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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심장 밀렵꾼 : 비존재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20.8.20

타인의 심장을 갈취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심장 밀렵꾼 준명. 그리고 그런 그의 심장을 원하는 한 여신. 그 애증 섞인 관계는 이윽고 서울을 한바탕 뒤흔들게 되는데....
아노미의 끝자락, 혹은 타락한 도시의 말로. '심장 밀렵꾼 : 비존재'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비존재_ 10 (END)
작성일 : 20-09-01 20:36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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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룡을 멸종시킨 다음, 신은 고민했다.

 이 다음에는 어떻게 세상을 굴려볼 것인가. 사실 공룡을 멸종시킨 것도 별 거창한 이유 같은 것은 없고, 단순히 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부모도 없이 대뜸 눈을 뜬 이래로, 의무처럼 맡겨진 일을 수십억년 동안 묵묵히 진행해온 신에게 있어 그것은 수도 없이 반복해온 의문이었다. 하지만 미치도록 적적한 우주를 하릴없이 유영하는 것보다야 세상을 굴리는 편이 더 보람찬 일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신은 이 일을 끝내 손에서 놓지 못할 뿐이었다.

 고민하던 신은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좋아. 이번에는 나처럼 자아를 인식하는 생명체를 지구에 풀어놓아보자.”

 비록 자신과 동등한 개체를 만들 수는 없더라도 어느 정도 지적인 생명체라면 만들지 못 할 것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신은 지체 않고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지성을 무기로 삼은 그들은 빠르게 발전하여, 타 종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재미난 모양의 사회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불을 사용하기도 하고,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그리고 마침내 초월자를 믿고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 때 신은 ‘관심’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들은 서로를 인식하고 가족을 이루어 온 역사가 있지만, 정작 신 자신은 누군가에게 인식된 적이 수십 억 년 중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었다. 신은 그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너무도 기뻐서, 어느새 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간이라는 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었다. 각종 자연현상을 통해 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번영하며 문명을 유치할 수 있도록 상황을 유도했다. 종들 간에 차별 대우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을 향한 그녀의 애정은 날이 갈수록 더욱 크게 불어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신은 하계에 직접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신도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신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로마의 땅을 밟았다. 설교를 목적으로 강림하여, 병든 사람을 돌보거나 기적을 행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은 평소 핍박 받던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의 대중적인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인간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자신의 존재가, 묵묵히 버티어 온 그 수십억 년의 세월이 보상받는 순간이라고.

 신은 짧은 시간이나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호사는, 바로 그 인간들의 손에 의해 속절없이 꺾어지고 만다.

 질투심이 생긴 몇몇 권세가들이 선동과 권위를 이용하여 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둔 것이다. 당시 신은 세계의 규칙을 뒤흔들면서까지 그들을 처단할 명목도 없었거니와, 십자가에 매달린 그 순간까지도 남아있던 인간을 향한 애정의 잔재가 그런 짓을 벌이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그래서 신은 몇몇 이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남기고 순직을 가장하여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세상은 다시 정상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세에는 종교의 이름을 내걸고 몇 차례의 살육전이 벌어졌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각종 선동과 질 나쁜 포교, 그 외의 각종 범죄에 이용되며 종교의 명예는 땅 속 깊이 내떨어졌다. 그 결과 오늘날의 신세대에는 신앙을 바보 취급하는 풍조마저 도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십자가에 못박힌 뒤로 종교가 망가지기까지, 총 이천 년. 그것은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신에게 있어서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으며 동시에, 인간으로부터 받은 배신감이 썩어 뭉그러져 증오로 뒤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모든 시간이 흐르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정신 상태로 방랑하던 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신에 필적하는 인기라는 평가를 받으며,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마린의 모습이었다.

 인간 여성의 몸을 하고, 폐인 같은 차림으로 공연장 한구석에 뒤섞여서.

 타락한 신은 번쩍번쩍 빛나는 그 무대를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XXX

  

  

 형광색 비가 내렸다.

 애초부터 그런 색은 아니고, 사방의 전광판으로부터 물든 빗방울이 그런 환각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너무도 찬란히 빛나는 그 빗발은 주변의 모든 풍경을 묻어버려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지우려는 비의 의지에 한없이 충실했다.

 6층 건물의 옥상. 신은 그 가장자리에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노란 빗발 뒤로 가려진 세상은 번져서, 김이 서린 것 마냥 뿌옇게 동화되며 움직였다. 잠자코 그 풍경을 지켜보는 신의 머리카락은 흠뻑 젖은 채 목이며 어깨에 달라붙어 있었다. 신의 위용 따위 없는 초라한 자태였다.

 철컹. 구식 건물 특유의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돌아섰다.

 하지만 옥상으로 통하는 그 문을 열어놓은 이는 바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당탕 물건들이 쓰러지는 소리와, 말려들어가며 신음하는 숨소리가 몇 번 들려오더니, 심장이 몇 개 문턱을 넘어 굴러 나왔다. 그것을 뒤따르듯 준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열렸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다시 빗소리만이 남았다.

 “어때, 처음으로 사람의 심장을 만져본 기분은?”

 빗소리 아래 어딘가, 들려온 듯한 물음에 준명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젖은 앞머리를 넘긴 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준명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색이 대신 질문에 대한 답을 내어주었다. 갈아입은 것이 소용없어진 후드 집업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고, 머리카락에 말라붙은 선혈이 빗물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처참한 행색처럼, 분명 그의 심정도 갈가리 찢겨져 있으리라.

 무엇보다도 엄청난 밝기의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낸 심장이 준명에게 내쏟아진 자극의 크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준명은 콧망울에 맺혀 떨어지는 핏기 어린 물방울을 닦아냈다.

 “뭐, 보아하니 잘 알겠네. 음음. 내가 사람 보는 눈은 또 있다니까? 한껏 맛있어진 심장을 가지고 찾아와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 일류 콜렉터의 감이랄까 뭐 그런 거지.”

 신의 행동거지는 이전과 같았지만 여느 때와 같은 명랑함이 묻어나고 있지 못했다.

 준명은 비단처럼 매끈하게 빛나는 빗줄기 너머로, 그녀의 두 눈을 직시했다.

 “.........마린 심장, 어디 있어.”

 떨구듯이 내뱉은 그 문장에 신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흠칫 몸을 떨었다.

 “무슨 소리야. 바로 이 건물에서 심장과 함께 떨어져 죽었잖아.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서 그런 소리를....”

 “그녀는 절대 팬을 저버리지 않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 어떤 환상도, 제멋대로 그린 이상도 아니며, 그저 경험에서 나온 확신. 오랜 시간 마린을 지켜본 그녀의 남자친구이기에 단언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살해협박을 받았을 때도, 온갖 스캔들에 시달렸을 때도. 마린은 매번 소속사의 도움을 거절하고 정면으로 팬들을 마주해 왔어. 한사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갉아내면서도 오롯한 우상으로서 존재해온 그녀라고. 그런 그녀가, 팬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일은 있을 수 없어.”

 “..........”

 -애처럼 굴지 않아. 아이돌, 우상이니까.

 불과 하루 전의 기억이 떠오른 신은 불쾌한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더 이상 속이려 들어봐야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뭐, 목적은 달성했으니 말해도 상관없겠지. .........사실 마린 심장은 며칠 전에 터트려 버렸어. 홧김에.”

 자신의 동요를 그대로 돌려주려는 듯, 신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사실을 고했다. 이에 준명은 무언가 대꾸하려는 듯 숨을 들이마시며 입술을 떼어냈지만 이내 다시 다물고 부풀었던 흉곽을 가라앉혔다. 신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이미 경매 홍보도 마쳤겠다, 무를 수도 없어서 대신할 여자를 좀 찾았지. 보니까 예전에 마린을 사칭했던 SNS스타가 있더라고. 외모 하나는 감쪽같아서 가져다 좀 썼지. 너가 쫒은 건 그 여자야. 하루 동안 빼앗기지 않으면 심장을 다시 돌려주기로 약속했더니, 뭐 네가 본 것처럼 죽기살기로 뛰어다니지 뭐야.”

 신은 말을 마쳤지만, 준명은 신의 생각보다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내 심장을 가지려고 하는 거야?”

 준명이 묻자, 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야 재밌잖아.”

 조소와 함께 그 말을 터트리듯 내뱉었다.

 “몇 명을 무참히 죽여버릴 만큼 사랑해 마지않던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죽기살기로 내달린 끝에 결국 지키려던 순결마저 내다 버린 너잖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엄청 웃긴  상황인 거 알아?”

 신은 이마에 손을 얹고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사랑, 존경, 숭배 뭐 그런 거. 다른 존재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판국에, 그만큼 허영된 소리도 또 없어.”

 “..............”

 “그러니까 그런 허튼 소리를 하는 너를, 무너뜨리고 싶었지.”

 힘없이 꺾인 그 하얀 손의 검지가 준명을 가리켰다. 물줄기에 녹아내리듯 웃음기가 사라지고, 신의 얼굴에는 어느덧 정색이 감돌았다.

 건물 밑을 지나치는 차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가르고 웅덩이를 밟는 가벼운 소음. 오늘따라 교통량이 많은지 서너 개의 소리들이 교차했다.

 “이제 알겠지?”

 난간에서 등을 튕겨낸 신이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결국 너는 사랑으로 움직인 게 아냐. 조금 더 더럽고 추악한....”

 “알고 있었어.”

 입가의 물기를 한차례 걷어내고서, 준명은 말했다.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라고.”

 “......흠. 그건 그것대로 역겨운데.”

 “그래. 역겹지.”

 준명의 눈가에는 계속해서 빗물이 흐르고 있어서, 그것이 눈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스로 되새겨 봐도 토악질이 나오더라. 그런데 어떻게 해.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살인자가 되어 있었고, 옥상 끝에 몇 번이고 발을 맞춰 봐도 도저히 떨어질 용기가 나지를 않는데.”

 준명의 목소리가 파도치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넘실거리고 있을 그의 감정은 시시각각 명도가 변하는 그의 심장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어서, 거기에 목매달고 끌려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물론 회의감이 밀려오는 날에는 몇 번이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 정말 이 길이 맞는 건지에 대해서.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신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어린아이의 생떼와도 같은 그것을, 신 또한 외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 일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는 만큼, 또 그만둬야 할 이유도 딱히 없더라.”

 “...........”

 “타락하는 내 곁에서 세상은 더 빠른 속도로 썩어가고, 하루에도 몇 천 명씩 심장을 빼앗기거나 육탄전 끝에 생을 마감해. 행복도 과분하면 자살행위가 되는 판국에 지향해야 할 감정이란 건 대체 뭔데.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빼앗긴 게 없어? 세상도, 하나뿐인 연인도 사랑이라는 명목을 내건 행위 아래 모두 앗아 갔어. 그렇게 누군가에게 커다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돌아가는 세상인데, 혼자 곤조 지켜봐야 잡아먹히기 밖에 더 하냐고. 그럴 바에야 잡아먹는 쪽에 서는 편이 좋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이잖아. 그걸 내가 애써 부정해가면서까지 고통을 삭여야 하는 이유가, 대체 어디 있냔 말이야.”

 쉴 새 없이 내뱉으며, 준명은 꼴사납기 짝이 없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준명은 말했다.

 “인간이 인간인 채로 존재해야만 할 이유가, 애써 윤리를 고집해야만 하는 이유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잖아.”

 신은 마치 자숙이라도 하듯 그 눈을 조금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에게.

 “뭐라고 좀 말이라도 해봐. .........-너가 만들어 놓은 인간이잖아.”

 준명이 그렇게 말한 순간, 움찔. 신은 생각보다 크게 동요를 내비쳤다.

 “난 그저 지성을 주었을 뿐이야. 이런 식으로 징그럽게 만들어 놓은 기억은....”

 “이럴 거면 태어나지 않는 게 좋았어.”

 “뭐?”

 아무리 타락했다 할지라도,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이기에. 준명이 내던진 그 한 마디는 크나큰 탄환이 되어 그녀에게 박혀 들어갔다. 준명은 충혈된 눈시울을 부릅뜨며 외쳤다.

 “이렇게, 썩어빠진 자기변론이나 늘어놓으려고 태어난 인생이라면....!”

 “너....!”

 “아무 의미 없이 숨이 차 죽을 때까지 발을 구를 뿐인 인생이라면!!”

 무엇이 등을 떠민 것인지, 준명은 어느새 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점차 템포가 빨라지던 준명의 걸음이 뜀박질로 변질되고,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을 무렵.

 신은 재빨리 손을 뻗어 준명의 심장을 붙잡았지만-

 “무슨 이유로 이렇게 모든 걸 내어놓고 연명해야만 하는 건데!!”

 소리치며 신의 어깨를 붙잡는 준명에 의해 신은 휘청이며 뒷걸음질 치다 결국 넘어졌다.

 몸 밖으로 벗어난 자신의 심장은 안중에도 없이 준명은 신의 위에 올라탄 채 그 어깨를 지그시 바닥에 짓눌렀다. 마치 심장을 빼앗길 것을, 상정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준명의 손가락이 신의 어깨를 부술 듯이 파고들었다.

 신의 손바닥에서 힘없이 굴러 떨어진 심장이 바닥을 한 뼘 정도 굴렀다.

 떨리는 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준명이 말했다.

 “어째서 인간을, 이딴 식으로 밖에 만들지 못한 거야........”

 한껏 유약해진 그의 목소리가 물방울과 함께 툭 떨어졌다.

 너무도 한심하고, 아이같은 질문.

 하지만 아마도 그것이,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의문일 것이다.

 인간은 그것을 논파하기 위해 생을 살아간다.

 삶도, 죽음도, 실존과, 그에 파생된 여러 철학과 문화. 담배연기와 함께 내뿜는 누군가의 있어 보이는 푸념부터, 세기의 철학자가 주장하는 고차원적인 철학 논고까지.

 인간사의 모든 것들은 그 부조리를 부정하기 위해 탄생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애초에 전제 자체가 잘못되어, 평생 겉돌 수밖에 없는 것들.

 인간이란 동물은

 애초에 없는 그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려, 수천 년에 걸친 헛바퀴를 굴려온

 가장 영리하고도, 가장 멍청한 생물이니까.

 준명의 눈에서 떨어진 빗물이 신의 뺨에 닿아 터졌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런 준명을 바라보던 신은.....

 “어라.....?”

 자신이 심장이 언링크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급작스럽게 풍속이 오른 바람에 찬란한 빗줄기가 춤을 추고, 그 바람에 온갖 전등이며 가로등이 명멸했다. 죽어버린 나뭇잎이 흩날렸다. 하늘을 가르던 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조금씩 뒤로 밀렸으며, 지상의 자동차나 행인들조차 그 피해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그 혼란 속. 어딘가에서.

 준명은 서서히 신의 어깨를 쥔 손의 힘을 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심장을 지나쳐 걸어가더니

 옥상의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 철문이 소리를 내며 닫힌 뒤로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바람과 빗발이 어느 정도 잦아든 옥상 위.

 덩그러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준명의 심장과

 누운 채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신의 심장은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실루엣이, 바구니에 주워 담고서

 또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질 뿐이었다.

  

  

 XXX

  

  

 차창이 눈을 감으며 울었다. 고인 빗물을 쓸어내리며 열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직원 한 명이 상가 건물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낚시꾼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동조한 조수석의 직원이 문을 열고 나가서, 방금 막 상가 건물에서 나온 준명에게 말을 걸었다. 반쯤 투명화가 진행된 준명은 얼핏 윤곽이 보이는 상태였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직원은 준명을 차 근처로 데리고 돌아왔다.

 “뒷좌석에.”

 “.....감사합니다.”

 준명이 차의 뒷좌석에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그 검정색 승용차는 말없이 아스팔트를 내달렸다. 밤하늘에 둥둥 떠오른 가로등이 연달아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조수석의 직원이 백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앉아있던 준명은 완전히 가시성을 잃어버려서 텅 빈 시트만이 비치고 있었다.

 “저기...., 형님하고는 대체 무슨 관계셨습니까?”

 준명이 그곳에 있는지 확인하는 겸, 직원이 물었다.

 “그냥, 서로 힘들 때 조금씩 손을 빌려준 사이였습니다.”

 다행히 아직 음성은 사라지지 않아서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뿐인가요? 그 형님이 이렇게까지 헌신하면서 남을 도와주는 경우도 흔하지가 않은데.”

 “그런가요.”

 “네. 지금만 해도 그렇잖습니까.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배웅이나 해주라고 저희를 보내놓은 것도 그렇고.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6층짜리 건물이 온통 피바다가 된 거 보고 소스라쳤습니다. 뭐 위급한 상태면 도와주라고 첨언을 하셨지만서도. ....지금 상태에서는 저희가 손을 써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괜찮습니다.”

 “아, 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준명이 물었다.

 “혹시 그.......”

 “예.”

 “지석이는 지금, 어디에 가 있나요?”

 “.......아, 그게, 지금은....”

 조수석의 직원이 말을 얼버무리자, 운전석의 직원이 눈치를 주듯 그를 팔꿈치로 찔렀다.

 “저, 저기 어디냐, 경기 쪽으로 출장 나가셨습니다. 연락은 없지만 뭐 잘하고 계시겠죠.”

 직원은 눈치 보며 대답했지만, 뒷좌석에서는 더 이상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준명의 음성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혹은 그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인지 그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차는 구르고 굴러서 ‘붉은 아쿠아리움’이 자리한 지석의 회사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린 준명은 둘의 안내로 최상층에 도달하여, 그 펍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여기로 데려다 드리는 게 마지막 소원이셨죠? 별 제스처가 없다면 긍정하는 걸로 받아드리겠습니다.”

 [..............]

 “그럼 저희는 이만.”

 할 일을 마친 직원들은 허공에 대고 애매한 인사를 건네고는, 계단을 내려가 밑층의 플로어로 향했다. 가림막이 직원의 뒷모습을 감추며 출렁였다.

 준명은 그곳에서 시선을 떼어내 방대한 사이즈의 유리 큐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진열된 심장들 너머로 남색이 감도는 새벽의 하늘이 엿보였다. 마치 투명한 인간을 반기기라도 하듯이, 심장들은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준명은 그 은하수처럼 장대한 광경을, 한참동안. 정말 한참동안 바라만 보다가.

 숨을 들이쉬며 마침내 발걸음을 옮겼다. 점이 되어 큐브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그 한 폭을 횡단하는 데에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닥의 물은 전부 빠져나가거나 메말라 있어서 타박타박 발소리가 울렸다. 구멍은 여전히 수복되지 않은 채였다. 준명은 천천히 그 구멍 앞으로 다가가 발끝을 맞췄다. 구멍을 타고 든 바람이 준명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날려 온 물방울들과 함께 산란하며 나부꼈다.

 그 앞에는 비가 멎어 선명해진 도시의 새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어디선가, 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이 발주해 둔 홍보 영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준명이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 높은 빌딩의 디스플레이에서, 2년 전의 마린은 미소 지은 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시, 신곡의 주제요? 아.....으음, 그게요......”

 마린이 이곳저곳 눈치를 보며 신음을 내뱉자, 인터뷰어가 의심 섞인 눈초리를 보냈다. 그 눈과 마주치자 흠칫 몸을 떤 마린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요, 그 뭐랄까, 사랑도 참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이성적인 사랑도 있고, 부모 자식간의 사랑, 그냥 평범한 인간 사이에 오가는 사랑이나, 또는 이상이나 꿈 같은 것에 대한 사랑까지. 무언가 이렇다 하고 정의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찌되었든 저희는 그 정체도 확실히 모르는 감정을 쫓고, 또 가끔은 쫓기면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동물이잖아요? 저는 그게 어쩐지 조금, 비현실적인 것을 갈망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제목을 ‘Unrealistic Love’로 정하고 무작정 가사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 내용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인지, 마지막 두 문장에 준명은 짧은 숨을 들이쉬었다. 마린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어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려서.....아하하. 전 역시 아이돌이 천직인가봐요. 뭐가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더라도, 저는 제 팬들이, 또 제 소중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저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싶단 말이죠. 그래서 결국 그걸 주제로 엉망진창 만들게 된 곡이라고나 할까요....사, 사실 앞뒤가 달라서 주제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요.”

 마린은 쑥스럽다는 듯 말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쏟아진 정보의 홍수에 당황한 인터뷰어가 “아~ 으음~”이라며 대충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만히 들으며, 준명은 안도한 듯이 삼켰던 숨을 가느다랗게 토해냈다.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결 포근해진 바람이 그를 쓰다듬으며 마린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펍 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향수를 자극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준명은, 도시의 품속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양수 속의 태아처럼, 온 몸의 힘을 풀어놓은 채였다.

 이윽고 발끝이 플로어에서 완전히 떨어지고

 머리가 땅으로 향한 채 서울 한복판에 낙하하던 준명은

 마치 물속에 빠진 것처럼

 어느 순간 그 상공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XXX

  

  

  

  

 만약.

  

 만약,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존재하는 그 무언가는 아니리라

  

  

  

 존재란

  

 절대 완전할 수 없는 것

  

 그런 것으로

  

  

 비로소 완전히 정의될 수 있다.

  

  

 -비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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