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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원나잇 바디샷
작가 : 아스테리아
작품등록일 : 2020.9.1

그의 입술이 내려왔다. 쇄골을 깊게 핥은 그가 하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테킬라 잔을 들어 삼킨다. 목울대가 아래위로 움직인다. '하, 이런 섹시한 대나무숲을 봤나.' 에덴의 동산에는 대나무숲이 있다. 그가 자꾸 꼬리를 흔든다. 이리와 여기 이 탐스러운 선악과를 한번 먹어보라고... "당신이 먹는 열매가 당신을 천국으로 보내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과감하게 한번 먹어봐요." 섹시한 대나무숲의 유혹이 시작된다.

 
08. 이 탐스러운 선악과를 한번 먹어보렴
작성일 : 20-09-08 21:25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5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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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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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든은 회의가 끝나고 바닥에 떨어진 태블릿 펜을 발견했다. 하랑이 찾으러 올 거라 생각하고 일부러 회의실에서 야근했다. 단추도 세 개나 풀고, 소매도 걷어 올렸다.

 

 ‘오지 않으려나? 좀 늦네.’라고 생각이 들 때쯤 예상대로 그녀가 왔다.

 

 회의실 문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 걸 눈치챘지만 모른 척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렸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것처럼 그녀와 눈을 맞췄다.

 

 당황한 듯 동그랗게 떠진 눈이 너무 귀여워 당장에라도 달려가 끌어안고 싶은 걸 겨우 참고, 하랑의 앞에 마주 섰다.

 

 “야근 하시나 보네요?”

 “네. 일이 많네요.”

 “그럼 일, 마저 하세요. 전 놓고 간 게 있어서.”

 

 하랑이 유리문을 잡고 있는 이든의 팔 아래를 지나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까 앉았던 자리 근처를 두리번거린다.

 

 아, 어디 갔지? 혹시 청소하다가 쓰레기통에 딸려갔나? 하나 다시 사야 하나……?

 

 “내가 사준 운동화 신었네요?”

 “네. 낮은 신발이 러닝화 말고는 없더라고요.”

 “높은 구두 신으면 발 안 아파요?”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답을 던졌다. 그러면서 허리를 숙여 책상과 바닥 구석구석을 살피던 하랑이 잠시 멈칫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잠깐. 좀 전에 분명 ‘이제 와요?’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올 걸 알고 있었어?

 

 거기까지 생각한 하랑이 몸을 돌려 이든을 바라보았다. 닫힌 유리문. 그 옆 반투명 시트지가 붙어 뽀얀 빛을 띠는 통유리에 기대 서 있는 박이든. 팔짱 낀 그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한 손에 들린 하랑의 태블릿 펜을 흔든다.

 

 하랑이 작게 한숨을 쉬며 이든에게 다가갔다. 펜을 잡으려는 순간 이든이 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바람에 그 손을 따라가던 몸이 그와 한 발짝 간격으로 가까워졌다.

 

 “줘요.”

 

 팔을 뻗어도 닿을 리 없는 높이. 이든이 팔을 내려 얼굴 옆으로 펜을 가져온다. 그리고 하랑의 시선도 함께 따라 내려와 그의 얼굴에서 멈췄다.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이제 아래로 내려가는 펜. 또 그것을 따라가는 하랑의 시선. 이든의 슬랙스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간 펜. 그리고는 팔짱을 껴버린다. 꺼내보려면 꺼내보라는 식으로.

 

 펜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린 하랑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자신을 깊고 가득 채워주던 그가 생각나 버렸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음란마귀야 물러가라!

 

 여전히 고개를 돌린 하랑의 발그레해진 두 뺨을 보며 이든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나한테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 세 개만 해봐요.”

 “……?”

 “진하랑씨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려줬다면서요. 나도 혼자 이것저것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면 왠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서. 아주 개인적인 거로 궁금한 거 세 개만 물어봐요.”

 

 하랑이 세 걸음 뒤로 물러나며 회의실 테이블에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손으로 테이블을 짚은 하랑이 이든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몇 살이에요?”

 “서른 살이에요.”

 “역시.”

 “예상했던 나이에요?”

 “지난번에 나랑 비슷할 거라고 하길래 동안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네요.”

 “진하랑씨는 아주 동안이시네요.”

 

 다섯 살 차이. 역시 확실히 선을 그어야겠다.

 

 “이름이 독특한데 무슨 뜻이에요?”

 “우리말로는 ‘착하다. 어질다.’라는 뜻이 있는 데요. 집이 천주교 집안이라 에덴(Eden)을 뜻하기도 해요.”

 “아……. 그래서 회사 이름이?”

 “맞아요.”

 “재밌네요.”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이 남았다. 잠시 고민했다. 그냥 면접 보듯이 취미나 특기 같은 걸 물어봐야 하나? 좋아하는 음식?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으로 뭐가 좋을까 잠시 생각하다 단순하게 입을 열었다.

 

 “음… 뭐 좋아해요?”

 “진하랑씨요.”

 “……!”

 “진하랑씨 좋아해요.”

 “아뇨! 좋아하는 음식이요. 뭐 즐겨 먹는지 그런 거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이든이 하랑을 향해 다가온다. 회의실 테이블 때문에 뒷걸음질 칠 공간이 막힌 하랑이 몸을 뒤로 기울였다. 허리가 꺾이는 듯한 자세가 불편하다 생각되려는 찰나 이든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들어 올려 테이블 위로 깊숙이 앉혔다. 그리고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하랑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떨어져요!”

 “왜 자꾸 나 밀어내요?”

 “저기요 우리 다섯 살 차이에요. 나 고등학교 입학할 때 박이든씨 초딩이었고, 박이든씨 중학생 사춘기일 때 난 나이트도 갈 수 있는 성인이었다고요.”

 “나이트 많이 갔어요?”

 “아니요. 별로 안 좋아해요. 아, 이게 아니고. 어쨌든 내가 나이가 더 많다고요.”

 “알아요.”

 

 고개를 옆으로 까딱인다. 그게 뭐 문제냐는 듯. 눈썹을 살짝 올렸다가 내리더니 얼굴을 가깝게 대고 빙긋 웃는다.

 

 “나 이혼녀에요. 이건 몰랐죠?”

 “아…….”

 “박이든씨는 아니잖아요.”

 

 이든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던 것 같다. 그걸 본 하랑이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하지만 이내 한숨 섞인 웃음을 지은 그가 작게 ‘난 또 뭐라고.’라며… 하랑을 빤히 쳐다본다.

 

 “그게 문제라면 나도 한번 갔다 올까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그리고요?”

 

 그리고 또 뭐가 있지? 내가 이 남자를 밀어내는 이유.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응?”

 “그리고 남자 만날 생각 없어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하랑의 눈빛이 깊게 물든다. 머릿속에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끝이에요?”

 “네?”

 “나 밀어내는 이유 그걸로 끝이에요?”

 

 왠지 여기서 끝이라고 말하면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랑이 눈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이 안 되잖아요. 우리 오늘로 겨우 세 번 봤어요.”

 “음……. 그건 진하랑씨 주장이 더 말이 안 돼요. 만난 횟수가 뭐가 중요해요? 잊었어요? 우리 첫 만남에 같이 잤어요.”

 “그건! 술 때문에 일어난 사고 같은 거였어요.”

 “나한테는 사고 아니었어요. 그리고 난 처음 본 그 날부터 좋았는데.”

 “…….”

 “그날 당신이 너무 좋았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함께 있고 싶을 만큼.”

 

 ― 두근. 두근.

 

 이혼 후 다짐했었다. 이제 남자는 필요 없다고. 세상은 독고다이라고. 그런데 이 남자의 말에 자꾸 마음이 동한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코앞에 다가온 이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얇은 속쌍꺼풀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깊은 눈매와 짙은 눈썹, 날렵하게 뻗은 높은 콧대.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서인지 전체적으로 선이 굵은 남자다운 얼굴에서 부드러움이 묻어난다.

 

 하랑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조정해보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떨어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이 차이, 이혼한 거 난 다 상관없어요.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면 나 외면하지 마요. 난 상처 안 줄 거니까.”

 “…….”

 “남자는……. 마지막으로 나, 딱 한 번만 더 만나봐요.”

 

 하랑은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유혹당하는 이브가 된 느낌이다. 그에게 넘어가 결국 선악과를 먹어버린 이브처럼 자신 또한 이 유혹에 넘어갈까 봐 감은 눈을 뜰 수 없다.

 

 “당신, 에덴동산에 나오는 뱀 같아.”

 “뱀?”

 “자꾸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있잖아요.”

 

 자꾸 꼬리를 흔든다. 이리와 여기 이 탐스러운 선악과를 한번 먹어보렴.

 

 하지만 그걸 먹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서른다섯, 겨우 안정되어가는 하랑의 낙원에 파란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그 말은, 진하랑씨가 내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죠?”

 “……아뇨, 아니에요.”

 “그냥 과감하게 한번 먹어봐요. 그게 선악과일지 그냥 달콤한 열매일지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예요.”

 

 그가 하랑의 턱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손길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본다. 짙은 갈색빛을 띠는 깊은 눈동자가 하랑을 주시하고 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보드라운 뺨을 살살 쓰다듬다가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훑었다. 그 움직임과 함께 이든의 시선이 잠시 하랑의 입술로 향했다가 올라왔다.

 

 “키스해도 돼요?”

 “안돼요.”

 

 조금 야릇하게 흘러가던 분위기가 와장창 깨졌다. 바로 날아오는 대답에 이든이 하랑의 어깨 위에 이마를 툭 얹고 소리 내 웃는다. 그리고 허리를 일으켜 세워 하랑의 손을 잡아 태블릿 펜을 쥐여주었다.

 

 “질문 잘했으니까 돌려줄게요. 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돼요.”

 “없어요. 그런 거.”

 

 이든이 한쪽 옆으로 비켜서자 테이블에서 내려와 회의실 문으로 향했다.

 

 “진하랑씨.”

 

 유리문을 당기는 하랑을 그가 불러 세운다. 방금까지 하랑이 앉아있던 테이블에 걸터앉은 이든의 눈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나이, 이혼 그런 거 다 무시하고 내 유혹에 흔들려 봐요. 당신이 먹는 열매가 당신을 천국으로 보내줄지도 몰라요.”

 “…….”

 “최선을 다해 유혹해볼게요. 그러니까 넘어와요.”

 “안 넘어가요.”

 

 하랑은 그대로 회의실 문을 닫고 나왔다. 천국 같은 건 필요 없다. 그저 지금 자신의 낙원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온다.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진하랑 잘했어.”

 

 하마터면 키스해도 된다고 말할 뻔했다. 에덴의 동산 사옥을 빠져나가는 하랑이 손으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독인다.

 

 

 * * *

 

 

 하랑의 차가 카페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카페 앞을 서성이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 끼익!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핸들을 잡은 하랑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차가 서는 소리를 들은 그 남자가 고개를 쭉 빼고 멈춰선 차 쪽을 보더니 기웃거리며 천천히 한걸음 씩 다가온다.

 

 후진 기어를 넣고,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와 일단 무작정 달렸다. 정신없이 달리다 한쪽 갓길에 차를 세웠다. 밖으로 나와 오른쪽에 일렬로 뻗은 난간을 잡고 허리를 숙여 천천히 심호흡했다.

 

 ― 뚜르르르. 달칵. 네 112 신고센터입니다.

 “저……. 접근금지신청 되어 있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경찰에 신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근처 파출소에서 찾아갈 것이고,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남대교. 잡고 있던 난간을 넘었다. 보행자로에 서서 까맣게 넘실거리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아랫입술 안쪽을 사리 물었다. 힘을 주어 쥔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분노와 두려움이 공존한다.

 

 

 

 하랑은 문제없다는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서야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한동안 주위 순찰을 강화하겠다는 말에 휴대폰을 붙잡고 연신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오늘 밤 잠을 자긴 그른 것 같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 폐가 터지도록 달리고 싶지만, 발목이 이 상태이다 보니 그럴 수도 없다. 식탁 위에 앉아 태블릿을 꺼내 오늘 진행한 회의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다 툭, 화면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아……. 진짜 싫다.”

 

 두 손으로 눈을 막은 하랑의 얼굴 옆으로 눈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진다. 입술을 깨물고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삼켰다. 꽉 물었던 탓에 빨갛게 부어오른 아랫입술. 그 사이로 울음 섞인 뜨거운 한숨이 흘러나온다.

 

 속이 답답하다. 아무에게도, 부모님이나 하람에게 조차도 하지 못한 이야기. 어딘가에 털어놓는다면 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릴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시원한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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