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아, 내일 봐~ "
" 응. 내일 보자! "
나는 어릴 때 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래서일까.
외모만 보고 나에게 친한 척.
그 후엔 나를 자신들의 전유물 마냥 옆에 끼곤,
과시하고 다니려는 아이들이 내 주위엔 넘쳐났다.
그런 역겨운 관계들이 끝난 건 모두 지현이 덕분이었다.
처음으로 외모가 아닌, 내 마음을 봐준 소중한 친구 덕에
나는 나름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 저기요! 잠시만요! "
" 이신여고 교복입은 긴머리 학생! 잠깐만! "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웬 여자 분이 헥헥거리며 허공에 손을 휘적대고 있었다.
" 저..저요? "
" 네! 드릴게 있는데 어디있더라.. 헉헉... 찾았다! "
힘들게 숨을 쉬던 그녀는
나에게 명함 한 장을 주며 말을 이어갔다.
" 저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관심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꼭이요! "
" 네? 네.. "
얼떨결에 받게 된 명함.
왜 이걸 나한테 주지?
[캐스팅매니저] - 김미영(인턴)
명함에 적힌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다 뒤집어보니
그곳엔 '초대형 엔터테인먼트'라는 금색의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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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할머니! "
" 아이고. 우리 이쁜이, 학교 잘 댕기왔나? "
" 할머니, 대박! 나 이거 받았다? "
" 보자... 이게 뭐꼬? 할매는 글자 잘 모른다 아이가~ "
현재 나는 할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다.
부모라는 사람들은
나를 맘대로 낳아 놓고, 맘대로 버렸다.
그렇게 혼자가 된 나를 데려온 우리 할머니. 내 가족.
" 할머니가 좋아하는 가수 있잖아! 청이였나? "
" 청이 맞다~ 니 청이가 을매나 노래 잘 부르는지 알제? "
" 그래, 청이! 청이네 회사에서 나한테 명함을 줬다니까~? "
" 옴마야, 진짜가?! 울 손녀 이쁜게 거까지 소문났는갑다! "
어릴 적부터 할머니랑 행복하게 살겠다는 막연한 나의 꿈을 향해
달려갈 지름길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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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매니저 김미영입니다. 누구십니까?
" 안녕하세요. 저 얼마 전에 이신여고 앞에서 명함 받은.. "
- 설마 그 이쁜 친구? 대박! 진짜 대~박!
한참동안 매니저님은 대박을 외치시다가
다짜고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하셨다.
- 우리 회사 알죠? 거기로 오디션 보러 와요. 나 정말 친구 놓치기 싫다~?
" 제가 혼자 가기가 좀 그래서 혹시, 저희 할머니랑 같이 가도 될까요? "
- 당연히 되지! 그럼 토요일에 오는거죠?
" 네. 토요일 오후에 갈게요. 감사합니다. "
- 꼭 봐요, 우리!
김미영 매니저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 할머니, 나 오디션 보러 오래! "
" 그려, 우리 강아지. 그럼 언제 오디션 보러 가는기고? "
" 근데 나 좀 떨려, 할머니가 같이 가주면 안돼? "
" 못 갈거 뭐 있나. 이 할미가 가서 응원해야제. "
그렇게 기다려지던 토요일은 금방 나에게 다가왔고
할머니와 점심을 먹은 후 초대형 엔터테인먼트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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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머니와 도착한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
한 눈에 봐도 엄청난 대기업같은 건물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내가 정말 이 회사에 캐스팅이 되었다니.
" 저 도착했는데 들어가면 되나요? "
- 출입증 있어야 해요~ 내가 얼른 내려갈게!
잠깐 기다리자 김미영 매니저님이 나오셔서 반갑게 맞으며
우리를 그 커다란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매니저님이 사원증을 찍자 문이 열리고 긴 복도가 나왔다.
" 여기는 그냥 입구. 저기 문 보이죠? 저 문이 진짜 입구. "
매니저님은 긴 복도를 걸으면서 회사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에게 해주셨다.
" 예전에는 처음 들어온 거기가 입구였어요. 근데 보안 문제 때문에... "
" 아, 그 사생 사건때문이죠? "
" 알고 있구나~ 맞아요. 사생팬들이 들어와서 마구잡이로 찍어서 우리가 피해를 많이 봤지. "
대포 카메라를 든 사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찍으려
무작정 회사 사람 뒤를 따라 들어와서는
건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바람에
초대형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제작이 무산됐었다는 기사를 봤었다.
" 내가 자기를 왜 캐스팅했게? "
" 우리 손녀가 어디 내놔도 얼굴로는 안 빠지그든! 우리 이쁜이~ "
" 할머님, 정답! "
" 정말요? 제가 예뻐서요? "
인정을 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은 좋았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로 인한 외모이기에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칭찬을 흘렸다.
" 근데 우리는 단순히 외모만 보고 캐스팅 하는건 아니에요. "
" 그러면요? "
" 매력. 매력이 있어야 사람이 빛난다~? 외모는 잠깐이야. 근데 자기는 매력이 넘치다 못해 흘러. "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능청스러운 매니저님의 말에 내 얼굴이 다 빨개졌다.
그래도 감사인사는 해야지.
" 가..감사합니다. "
"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한 거예요. 부끄러워하지 마~ 충분히 자신감 가져도 돼! "
" 맞아요. 우리 선정이가 얼굴도, 마음도 다 이쁜 아 아닌교. "
" 아, 할머니~! "
한 술 더 뜨는 우리 할머니.
능청스러운 대화가 이어지고 안내를 받아 오디션 방에 도착했다.
" 자, 이제 여기서부터는 혼자! "
" 그래, 할매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잘하고 온나. "
" 들어가면 관계자 4분 앉아있을 거예요. 들어가서 인사하고 자기소개하면 알아서들 얘기할 거예요. "
" 그냥 시키시는 거 하면 되는 건가요..? "
" 응. 너무 긴장하지 말고~ 우리 회사는 열심히 하는 모습을 제일 중요하게 보니까! "
" 우리 강아지, 화이팅! 어여 들어가봐. "
" 화이팅! 나도 할머니랑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들어가봐요! "
한 발, 두 발, 세 발.
문 앞에 도착해 조심히 문을 열자
4명의 사람이 차례대로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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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정 친구? "
" 네, 안녕하십니까. 16살 윤선정이라고 합니다. "
" 이번 인턴이 엄청난 친구를 데려왔네. "
" 그러게 말이에요. 어디서 이런 보석을 데리고 왔지? "
" 선정 친구, 뭐 할 줄 아는거 있어요? 노래든, 춤이든, 연기든 아무거나. "
사실 매니저님 명함을 받았던 그 날,
밤에 잠이 안와 지현이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그러자 지현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노래를 준비하라고 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노래 한 곡을 알려주기에 연습을 하긴 했는데...
" 노래..하겠습니다. "
" 무슨 노래? MR 틀어줄테니까 맞춰서 해 봐요. "
" 벤치의 '아무도'라는 노래인데..."
" 워~ 이거 아는 사람만 아는 명곡인데. 궁금하네, 어떻게 부를지. "
오디션 스태프로 보이는 분이 버튼을 누르자 MR이 흘러나왔고,
음악에 맞춰 나는 최대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 뚜벅 뚜벅 걸어가네. 발걸음은 무겁네
♬ 아무렇게나 내딛는 걸음이라서 오늘도 난 제자리
♬ 아무도 없네. 아무도 없어. 아, 나는 원래 혼자였었구나
" 감사합니다. "
노래가 끝나자 공기가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잠깐의 침묵 후, 가장 오른쪽에 앉아있던 분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 이 노래, 무슨 생각하면서 부른 거예요? "
" 어..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많이 싸우셨는데... 그 때.... "
갑자기 울컥했다.
연습할 때는 안 이랬는데 오디션 장에서 노래를 부르니,
갑자기 내 앞에서 싸우던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래서 겨우 감정을 삼키며 노래를 불렀는데...
" 그랬구나. 알겠어요. 또 다른 거 준비한 거 있어요? "
" 아니요.. "
" 그럼 바로 카메라 테스트 해 보죠? "
" 그래요. 저기 카메라 앞 바닥에 스티커 붙여진 곳 가서 한 번 서볼래요? "
쭈뼛거리며 카메라 앞 바닥에 붙여진 빨간 스티커 위에 섰다.
그러자 카메라와 연결된 TV에 내 모습이 커다랗게 나왔다.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을 찍고는 따로 포즈도 시키길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포즈를 취했다.
" 수고했어요. 이제 나가도 돼요. 오늘 안으로 연락 갈 거예요~ "
"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문을 닫고 나오자 머릿 속이 하얗게 되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고 단편적인 기억들만 조금씩 날 뿐,
긴장이 풀렸는지 오디션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 수고했어요~ 나는 잠깐 오디션 방에 들어가볼게요. 집에 조심히 들어가요! "
" 아이고, 우리 선정이 수고헀다. 마이 떨렸을낀데. "
" 응, 할머니. 사실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 "
" 고생많았어요. 오늘 중으로 내가 연락할게요. 고마워요, 선정 친구! "
" 네,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
" 매니저선생님, 진짜로 감사합니데이~ 우리 선정이 이런 기회도 주고. "
" 아니에요, 뭘. 선정이가 워낙 예뻐야죠. 들어가세요! "
매니저님과의 인사를 끝으로 건물을 나와
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 할머니, 근데 손에 그거 뭐야? "
" 이거? 아까 그 매니저 선생님이 준 선물이다. "
" 무슨 선물? "
" 니 아까 드가고 나서 내한테 물어보드라. 좋아하는 연예인 있는가. "
" 그래서? "
" 그래서 내는 청이 좋아한다고 말했드만, 잠깐 어디 갔다오더니 청이 사진에 싸인을 주는기라. "
" 진짜?! "
" 참말아이가. 포장까지 싹~ 해가꼬 이래 안 주나. 오늘 할매 니 덕분에 계탔다! "
" 우리 할머니 입이 귀에 걸린 이유가 이거였구만~? "
" 내 이거 우리 동네 할망구들한테 가서 자랑해도 되겠제? 할매들 난리나긋제? "
내가 오디션을 보는 사이
매니저님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청이의 포토카드와 싸인을
깔끔하게 포장해서 할머니께 선물로 주신 거였다.
할머니는 동네 할망구들에게 자랑할거라고 난리가 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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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집에 도착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지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윤선정! 어떻게 됐어! 빨리 말해!!! "
" 오늘 안으로 연락준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은 없어. "
" 내가 추천해준 노래는? 그거 불렀어?! "
" 응. 근데 반응이 좀... "
" 아니야. 다들 너무 잘해서 아무 말 안 한거라고 믿어, 난. "
" 그랬으면 좋겠다. 암튼 고마워, 지현아. "
" 내가 오디션 봤냐? 니가 고생했지. 수고했다, 진짜. "
지현이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니
매니저님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선정 친구. 회의가 늦게 끝나서 이제야 연락하네요. 오디션 결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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