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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벨트는 제 겁니다, 전하
작가 : 곰고미
작품등록일 : 2016.9.3

창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남자는 얼굴 한가득 화사한 미소를 띠었다.

"바지 좀 벗어주겠는가, 그대."

어머니. 일하러 왔는데 순결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흔한 황태자와 보좌관의 관계 (3)
작성일 : 16-10-21 21:08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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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 에이비군."

  "예. 전하."

  "걸음이 떨어지질 않는구만."

  "그럴 리 없습니다. 들어가시죠."

 

 얼른. 당장.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주제에 들어가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는 레트라에게 에이비는 과감하게 정색을 던져주며 말했다. 누가 보고 불손하다 경을 친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광경이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는 둘밖에 없으니 상관 없었다.

 

 사실 상관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에이비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해두지 않으면 그 뒤에 제 상상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이 뻔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내 어찌 자네를 두고 수업을 들으러 가나. 나는 자네가 해코지를 당하지나 않을까 항상 걱정되어서..."

 

 흠. 이젠 이 정도로 해도 말이 나오는군. 나름 강하게 나간다고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정색을 던졌음에도 돌아오는 똑같은 대사에 에이비는 덤덤히 너무 쉽게 생각한 자신의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원래 이런 건 빨리 인정해야 다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에이비는 눈 앞에서 무어라 말을 늘어놓고 있는 레트라에게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않은 채 바로 앞에 놓여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칠이 더해진 원목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금빛 덩굴. 원목 가장자리의 덩굴과 같은 문양이 양각되어있는 금으로 만들어진 손잡이.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 문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문의 가격만 하더라도 평민들이 사는 집 한 채 값은 될 것이라는 점과 이 문의 너머가 레트비온 제국의 황태자의 교실이라는 사실.

 

 그리고 지금 당장 들어가도 지각을 면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까지.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이라고는 한 톨도 없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작업멘트를 늘어놓고 있는 와중에도 시간은 홀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잠시 벨트 고리에 끈으로 연결된 은색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한 에이비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작업멘트를 늘어놓는 레트라를 가볍게 무시하며 문 앞에 섰다.

 

 똑똑. 레트라가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손이 깔끔하게 문을 두 번 두드리고 떨어졌다. 여운도 없이 딱 맞게 끊어지는 소리가 울리자 안 쪽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실례하겠습니다. 포이트 백작님. 정무가 쌓여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정무가 먼저이지요. 그래도 이제는 수업을 시작해야 하니 들어오시길."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부드럽게 문을 연 에이비는 그대로 방 안의 인물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방 안에 있던 백작은 수업시작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문이 열렸으니 초조해하고 있거나 짜증을 내는 것이 당연한데도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는 듯 익숙하게 책장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고생이 많습니다. 한 손에 골랐던 책을 들고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 마주 웃어보인 에이비는 곧바로 웃음을 지워내며 레트라를 바라보았다.

 

 몸을 돌려 바라본 그의 표정은 백작과는 달리 살짝 굳은 상태였다. 아니, 굳이 설명하자면 굳었다기보다는 '네가 어떻게 나에게...!'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랑하는 연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목격한 귀족영애의 눈빛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물론 에이비는 그것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반응을 원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얼굴에 드러났으나 오히려 그랬기에 에이비는 더더욱 반응하지 않았다. 일일히 반응해주면 버릇 나빠진다.

 

 언젠가 읽었던 '애견인 지침서'에서 나왔던 문장을 떠올리며 에이비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봤던 책이 '애견인 지침서'였다는 것은 조금 미안했지만 인간한테도 통하겠지, 뭐.

 

  "들어가시죠."

  "매정하군, 그대."

 

 열린 문쪽으로 자리를 옮겨 그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에이비는 여전히 방 밖에 서있는 레트라에게 방 안으로 들어설 것을 요구했다. 절대로 반응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이는 문장에 짧게 대꾸한 그는 의외로 간단하게 포기하며 얼굴에 씌웠던 표정을 지우고 웃었다.

 

 유쾌하다. 통하지 않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깔끔한 반응이라니. 그러니까 이걸 그만둘 수가 없는거라네. 에이비가 들었으면 분명 한소리 했을 생각을 떠올린 레트라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기색이 없어보이자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황금빛 눈동자를 마주보며 생긋 웃어주었다. 그 미소에 움찔 떨리는 미간이 그렇게 솔직할 수가 없다.

 

  "나는 이리도 그대가 걱정이 되는데...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을 지 모르겠군."

  "잘 하실 겁니다."

 

 이 인간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이 '귀찮으니 얼른 들어가기나 하십쇼.' 를 돌려 말한 에이비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그를 보며 미간을 살풋 찡그렸다. 저 입이 열리기 전에 빨리 방에 들여보내고 싶은데...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잘 들어맞는다고 하던가. 에이비가 그를 방 안으로 쫓아내기 전, 그의 입에서는 기어코 한문장이 더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수업이 끝나면 상을 주게."

  "...예?"

  "가볍게 벨트를 한 번..."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보상을 바라시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들어가시죠."

 

 이제는 너무 들어 익숙해져버릴 것 같은 문장을 중간에 뚝 끊어내며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을 읊은 에이비는 더 이상의 여지가 없도록 오른손을 방 안쪽으로, 왼손으로 뒷쪽에 위치한 손잡이를 그러쥐었다.

 

 스스로 걸어서 들어가지 않겠다면 문과 함께 밀어 넣어 버릴테다. 그런 의지가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 이제는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한 단호한 태도에 레트라는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를 돌며 한마디 덧붙이려는 순간,

 

  '탁'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깔끔한 소리와 함께 그가 방으로 들어선 문이 닫혔다.

 

 어째 날이 갈수록 단호해지는군. 조금 황당한 시선으로 자신이 문에 닿지 않는 거리에 들어섬과 동시에 미련없이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던 레트라는 뒷쪽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웃음소리에 몸을 돌렸다. 뒷 쪽에서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 백작이 배를 움켜쥐며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날이 갈수록 단호해지는군. 자네 보좌관은."

  "동감이야. 어째서 점점 더 심해지는지."

  "그야 자네가 괴롭혀서 그런 거 아닌가."

 

 아까까지의 점잖음은 온데간데 없이 웃음기를 한껏 담고있는 목소리에 한숨을 폭 내쉰 레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에 놓인 붉은 소파로 다가갔다.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와 한숨소리와는 달리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는 그의 눈에는 아까까지의 황당함은 온데간데 없이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장난치고 싶어하는 자네 마음도 이해 안가는 건 아니군. 이번 보좌관은 귀엽긴 해."

 

 그러나 그것도 잠시. 포이트 백작이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꺼내는 말에 레트라는 가볍던 분위기를 확 휘어잡으며 표정을 싹 굳혔다. 갑자기 변해버린 분위기에 백작이 영문을 모른 채 의아한 시선을 던지자 레트라의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이비군은 내 것일세. 탐낼 생각은 하지도 마."

  "... 난 자네가 아닐세."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단 말이네.

 

 집에 있는 누군가가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당장 집에서 쫓겨날 지도 모르는 소리를 진지하게 꺼내는 그를 보며 할 말을 잃은 포이트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군."

 

 방 안에서 두사람이 보좌관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 무렵, 그 당사자인 보좌관 또한 상사에 대해 똑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좀 더 단호하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단호하게 쳐내보아도 그저 심해지기만 하는 능청스러움을 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오질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약서 쓸 때 해직 조건을 '사직서를 냈을 때'로 했어야 하는건데. 황태자의 승인이 없으면 맘대로 그만두지도 못하다니 이게 무슨 망발이야? 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부분이 아니구나. 과거, 그러니까 보좌관 계약서를 쓸 무렵의 일을 떠올리던 에이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보좌관이 된 지 어언 6개월. 누군가는 6개월이 그렇게 긴 것도 아닌데 무슨 유세를 떠느냐 말하겠지만 만에 하나, 에이비는 자신의 앞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꺼내는 일이 생긴다면 직접 이 일을 해보라며 웃는 낯으로 엉덩이를 걷어차줄 의향이 있었다.

 

 실제로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에이비는 현재 황태자의 보좌관 최장 근속기록을 실시간으로 갱신해나가는 중이었다. 무슨 뜻이냐면 그보다 앞서 근무했던 이번대 황태자의 보좌관들이 6개월은커녕 한달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는 소리다.

 

  "이상한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스물스물 차오르는 억울함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드는 의문점에 에이비는 자신의 집무실로 가던 걸음을 멈추며 생각에 잠겼다.

 

 걸핏하면 황태자에게 걸러지지 않은 말을 툭툭 던지고, 오만불손한 눈빛은 기본장착에 - 물론 그럴 눈빛을 할만한 짓을 하기는 했다, 황태자가. - 황족을 모신다는 프라이드나 감격, 의지는커녕 월급 올려달라는 소리는 옵션이고 무엇보다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흘에 한 번 꼴로 나오는데 어째서 최장기록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나...

 

 여태까지, 불과 방금 전까지도 절대 빈말로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는 근무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이 어째서 최장근속기록을 가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설마 한 제국의 황태자라는 사람이 괴롭힘 받는 게 취향인건... 안 돼. 이 제국은 망했어.

 

 한참동안 이유를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가정에 소름이 돋는다.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빠르게 이 제국을 뜨는 것이 현명하리라. 황족 모욕죄로 당장 잡혀가도 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생각을 하던 에이비는 애써 그럴 리 없다며 최면을 걸기로 했다. 근데 자꾸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는 것이...

 

  "생각을 말자. 그래. 생각을 그만두는 게 속 편하지."

 

 자기최면이 통하지 않자 그는 결국 생각을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이유를 생각해봤자 눈 앞에 쌓인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황태자가 고분고분 자신을 해고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이 제국을 뜨지 못하는 이상 아무리 고민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손쓰지도 못할 일로 끙끙 앓으며 고민하느니 밀려있는 서류를 한 장이라도 더 읽는 게 이득이리라.

 

 그 결과, 현명하게 생각을 그만두는 것을 택한 에이비는 자신의 집무실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금쯤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서류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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