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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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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2 11:50     조회 : 420     추천 : 3     분량 : 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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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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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하늘이 맑고 푸른 초여름이었다. 난 교탁 바로 아래 자리에서 어두운 등잔 밑을 즐기며 편안히 만화책을 보다가 잠이 들락 말락 하고 있었다. “방송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일 학년 김나린 학생, 일 학년 김나린 학생은 지금 방송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방송실에서 알려드렸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를 판단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처음엔 내가 들은 게 당연히 꿈인 줄 알았다. 방송실에서 날 왜 불러. 반 아이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게 내 손에 있는 만화책 때문이라 생각하고 화들짝 교과서로 만화책을 가렸다. 낮은 목소리로 책만 읽어 별명이 ‘책만이’였던 일반사회 선생도 내 이름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아이들이 왜 나를 쳐다보는지 몰랐다. 다만 놀라는 내 표정을 보고서 졸다가 깬 줄 알고 내 머리를 툭 치며 자지 말랬다. 고양이 세수를 하는데 짝꿍이 말했다. “야 너 지금 방송실로 오래.” 그제야 아이들이 속닥이는 소리를 들은 나는 다시 손을 들어 책만이의 관심을 받은 다음에 “저 방송실에 오라는데요. 제가 일 학년 김나린이라서.” 하고 나서도 뭔 일인지, 꿈인지 생신지 감이 잘 안 왔다.

 

 방송실이 어딘지도 잘 몰랐던 난 십여 분은 헤매고 교무실에 있는 선생들에게 수차례 물어보고 나서야 방송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체육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체육선생이 그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있다고 할 때도, 그가 직접 전화를 했는데 걱정할 건 없다고 전해달란다고 할 때도, 난 이게 꿈이라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맹하니 있는 나에게 체육선생이 “괜찮아?” 하고 물었다. “그럼……. 그게 다예요?” “허, 이 녀석 봐라. 아버지 병원에 계시다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네.”

 

 교실에 돌아가는 길도 헤매고 헤매다가 다음 시간이 시작되기 직전에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야, 너 방송실에 왜 오라고 했어?” 하는 짝꿍의 말에 “잘 모르겠어.” 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상하게 온몸의 진이 쭉쭉 빠지는 날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만 서너 번 꾸면서 잠을 풀풀 자도 뻐근하고 몽롱하니 피곤했다. 집에 돌아가서 빈방을 보고서야 체육선생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다. 뭐지? 진짠가? 꿈이 이렇게 생생하고 길 수가 있나? 많이 다쳤나?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교통사고 같은 걸 당하거나 내 본 적이 없었다. 주차 딱지 한 번 떼이는 법도 없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칭하곤 했다.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 봤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불안감은 다음날이 되자 한층 고조됐다. 이 인간은 집에 언제 오는가? 얼마나 다쳤나? 어느 병원에 있나? 하도 궁금해서 전화를 받았다는 체육선생을 찾아가 물어보자 “무슨 병원인지 그런 건 말 안 했는데. 얘는 어제 말해줄 때는 들은 척 만 척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하는 대답만 들려왔다. “목소리는 멀쩡하던가요?” “멀쩡하시던데?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 안 하셨어?” 아니요. 울 엄마 뭐라고 안 했는데. 귀신도 다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아니면 엄마가 아직까지 그 인간한테 화가 나서 일부러 말 안 해주는 걸 수도 있어요.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그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사실 연락이 올래야 올 수 없었다. 나한텐 집 전화도, 핸드폰도 없었다. 비좁다고 짜증을 냈던 고시원이 그가 없으니 그렇게 황량하고 쓸쓸할 수 없었다. 그가 있을 땐 드러누울 때마다 벽이 슬금슬금 나를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 하나 없다고 벽이 나를 두고 멀리 도망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뉴월인데 한기가 돌고 손발도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불을 덮고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허여멀건 중국산 김치와 밥보다는 찐쌀이라고 불러야 할 누런 쌀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삼 주 후에 내야 하는 고시원비를 미리 걱정했다.

 

 나흘째가 되자 점점 불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처음 든 생각은 그가 불구가 되었다는 거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그가 불구가 되어서 나한테 마지막 말을 전달한 채 소식을 끊었다. 나한테 짐이 될까 봐. 두 번째 가능성은 죽어가는 그가 애써 침착히 멀쩡한 척 학교에 전화를 한 다음 죽거나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세 번째 가능성이자 내가 기정사실로 한 시나리오는 교통사고 따위는 없었고 그가 나를 버렸다는 거였다. 학교로 전화를 건 건 나를 며칠 동안이라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고, 그는 나를 버리고 떠났다. 과부보다 예쁜 여자를 만났던, 그냥 더 이상 나를 부양하기 싫고 귀찮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갔다. 그는 이제 없다. 난 더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닷새째가 되자 내가 혼자 남았다는 확신이 깊어졌고 담임에게 집에 일이 있어서 야간 자율학습을 못 한다고, 앞으로 쭉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담임은 체육선생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아버지는 어떠시니?” 하고 물었다. 저도 그게 궁금해 죽겠는데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불구가 됐는지 저도 몰라서요.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못하자 담임이 “많이 안 좋으시니?” 했다.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니까 담임이 힘을 내라며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랬다. 돈이요. 돈이 필요해요. 아니, 그것보다도 그 인간 좀 찾아줘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만이라도 좀 알려줘요.

 

 여섯째가 되자 난 완전한 공황 상태였다. 수업시간 내내 머리엔 온통 돈 걱정뿐이었다. 연습장을 꺼내 돈 계산을 해 봤다. 아무리 김치하고 밥만 먹고 산다고 해도 한 달에 30만 원이 들 텐데, 2100원인 최저 시급으로 한 달에 143시간을 일해야 그 돈을 벌 수 있다. 일 년에 학비만 100만 원이 넘게 들고 아무리 적게 잡는다고 해도 책값이랑 기타 잡비도 그 정도 드는데, 그 돈까지 벌려면 일 년에 2667시간을 일해야 한다. 2667을 365로 나누면 7.3이 되고. 그럼 매일 7시간 넘게 일해야 한다는 건데? 그럴 리가 없지. 계산을 잘못한 줄 알고 몇 번이나 다시 해 봤다. 옷 한 벌 안 사 입고, 고기 한번 안 사 먹고 그냥 잠만 자고 학교만 다니는데도 이렇게 많이 일해야 하는가? 하긴 그 인간도 맨날 일해도 항상 가난했지. 학교에 다니면서 그만큼 일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역시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가? 검정고시라는 건 어디서 어떻게 보는가?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가정 선생이 가정 시간에 대놓고 수학 공부하느냐고 뭐라 한다. 이게 어떻게 수학이에요. 딱 봐도 산수지. 그리고 가정선생이면 이것 좀 대답해봐요. 우리 가정이 파탄 났는데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요? 난 가정 같은 것 없는데 가정 배워서 뭐해요?

 

 야자를 안 해도 된다고 허락도 받았겠다, 집에 일찌감치 갔는데 방문이 열려있었다. 그가 돌아왔나? 경찰인가? 뭔 일이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들어가는데 고시원 총무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뭐 하시는 거냐고 쏘아붙이자 아저씨가 전화를 해서 필요한 물건 좀 가져다 달라고 해서 찾는 중이라고, 다른 거는 안 만졌다고 말했다. 다른 거는 안 만졌다는 사람 표정이 이상하다. 변태새끼. 잠깐. 뭐라고? “전화가 왔어요? 언제요?” “교통사고 났다고. 학생한테 전화했다고 들었는데?” ”어디 있데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어 보이는 그를 보자 힘이 빠지고 화도 안 났다. 안 울려고, 욕이나 실컷 하려고 했는데 울음부터 나왔다. 그는 왜 쓸데없이 울고 그러냐며 타이르다가 자기도 울기 시작했다. 그의 사지를 뜯어 관찰해봤다. 석고를 굳게 입고 있는 깁스가 왼팔을 어깨까지 감싸고 있다. 말라빠진 몸통은 부은 건지, 칭칭 감은 붕대가 두꺼운 건지 두툼해 보였다. 그래 봤자 보통 사람 몸뚱어리 굵기였지만. 양쪽 다리가 다 붙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랐다. 병원에 오는 내내 다리 한 짝이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깁스를 하고 있어서 걸을 수는 없어 보였다. “공부나 하고 있지 뭐하러 여기까지 왔노. 일부러 총무한테 연락했구만.” “내가 안 오게 생겼어?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해?” “핵교로 전화했는데 연락 못 받았나?” “교통사고 나서 병원에 있다고만 했다며. 어디서, 어떻게, 얼마큼 다쳐서, 어디 있다고 알려 줘야 내가 오든지 안 오든지 알아서 하지.” “많이 다친 거도 아인데, 니 공부하는데 왔다 갔다 하라카기도 미안코 해서.” “뭐 많이 다친 게 아니야. 다 뿌러졌구만. 딱 봐도.” “갈비뼈하고 팔다리에 금 쪼매 난 거 가지고 뭐. 금방 붙는다.”

 

 복도 지지리도 없는 그는 무면허 음주 운전 중앙선 침범 차량에 들이 받혀 12중 추돌사고에 휘말렸다. 완전히 찌그러진 트럭의 앞 대가리를 보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가 안 죽은 게 기적이라고 했다. 그나마 멀쩡한 오른쪽 손을 이용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베스트 드라이버”하고 웃는 그를 한 대 줘 패버리고 싶은 충동과 꼭 안아주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동시에 들었다. 어느 쪽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병원비는?” 했다. 무면허 음주 운전을 하신 훌륭하신 분께선 보험도 없을뿐더러 돈도 우리보다 더 없으시단다. 결국 비빌 언덕이라곤 그가 가지고 있던 싸구려 보험이 유일했다. 재수가 없으려면 교통사고가 나도 이렇게 나는구나. 병원비도 병원비지만 그가 돈을 못 버니 당장 먹고살 것부터 걱정이었다. 그의 고장 잦던 트럭도 이제 똥차 수준을 넘어 폐차가 되어 버렸으니 새로운 생계 수단도 찾아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나?” 하는 나에게 그는 자기가 금방 일어나서 벌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가서 공부나 하랬다. 회진을 온 의사가 “퇴원하시는 덴 한 달 반, 완쾌하려면 최소 두세 달은 걸리실 거에요.”하는 말을 듣고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던 나부터 탓했다. 그의 말을 반이라도 믿은 내가 바보지. 금만 갔다고, 별로 안 다쳤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내장도 중요 혈관을 안 다쳐서 그렇지 손상이 있었고 수혈도 몇 차례 받았다는 말을 듣자 속이 뒤집혔다. “아니, 나보고 오라고 했어야지.” 그가 내 눈도 쳐다보지 못한 채 우물댔다. “니가 오면 뭐, 뭐할낀데?” “나 없이 죽으면 뭐, 뭐할 건데? 어쩌라고, 나보고. 난 어쩌라고?” 6인실 병실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그를 재미있는 신파극 보듯이 쳐다보고 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너무 서러웠다. 엉엉 울었다. 그가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는 나를 두고 도망가지도, 죽지도 않았다. 그는 거기 있었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가 거기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고 그게 그렇게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내가 불쌍했고 그도 불쌍했다.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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