니. ”

 

 

 무거운 낯들이 교차했다. 이 행성도 꽤나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만한 기록을 가진 세계를 어떻게 사는 동안 들어본 적이 없었을까. 그에 반해 이곳의 이들은 지구의 존재를 완벽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인식 차이는 어느 복잡한 우주 법칙으로부터 오는 지, 혹은 단순히 지구인들의 사고의 한계인지 궁금했다.

 

 

 소녀는 문득 이 행성의 역사가 알고 싶었다. 동시에 열매가 제게로 다시 팔을 두르는 것을 느꼈다.

 

 

 “ 이 학교에서 니가 엮이지 말아야 할 이름이 딱 세 개 있어, 묘족, '오수이', '위훈', 그리고 '은'이야. ”

 

 

 두 이름은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황 소속 회장으로부터.

 

 그 중 은이란 영혼을 대면했던 순간을 돌이키건데, 결코 얕잡아 부를 이름들이 아닌 것 같았다.

 

 

 때마침 ‘거짓의 탑’으로부터 한 무리가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탑의 융단처럼 어둔 옷을 걸쳤고 움직임이 고매한 학처럼 꼿꼿했다. 불결한 모든 것을 배척할 것만 같은 아우라였다.

 

 

 열매가 그 중앙의 소년을 향해 이를 갈았다.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

 

 

 소녀는 그가 나머지 하나의 이름일 것이라 직감하였다. 낯빛이 온조와는 다른 의미로 창백하고, 경우와는 다른 의미로 무감정한 소년이었다.

 

 훈이 무리를 거느리고 건물 앞 층계를 내리다 소녀 주변으로 몰린 네 녀석을 발견했다.

 

 훈은 특히 열매를 직시하였는데, 그 눈매로부터 경시 같은 것이 느껴졌다.

 

 

 돌연 바람이 불었다. 먹구름이 건물의 첨탑에 빨려 들 듯 뚜렷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굳은 열매의 머리가 한 올 한 올 날리며 저의 얼굴에 스치는 것을 자각했다.

 

 훈의 은빛 머리칼도, 냉랭한 응시 속에서 천공의 구름처럼 휘날렸다.

 

 

 어쩐지 상아탑의 이들은, 보통의 교우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작가의 말
 

 오늘도 린비의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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