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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비꽃이 핀다
작가 : 지현시
작품등록일 : 2020.9.1

아이돌 연하남과의 간질간질 로맨스.

 
얼굴을 물들이다
작성일 : 20-09-04 16:37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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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지이잉— 지이잉—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아침. 예정되었던 녹화도 없던 터에 숙직실에서 마음 놓고 쉬고 있던 이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감기가 왔나, 전화를 받으려 일으키는 몸이 무거웠다.

  흠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해 보니 목구멍도 따끔거렸다. 감기가 맞는 모양이다.

  면역력이 약한 이수는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사는데, 감기에 걸리면 지금처럼 목부터 부었다.

  “여보세요.”

  걸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다급한 대성의 말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 또 왜… 진짜….”

  그녀는 그대로 이불 속에 얼굴을 묻었다.

 

 

  * * *

 

 

  입술에 잡혀 있던 물집을 터트리니 끈적한 액체가 손에 묻었다.

  얼굴이 말이 아니라 챙겨온 마스크를 막 쓰려는데, 툭! 어디선가 달려 나온 재진과 부딪쳐 그만 놓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김재진이, 힘이 넘쳐 나네 아주?”

  “죄송합니다.”

  재진은 뭐 급한 일이 있는지 마스크를 주워 주고 쌩 하니 다시 달려 나갔다.

  그 생기발랄함에 헛웃음을 짓고, 이수는 얼굴에 마스크를 썼다.

 

 

  * * *

 

 

  튀어오라는 대성의 말에 찾아온 강당, 그곳엔 이미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녀를 치고 간 재진을 포함해서.

  “서이수…!”

  누군가 부르는 이름에, 이수는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간 그녀가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일단 앉아, 시간 없으니까.”

  “아, 아니!”

  이수를 바닥에 꿇어 앉힌 이는 그녀와는 한 살 터울의 한유민 작가였다.

  “원해야! 뭐 하니, 여기 서 피디 앞으로 와.”

  유민은 파우치를 앞에 쭉 펼쳐놓고, 앞에 앉은 아이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었다.

  “코너 속의 코너예요? 한유민의 <메이크 오버>?”

  “클로이 작곡가가 온대. 아니, 이미 왔을지도 몰라.”

  “클로이? 그 클로이가?”

  천재 작곡가 클로이. 이번에 컨셉트 평가에 그녀의 음악을 받으려고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이름만 들었는데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 바쁘신 양반이 어떻게 시간이 났다면서 들이닥친다는데, 김 감독 지금 사색이 돼서 난리도 아니야.”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클로이는 중간평가마저 완벽해야 한다며 일찍이 못 박아 두었던 터.

  지난 순위 발표 이후 인원 재조정으로 아이들 연습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만나야 하는 클로이는 공포 그 자체였다.

  자초지종을 듣는 동안, 원해가 이수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는 갖고 있는 화장품을 우르르 꺼내 놓았다.

  메이크업 받는 샵에서 따로 챙겨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메이크업까지 하고 있어야 한대요?”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다행히 애들만 하면 되니까 대충대충 얼른얼른, 어?”

  “하… 알겠어요.”

  하는 수 없이, 이수는 손목에 낀 검은 끈을 빼 머리를 묶고 파우치에서 파운데이션을 집어 들었다.

  한 걸음 떨어진 곳. 건은 원해의 메이크업을 봐주고 있는 이수를 바라봤다.

  문득 그녀가 립밤을 발라줬던 일이 생각났다.

  속으로 몰래 웃음을 삼키고 있는데 옆으로 막내 가람이 다가와 속삭였다.

  “서 피디님이 건이 형 해주면 좋겠다.”

  피식 웃음을 깨문 건이 물었다. “왜.”

  “예쁘니까. 저번에 형도 봤지? 난 뭐 여신인 줄.”

  “뭐라는 거야, 이 꼬맹이가.”

  장난으로 꿀밤 한 댈 놓아주고 그는 다시 이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스크는 왜 끼고 나타난 걸까, 어디가 아픈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유민의 앞자리가 비워졌다.

  “어… 거기 이건! 이리와.”

  이수가 아닌 유민에게 제 이름이 불리자, “…망했다” 하며 가람이 아쉬움을 표했다.

  건은 그런 가람이 귀엽다는 듯 한번 웃어주곤, 검은 파우치를 들고 휘적휘적 유민 앞으로 걸어갔다.

  “이게 그 문제의 틴트구나?”

  건의 파우치 내용물을 검사하던 유민이 틴트 하날 꺼내 들었다.

  슥 옆으로 눈을 돌려 재선이 골라줬다던 틴트를 본 이수가 “하여간 명재선…” 하며 혀를 끌끌 찼다.

  “어? 이 립밤 되게 비싼 건데? 너 같은 화알못이 이런 걸 갖고 있다고?”

  “비싼 거예요?”

  바로 옆에서 둘의 대화 소리를 다 듣고 있던 이수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몰랐네.”

  눈으로 그런 이수를 쫓은 건에게 그 미소가 옮아갔다.

  화장이 반쯤 되어가던 때, 무강이 이수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 까끌까끌해.”

  이수는 그의 턱에 난 수염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빠한테 화장해 주는 기분이야.”

  “심하시네, 아빠라니.”

  “해적이 뭐 이렇게 피부가 하얘.”

  첫 무대에서 ‘잭 스패로우’ 분장을 하고 심사를 받았던 그는 이후 ‘해적’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수의 놀림에 그가 발끈하여 말했다.

  “선장실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래요, 왜.”

  옆에 앉은 건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수와 무강,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농담에 가슴이 왜 이렇게 답답해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은 부러운 거 같기도 하고.

  “언니 결혼했다면서요.”

  “응.”

  “피디님은 남자친구 없어요?”

  “남자… 친구는 있지. 남자… 동생도 있고, 남자… 오빠도 있고.”

  “아, 장난치지 말고.”

  이수가 작게 웃은 뒤 유치한 말장난을 이어갔다.

  “지원자는 많았는데, 내 수수께끼가 너무 어렵나 봐. 마지막 하날 못 맞히고 다들 포기하네?”

  “뭔 소리야, 그게.”

  이수가 스스로를 절세미녀 투란도트 공주에 빗댄 걸 알았다면 당장이라도 코웃음을 쳐주었을 텐데.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무강을 보며 이수는 말없이 미소만 띠고 있었다.

  “다 됐다.”

  “뭐가 이렇게 금방 끝나. 나 너무 대충 해주는 거 아니에요?”

  “해적이 예뻐서 뭐해. 선장실에 틀어박혀 있을 건데.”

  실없는 얘기가 계속 오가는 사이, 유민이 울상이 된 얼굴로 SOS를 쳤다.

  “어떡해…!”

  이수는 유민 쪽으로 몸을 기울여 건의 몰골을 살폈다.

  “이거 어떻게 지워? 화장솜으로 누르면 번질 텐데?”

  눈썹 쪽으로 쭉 올라간 아이라인을 보며, 이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얘 내가 할 테니까 언닌 제이슨이나 얼른 봐줘요.”

  “어? 어, 알았어.”

  유민과 자리를 옮겨 앉은 이수는 능숙하게 면봉에 로션을 발라 건의 눈가에 댔다.

  “나 지금 엄청 흉해요?”

  눈을 감은 채 잠자코 이수에게 얼굴을 내어 준 건이 나지막이 물었다.

  “3초 전까진.”

  “와, 능력자네.”

  “이참에 뷰티 프로로 옮길까 봐. 아무래도 그쪽이 적성에 맞는 거 같아.”

  “안 돼요.”

  “네가 뭔데 안 된대, 웃겨.”

  눈에 닿았던 면봉이 치워지자, 건은 눈을 떠 이수를 봤다.

  얼룩덜룩해진 그녀의 손등 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마에 내려앉은 잔머리와 지문 자국이 난 안경.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했던 마스크.

  “마스크 왜 꼈어요? 어디 아파?”

  “아니, 너무 못생겨서. 자다 왔거든, 나.”

  “응….”

  “너무 쉽게 응, 그런다?”

  “이해 안 가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치… 똑같이 못생기게 그려줄까 보다. 아래 봐!”

  한 손으론 눈두덩이를 잡아 올리고, 라이너를 쥔 손은 새끼손가락을 지지대 삼아 매끈한 선을 그려나갔다.

  그런데, 살갗에 전해지는 온기가 어째 이상하다.

  갑자기 건이 이수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왜, 왜 그래?”

  당황한 이수는 순간적으로 동작 그만.

  지그시 올려다보는 건의 시선 때문일까, 머리가 띵 하니 어지러웠다.

  “열 나잖아.”

  이맛살을 모으고 내뱉는 걱정스런 목소리에 이젠 가슴까지 두근, 거렸다.

  “어디 아픈 거 맞죠.”

  “…감기, 감기야 그냥.”

  “근데 왜 아니래.”

  “슬쩍슬쩍 말 놓는다, 너? 명재선한테 못된 것만 배웠어, 아주.”

  “지금 그게 중….”

  “시끄러워. 또 잘못 돼서 어떡해 소리 나왔음 좋겠어?”

  제법 엄한 목소리를 내니 따져 묻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렇게 말없이 이수는 건의 얼굴을 물들였다.

  두근. 머리를 울리는 이 박동이 그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러나 그런 이수의 떨림을 알아차리지 못하기엔 눈을 감은 건의 다른 감각들이 이미 예민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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