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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원나잇 바디샷
작가 : 아스테리아
작품등록일 : 2020.9.1

그의 입술이 내려왔다. 쇄골을 깊게 핥은 그가 하랑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테킬라 잔을 들어 삼킨다. 목울대가 아래위로 움직인다. '하, 이런 섹시한 대나무숲을 봤나.' 에덴의 동산에는 대나무숲이 있다. 그가 자꾸 꼬리를 흔든다. 이리와 여기 이 탐스러운 선악과를 한번 먹어보라고... "당신이 먹는 열매가 당신을 천국으로 보내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과감하게 한번 먹어봐요." 섹시한 대나무숲의 유혹이 시작된다.

 
03. 서른다섯
작성일 : 20-09-03 17:15     조회 : 232     추천 : 1     분량 : 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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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랑의 차가 가로수길 뒤 쪽 구석진 골목에 멈췄다. 리모델링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층짜리 건물. 1, 2층은 카페로, 3층은 집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전 남편과 이혼하며 위자료로 받은 곳.

 

 골목 한쪽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 어디야.

 “비켜. 거기 내 자리야.”

 

 하랑의 전용 주차공간에 세워진 검정 레인지로버. 까맣게 선팅되어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저 차의 주인은 안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랑을 찾고 있을 것이다.

 

 ― 대충 다른데 주차하고 집 문이나 열어. 두 시간 동안 차 안에만 있었더니 허리 아파.

 “카페에 들어가 있지.”

 ―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한물간 배구선수 누가 알아본다고.”

 ― 야! 은퇴했어도 아직 인기 좋거든!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하랑은 다른 자리에 서둘러 주차를 하고 카페 옆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난간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검정 레인지로버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남자 하나가 내린다. 목도리까지 둘둘 감아 얼굴을 가려도 우월한 기럭지와 떡 벌어진 어깨는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카페 창가 쪽 자리가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아마 저 차가 세워진 걸 보고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을 그의 팬들이겠지.

 

 긴 다리로 빠르게 3층으로 올라온 그는 활짝 열려있는 문을 닫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비번 알려주면 안되냐? 근데 너 어제 어디서 잤어?”

 “임다랑 통화했잖아.”

 “수상해.”

 “뭐가 수상해? 나 어제 고등학교 동창모임 있다고 말 안 했나?”

 

 집으로 들어온 그가 자연스럽게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외투를 벗어두고 거실로 나왔다.

 

 “이리와 옷 벗고 엎드려.”

 “됐어. 근데 웬 동창모임? 그런데 안가잖아”

 

 ― 퍽!

 

 “아!”

 

 소파에 늘어지게 기대앉은 녀석을 주먹으로 한 대 때리자 그제야 상의를 벗고 베드위에 엎드린다.

 

 “너 안 좋은 자세로 오래 앉아있지 말라고 했지! 운동은 꼬박꼬박 하고 있는 거야? 매일 빼먹지 말고 코어 운동 하라고 했지! 어깨는?”

 “어휴 잔소리.”

 

 병원에나 있을법한 물리치료용 베드. 그 위에 맨살을 드러내고 엎드려 하랑의 마사지를 받는 이 녀석은 진하람. 하랑의 이란성 쌍둥이 오빠이다.

 

 195센티의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짙은 눈썹과 깊은 눈매, 조각 같은 콧날, 깎여져 내려가는 날렵한 턱선.

 배구의 ㅂ자도 몰랐던 여성관중을 실내체육관으로 이끌었던 배구황제 진하람. 얼굴, 몸매, 인성, 실력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해서 사기 캐릭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었다.

 

 약3년 전 까지는 그랬다.

 

 하랑을 구하려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허리와 어깨를 심하게 다친 하람의 선수생활은 그날로 끝이 났다. 하랑은 죄책감에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1년 가까이 오빠의 재활을 도왔고, 덕분에 어지간한 물리치료사의 몫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안부만 주고받던 다은과 친해진 계기도 하람이 입원한 병원에 다은이 의사로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힘든 재활치료를 옆에서 도우며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하랑에게 그는

 

 ‘어차피 힘들어서 운동 때려치우고 싶었어.’

 

 라며 웃었다. 그 웃음이 하랑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런데 반백수로 지내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진짜 때려치우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

 

 “야, 다람쥐새끼. 너 아프다는 거 뻥이지?”

 “아니야, 나 진짜 아포…….”

 “이게 진짜 누굴 속여! 손에 닿는 느낌 다 다르거든!”

 

 넓은 등짝을 ‘짝’ 소리 나게 한 대 치자 헤실헤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하람.

 

 “서랍장 고쳐야 된다며?”

 “응, 조명도 바꿀거 있어.”

 “도구 없는데… 마트좀 갔다와야겠다.”

 “오! 그럼 생수랑 빨래 세제도.”

 “너 일부러 무거운거 시키는거지?”

 

 눈을 흘기는 하람을 내보내고 가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아고, 예전엔 안이랬는데. 나이 먹으니 숙취때문에 죽겠네.”

 

 반신욕으로 땀을 빼려고 따뜻한 물을 받아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찰랑거리는 물이 하랑의 몸을 따뜻하게 감쌌다. 절로 ‘하…… 좋다.’하는 말이 터져 나온다.

 

 긴 머리를 위로 올리며 손가락으로 쓸었다. 살랑,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진저릴리 향이 풍겼다.

 

 마지막엔 자신과 같은 이 향을 풍겼던 대나무숲. 그는 12시간 동안 우드였다가 머스크였다가 마지막엔 달콤한 백합이었다.

 

 하랑은 무의식중에 손끝으로 자신의 쇄골을 쓸다 아차 싶어 욕조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울에 등을 비춰보다 잘 보이지 않아 옆에 놓인 손거울까지 동원해 자신의 등을 살폈다.

 

 “하… 가관이네…….”

 

 앞면이 멀쩡하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던 뒷면은 멀쩡하지 않았다. 오전에 집요하게 등을 핥고 빨더니 울긋불긋한 자국을 섬세하게도 남겨놨다. 그리고 목에서 이어지는 등에 가장 진하게 남은 자국과 그 옆에 일렬로 적힌 휴대폰 번호.

 

 손가락에 침을 묻혀 쓱쓱 문질러 보았지만, 유성 볼펜으로 적힌 번호는 검게 번질 뿐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 딩동.

 

 벨을 누르는 소리에 욕실 인터폰을 확인해보니 다은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하랑!”

 

 어제의 일이 궁금한지 문이 열리자마자 한달음에 들어온 다은에게 씻고 나갈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부지런히 몸에 거품 칠을 했다. 대나무숲의 연락처도 지워버리고, 그와 같은 향을 풍기던 진저릴리도 지웠다.

 

 “빨리빨리. 이리 와서 앉아.”

 

 다은은 아까 전화로 대충 말했던 ‘나 밖에서 잤어. 모르는 남자랑.’이 어지간히도 궁금했는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집으로 날아오셨다. 이건 치킨 각이라더니 소파 앞 테이블 위에 갓 튀긴 치킨과 캔맥주가 차려져 있다.

 

 “그래. 역시 해장은 술이지!”

 

 반신욕은 무슨. 하랑은 테이블 앞에 앉으며 맥주캔을 따 단숨에 절반을 들이켰다.

 

 “아 빨리 말해봐. 나 현기증 날 것 같아. 어디서 만났어? 잘생겼어? 어땠어?”

 “천천히 하나씩.”

 “알았어. 자 육하원칙에 맞춰서 설명해봐.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다은은 어제 하랑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들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좋았어? 잘해?”

 

 하랑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치킨 다리를 뜯으며 말없이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에 묻은 기름이 반짝 빛난다.

 

 “꺄아! 어우야, 대박이다. 그래서 언제 또 보기로 했어?”

 “보긴 뭘 봐. 그걸로 끝이야.”

 “왜? 괜찮았다며! 잘생겼다며! 잘했다며!”

 “뭘 잘해?”

 

 갑자기 등장한 하람을 보고 하랑과 다은이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너… 비번도 모르는데 어떻게 들어왔어?”

 “임다은 너 신발 좀 막 던져 벗지 말랬지! 니 신발 때문에 문이 안 닫혔더라. 여자애들끼리 있으면서 조심성이 없어.”

 

 다은과 하랑이 이마를 맞대고 ‘못 들었겠지?’, ‘그냥 딱 ‘잘했다며’ 만 들은 거 같아.’ 하며 소곤거렸다.

 

 “진하랑 넌 아까도 술 냄새 풍기더니 대낮부터 또 술이야?”

 “원래 술은 술로 푸는 거야. 남자도 남자로 잊는 거고.”

 

 다은의 말에 하랑이 눈을 흘기며 쳐다보자 눈을 찡긋하며 ‘아니, 나.’란다. 다은은 남은 맥주를 털어 마시고 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나! 남자 생겼어!”

 “또?”

 “어지간히 해라.”

 

 하랑이 놀라고 하람이 고개를 젓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학병원 의사생활을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능력 좋게도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다만 한 남자를 만나면 3개월을 못 넘긴다는 게 문제.

 

 “이번엔 또 어떤 놈이야?”

 “이제 쓰레기 수집 좀 그만해.”

 

 그리고 만나는 놈들마다 정상적인 인격이 없었다.

 

 “진하랑 니가 쓰레기를 논하면 안 되지.”

 “닥쳐.”

 

 하람이 팩트로 때린다. 하랑 또한 서른 이후 만난 민진성과 전남편 구영준이 아주 쓰레기였으니까.

 

 “어제 클럽에서 만난앤데…….”

 “클럽?!”

 “이게이게 나이 먹고 돌았네.”

 “아, 사람 말 끝까지 들어봐!”

 

 원래 클럽을 다니지도 않을뿐더러 선입견 또한 가지고 있는 쌍둥이다.

 

 “여의도 증권회사에서 일하고, 나이는 서른셋. 어제 같이 놀고 나 집까지 데려다줬는데 매너가… 아주 끝내줘.”

 “잠깐. 너네 어제 임다은네서 같이 잤다며.”

 “헙!”

 

 ― Drrrrrr. Drrrrrr.

 

 “딱 기다려. 여보세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려는 그때 하람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하랑과 다은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표정과 입 모양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통화하던 하람은 옆에 놓아둔 모자와 선글라스를 집어 들며 일어났다.

 

 “어디…가?”

 “여친만나러. 진하랑 넌 내일 나랑 깊은 대화 좀 나누자.”

 “아냐, 나 내일부터 엄청 바빠. 한동안 못 볼 거야.”

 “너 디진…… 어어 주은아. 오빠 지금 바로 출발해. 금방 가.”

 

 아직 통화 중인 하람에게 어서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쟤 여자친구 생겼어?”

 “어, 한 달 됐나? 모델이래.”

 “하긴 주위에 여자가 들끓으니……. 근데 넌 왜 그 남자 안 만난다는 거야?”

 

 하랑이 맥주캔 입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쓸었다.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아니까. 그리고 우리보다 어려 보였어.”

 “알면 뭐 어때서. 아니, 잘 알면 좋지! 게다가 우리 나이에 어리면 땡큐지 뭐.”

 “그래서 넌 한 살 어린 증권맨이 마음에 들었어?”

 “푸흣, 응. 이번엔 좀 잘 해보려고.”

 “너 매번 시작할 때마다 잘해본다고 했거든.”

 

 화창한 12월의 일요일. 따뜻하게 난방된 집 거실에서 핑크 고양이 수면잠옷과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30대 중반 두 여자의 낮술은 계속되었다. 10대 소녀같이 까르르 웃다가도 갑자기 30대의 질펀한 음담패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3개월 반 후. 우리는 서른다섯이 되었고,

 

 ― 야, 나 헤어졌어. 술 마시자. 마감하고 파출소 뒤쪽 깡통집으로 와.

 

 다은은 한 살 어린 증권맨과 헤어졌다.

 

 오전 일 끝나고 함께 진해로 벚꽃축제에 가기로 했다며, 서로 바빠 함께 가는 첫 여행이라던 다은이었다.

 

 “도착해서 일단 방부터 잡았지. 근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냥 막 내 가슴을!”

 “쉿… 목소리 조금만 낮춰.”

 “어, 그래서 내가 이러지 말라고, 너 너무 성급하고, 난 아직 우리가 그럴 때가 아닌 거 같다고 그랬더니 그 새끼가 글쎄… 하, 참네.”

 “뭐라 그랬는데?”

 “그 나이면 남자들이 막 덤벼주면 좋은 거 아니냐고. 자기는 솔직히 나이도 있고 하니까 진도 팍팍 뺄 줄 알았다고! 야하게 생겨가지고 얼굴값 하면서 놀라고!”

 “미친 새끼.”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나와서 버스 타고 올라 온거야.”

 “야야 됐어. 그딴 놈 백 명이 덤벼들어도 이쪽에서 사양이다. 마셔. 마시고 잊어.”

 

 ‘짠’ 하고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맑게 울린다. 한입에 술잔을 비운 하랑은 오늘따라 술이 쓰다.

 

 “내가 진짜 이번에는 그놈이 마지막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올해 펠로우 과정도 포기하고 여유 있게 데이트해보겠다고 선배네 개인병원에 페이닥터로 들어갔건만…….”

 “너도 참 너다. 자, 아- 해.”

 

 연신 자신의 빈 잔을 가득 채워 입속에 털어 넣던 다은에게 맛있게 볶아져 나온 닭똥집 통마늘 구이를 집어 먹여줬다. 하랑이 오기 전부터 먼저 소주 두병을 비운 다은은 취기가 잔뜩 올라 헤실헤실 웃으며 야무지게도 닭똥집을 씹는다.

 

 “헤헤. 이 집은 역시 이게 제일 맛있어.”

 

 그런데 조금 전부터 뒷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남자들이 자꾸 거슬린다.

 

 와이프가 임신해서 풀 곳이 없다느니. 자기는 애 낳은 와이프가 여자로 안 보여 그냥 돈 주고 한다느니. 차라리 오피스 와이프를 만들라느니.

 

 게다가 좁은 공간에 등을 맞대고 앉은 남자는 자꾸 하랑을 툭툭 친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 여기야!”

 “미안, 늦었다.”

 “총각 놈이 유부남들 기다리게 해서야 쓰냐!”

 

 뒤늦게 온 친구를 맞는 그들의 시끄러운 대화에서 낯익은 이름과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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