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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후계자는 네가 해
작가 : 박시인
작품등록일 : 2020.8.4

묻혔던 비밀과 얽히고설켰던 사연들이 드러난다.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내라고 등 떠밀렸는데, 맞서는 대적자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 이 검왕의 아들과 그를 제자로 삼았던 천마의 후예는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음모에 빠졌을 때에도 갖가지 기연을 만나게 되는 제법 운이 좋은 사내. 또 고난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의리와 헌신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려 애쓰는 올곧은 의식의 소유자,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

 
#13. 이 몸을 또 한 번 내놓으라고?
작성일 : 20-09-10 11:44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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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이 몸을 또 한 번 내놓으라고?

 

 

 

  절벽 꼭대기까지는 아득히 삼백 장(三百 丈: 약 900~1,000m)도 더 되는 높이였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

  암석 사이사이에 쌓인 눈은 아직 다 녹아내리지 않고 있었다.

 

  검왕 주상민은 왜 그런 곳에 올라갔었을까. 그는 당시로부터 칠 년 전, 강호를 침탈하던 독룡신군을 앞장서서 퇴치한 인물이었다,

  산 아래를 굽어보는 눈빛이 복잡했다. 장검을 움켜쥔 손을 조금 떨고 있었다.

  몇 가지 사연을 혼자 토해내는 음성에는 비애가 가득했다.

  “독룡신군을 물리치고 난 얼마 후 등옥려가 곤아를 잉태했다. 그렇게 만삭이었을 때, 나는 상관대형의 호출을 받았다.”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곧 출산할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달려갔을까?”

  혼자 반문하는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따질 것도 없다. 그가 나를 알아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각에는 과장이나 축소가 없었다. 왕야(王爺)라는 내 신분에 눈이 가려지지도 않았다. 내 좋고 나쁜 점을 있는 그대로 봐줬을 뿐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줬기에, 자기 역시 어떤 일도 망설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돌연 표정이 바뀌었다. 의혹에 찬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교묘한 일이 벌어졌었다. 어찌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왕부를 침략하는 자들이 있었을까?”

  도대체 까닭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만삭이던 등옥려를 지킨 사람이 화산이검(華山二劍) 조태민이다.”

  눈빛에는 자기가 거명한 사람을 존중하는 기색과 경계하는 기색이 함께 떠올랐다.

  “그는 습격해온 자들의 장검에 세 번이나 깊이 찔렸다. 등뼈에 독 암기까지 얻어맞았다. 목숨까지 위태롭다가 결국은 주화입마에 빠져들었다.”

  눈빛에서 빚을 졌다는 기색과 함께 의혹의 느낌이 다시 번져 나왔다.

  “그는 그녀를 은혜(恩惠: 애정을 품어 사랑받고 싶은)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내 아들의 보호자가 되고 싶었을까?”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사나이의 눈가에 쓸쓸한 우수의 빛이 스쳐 갔다.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며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교묘하다. 또 왕부를 떠날 일이 생겼구나.”

  중얼거리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곤아가 보고 싶어서 달려왔던 상관대형이 암습을 당했다니! 죽음을 겨우 면했을 만큼의 중상을 입었다니!”

  안타깝게 탄식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하필이면 그때 그런 꼬투리가 발견됐을까.”

  주먹이 저절로 움켜쥐어졌다.

  “곤아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전대(前代)의 비밀 꼬투리 한 자락을 발견했다고 했다.

  고개를 흔들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가를 크게 이해한다는 뜻이었다.

  “상관대형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해야 할 일을 망설이는 성격이 아니다. 아무 준비가 없었더라도 그걸 급하게 파헤쳤을 수밖에 없었을 테지!”

  그러면서 발을 한번 구르자 바닥의 바위가 우수수 깨져나갔다.

  “속근생령환은 상관대형의 회복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구술(口述: 말을 받아적게 함)해서 보낸 서찰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혼자 말하는 표정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자기를 만나보러 오기 전에 소림사 장경각 각주였던 현현선사(玄玄禪師)나 달마원 주지였던 현생선사(玄生禪師)를 만나보라?”

  고개를 흔들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직접 편지를 쓰지도 못할 정도라면 그만큼 위중한 상처가 아니겠나? 그런데 강호에서 물러난 지 오래된 분들을 먼저 찾아보라니. 설마 지금은 나를 만나지 않겠다는 뜻인가?”

  질끈 감았다가 뜬 눈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안타까운 빛이 쏟아졌다.

  이어진 중얼거림은 더했다.

  이 모든 얽힌 일을 해결하려면 잠시 아들 곁을 떠나야 한다는 탄식이었다. 그 느낌이 마치 이를 가는 것 같았다.

  “아들아, 네 어머니는 벌써 너에게 시(詩)와 글자를 가르치더구나. 나도 네 곁을 지켜주며 양육해야 하건만, 결국 아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게 생겼다.”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무예는 어쩔 수 없이 조태민에게서 배워야 하리라.”

  또 한참을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긍지가 높은 사람이다. 생각은 곧다. 그러나 자기 관점으로만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편벽(偏僻: 한쪽으로 너무 치우침)은 지우지 못한다. 그래서 걱정이다.”

  걱정이라면서도 판단은 거기서 멈췄다.

  자기 판단 역시 자기 관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격조 있는 분별력이었다.

  무릇 이런 부류는 대체로 무서운 결단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내가 얼마 전부터 구결을 들려줬던 교탈조화의 검식과 장법 보록(譜錄: 초식을 적은 기록지)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너는 고질병을 갖고 태어난 몸이다. 장차 한성검(寒星劍)을 건네줄 사람을 만나야만 천하를 도모할 길에 나설 수 있으리라.”

  거기서 중얼거림을 멈춘 사나이가 문득 무엇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얼굴에 싱긋 웃음기를 흘렸다.

  그 슬쩍 웃는 모습은 마음이 철렁 흔들릴 만큼 매력적이었다.

  신기했다. 그가 떠올린 사람이 이런 표정을 만들어주었으리라.

  “그대 운남공주 등옥려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나의 다음 대(代)를 이을 아들에게 얼마든지 훌륭한 어머니가 될 테지. 그건 걱정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말한 다음 크게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내가 그대와 동침한 것은 그 몸속의 음한지기를 몰아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다음 싱긋 웃는 표정에는 기꺼움과 미안함이 함께 묻어났다.

  “그러나 곤아를 낳기 위해서 그대는 목숨을 걸었다. 순백지신(純白之身: 숫처녀의 몸)만이 연성할 수 있는 그 절정무예까지 포기했다.”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점점 짙어졌다. 그러면서도 이어지는 음성에는 신뢰와 확신이 넘쳤다.

  발성의 가락과 억양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일의 실행이 그대를 완전히 낫게 하기는 했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보면 나는 그대에게 빚을 진 것이다. 내가 후대(後代)를 이을 염려를 지우게 됐으니.”

  홀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표정은 모든 일신의 문제를 다 해결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대가 특별하게 말했던 그 일이 흥미롭기도 하다. 문파에서 파문당한 비도문의 대제자 엄수수(嚴收受)를 왕부의 총독으로 정해달라니! 어쩌려는 건가?”

  고개를 한번 저었으나 다시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대에게 왕부를 맡기고, 또 그 젊은 여성에게 파격적인 지위를 주면 이곳의 관리자로 삼으려고? 아니면 곤아까지 돌보고 지키는 총괄자로?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야.”

  모를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어투에 회의감은 없었다. 분명 등옥려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억양이었다.

  “황궁에서도 그랬고, 그곳을 벗어난 지금까지도 내 앞에는 늘 모르는 일이 부딪혀왔다. 그때마다 나는 이 한 몸을 다 내놓았다. 그러니 천애(天涯: 이 하늘 아래에서 저 땅끝까지)를 조금 더 떠돌아다닌들 어떠리.”

  말을 마친 표정은 이미 안정돼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기색을 아주 다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차마 자기 가슴을 치지도 못했다. 양손을 맞부딪혀 손뼉을 한번 쳤을 뿐이었다.

  손바닥 울림의 공명이 웅웅 골짜기를 맴돌았다.

  아직 녹아내리지 못하고 쌓였던 눈들이 우수수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삼백 장 절벽 아래로 천천히 쏟아져 내리는 눈사태. 그건 정말 장관이라고 할 만한 광경이었다.

  사내는 그 눈 조각들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그 가운데로 몸을 던졌다.

  눈사태에 섞여 날아가는 모습이 바람 속을 태연히 너풀거리는 나비 같았다.

 

  검왕부 대청에 들어온 주상민은 지필묵을 꺼내 빠르게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

  방금 산꼭대기 절벽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던 자신의 초상화였다.

  그다음 의자에 앉은 아이 곁에서 지켜보던 여인에게 말했다.

  “이 그림을 대청에 걸어 놓으라. 저 검 끝이 겨누고 있는 곳에 비밀을 그려 놓았다.”

  등옥려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이 그림을 치밀하게 복사하듯 한번 그려보렵니다.”

  “아아, 그대여. 나는 어찌해야 좋을꼬!”

  “무슨 말씀이신가요?”

  “내 행차(行次)는 사람을 살리기 위함인데 이 그림의 표정에는 분노만 가득하구나.”

  말을 마치며 또 한 번 장탄식을 내뿜었다.

  그림 옆에 따라놓았던 찻잔을 들어 올렸으나 마시지도 못했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훌쩍 대청 밖으로 몸을 날렸다.

  남겨진 여인 등옥려는 의자에서 잠든 주유곤의 머리를 안은 채 망연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일다경(一茶頃: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주상민이 다시 대청에 날아들었다.

  품에는 갓난아기가 싸여있는 허름한 보자기를 안고 있었다.

  “아, 상공. 그 아이는 어찌 된 건가요?”

  “왕부 앞 광장 구석에서 죽어가는 부부를 발견했다.”

  “어떻게 경비하는 위병들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글쎄다. 이 아이 역시 그 어미의 품속에서 죽어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 아비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마지막으로요?”

  “‘어떻게든 여기까지만 오면 이 아이는 살릴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살려주소서.’라고.”

  “아! 저런!”

  “그러니 어쩌겠는가? 여기까지만 오면 살릴 것 같았다는데.”

  “저들이 그만큼 이곳에 의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내 비록 갈 길이 멀다 하나 이 어린 생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

  “상공의 긍휼(矜恤: 불쌍히 여기는 마음)하심이 크십니다.”

  “그런데 당장 이 얼어붙은 살과 뼈와 혈관을 녹여 놓을 방법이 없구나.”

  여인이 차분한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찾아보면 방법은 있을 겁니다.”

  빈말이나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유심히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데 오히려 주상민이 더 걱정스럽게 말했다.

  “반드시 벌모세수(伐毛洗髓: 털끝을 밀고 골수까지 씻어냄)의 수단이 필요할 텐데, 나는 그렇다 해도 그대의 공력까지 손실이 생기지 않겠는가?”

  등옥려는 자기 품에 기대고 있던 아이를 주상민에게 안겨주었다.

  그다음 죽어가는 아기를 받아들더니 품 안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이것은 하늘이 두 아이를 묶어주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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