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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너의 빛은 나의 어둠
작가 : Sissi
작품등록일 : 2020.9.1

무명 신인 작곡가와 무능력 얼굴천재 탑 아이돌의 상호 파괴적 성장 서사

 
#3.
작성일 : 20-09-03 01:39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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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시한은 그다지 생각을 깊게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중학생 때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히 프레타 엔터의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계약 제의를 받았고, 부모님은 그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어린 시한은 막연히 연예인이 되면 관심도 많이 받고 돈도 많이 벌고 좋겠다- 생각했고, 공부나 다른 분야에 딱히 흥미나 재주가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입사를 택했다.

  연습생 생활은 학교를 빼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결코 학교생활보다 여유롭지는 않았다. 시한은 수많은 연습생들과 함께 노래, 춤, 연기 레슨을 받으면서 자주 혼나고 지적을 받았다. 물론 그만 혼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고, 어제까지 같이 연습하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한은 테스트에서 허다하게 꼴찌를 해도 잘리지 않았고, 언제부턴가는 트레이너들도 그의 형편 없는 실력을 꾸짖지 않았다. 어느 날, 신인기획부는 어떤 것에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던 시한에게 데뷔가 결정되었다고 알렸다.

  공부에 의욕이 없는 고등학생들도 졸업할 때까지는 꾸역꾸역 등교를 하듯, 그 전까지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억지로 나오던 회사에서 시한은 이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시한과 멤버들은 하루 종일 녹음을 위한 보컬 트레이닝과 안무 연습을 병행하였다. 그는 고된 연습 속에서도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목소리와 몸에 애를 먹었다. 그는 트레이너의 말 대로 배에 힘을 주고, 입을 크게 벌리고, 머리로 소리를 보내서 소리를 직선으로 뽑아내려고 애썼지만 그의 입에서는 듣기 싫은 소리만이 나왔다.

  시한은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태윤과, 넓은 음역대로 시원한 고음을 내는 이안, 그리고 귀에 꽂히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유진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 셋만큼은 아니지만, T사가 신중히 뽑은 멤버들인 만큼 룩스의 다른 멤버들도 제법 괜찮은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는 독특한 음색으로 곡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누구는 곡의 베이스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안정적인 저음을 갖고 있는 식이었다.

  시한은 스튜디오에서 음을 쭉쭉 뽑아내는 멤버들을 멍하니 보다, 제 옆에서 쉬고 있던 태윤에게 물었다.

 

  “형, 형은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해요?”

 

  그냥 단순한 칭찬인가? 그러기엔 이 녀석 표정이.. 아하. 짧은 시간 동안 리더인 태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어떻게 해야 재수 없어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 막내의 힘을 북돋아 줄 수 있을까.

 

  “에이, 잘하기는... 다른 애들이 훨씬 잘하지.”

  “형이 잘하는 게 아니면, 저는 뭐예요.”

 

  시한의 표정이 더 시무룩해졌다. 아차, 이게 아닌가.

 

  “걱정 마. 너는 목 대신 얼굴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

  “초반에는 네 역할이 제일 커. 일단 시각적인 걸로 관심을 끌어야 그 다음이 생기는 거지. 너는 룩스에 없으면 안 되는 멤버라고.”

 

  그렇다고는 해도... 나도 명색이 가수인데.

  막 스무 살이 된 어린 시한은 그 때 처음으로 자괴감을 느꼈었다. 결국 그는 얼마 되지 않는 랩 파트의 일부를 부르게 되었다. 말이 좋아 랩이지, 실제로 프로 래퍼들과 힙합 팬들은 비웃을 음정 없는 중얼거림일 뿐이었지만. 데뷔 앨범의 수록곡은 총 5개였는데, 시한의 파트는 모두 합쳐도 노래 한 곡의 벌스 분량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발라드풍의 곡 하나에는 아예 그의 파트가 없었다.

  녹음 과정에서 바닥난 시한의 자존감은 안무 연습에서 또 한 번 박살이 났다. 스튜디오에서 저와 같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적은 랩 파트를 함께 나누어 받은 오웬은 안무 연습실에서 날아다녔다. 그는 춤에 재능과 애정이 있었고, 노력을 쏟았다. 그는 비록 노래는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춤은 잘 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같은 안무를 춰도 그의 춤선은 어딘가 달랐다. 강하지만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단단했다.

 

  “형, 형은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 춰요?”

 

  시한은 태윤에게 했던 질문을 오웬에게 똑같이 했다. 오웬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래도 좋아하니까 계속 하고 싶고, 계속 하다 보니까 실력이 생긴 거지 뭐.”

 

  “저도 연습은 오래 했는데요.”

 

  “너 춤 잘 추는데?”

 

  잘 추기는. 그냥 겨우 안무를 흉내내는 정도지. 내 말은 어떻게 하면 형의 느낌을 내냐는 건데.

 

  “괜찮아. 너는 카메라 보고 잘 웃고, 그러면 돼. 그게 내가 몸 백 번 꺾는 것보다 나을 걸.”

 

  오웬은 약간 씁쓸해 보이는 미소로 시한을 위로했다. 그는 당시엔 그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인가 했지만, 정말로 데뷔를 해 보니 사람들의 관심은 노래를 잘 하는 보컬 멤버들이나 춤을 잘 추는 오웬이 아닌 시한에게로 온통 쏠렸었다. 초반에는 멤버들이 이동할 때에도 시한을 외치는 목소리만 들렸으며, 음악방송에서도 엔딩은 늘 그의 몫이었고, 인터뷰를 할 때에도 질문의 절반 이상이 그를 위한 것이었다. 그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다른 멤버들에게도 퍼지긴 했지만 데뷔 초의 몇 개월 동안 시한은 자신의 외모가 대단한 위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고, 자신이 부러워한 멤버들에 비해 자신이 못 할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그가 노래에도, 연기에도 재능이 없는 얼굴마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가 잘생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이미 팬이 된 이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짖기 바빴다. 실제로 아무 능력이 없는 비주얼 멤버는 아이돌이 있어 온 순간부터 모든 그룹에 하나 이상 있었으니 새삼스럽게 시한이 미움 받을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비주얼' 중에서도 매우 출중한 외모를 가진 편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누가 보기에도 잘 생긴 외모에 웃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순하고 귀여워지다가도 무표정일 때는 시크한 매력을 뿜어내는 그를 누가 싫어할까. 시간이 지나고 노래를 잘하면서 키는 조금 작고 귀엽게 생긴 이안이 팬덤 내 인기 1순위가 되었지만, 여전히 대중적인 인지도는 시한이 가장 높았다. 게다가 이미 룩스가 큰 인기를 얻은 후라 누가 인기가 좀 더 있고 덜 있고는 별로 상관이 없었고 시한도 자신은 그냥 이 얼굴로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노래를 잘하는 것이나 춤을 잘 추는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무능력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인 것 자체로 환호를 받는 걸. 팬들은 그냥 나이기만 하면 되잖아. 물론, 이미 태윤 형이나 이안 형, 아니면 유진이가 노래를 못 해도, 오웬 형이 춤을 못 춰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냥 우리는 룩스니까. 그걸로 된 거야 이제.

 

 

 -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재희는 씩씩거리며 건물을 나왔다. 저런 놈에게 내 곡을, 그것도 내가 가장 아끼는 부분을 줘야 한다니.

 

 ‘그깟 무명 작곡가의 곡 한 마디 따위, 전혀 필요 없다고요.’

 

  시한이 한 말들이 재희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깟’, ‘무명’, ‘따위’, ‘전혀’... 아픈 말들이 그녀의 여린 부분을 꾹꾹 누르는 것 같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재희가 향한 곳은 프레타 엔터 회사 건물 근처의 카페였다. 근처의 프렌차이즈 카페들과 프레타 엔터 소속 연예인의 부모님이 하는 카페가 널찍하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데에 비해, 큰 길 뒤 외진 골목에 있는 이 작은 카페는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재희가 들어서자 카운터 너머의 아르바이트생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다 문의 종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어서오.. 어, 재희다.”

 

  아르바이트생은 재희를 보고 밝게 웃어보였다. 그는 잔뜩 골이 난 재희를 보고 그래도 얼마 전까지의 우울한 모습보다는 이런 활기찬(?) 모습이 낫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 룩스 멤버들 보고 온 거 아니었나? 왜 저렇게 화가 났지.

 

  “자, 마셔.”

 

  아르바이트생은 열이 오른 재희에게 얼음물을 건넸고, 마침 손님도 없었으므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재희는 단숨에 차가운 물을 마시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이제는 인상을 잔뜩 쓰고 얼음을 와작와작 씹고 있었다.

 

  “왜 이렇게 화났어엉.”

 

  그런 재희를 보고 아르바이트생은 살짝 웃으며 달래는 말투로 물었다. 마치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누가 우리 재희 울렸어? 엄마가 호온-내 줄게! 누가 그랬어? 누가?’ 하며 달래듯이.

 

  “미친 새끼!!!”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희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재주도 없는 게 얼굴 하나 반반하게 태어나가지고는 귓구녕도 없는 얼빠들이 빨아재끼니까 지가 뭐라도 된 줄 아나. 인기랑 얼굴이 영원할 것 같아?! 아이돌 수명 길어 봤자 몇 년 안 돼. 인기는 더 오래 못가고. 더 능력 좋고 어린 애들이 줄줄이 치고 올라오는데 지가 뭐라고 영원히 그 자리에 있겠어. 돈 많은 회사 아니면 아무것도 못 했을 놈이. 단물 다 빠지면 그 회사에서도 버려질 놈, 어디까지 가나 보자!!!”

 

  아, 재희를 화나게 한 놈이 룩스의 잘생긴 멤버인가 보구나. 다 잘생겼지만.. 재주가 없다는 걸 보면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잘생긴 시한이라는 멤버겠네.

 

  “왜? 곡이 별로랬어? 그런 막귀가 있었어?”

 

  재희는 시한의 건방진 태도와 마지막 말을 강조하면서 있었던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그냥 네가 부른 가이드로 음원 내면 좋겠다.”

 

  말하는 동안 화가 좀 누그러진 재희는 혼자 고래고래 악을 쓴 것이 약간 머쓱해서 잠자코 듣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했다. 늘 틱틱대고 좋은 말 하는 게 힘들어 잔뜩 꼬인 말만 내뱉던 재희가 칭찬인 듯 아닌 듯 칭찬 비슷한 말을 하자 아르바이트생은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가사도.. 네가 많이 도와줬으니까.”

 

  오랜 친구한테 하는 고맙다는 말이 어색한 듯, 먼 곳을 응시하는 재희를 보며 아르바이트생은 미소를 지었다.

 

 -

 

  이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은 이수영. 그는 오랜 기간 동안 가수를 꿈꿔오고 있었다. 마냥 어린 꼬꼬마 시절부터 군을 제대한 지금까지 가수가 되고 싶어했으니, 그건 실로 ‘오랜 기간’이 맞았다.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인 그는 제대 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복학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는 중저음에서는 듣기 편한 소리를 내고, 고음에서는 날카롭고 독특한 소리는 내는 제법 탄탄한 실력과 개성을 갖춘 보컬리스트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좀처럼 오디션 합격의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수영이 본 오디션에는 늘 괴물 같은 실력의 참가자가 있다거나,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못한 실력이지만 그보다 잘생긴 참가자가 있는 식이었다. 수영도 약간 처진 눈이 착한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호감 가는 인상을 가진 편이었으나, 같은 실력이라면 평범한 축에 속하는 수영보다는 역시 눈에 확 띄는 외모를 가진 이가 합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낙방에도 불구하고, 수영은 늘 밝고 긍정적이었다. 수더분한 성격의 그가 그와는 반대로 앙칼진 고양이같은 외모와 성격의 재희를 알게 된 지는 벌써 햇수로 6년째였다.

  재희는 수영의 목소리를, 수영은 재희의 멜로디를 좋아했다. 물론 수영은 재희의 가사도 독특해서 좋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녀가 따뜻한 사랑 노래를 쓰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재희에게서 사랑 노래를 써야 하는데 도무지 쓸 수가 없다며 그에게 SOS가 왔었다.

 

  “이 곡 분위기에 맞는 사랑 노래라고?”

  “응. 뭐 약간 꿈꾸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건가 봐.”

  “처음 반한 순간... 같은 건가. 뭐 경험 없어?”

  “몰라. 있어도 그게 몇 년 전인데. 기억에 없어.”

 

  역시 그런건가. 수영은 약간 쓰게 웃었다.

 

  “너 얼마 전에 본 오디션은 발표 났어?”

  “엉. 났는데 안 됐어.”

 

  마치 어제 점심으로 돈까스 먹었어. 하는 것처럼 가볍게, 심지어는 헤헤 웃으면서 말하는 수영을 보고 재희는 기가 찼지만 그래도 본인이 괜찮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나이도 있어서 더 힘들 텐데,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어쩐지 수영처럼 실력도 있고 착하고 밝은 애는 어떻게든 잘될 것 같았고, 또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랐다.

 

  “오, 방금 진짜 맘에 드는 스토리가 생각났어.”

 

  잠깐 어색해진 공기 속에서 수영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짝사랑을 하는 사람의 상상.”

  “짝사랑?”

  “생각해 봐. 세상에는 연인들도 많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거나 이루지 못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잖아. 현재진행형이 아니더라도 짝사랑 한 번쯤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걸.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말이지.”

  “하긴... 그리고 짝사랑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없으니까. 몽환적, 환상적이라는 이미지도 있겠네.”

  “그렇지. 그리고 짝사랑은 그 자체로 소망이야.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그래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

  “맞아, 그렇지.”

  “뭔가 바라는 게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그게 이루어지면 어떨지, 얼마나 좋을지 상상하기 마련이잖아?”

  “…그런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수영을 보는 재희에 수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짝사랑도 안 해봤냐! 역시 너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었어. 어떻게 사람이 사랑 한 번 안 해보고 살아!”

  “죽을래? 해 봤거든! 나도 좋아해 봤다고!!”

  “근데 어떻게 그런 상상도 안 해 볼 수가 있어?”

  “좋아하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게 만들 노력을 하거나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는 거지, 뭘 상상 같은 걸 하고 앉아 있어, 쓸 데 없이!”

  “쓸모와 실용만이 가치 있는 건 아니라고!”

  “아, 시끄럽고 다시 말해봐. 자기 가수들 짝사랑하는 어린 팬들한텐 그만한 게 없겠네. 공감 가는 가사가 귀에 더 잘 들리기 마련이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그 나이 땐 자기가 실제로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누굴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야! 사랑에 나이가 어디 있어!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 몰라?”

  “그럼 더 잘됐네! 노래야 공감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으니까.”

 

  네가 싸이코네, 네가 멍청이네, 하고 한참을 티격태격 싸우긴 했어도, 재희는 수영이 말한 내용을 가지고 가사를 쓰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곡이 완성됐다며 수영에게 연락을 했다.

 

  “내일 두시 스튜디오.”

  “뭐야, 내 의사는?”

  “없어. 그 때가 스튜디오 비는 시간이야. 은수언니한테 허락받아 놨어.”

  “아니, 나 아르바이... 여보세요, 재희야? 김재희!”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재희에 수영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 듯 포기한 표정이었다.

  그는 마침 카페에 나와 있던 사장에게 (본인의 생각에는)그의 순둥한 매력을 최대한 살린 예쁜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저기, 점장니임.”

 

  평소에도 애교가 철철 흐르는 수영을 부담스러워하던 무뚝뚝한 사장은 수영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듣고 흠칫 몸을 떨었다.

 

  “호옥시이- 호옥시나 해서 말인데요오, 낼 오후 첫타임...”

  “빼.”

  “네?”

  “빼라고.”

  “어머, 아직 말씀도 다 안 드렸는데 어떻게 아시구... 제가 사장님 사랑하는 거 아시죠?”

  “그리고 그 콧소리도 빼. 시급 까이기 싫으면.”

 

  자신의 애교가 먹혔다고 생각해 기뻤던 것도 잠시, 수영은 점장의 차가운 반응에 시무룩해졌다. 나도 이제 나이 먹어서 안 귀여운가봐.

 

 -

 

  “일 대충 끝나면 계약금 받은 걸로 니가 좋아하는 소고기 사줄게. 감사 인사도 그 때.”

 

  재희는 방금 수영이 녹음한 가이드를 정신없이 편집하며 수영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 말 할 시간에 그냥 고맙다고 한마디 하겠다. 그나저나 잊지 못할 짝사랑의 추억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70억 지구인을 호구로 만들더니, 가사는 또 끝내주게 썼네.”

  “누구 맘대로 70억이야. 나 같은 사람 많을 걸?”

  “무서운 소리 마. 너 같은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들 옆에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거잖아. 마치 나처럼.”

  “고기 안 먹고 싶냐?”

  “크흠. 녹음한 건 괜찮아?”

 

  수영의 질문에 재희는 씩 웃으며 수영을 돌아보고는 양 손으로 그의 볼을 꼬집었다.

 

  “아아-! 아파!!”

  “으이구, 내 새끼. 어쩜 이렇게 노래를 잘 할까. 가이드가 이렇게 고퀄인 곡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이렇게 좋은 가이드 음원을 두고 노래 못하는 놈들이 부른 곡을 내야 한다니.”

 

  “왜? 룩스도 노래 잘 해. 실력파라고들 하잖아.”

  “웃기지도 않아. 일곱 명 중에 두세 명 노래 잘하면 실력파냐. 나머지는 그냥 그렇고, 한명은 특출나게 끔찍하더만. 하여튼 요즘은 실력파, 갓, 레전드, 존잘 존예 이런 극단적 우상화 단어들을 너무 남발해. 문제야, 문제.”

 재희는 때를 놓치지 않고 툴툴댔다. 그래, 너는 갓투덜 해라.

 

  “아, 너 이거 마지막 부분...”

  “근데 이거 마지막 부분...”

 

  동시에 비슷한 말을 한 수영과 재희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로 마주보다, 피식 웃고는, 또 비슷한 말을 했다.

 

  “가사 진짜 너무 좋더라.”

  “진짜 기깔나게 불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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