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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31. 고백 (완결)
작성일 : 20-09-02 06:02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7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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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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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한숨도 못 잔 부식이었다. 간밤에 아버지 생각이 지독히도 났던 것이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폰은 꺼져 있었다. 그는 석상처럼 서 있었다. 예전보다는 생기가 돋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여전히 걸어 다니는 목석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톱밥이라고 떨어질 거 같았다. 점차 의식이 든 그는 눈을 깜빡이면서 나리를 흉내 내듯 손가락으로 머리 손질을 했다. 나리를 생각한 덕분인지 바람처럼 다가온 울적함이 조금씩 빗겨나가는 것 같았다.

 양이 더 는 단백질 쉐이크를 목 뒤로 넘긴 그는 기침을 좀 했다. 나날이 살이 붙고 있는 게 장했다. 다음 목표로는 운동과 취업, 자격증 같은 걸 공부하고 싶었다. 그중에선 운동이 제일 쉬울 것이었다. 그는 건과일 몇 알을 씹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취업사이트를 돌아보았다. 35살임에도 취업이란 게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번듯한 직장을 가져 본 일이 없거니와 거기 환경에도 벗어나 있었으니까. 그도 더 젊은 시절엔 후회할 짓을 많이 하고 살았다. 그것이 취업사이트 안의 그를 유령 손님으로 만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무기력증에 빠져 멍하게만 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거기엔 유년기가 있었다. 살이 쪘을 때와 빠졌을 때, 꿈을 꾸고 있을 때와 거리를 활보할 때가 있었다. 올해도 몇 달이 남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생각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피붙이라곤 이 세상에서 부친이 유일하지만 가까운 사이는 박나리였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라면 나리에게 거는 게 맞았다. 그것은 또 다른 유령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 사회라는 게 생소하게 느껴질 만큼 그는 유령과 같았다.

 그때 거실 전화기가 울었다. 부식은 의자와 함께 넘어질 뻔했을 정도로 정말 깜짝 놀랐다. 부리나케 거실로 가 수화기를 들어 올릴 때 마치 물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안도가 되어 얼었던 마음까지 녹는 기분이었다.

 “아버지?”

 “그래, 아들아.”

 나리가 말했다.

 침묵.

 “음, 제가 실수를 했나요? 평소와는 다른 적막감인데. 이야 이거!”

 “잠깐 밖을 보고 있었어. 빗소리를 들었거든.”

 “지금 비가 오지 않는데요? 저렇게나 화창한데!”

 “빗소리를 들은 거 같아서. 무슨 일이야……?”

 “혹시 드라이브할 생각 없어요?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고백할 것도 있고…….”

 “고백?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부식이 낮게 웃었다.

 “이야 꼴 때리네. 꿈도 꾸지 말아요!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부식의 웃음보가 터졌다.

 “기분이 나아진 거 같으니 다행인걸요. 지금 시간 되죠? 갈게요.”

 “알았어.”

 나리는 점심때가 약간 지나서 왔다. 점심 전에 전화가 와 밥을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여 부식도 금식하고 있었다. 부식은 나리가 평소와 달라 보였다. 인간 자체가 보통 때보다 파리해 보였다. 잘생기고 까부는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그 이면에 숨은 감정이 더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선지 뭔가 애달파 보이기까지 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상태가 안 좋아 보여요?”

 오히려 부식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 아픈 거 같아서. 기분이 좋은 거 같지 않아.”

 “아뇨! 제 기분은 최상이랍니다!”

 “아니, 평소의 너 같지가 않아.”

 “징그럽군요. 남자끼리 이런 대화라니. 좀비 남 씨만 만나면 제가 이딴 짓을 하고 말아요. 가끔씩 여기가 어딘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혼동이 올 때도 있다니까요.”

 “실없기는…….”

 “나갈까요? 옷 잘 입고 있었네요.”

 “평소 차림인데, 뭘.”

 “고추 내놓고 있었으면서.”

 나리가 흉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은근히 턱 짓을 했다. 입가에는 웃음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 부식도 그걸 알기에 천방지축으로 까불어대는 베프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일 터이다.

 주차장에 세워둔 뉴비틀은 세차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새 차 느낌이 났다. 그만큼 나리가 차에 애정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막 부식이 차에 타려 할 때였다.

 “형, 형! 잠깐만요.”

 부식은 차체 위로 나리를 응시했다.

 “하나둘 셋하고 같이 타기로 해요.”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하나. 둘.”

 나리가 말했다.

 “셋!”

 그리고 나리가 혼자만 홀랑 들어가 킬킬 웃었다. 조수석에 탄 부식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나리는 쓸데없는 시도를 해댔다. 하나 같이 재미없는 농담이라 부식의 반응은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쯤은 웃어 줄 만도 하지만 녹록지가 않은 것이다.

 “형 한국 고양이는 야옹 하고 울죠? 그럼 미국 고양이는 어떻게 울게요?”

 “어떻게 우는데?”

 “미야옹. 참고로 미국 개는 미월 하고 울지요.”

 “아아……?”

 “그렇담 여기서 응용을 해볼까요? 일본 고양이는 일야옹 일본 개는 일월하고 울겠네요?”

 “나한테 왜 이래?”

 부식이 웃음을 섞어 미간을 찌푸렸다. 영서가 이런 표정을 곧잘 했다. 그녀를 떨치기 위해 그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기는커녕 마음만 아팠다. 아까부터 낯설게 행동하는 나리 때문이라고 욕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 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차 안은 적막감만 맴돌았다. 나리는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정면만 응시했다. 턱을 살짝 들고 눈을 내리깐 채 차체가 흔들릴 때조차 기분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가 덜컹거릴 때도 그저 룸미러나 사이드미러를 힐끔거렸을 뿐이었다. 부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괜히 영서를 생각한 게 아니었다.

 솔직히 빈번히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와 같이 두껍게 입고 눈 내리는 성탄절을 함께 보낸 걸 생각했다. 그녀와 싸운 거 그녀와 함께 웃었던 거 그녀와 성관계를 한 걸 생각했다. 수줍어하면서 모텔 침대에 누웠던 일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추모는 성적인 게 묻어났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만큼은 빈틈이 없어서 불순물이 가중되지 않았다. 그녀의 숨결과 손길, 온기가 지금도 느껴졌다. 그녀의 목소리도. 환청과 같이 따라다니던 목소리에 분노를 한 적도 있었다. 그야 그녀의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

 오빠?

 부식은 웃고 말았다. 웃음을 참느라 조수석 창가 쪽으로 몸을 튼 다음 가볍게 쥔 주먹을 입술로 가져댔다. 그는 아래 입술을 깨물면서 유리창에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모든 게 평화로운 유속처럼 지나갔다. 따뜻한 물비늘이 가득 떠다니고 멀리서 날아온 새들이 쉬고 있다. 하늘은 가을빛이고 노을은 산 너머에서 기웃댄다. 해와 달은 각자의 집에서 들어오고 나가려 하지만 예의가 지나쳐 밤이 되려면 아직이었다.

 부식은 갑작스레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손가락이 창틀을 따라 미끄러졌다. 그는 다시금 입술을 깨물었다. 입가를 당겼고 마른 코를 훌쩍거렸다.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미간이 간질간질하면서 멋대로 움직였다. 급기야 왼쪽 눈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그는 눈치를 보면서 아닌 것처럼 손날로 눈물을 훔쳤다. 턱을 괴려다 실패한 것처럼. 머리카락을 손질하려는 것처럼. 그러자 오른쪽 눈에서 맑은 물이 서둘러 내렸다. 금세 볼을 가로질러 턱 밑에 크게 매달렸다. 그것을 떼어내려다 그만 신음과 같은 흐느낌을 토했다.

 그는 기다렸다가 먼저 정면을 본 뒤 곁눈으로 운전석을 보았다. 나리가 실실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은 나리는 표정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로 정면만 아득히 응시하고 있었다. 부식은 나리에게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도 눈이 젖어서 시야가 흐렸다. 그의 코가 붉었다. 맑은 콧물이 나와서 그것만 손등으로 훔쳤다. 그는 연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송곳니의 끝부분만 슬쩍슬쩍 갈았다.

 입술을 핥자 짠맛이 굉장했다. 씩 웃으면서 운전석에서는 모르는 오른쪽 바지자락을 움켜쥐는 그였다. 어렸을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때는 라면이 그렇게 맛이 있었고 추운 날에도 하천에서 수영을 했다. 항상 알몸이었다. 여자에 대한 호기심은 초등학생 때부터 있었다. 그런 그가 여자를 만났고 결혼 이야기까지 했다. 여자는 죽었다. 그는 그녀가 죽어서 남긴 돈으로 인생을 살았다…….

 울지 마. 울지 말래도.

 부식은 쯥 소리를 냈다.

 “왜 그래요? 무슨 생각 해요?”

 나리가 물었다.

 “참고로 네 생각이라고 한다면 펀치가 날아갈지도 몰라요. 무슨 말인지 알죠?”

 “넌 너무 버릇이 없어, 인마.”

 “이야 이제 욕을 하기 시작하네. 그런 거 한 번 트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데.”

 부식이 콧물을 훌쩍였다. 분명 그가 우는 걸 알 텐데도 나리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다시 적막이 흘렀다. 그리 즐기던 고요와 정체였는데 부식은 끔찍이도 싫었다. 제발이지 나리가 무슨 말이든 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나리 역시도 영원과도 같은 어떤 것에 매달려 있었다. 몸은 차를 운전하고 있지만 정신은 아주 먼 어느 곳에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부식은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어찌나 턱이 무거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즈음 자동차 주위 풍경이 부식의 눈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네, 맞습니다.”

 “어?”

 “생각하고 있는 곳. 거기가 맞다고요.”

 차가 사거리에 도착했다. 신호를 받았지만 무시하고 왼쪽으로 차를 꺾는 나리였다. 그는 이맛살을 만들면서 괜히 두리번거렸다. 장애물도 지나다니는 번번한 차도 없는데 꽤나 신중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는 했지만 진정 즐거운 건 아니었다. 부식은 어색한 기운 탓이라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

 차가 섰다. 나리는 전과 같은 자리에 차를 댔다.

 “내릴까요?”

 “공동묘지잖아?”

 “고백할 게 있다고 했잖아요. 하나둘 셋 하면 같이 내려요? 하나.”

 부식이 웃으면서 먼저 홀랑 내렸다. 하지만 나리는 셋까지 센 뒤 점잖케 내려서는 차체에 팔짱으로 기댔다. 그리곤 소리 없이 웃었다. 막 공동묘지에 들어섰을 때였다.

 “여기에 우리 엄마가 묻혀 계셔.”

 “형?”

 부식이 쳐다보았다. 나리가 바지를 뒤지더니 잭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부식의 손을 잡더니 턱 올렸다. 당연히 부식은 화들짝 놀랐다.

 “형 눈 감아요. 제가 안내할 테니까, 그때 다시 이야기해요.”

 거절을 해도 되지만 부식은 홀린 듯 나리가 시키는 대로 했다. 따라가면서도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달아날까 몇 번이나 고민에 빠졌다. 발밑을 지나는 흙, 돌멩이, 잡초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마저 생경하게 느껴졌다. 가을을 맞이하기 시작한 바람은 살을 썰 것처럼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었고 어딘가에서 남자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미치광이 여자가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부식은 눈을 감은 채 나리의 손을 잡고 오르막길에서 걸음마를 했다.

 “대체 칼은 왜 준 거야?”

 부식의 음성이 떨렸다. 고집스럽게 눈을 감고 있는 그였다. 돌멩이를 잘못 밟아 하마터면 다리를 삘 뻔한 위기 상황에서도 눈만큼은 질끈 감고 있었다. 나리가 황급히 중심을 잡아 세워주었다.

 “다 왔어요. 얼마 안 남았네. 조금 더. 아, 됐어요. 형 이리로…… 아! 여기에요.”

 “이제 눈 떠도 될까?”

 “긴장했어요?”

 “칼은…….”

 부식은 말을 아꼈다.

 “눈 뜨라니까요.”

 부식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남자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시야를 괴롭히는 백야를 만났다. 오로라가 지나가는 듯하여 눈을 비볐다. 얼굴에 닿는 게 있고서야 칼을 들고 있었구나 싶었다.

 “발밑을 봐야죠. 어딜 봐요?”

 나리가 말했다.

 “뭐야 이게?”

 그게 다였다. 백골을 봤음에도 부식은 기절초풍하지 않았다. 기대와는 달라서 나리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부식은 해골의 정체가 방치된 공동묘지의 게으름과 눈물 같은 거라고 여겼다. 여기저기 봉분이 파헤쳐져 이장 흔적을 여실히 드러낸 곳들이 당장 주위에도 한정 없었다. 아버지와 싸우기만 했지 엄마를 다른 좋은 곳으로 아직도 옮기지 못한 부자였다. 그는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다닌다는 아버지의 말이 변명인 걸 알았다. 부친 역시 아들의 방만을 탓하지 않았다.

 “누군지 모르겠어요? 형의 아버지예요. 형한테 주소 물어본 문자 그거 제가 보냈고요. 쓰레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여기서요.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겠죠? 형도 대충 아버지의 과오를 알고 있을 테고요. 참고로 우연히 만난 거예요. 형과도 그랬듯이. 제가 할 말은 그게 다예요. 칼을 쓰세요. 자.”

 나리가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부식은 멍하게 나리를 쳐다보았다. 선 키가 비슷하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누가 보면 비역질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알 터였다.

 “너 나한테도 낙인이란 거 새겼잖아?”

 나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양쪽 눈썹을 올렸다.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벌렸다.

 “형한테 일상을 선물했다고 했죠? 그거 반은 장난이고 반은 무서워서 그랬어요. 자.”

 “야!”

 부식이 고함을 질렀다. 나리는 움찔했지만 몸을 구부리지는 않았다.

 “눈 떠! 눈 뜨고 죽어!”

 나리가 눈을 떴다. 공포의 끝을 맞보게 하려는 의도인지 조금 더 여유를 둔 뒤에야 부식이 칼 든 손으로 주먹질을 하려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눈썹을 세운 채 흐느끼기만 했다. 나리는 싱글벙글 웃었다.

 “사실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 거울을 봤어요. 저 자신을 알아보기 위해서요. 낙인이 생기면 6시간 안에 죽게 되는데 대충 계산해보면 이미 유예기간이 끝났단 말이에요. 근데 전 멀쩡해요. 이야 이거 참 나 완전…… 근데 낙인이 생기지도 않는 건 왜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봤죠. 내가 주체자이니 나한테만은 낙인이 없다. 낙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 그 칼 줘보겠어요?”

 “그래 줄게!”

 부식이 칼을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잭나이프는 잡목과 기다란 잡풀이 어우러진 풀밭에 폭 떨어졌다.

 “아, 오면서 급하게 산 건대. 새 건대 그거. 좀비 남 씨 양아치세요?”

 부식은 시체에서 벗어나 흙길 위에 앉았다.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나리는 망설이는 것 같다가 부식의 옆에 가 섰다.

 “사실 매일 해요.”

 “딸따리?”

 부식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리의 웃음보가 터졌다.

 “그런 거 말고요. 전 전 색마 현 무성욕자라고요! 매일 거울을 보면서 저 자신에게 팩트 폭력을 해요. 아침에도 하고 점심에도 하죠. 화장실 거울로도 하고 저녁에도 해요. 손거울로도 하고 스마트폰 액정으로도 하고요. 상점들의 쇼윈도로도 하고…… 계속한다고요.”

 나리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금방까지의 분위기를 완전히 상실하고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비애로 속을 가득 채우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격정에 휩싸여 버렸다. 부식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양손으로 눈가를 비비면서 아이나 낼 거 같은 소리로 울어댔다. 두 명의 사회의 낙오자는 아기였던 그때처럼 순수한 눈물로써 서로를 씻겨 내렸다. 그리고 그들, 울다 지친 후에는, 곧 집으로 돌아가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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