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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해파리를 사랑하는 방법
작가 : 빈파
작품등록일 : 2020.8.11

사고로 인해 연기를 그만두게 되고 쫓겨나다시피 마이애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해타.
무작정 죽으려고 향했던 바다에서 자신에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준 시안을 만난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원래 하고 싶어 했던 연기를 배우며 배우가 되지만 시안은 쉽게 해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숨 쉴 만 해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커진 것 같은데."
"너는."
"...네?"
"너는 숨 제대로 쉬고 있냐고. 호흡 제대로 하고 있는 거 아니잖아."

사라진 시안을 음악방송 대기실 복도에서 만난 해타. 수면 위에 떠돌던 해타가 이제 가라앉고있는 시안을 심해 속에서 꺼내주려고 한다.

 
Beach 6
작성일 : 20-09-04 01:38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6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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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좀 차려봐요!“

 

 물고기가 아니라 인어인가. 그래서 말을 하나. 아니 근데 인어가 원래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 있어도 돼? 인어고 물고기고 다 됐고 나 다시 물에 던져주면 좋겠는데. 살려줬어도 고맙다고 안 했을 거야. 근데 내가 죽다 살아났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내가 죽으려고 마음먹었다는 걸 알아차리려고는 했을까.

 

 ”왜, 왜 들어갔어요, 수영하러 들어간 게 아니라 죽으러 들어간 거잖아요. 내가 계속 불렀잖아요. 내,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슬리퍼 잘 썼어요.“

 

 사실 있잖아 난 죽는 게 무서웠으면서도 애써 무시했던 게 아닐까. 너무 무서워서 그 감정을 잊어버리고 없다고 생각 한 거야. 짠 바닷물 때문에 억지로 뜬 눈이 따가웠다. 두 눈 제대로 뜨기 어려웠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파란색 머리카락이 누군지 알 것 같아 눈물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눈에 차있던 바닷물이 눈물 때문에 밀려났다. 선명해진 눈동자로 홀딱 젖어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구분되지 않는 남자가 보였다. 슬픈 건 난데 왜 당신이 우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나 대신 슬퍼해 주는 건가. 그러기엔 나도 눈물이 나와서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그만 울어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울어주는 거 처음이라 기분이 너무 이상해.

 

 ”두고, 갔잖, 아요. 결국은 두, 두고 갔, 으면서 뭐, 뭘 잘 썼다고 하는 거예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가 물 범벅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만 보니 오지랖이 아니라 감정 동기화가 잘 되는 거였나. 슬리퍼 벗고 들어갔다고 그거 서러워서 우는 거면…. 애고. 응, 가만 보면 애 같기도 하네. 눈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웃겨서 웃고 싶었지만, 속에서 웃음이 아닌 물만 뱉어져 나왔다.

 

 ”병, 병원 갈까요? 속 안 좋아요?“

 

 아마 내 머리는 그의 허벅지 위에 올려 있는 것 같다. 양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들고 내 얼굴 가까이에서 안절부절못해 하는 그가 조심스럽게 내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나 또 도움, 받았네요.“

 

 단어 한 마디씩 그에게 전할 때마다 물이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바닷물이 번식하는지 아무리 내보내도 끝이 없다.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 나올 건 없었지만 혹시 몰라 물에 젖어 무거운 손을 끌어 입 위에 올려 막았다.

 

 ”근데…. 오늘도….“

 

 저번이랑 다른 컨셉인 듯 좀 더 연한 눈화장이 자리 잡은 눈가 위. 내가 무얼 가리키는지 알아챈 그가 화들짝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큰 손으로 가려진 작은 얼굴 뒤로 보이는 새빨개진 귀. 멋 모르게 뚫어놓은 것 같은 피어싱이 아직 아물지 않은 듯 유독 새빨갰다.

 

 ”안 어울려요? 막 별로고 그런 거면….“

 

 ”잘 어울려서요. 저번보다 화장이 연해진 것 같아서 괜찮은 것 같아요. 예뻐요.“

 

 말이 자꾸 필터링 없이 뛰쳐나온다. 내가 한 문장씩 끊을 때마다 그의 귀가 새빨개지다 못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를 것만 같았다. 귀뿐만 아니라 목부터 붉어지기 시작했는데 얼굴은 그의 큰 손 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 상태도 그와 비슷할 것 같은데.

 

 ”저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에요.“

 

 한참을 망부석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그가 손을 겨우 내리고 붉어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음, 근데 나 이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남의 허벅지 위에 이렇게 오래 누워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내가 미련 남은 것 같잖아.

 

 ”무슨 촬영인데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의 옆쪽으로 다리를 끌어 앉았다. 발이 묵직했다. 바다와 맞바꾼 흰 샌들. 마지막 모습 그대로 내 발에 신겨져 있었다. 그가 신겨줬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뻔한 대답만이 돌아올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앨범 재킷 촬영이요. 저 이제 데뷔하거든요. 완전 소형기획사라서 아는 사람들도 몇 없어서 말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언제 데뷔인데요?“

 

 ”어…. 잘 모르겠어요. 계속 밀렸거든요. 타이틀도 자꾸 바뀌고, 컨셉도 바뀌고, 이번이 최종이길 바라고 찍고 있어요.“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참 밝게 웃는다. 그의 뒤로 보이는 분주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저러는 것 같던데 이쪽 스태프인가.

 

 ”그럼 나랑 이럴 게 아니라 촬영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 맨 마지막 촬영이에요. 멤버 수도 많아서 한참 걸리기도 하고 저 여기 있는지도 모를걸요?“

 

 멤버는 열 명이 넘는데 매니저가 한 명이예요. 내 옆에 가까이 붙어 귓가에 속삭인 그가 푸스스 웃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무엇에도 가려지지 않은 내 귀에 닿았다. 물에 젖고 말리지 않아 퍼석거리는 것 같았다. 탈색을 수없이 반복해 상할 대로 상해버린 머릿결.

 

 ”이름 알려줄 수 있어요?“

 

 두 다리를 모으고 무릎에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해 기댄 그가 실없이 자꾸 웃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시야를 맞추고 이번에도 필터링 없이 말을 뱉었다.

 

 ”시안이요. 시안이에요. 누나는요? 아, 누나 맞죠? 혹시 아니면 죄송해요….“

 

 ”해….“

 

 해타, 해타예요. 열아홉이니까 누나 맞을 거예요, 나보다 나이 어린 거 맞죠? 계속 어리게 봤었는데. 시안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파란색 머리카락이 고갯짓에 따라 움직였다. 아직 축축한 내 머리카락과 다르게 다 말라 건조해져 버린 시안의 머리카락.

 

 ”이름 예쁘다. 해타 누나라고 불러도 되는 거죠. 누나도 나 시안이라고 불러요. 말 편하게 하고.“

 

 시안은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메인보컬을 하고 싶었지만, 형들이 보컬을 하고 싶다고 해서 밀려나 랩도 못 하는데 리드 래퍼가 됐다고, 그래도 형들도 다 착하고 동생들도 착해서 너무 행복하다고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 시안의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내가 저 표정을, 얼굴을, 감정을 얼마나 담고 있을 수 있을까. 금방 떠날 인연에 내가 자꾸 미련을 만든다. 남은 미련을 붙잡고 괴로워할 사람은 나면서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네 머리색 예쁜 것 같아.“

 

 ”제 머리색이요? 염색 너무 많이 해서 엄청 푸석거려요. 전 누나 머리카락이 좋은데.“

 

 눈을 찌르는 앞머리에 시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파란색도 아니고, 하늘색도 아니고, 남색도 아닌, 그야말로 시안색. 색의 3원색 가운데 하나인 바다 같은 밝은 파랑.

 

 ”나도 나중에 염색하려고.“

 

 ”무슨 색으로요?“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파란색으로 할까 너처럼.“

 

 ”어…. 누나는 저 색 어때요?“

 

 시안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빛이 하도 강해 흰색으로 보이는 태양. 희미하게 보이는 주황빛은 주황보다 태양 빛이라고 해야 할 것만 같다.

 

 ”하면 예쁘려나.“

 

 ”응 예쁠 거예요. 나는 그때까지 이 색으로 있을 테니까 누나는 저 색으로 하고 오면 우리는 여기 마이애미 해변 그 자체네요.“

 

 사진 따위 찍지 않아도 평생 기억할지도 몰라요. 마이애미의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치면서 심장에 못이 쿡쿡 박혔다. 희망 품지 말라고 못 박는 태양, 선글라스 쓰고 나올 걸 그랬지.

 

 ”누나는 여기 유학 온 거예요, 아니면 여행?“

 

 ”유학…. 이라고 해야겠지?“

 

 ”아 미안해요…. 괜히 물어봤죠.“

 

 달리지도 않은 귀가 시안의 기분에 따라 위아래로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 때문에 자기가 더 속상한 낯을 한 시안이 안쓰러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시안의 머리 위에 손을 뻗어 서투르게 쓰다듬었다. 쓰다듬었다기보다 헤집었다는 것에 가까웠지만.

 

 ”...누나?“

 

 ”미안해 나도 모르게.“

 

 시안이 놀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뚫어지라고 응시했다. 뺨이 화르륵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급하게 시안의 머리에서 손을 내려 뒤로 숨겼다. 시안의 시선을 피해 눈을 아래로 내렸다. 내 다리와 시안의 다리 사이로 조그마한 게가 지나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깔려 죽을 것만 같은 크기의 게. 집게에 손가락을 집히면 꿈인 듯 꿈 같지 않은 여기서 깰 수 있으려나.

 

 ”우리 아까부터 서로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 거 알아요? 미안할 필요 없는데 계속 뭐만 하면 미안하다 이러고만 있어요. 다른 말 하기도 모자란 데 미안하다는 말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말들도 우리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죠. 누나.“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난 시안이 내 앞에 들어오는 햇빛을 가리고 서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조곤조곤 내뱉는 시안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담담했다. 변성기가 오고 있는 앳된 목소리. 열여덟 고등학생에게서 나올 것 같은 흔한 목소리지만 말투가 흔하지 않았다. 가볍지 않고 생각보다 무거운 말투에 앳된 목소리를 누르는 침착한 톤. 이 목소리로 어떻게 랩을 해 누가 봐도 보컬이잖아.

 

 ”나 팔 아파요 얼른 잡아주세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면 아니라는 답을 보여주셔야죠. 제가 생각보다 참을성이 없어요. 누나가 보기에도 그렇지 않아요? 형들은 내가 이렇게 굴 때마다 짜증 내거든요. 누나도 짜증 낼 거예요?“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짜증을 내. 얼른 잡으라는 듯 움직이는 시안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 순간 힘이 그쪽으로 쏠리더니 쑥 일어나졌다. 내가 두 눈 크게 뜨고 시안을 올려다보자 어깨만 으쓱이고 세상 해맑게 웃는 얼굴이 날 반겼다.

 

 내 등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고 시안이 내 손을 여전히 맞잡은 채 해변의 중앙을 향해 걸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엄마가 노래 잘 부른다고 엄청 칭찬하고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동네에서 노래대회 있을 때마다 나가고, 학교 축제에도 매번 나가고, 반에서도 매일 노래 부르고…. 아, 노인정에서 불렀을 때가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어르신들이 용돈까지 주면서 노래 부르러 오라고 하셨다니까요?“

 

 수업시간에 잠꼬대로 노래를 불렀다가 칠판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던 일, 엄마랑 노인정 노래방기계에서 노래 불렀던 일, 오디션에서 노래만 준비하고 춤은 준비 안 했는데 춤을 춰 보라고 해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 췄던 꼭두각시 춤을 췄던 일 등. 시안은 내 걸음에 속도를 맞추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쓸모없지 않았다.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이야기들이었다. 시안과 맞잡은 손에 땀이 차올랐다. 내가 잠시 손을 떼자 시안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 내려봤다.

 

 ”오디션에 합격했었어. 1차를 붙고 2차를 봤어야 했는데.“

 

 손에 묻은 땀을 털어 닦아내고 시안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먼저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안이 뒤따라 걸었다.

 

 ”사고가 났어. 오디션을 보러 가던 중에 사고가 나서 자동 탈락이 됐나 봐. 나 진짜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 뒤로 연기의 연도 못 꺼냈어. 그동안 어떻게든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안 될 운명이었던 거지.“

 

 어느새 해변의 중앙이었다. 맨 끝 해변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해변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인 모래 위의 수많은 발자국. 나는 시안의 손을 놓고 쓰게 웃으며 시안을 올려다봤다.

 

 ”겨우 운명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겼는데 나는 그러면 안 된다네. 나는, 나,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다 짜여진 판이였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시안이 나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 안쓰러웠고 사랑스러웠다. 시안의 뺨 위로 내 손바닥을 올려놨다.

 

 ”내가 죽으면 그 판이 뒤집힐 수 있을까?“

 

 ”...“

 

 ”뒤집히다 못해 나랑 같이 영영 가라앉겠지?“

 

 손을 움직여 시안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고 손을 내렸다. 난 여전히 웃었다. 시안은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고 나는 시안과 반대로 웃기 위해 노력했다. 웃는 게 우는 것보다 힘들었다. 웃는 게 숨 쉬는 것보다 무거웠다.

 

 ”해파리는 헤엄치는 힘이 약하대요.“

 

 멀리서 시안을 애타게 부르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 그중 몇 명이 두 발로 다가오는 게 보이는데 시안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너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시안이 내 오른손을 조심히 잡았다. 단단한 시안의 손에 쥐어진 손이 움직일 수 없었다. 조심스럽지만 놓지는 않으려는 시안의 맞잡음을 내가 어떻게 놔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수면을 떠돌면서 산대요, 죽는 게 아니라.“

 

 ”시안,“

 

 ”누나도 수면을 떠돌면서 살아요. 나 다시 만날 때까지 수면 위에 떠돌고 있어요. 내가 누나 찾아낼 테니까 가라앉지만 마요.“

 

 시안은 이 말을 남기고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들에 의해 급하게 끌려갔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시안은 떠났고 나는 남겨졌다. 홀로 남겨진 것에 미련을 느끼지 못했다. 다시 찾아온다는 시안의 말 한마디에 위안을 얻었다는 게 웃기고 서글펐다.

 

 바지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에 집히는 대로 챙겨 나왔던 명함과 동전 몇 개를 들고 근처의 공중전화부스로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 걸음이 가벼웠다. 발가락 사이에 낀 모래가 아스팔트를 지나자 깨끗하게 떨어져 나갔다. 전화번호를 검지로 꾹꾹 하나하나 눌렀다. 숫자 하나라도 번복하거나 실수한다면 기껏 떠오르게 했던 몸이 다시 가라앉는다. 11개의 숫자를 다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낮은 산호의 목소리. 산호가 뭐라고 말할지 몰라 두 번 더 걸 수 있는 만큼의 동전을 손에 꽉 쥐었다.

 

 ”미안해.“

 

 -핸드폰은.

 

 ”두고 와서.“

 

 -...할 거야?

 

 ”응.“

 

 -내일 다시 연락 줄게. 준비하고 있어.

 

 집 조심히 들어가. 변함없는 산호의 목소리가 끊겼다. 전화가 끊김을 알리는 신호음만 이어지다 영어를 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수화기를 원래 자리에 돌려놨다.

 

 낯선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수면 위에 떠돌기로 했다. 가라앉지 않게 발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억지로 해변에 끌려오지 않는다면 나는 수면 위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중학교 때 중경삼림을 틀어준 선생님은 마이애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마이애미 해변에서 색소 가득 첨가된 칵테일을 들고 선글라스를 쓴 채 해변을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것. 그러면서 수평선 저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와중에 캘리포니아 드림은 꼭 들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정말 이상한 로망에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아마 나보다 마이애미를 늦게 올 것 같다. 연락 안 한 지 한참 됐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사람이다. 옆 식당에서 캘리포니아 드림이 흘러나왔다. 왜 마이애미 식당에서 캘리포니아 드림이 나오는지, 여기 사람들도 모두 선생님 같은 취향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의 이상한 취향 중 내 연기를 좋아한 게 포함되어있어 나도 가만히 서서 듣고만 있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마이애미 해변에서

 내가 그와 남긴 발자국은

 내 이상한 로망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작가의 말
 

 Mail: b8403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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