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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난초꽃향기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20.9.6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그런데, 그 남편이 나를 찾으러 왔다. 무려 400여년후의 세상으로. 난초꽃 한가지로 이어진 전생의 인연, 그리고 난설헌 허초희의 소원...그 소원의 뿌리를 찾으러 떠난 내 눈앞에 왜란을 앞둔 400여년전의 조선시대가 열린다.

 
제1회
작성일 : 20-09-06 03:59     조회 : 323     추천 : 0     분량 :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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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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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盈盈窓下蘭 枝葉何芬芳)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니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西風一被拂 零落悲秋霜)

 빼어난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그 향기만은 죽지 않아, (秀色縱凋悴 淸香終不死)

 그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感物傷我心 涕淚沾衣袂)

 

 불현듯 눈이 떠졌다. 꿈이 아니었다. 흐느끼듯 귀전에 울리는 그 울림이 묵직하게 가슴을 스친다. 나는 눈길을 돌려 창문쪽을 보았다. 커튼사이로 은백색 빛이 비쳐들어온다. 그리고 그 밝은 빛에 홀린 듯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혔다.

 

 은백색의 세계...얼마만에 보는 설경인가...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외투를 껴입고 현관문을 열면서도 날이 밝자면 몇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는지를 미처 감지하지 못한 건 다만 눈앞에 펼쳐진 수려한 설경 때문이리라.

 

 "엇, 추워..."

 

 잠깐 몸을 웅크리긴 했지만 도저히 이 아름다운 경치의 유혹을 감당하기 어렵다. 나는 천천히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뎠다. 뽀송한 눈들이 발밑에서 흩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무엇을 접한 어린 아이처럼 환호성이 터져나오려는 그때...어디선가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난(兰)향?..."

 

 비록 겨울에 피는 난초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 해도 이런 차거운 눈속에 난초를 두었을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이 뜬금없는 난초꽃향기는...

 

 하얀 달빛에 어우러진 은백색의 세상은 꽃향기에 대한 나의 의혹을 덮어주었다. 한번 머리를 흔들고 다시 앞으로 한발자국 내디디던 나의 동작이 급작스레 멈췄다. 바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앞쪽에, 땅에서 솟은 듯 한 여인이 서있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여인의 갑작스런 출현에 내 목소리가 떨렸다. 이렇듯 두려움에 떤 이유는 단지 여인의 고혹적이게 아름다운 얼굴때문이 아니었다. 비록 달빛과 눈빛에 묻히긴 했지만, 여인은 분명 눈처럼 새하얀 소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땅위의 눈보다도, 그녀가 입은 소복보다도 더 창백했고, 그 백옥같은 얼굴은 눈과 달빛에 반사되어 심지어 투명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여긴..."

 

 여인의 목소리도 살짝 떨렸다. 그제야 조금씩 가셔지는 두려움을 떨쳐내며 나는 그녀를 찬찬히 보았다. 만에 하나 눈앞의 여인이 귀신이라 해도, 그녀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듯 보였다. 그리 생각하자 왠지 긍휼의 마음까지 솟구치기도 했다. 이 추운 겨울밤, 눈덮인 마당에서 여인은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같은 소복차림으로 내앞에 서있는 걸까.

 

 "여긴 어쩐 일로..."

 "예가 혹시...광한전인가요?"

 

 내 질문을 가볍게 자르며 여인이 물어왔다. 광한전, 광한전이라...분명 어디서 들었던 곳이긴 한데...잠시 침묵에 잠긴 내 표정이 뜨아해보였는지 여인이 머리숙여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도련님은 뉘신지...그리고 여긴 뉘집 댁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짧게 자른 내 머리를 긁적이며 저도 모르게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눈덮인 야밤에 내 집 마당에 불쑥 나타난 소복차림의 여인, 그런 여인이 지금 내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묻고있지 않는가. 나는 대답대신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거위털같은 눈송이들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희부연 하늘은 아득히 멀고 높게 느껴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집쪽을 보니, 현관밖 계단에 소복히 쌓인 눈들이 달빛에 몽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순간 머리에 스치는 그 무엇에 마음이 이끌려 나는 장난조로 입을 열었다.

 

 "광한전이라...여긴 광한전 백옥루라고 하죠."

 

 무심히 내뱉은 내 말이 어딘가 잘못되었는지, 여인이 흠칫 몸을 떨며 뚫어져라 나를 본다. 이제야 눈앞의 여인과의 선문답같은 응대에서 우세를 차지한것 같은 느낌에 나는 입꼬리를 올려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에게 머리를 한번 숙인 후 집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인이 누구든 이제 나는 상관이 없었다. 내 마음이 하필 이렇듯 허한 때에, 이런 눈덮인 아름다운 경치를 잠시나마 같이 공유했다는 것에, 나는 이 여인에게 이름못할 야릇한 연대감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불쑥 나타났던 것처럼 다시 조용히 사라져주길 바라며 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어...도련님..."

 

 여인의 가녀린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그 목소리는 한없이 처연하고 절절하게 들려와서,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뿌리 내린 듯 그 자리에 서서 내쪽을 하염없이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공허감을 담고 있었고, 그 익숙한 느낌에 나는 어쩐지 가슴이 저렸다.

 

 "허면 도련님은 광한전의 신선이신가요..."

 

 나는 웃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제 나는 여인과의 선문답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귀신이든 사람이든, 누군가를 농락하는 일은 이쯤에서 끝내야만 했다. 비록 그것이 이 한밤중의 정취를 깨뜨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게...아니라...나는...그러니까..."

 

 나는 여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밤중에 문득 들려온 시 한수로부터, 설경에 이끌려 내가 문을 나선 것, 그리고 눈속에서 난초꽃향기를 맡은 것과 내가 그녀를 만난 것까지...하지만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여인이 주르륵 눈물을 떨구었다. 나는 당황해졌다. 그런 내게 여인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내민 손에서 한참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난초...?"

 

 여인의 손에 들려있는 난초꽃 한송이가 눈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그렇다면 아까부터 코끝을 간지럽히던 그 향기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던가.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여인이 집요한 눈빛에서 그녀의 의중을 짐작하고 끝내는 손을 내밀어 그 난초를 받아들었다. 내 시선이 난초꽃에서 다시 여인의 얼굴로 옮겨졌다. 바로 그 때, 여인의 청초한 얼굴이 갑자기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진 것은 웬 일일까.

 

 "혹시 우리...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말을 내뱉자 하도 진부한 멘트처럼 들려 나는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여인은 시선을 내리고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내려놓은 듯한, 슬프지만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리고 그 미소는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느 미소보다도 더욱 쓸쓸하고 적막해보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그런 괴이한 미소를 남긴 그녀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눈속에서 그녀의 낭창한 뒷모습이 차츰 멀어져갔고, 내 손에는 그녀가 남기고 간 난초꽃 한가지만 남았다.

 

 ......

 

 "그래서?"

 

 펼쳤던 책을 덮자 눈앞에 이죽거리는 녀석의 얼굴이 나타났다. 마른 난초꽃도 책속에 같이 묻혀 사라졌다. 녀석의 지나치게 잘생겨서 가증스럽기까지 한 얼굴은 아직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 이깟 말라비틀어진 난초꽃 하나로, 그날 일이 꿈이 아니라고 한단 말이냐?"

 

 나는 책을 가방안에 넣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동남아시아의 한겨울은 여름처럼 더워서 숨이 막혔고 나는 일년 사시절 변함없는 싱가포르의 기후가 진저리 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변함없는 가증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녀석이 나를 따라나오며 지껄였다.

 

 "그럼 말해봐. 후에 또 만났냐? 귀신이 아니라면 다시 나타날수도 있잖아."

 "그만하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3년이면 잊을때도 됐지. 고작 그것땜에 형이 여자 좀 만나자는데 튕기긴."

 "딴사람이랑 가."

 "저쪽에서 너랑 같이 나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딴사람이랑 가? 형 좀 불쌍하게 봐주라."

 

 하아...

 

 걸음을 멈추자 긴 한숨이 폐부 깊숙한 곳에서 터져나온다. 나의 한숨을 녀석은 수긍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하다. 녀석의 짙은 눈썹이 하늘높이 치켜올라가는 걸 나는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녀석은 그러한 나의 시선을 다른 의미로 곡해한 듯 싶었다.

 

 "언제면 좋겠냐? 시간, 장소 다 니가 원하는대로 해줄께."

 "간다고 안했어."

 

 녀석의 얼굴에 곧바로 비굴한 웃음이 떠올랐다.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항상 능글능글한 그 여유가 볼수록 눈에 거슬려서 나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녀석은 알았다는 듯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다.

 

 "조건이 뭔데? 니가 뜸들일때는 꼭 조건이 있지. 그걸 내가 알어. 형이 안다고."

 "부탁인데, 형이라고 하지 마. 그리고 어디서나 날 아는척도 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그리고 또 뭐?"

 "엄마가 온대."

 

 심드렁한 말투로 하늘을 쳐다보며 말하자 녀석의 짙은 눈섭이 한껏 찌푸러졌다.

 

 "아줌마가? 여길? 왜?"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저도 모르게 짜증섞인 말투가 나갔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지른 채 발끝으로 길가의 돌멩이를 차던지자, 지나가던 여학생 몇이 힐끗힐끗 우리를 돌아보며 수근거린다. 녀석은 그런 여학생들의 반응을 즐기는 듯 한껏 윙크를 날린 후에야 머리를 돌려 내쪽을 보았다.

 

 "이번 방학엔 니가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어?"

 "분명 이번엔 내가 가기로 했단 말이야. 벌써 3년째야. 3년동안 한번도 못오게 하는 이유가 뭔데. 너까지 들쑤셔 여기로 보내놓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혹시...집에 큰일이 생겼는데 그게 하필 니가 알면 안될 일이어서..."

 "나도 이젠 스무살이야. 이젠 좀 내게 자유를 주면 안될까. 태어난 곳도,학교도 다 엄마 마음대로였어. 이러다 아주 해외에 뼈를 묻고 말겠어."

 "어디서 태어났으면 어디다 뼈를 묻어야지. 너 호적도 여기 있잖냐."

 "그렇다고 영영 국내 들어가지 않을 것도 아니잖아. 대체 왜 귀국 못하게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흠..."

 "그래서 말인데, 오늘 미팅 나가는 조건으로 엄마가 오면 부탁 좀 할께. 내가 태국 여행 갔다고 보름 있다 돌아온다고 해줘."

 "나더러 거짓말을 하라고? 그리고 여행은 왜?"

 

 녀석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설마 너? 혹시..."

 "그래. 맞어. 형이 생각하는 그대로야."

 

 나는 가방을 고쳐메고 주먹으로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는 크게 발걸음을 떼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면서도 손을 높이 들어 녀석에게 흔들어 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팅시간장소 문자로 찍어."

 "야!!! 거기 안서? 아줌마한테 혼나면 어떡하라고? 너 진짜!!!"

 

 녀석의 발 구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도 몰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동안 수없이 계획해왔던 일이 드디어 실제로 이루어질수도 있다는 희열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문득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내 가방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나는 달음질을 멈추고 몸을 굽혀 그것을 주어들었다.

 

 "난설헌집"

 

 이미 보풀이 인 책 표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나는 긴 한숨과 함께 책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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