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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30. 여자
작성일 : 20-09-01 06:09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7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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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틱틱. 조이스틱을 누르는 손가락이 거의 5배속이었다. 나리는 조이스틱을 든 팔을 턱 쪽으로 당긴 채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방향키만으로 미사일을 피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감자 칩을 입으로 가져갔다. 입에서 과자 부스러기가 으깨지면서 떨어졌다. 그는 밤을 샜다. 이상하게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았다. 때때로 빗자루를 들고 밖에 나가본 건 의심 때문이었다. 골목이 코앞에 있고 도로가 인접해 있어 늦은 시간에라도 생활 소음을 피할 수 없긴 했다. 하지만 의혹을 뭉게뭉게 피워 올리는 수상한 고기 때문이라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쌓여 있는 게임 CD를 보았다. 질릴 때도 되었건만 수시로 장르를 바꿔서 플레이하니 원래의 재미를 되찾곤 하는 것이다. 그는 양반다리에서 한쪽 다리를 정신 사납게 달달 떨었다. 조이스틱을 치우고 물 매트 위에 누웠다. 스마트폰은 발로 가져왔다.

 “여보세요? 부식 형 뭐 해요?”

 수화기 너머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아침거리 만들고 있어. 평소보다 아몬드를 더 넣고 우유량도 늘리는 중이야. 먹는 연습 한다고 했잖아.”

 “이야 청산유수네요. 오늘 놀러 가도 돼요?”

 “글쎄…… 청소를 좀 할까 하는데.”

 “이렇게 물을 먹네. 형 언제 한 번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약도 제대로 그려줄 테니까.”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은 뒤 나리는 집 주소를 문자로 넣었다. 나름 유머까지 섞었는데 답장은 없었다. 할 일이 없어진 그는 누워 잘까 했다. 밤샘을 했는데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오락실에서 자격증 이야기를 꺼낸 게 화근일까. 그딴 거 공부해 보고 싶었다. 그는 자격증에 관해 고민해 보았다. 컴퓨터, 외국어, 기술 등 많은 게 있는데 땄다는 가정하에 뭐가 제일 근사할까 하는 고민 말이다.

 딩동.

 화들짝 놀라 일어난 그였다.

 ‘자고 있었구나…….’

 초인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가운데에 두 팔을 끼워 넣은 양반다리로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창유리가 환했다. 슬쩍 열린 창틈은 눈부셔서 쳐다볼 수도 없었다. 현관에 다다른 그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누구세요?”

 발소리가 났다. 그는 문을 열려다 갑자기 딴생각에 빠졌다. 문을 열자 눈만 부셨다. 아무도 없었다. 계단, 골목에도. 고개를 쭉 빼 올렸지만 도로를 지나는 사람 중 누구를 찾는다는 말인가.

 다음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부식은 좋아하는 거라며 매콤한 양념치킨을 가져왔다. 나리는 좋아했던 거 아닌가요 하고 말을 정정해주려다 말았다. 그러나 부식은 제법 기특한 짓을 했다. 먹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살을 발라 먹는 것이었다.

 “이야 신기하네.”

 나리가 말했다.

 부식은 내리깐 눈으로 입에 문 치킨 다리를 보면서 큭큭 웃었다. 나리는 날개처럼 모은 양쪽 다리를 동시에 흔들어대면서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그거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부식은 당연히 알아들었다. 화재 사고만 해도 아찔했는데 소름 끼치는 비밀이 있는 마을이라니 잊고 싶기만 했다. 나리는 살인마 가족들을 생각하던 중에 은샘으로 생각을 옮겼다. 하지만 잡다한 기억들에 자꾸만 교란당했다.

 일가에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11살이지만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다. 집안에서 사회와 아예 단절을 시켜버린 것이다. 지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뇌는 죽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었다. 22살의 여자는 한창 법정 공방 중이었다. TV에서 나오는 축 처진 모습으로 보건대 보나 마나 다 내려놓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 변호사가 스타 기질을 발휘하여 재판을 질질 끌고 있을 터였다.

 “와, 여기서 사는구나?”

 부식이 앉은 상태에서 주위를 크게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와서 놀라기예요? 그렇담 조금 더 놀라게 해줄게요.”

 나리가 장롱과 이불장을 열었다. 주섬주섬할 것도 없이 있는 대로 꺼내놓았다. 애초에 나무로 된 가구들의 목적이 콜렉션 보관용이기 때문이다. 80년대 패밀리 게임기, 닌텐도 시리즈,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등이 방바닥에 깔렸다. 게임팩은 없었다. 착각임을 안건 장롱의 다른 서랍들이 열리면서였다. 부식은 그 안에 가득 채워진 팩, CD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나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인간인가 싶었던 것이다. 나리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콜렉션을 바라보았다.

 “멋지지 않아요?”

 “얼만지 계산도 안 될 정도로…….”

 “상상만 해요. 까무러치고 싶지 않다면.”

 “밖에 보관하지 왜? 수집가들을 보면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곤 하던데. 그게 더 모으는 기분이 들지 않아? 그런 쾌감 때문에 모으는 거 아닌가?”

 “아아, 모르시는 말씀! 혹시라도 손상을 입으면 어떡하고요? 생활 기스나 생각지도 못한 얼룩, 물 빠짐 등등……!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날려 하네. 강박증이 생길 걸 예방하기 위해 관상 욕심은 버렸답니다.”

 “대단한 녀석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게 만드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리가 절을 하다 말았다.

 “집 안 청소는 좀 하지 그래? 거실은 그래도 깨끗해 보이던데 방이 무슨…….”

 부식은 과자 봉지와 빈 음료수병, 머리카락, 함부로 던져진 만화책 같은 걸 보면서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거실이요? 쓴 물건만 제자리에 놓으니까 깔끔하던걸요? 아, 그리고 자세히 보면 먼지가 아파트 15층 높이라고요. 그런 데 있는 머리카락을 긁어모아서 현미경으로 보면 제가 나이 먹은 과정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을걸요?”

 “그래, 알았어.”

 부식이 말했다. 어떻게 나리를 말리겠는가.

 “형 혹시 커피 좋아해요? 타 올까요?”

 “별로. 고맙지만 사양할게.”

 “이야…….”

 “왜?”

 “그냥이요.”

 선풍기가 돌아가면서 나리와 부식의 머리칼을 흩날리게 했다. 끝까지 돌아간 팬이 서서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면서 이번에는 손톱으로 막 긁어내린 부식의 머리부터 괴롭혔다.

 “형? 혹시 사랑 같은 거 해봤어요?”

 “어이없는 소리 마! 내 나이, 서른다섯이라고.”

 하지만 나리는 못 믿겠다는 눈이었다. 미심쩍어하는 눈초리로 부식의 발까지 훑는 나리였다.

 “뜨거웠어요?”

 “하! 남부럽지 않을 만큼은.”

 “그럼 야한 얘기 좀 해줄래요?”

 “미안한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야. 사생활을 함부로 까발리거나 하는……!”

 부식이 정색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야한 얘기요. 아는 거 있음 해달라고요. 형……? 혹시 변태예요? 제 반응 떠보려고 일부러 그딴소리 한 건 아니겠죠? 후후후.”

 나리가 음흉하게 웃었다.

 부식은 헛웃음 소리만 낼뿐 일부러 다른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는 나리가 마음에 들었다. 유일한 친구라서가 아닌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시간을 더 게임광에게 시달린 부식이었다. 가려고 마음만 먹었다 하면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귀찮게 해대는 것이었다. 나리는 현관까지 배웅했다. 신발을 느릿느릿 찾아 신는 좀비 남의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

 “잘 가요. 가다가 좀비 사냥꾼 만나지 말고.”

 나리가 천천히 손바닥을 흔들었다. 부식을 보낸 그는 낮잠을 좀 잘까 했다. 일부러 하품을 했는데 그게 그만 문제를 일으켜서 하품 중독까지 왔다. 그가 물 매트에 누웠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귀찮아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좀비 남 씨인가요? 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말이야……!”

 나리가 말했다. 연극 톤이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만난 건 은샘이었다. 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혹시나 해서 누가 더 있나 봤다. 그녀 혼자였다.

 “이야 이거 낯설어서 원.”

 하지만 그의 속내에는 다른 말들이 있었다. 그녀는 전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향수 냄새와 함께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그녀의 눈 밑에서 별이 반짝이는 기분이었다.

 “이 집에 오고 나서 여자 손님은 처음인데…….”

 거실에 들어서고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뒤에서 은근히 그녀를 탐색했다. 의문이 꼬리표를 무니 얼굴이 닮은 것도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는 일자로 서서 들숨을 깊게 음미했다. 그녀가 풍기는 향기에 손발이 얼얼했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여자를 끊고 산 게 고집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다른 생각은 일절 없이 은밀한 밀담만 고팠다.

 “은샘아 혹시 게임 좋아해?”

 “응. 좋은 거 있어?”

 “좋은 거?”

 “뭐야? 무슨 생각 해?”

 “아니야. 혹시 격투 대전 게임은 어때?”

 “나 잘 못하는데.”

 이상한 대화였다. 그는 서로 엇갈리게 서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지금 순간이 난감했다. 정신이 어수선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성격에 맞지도 않은 짓을 저질렀다. 말이 오가는 와중에도 그녀를 피해 벽이든 천장이든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마실 거 좀 줄래? 더워서…….”

 그녀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머리카락 선이 젖어 있었던 탓에 마치 따로 따놓은 거 같았다.

 “목마르지? 잠깐만 기다릴래?”

 그는 부엌 냉장고로 가서 적당한 걸 골랐다. 그런데 갑자기 등 위에 무게가 더해졌고 목은 목대로 얼굴은 얼굴대로 통증이 올라왔다. 올가미를 걸고 매달린 은샘은 어떡해서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죽음의 왈츠가 시작되었다. 그는 올가미 사이에 손가락을 겨우 끼워 넣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발이 싱크대를 걷어차면서 둘 다 나가떨어졌다. 그녀가 칼을 찾아 쫓아올 때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던 그는 불꽃 같은 힘에 의존해 상대를 팍하고 쳤다. 사기그릇이 깨지면서 그녀의 이마에서 선혈이 흘렀다. 그녀는 날카롭게 울부짖더니 전에 없던 살기를 풍겼다. 마치 아수라 같았다. 하지만 남자인 그를 당해낼 순 없었다. 손톱으로 할퀴고 이로 물어뜯어 대는 걸 그는 배운 적도 없는 레슬링 기술로 제압했다.

 그의 팔이 그녀의 목을 두르고 있었다. 그녀가 괴성을 내지르며 얼굴을 흔들어댔다. 야수와 같은 섬광을 내는 눈빛에 그는 얼마간 숨을 참고 말았다. 희번덕거리는 눈이 휙 돌아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의 눈 밑에 낙인이 뚜렷하게 박혔다.

 “대체?”

 그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전에는 무탈하던 은샘이었다. 같은 사람에게 재시도가 가능하단 걸 나리도 처음 알았다. 죄만 있다면. 나리는 그 문장을 되새기면서 스르륵 힘을 푸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녀는 마치 총에 맞은 짐승처럼 큰 눈으로 얌전하게 헐떡거리기만 했다.

 “은샘아?”

 그는 처음으로 두려웠다. 전에 없던 반응이었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하얬다. 따끔거리는 사타구니를 못 견뎌 손이 갈 때쯤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릴레이를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리 집에는 몇 번 왔었어?”

 그가 울음을 섞어 말했다. 왜 이리 기운이 빠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상관도 없는 이혜림이 생각났다. 누누이 스스로에게도 말하는데 그녀와는 그저 친구 사이였다. 친밀하다고 하기에는 서운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웠다.

 옆으로 누워 있는 은샘의 입술에서 침이 새고 있었다. 그녀는 장판 무늬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몸집이 두 배 정도 커진 듯 훅훅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서 그저 침만 흘렸다. 예쁜 눈망울이 흐릿해지면서 눈물이 터질 때는 그의 입에서도 울음이 새어 나왔다.

 “여섯 시간 안에 넌 죽게 돼. 근데 내가 그렇게 안 둬.”

 그는 팔로 눈물을 닦으면서 묶을 게 없나 찾기 시작했다. 자신을 공격했던 줄은 우선적으로 그녀의 팔을 묶는 데 썼다. 일단 시간을 번 셈이라 그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았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전부였던 집에서 선풍기 팬 소리가 더해졌다. 방과 가까워지자 대기 화면으로 있는 비행기 게임 소리도 가세했다. 그는 제자리서 허둥지둥하다가 선반 아래에 있는 신발 상자를 뒤졌다. 박스 테이프를 꺼내 그녀를 감았다. 그럭저럭 그녀가 흉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가 다치지 않을 강도로.

 그는 눈썹을 일그러트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방바닥만 휑한 눈빛으로 주시할 뿐이었다. 그녀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만져도 가만히 있었다. 겁이 난 것도 잠시였다. 그는 그녀 옆에 누워서 머리 밑에 자신의 팔을 넣어 주었다. 몸을 돌려 살포시 안았다. 그렇게 있으니 불안과 방황이 멀리 사라졌다. 마음은 평온을 찾아갔다.

 그녀의 뒤통수에 코를 가져갔다. 성기가 부풀어 올라 그녀의 몸에 닿자 엄청나게 자극이 되었다. 그는 장난스럽게 킥킥거렸다. 이래도 그녀는 가만히 있는다. 그녀를 뒤에서 점점 세게 안았다. 성기 때문에 괴로울 지경이었다. 괴롭힐 마음도 약간 있어서 그녀를 뒤에서 안은 자세에서 한쪽 다리까지 올렸다. 너무도 위안이 되는 자세였고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정확히 6시간 후에도 그녀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어떤 물음에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흔들어도 눈 밑 방바닥만 쳐다보는 것이다. 그는 타고 기어오르듯 그녀의 얼굴에 코를 문질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영혼이라고 부를 만한 게 남아 있지 않았다. 열린 턱을 닫게 도와줘도 그때뿐이었다. 관절이 헐렁한 인형처럼 턱이 열리면서 침이 줄줄 흘렀다.

 순간 그는 화장을 해서 예쁠 뿐인 여자를 알게 되었다. 얼마 안 있어 그녀에게서 냄새가 날 것이다. 그녀는 말하는 법을 잊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따스함도 없었다. 차게 식은 것과 같은 그녀는 뭔가를 쳐다보기만 할 것이다. 그것이 뭐가 되었든 상관 않는다. 그저 보는 것이 그녀의 일과고 그것이 뭔지는 그녀조차 모를 테니까. 꿈에서라면 그녀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활기차게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묘사할 힘을 잃었다. 그녀는 창공에 섞인 창백한 낮달처럼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와 같았다.

 그날 처음으로 나리는 어두운 거실에 홀로 있었다. 이러고 있을 부식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잃는다.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미련이 남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을 되돌려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건 그 순간에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하지 못했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물 자국 때문에 볼이 따가웠다.

 그녀를 보내기로 했다. 아마 119 같은 곳에 전화를 하면 알아서 해 줄 거라 믿었다. 애초에 나리는 사회 부적응자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뼈저리게 상기하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엌으로 자꾸 눈이 가는 건 그녀가 부른 것 같은 착각 때문이었다. 미세한 생활 소음만으로도 이미 그녀의 수만 가지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스스로가 이해 가지 않았다. 혜림도 그렇고 하나 같이 별로인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심장이 수척해지기만 하면 가슴 속에서 마스카라 같은 것이 쉴 새 없이 흘러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두 여자를 사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대응을 하면서 눈을 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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