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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29. 독사
작성일 : 20-09-01 06:08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8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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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 가요가 시끄럽게 메아리치는 지하. 언뜻 춤 강습소로 볼 수도 있었다. 은샘은 꽉 막힌 벽을 보면서 창문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상상력을 동원해 실내를 인테리어 해 보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다가 칸막이에 막혀 흩어졌다. 그런 칸막이가 실내 곳곳에서 생겨났다. 가구가 들어섰고 소품들이 알맞게 배치되었다. 흉하게 골조가 드러난 천장도 깨끗하게 변했다. 문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그녀는 용범이 있는 곳을 보았다. 얼마나 사랑을 듬뿍 담은 눈빛인지 모른다. 그녀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면서 용범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더블침대. 제일 처음 들인 가구였다. 마치 부부인 것처럼 둘이서 골랐다. 그는 침대에 특히 신경 썼다. 그는 굉장히 극진한 남자여서 샤워도 함께 하길 바랐다. 그녀를 씻겨 주고 싶어 했다. 그녀는 연인이 뭔가를 먹을 때마다 신기했다. 그 마음이 오래가진 않았지만. 그녀가 떠먹여 주는 걸 그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런 용범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팔다리를 길게 쭉 뻗은 채. 이 더운 날에 이불을 턱 바로 아래까지 덮고 있었다.

 그녀는 땀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에어컨은 일부러 껐다. 지하라 불쾌지수가 말도 못 하게 높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의 아내였기에 눈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벌써부터 인자함이 묻어났다. 용범과 동거하는 며칠 동안 눈웃음이 전이 된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도 연인과 닮았다. 결혼을 하면 부부가 닮는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들쳐 연인의 손을 찾았다. 살이 붙은 거 말고 뼈다귀만 있는 거로. 그 손을 살짝살짝 간질여 보았다. 무응답이었다.

 “재밌는 꿈 꾸고 있어?”

 그녀가 다정하게 물었다. 그의 옆얼굴을 보려고 볼을 매트에 파묻었다.

 “어떤 꿈일까?”

 그의 코를 간질였다. 그리고 쿡 웃었다.

 

 스포츠카형 BMW가 도심을 누볐다. 은샘은 흩날리는 머리칼을 흘려버리면서 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선글라스가 햇볕을 가려 주었고 탑이 열려 있어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녹였다. 그녀의 차였다. 첫 차이기도 했다. 1억이 넘는 차였지만 당당히 현찰로 끝냈다. 지출이 엄청났지만 용범이 허락했다. 그는 무엇이든 허락한다. 연락을 할 필요도 없이 마음으로도 묻고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옆에서 지나가는 국산 차들을 보면서 애마의 진가를 확인했다. 매력적인 여자가 앉아 있는 오픈카이니 시선이 줄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향수 냄새에 도취하여 흥분으로 가슴이 오르내렸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번갈아 밟으면서 자동차의 귀를 확인했다. 차는 말을 잘 들었다. 여러 가지 물품을 사느라 잔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없었다. 사랑스런 연인에게서 배운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문쿨루스 만큼은 질색이었다.

 연인의 계좌는 해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있는 그대로 잔고를 비울 것이다. 그녀는 그들 가업을 그대로 전수 받았다. 그녀는 낙인을 볼 줄 알고 방금도 지나가는 차의 조수석에 앉은 아이에게서 그것을 발견했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그녀의 눈에는 10살 정도로밖에 안 되어 보였는데.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나니 이른 새벽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그녀는 일단의 남자들과 합석해 있었다. 사이키 조명이 어지러웠고 거기엔 담배 연기도 섞여 있었다.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는 매캐한 실내에서 그녀는 독한 술을 마셨다. 의지와는 다르게 담배도 피웠다. 이제 그만 마셔야지 하다가 한 잔을 더 먹었다. 남자들의 지인이었던 여자 둘이 일어났다. 남자들이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 거절했다. 그녀는 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했고 그쪽을 보니 느닷없게도 조용한 모텔 안이었다. 잠이 달아난 그녀는 이제야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슴에 립스틱으로 ‘젖탱이’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아래를 보니 음모가 바짝 깎여 있었고 그 위에는 ‘씹구멍↓’이라고 되어 있었다. 남자들은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서로 다리를 올리기도 하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누워 있기도 했다. 얼핏 보면 죽은 사람들 같았다.

 그때 그녀의 눈에 가위가 들어왔다. 빨간 손잡이가 달린 가정용 가위였다. 모텔에 있었던 건 아닐 테고 누군가의 소지품이겠다 싶었다. 작정하고 가지고 다닌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상습범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옷을 주섬주섬 찾아 입었다. 그전에 립스틱 자국 제거는 당연하다. 구불구불한 체모는 매트리스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옷을 입는 내내 그녀는 가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부부처럼 겹쳐 있는 남자들의 머리맡에 있는 가위 쪽으로 갔다. 그리고 남자들이 벗어 놓은 바지에서 지갑을 몽땅 꺼냈다. 네 명이니 지갑도 네 개다. 차에 탄 그녀는 돈부터 셌다. 합쳐서 17만 원.

 “거지새끼들.”

 그녀가 윗입술을 뒤집었다.

 

 BMW가 연석에 올라서려다 말았다. 차에서 내린 은샘은 다세대 주택지를 향해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뉴비틀을 보았다. 대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곧바로 실외 계단을 따라 2층으로 향했다. 초록색 페인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그렇다. 그녀는 미세하게 열려 있는 창문을 지났다. 현관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창가 쪽으로 가서 안을 엿보았다. 비디오 게임기가 바닥에 있는 게 보였다. 과자 봉지와 환타 페트병, 쌓였다가 쓰러진 CD 케이스가 보였다. 순간 그녀의 눈매에 혐오감이 내비쳤다. 왠지 짜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손가락 네 개로 방범창을 두드렸다. 나리의 볼에 대고 해주고 싶은 행위이기도 했다. 찡그리기 시작하는 그의 얼굴이 상상돼 살짝 열이 났다. 비참하게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나리 오빠?”

 그녀가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말했다.

 “오빠 안에 없어? 오빠?”

 그녀는 가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옆으로 나와서 보니 방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넌지시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 소리가 났다. 나리가 하품을 하면서 방문을 더 열고 등장했다. 파자마 차림에 손에는 만화책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옆으로 휙 숨었다. 벽에 붙어 있다가 과자 봉지 부스럭대는 소리를 듣고 거기서 나왔다. 얼굴이 얼마나 뾰쪽해 보이는지 지나다니는 행인마다 화들짝 놀랐다.

 

 백화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몇 명 타지 않은 엘리베이터에서 그녀는 앞쪽에 있었다. 앞으로 모은 손에는 핸드백이 들려 있었다. 오늘 샤넬 가방을 살 예정이었다. 샤넬 매장으로 가는 그녀의 워킹은 실로 유명 모델과 진배없었다.

 ‘모델도 별거 없네.’

 그녀는 방금 20만 원을 주고 염색을 한 머리를 도도하게 쓸어 넘기면서 명품 매장에 들어갔다. 극진한 대접은 당연했고 그녀 역시도 자연스러웠다.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기품 있고 무심하게 손짓을 하면서 상품의 설명을 들었다. 졸린 듯 뜬 눈은 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자 매니저의 설명이 못마땅한지 하얀 치아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매니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혹시 차를 드시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됐고 저거.”

 은샘이 팔짱을 낀 채 몇 시간을 공들인 네일 아트를 자랑하듯 대충 가리켰다.

 “아! 이 아이는요 고객님…….”

 매니저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은샘은 2백만 원을 호가하는 백을 구매했다. 백화점을 나올 때까지는 차가움을 유지했지만 차에서는 반드레하게 웃는 그녀였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뒤부터 차차 백에 관심을 잃었다. 사치를 부리던 끝에 잔고는 그로부터 일주일이 안 돼 바닥이 났다.

 

 은샘은 머리를 뒤로 묶은 채 흉하게 피자를 먹었다. 한쪽 다리를 가슴 쪽에 끌어당긴 채 시끄럽게 쩝쩝댔다. 이를 쑤시기도 하고 코를 후비기도 했다. 원래의 인생이라면 지금쯤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낙담하지 않았다. 낙인 수집을 나가겠다는 생각은 진작 하고 있었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통장에 있는 돈을 떠올렸다. 3백만 원 정도 되었다. 확실히 금처럼 귀한 돈이다. 벌레 같은 것들에게 굽실거려 가며 번 돈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옷을 벗어 한곳에 모았다. 씻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했다. 특히 립스틱을 신중하게 발랐다. 그녀는 염색한 머리를 잡고 내리더니 흡사 샴푸 CF 모델처럼 좌우로 흔들었다. 이를 닦지 않은 게 생각나 화장대에 대고 이를 내었다. 하얗고 건강했다. 그녀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났다.

 

 승합차가 째깍째깍 멈추지 않았다. 따라서 은샘의 예쁜 입에서 욕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대면서 욕을 해댔다. 차가 서자 앞유리창 우측에 고인 달무리가 순간 진해졌다. 그녀는 너무 성을 냈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살짝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밤바람이 비어져 들어왔다. 화장품 냄새가 콧잔등을 간질였다.

 그녀는 조수석 발 놓는 곳에 있는 검은색 백팩을 주워들었다. 거기서 꺼낸 내용물이 기가 막혔다. 자신이 준비하고도. 이런 걸 써야 한다니 모욕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위생 모자와 덧신 등을 껴입기 시작했다. 두 다리는 얌전하게 모여 있었다. 그 위에 팔을 올려두고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꼈다.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사전에 낙인부터 탐색해 놓고 왔어야 했다. 사전 준비 없이 복장부터 갖춰 입은 게 우스웠다. 밤거리를 창녀처럼 돌아다니며 호구를 아니, 죄인을 물색하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연히 사이드미러를 보게 되었다. 인영 하나가 어려 있었다. 손가락만 하게 커지더니 사이드미러에서 벗어나서는 훅 커져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시야에서 멀어지는 여자를 보았다. 못해도 90킬로는 되어 보였다. 설령 낙인이 있다 해도 염두 하지 말아야 할 상대였다. 어찌 싸워 이기겠는가. 그녀는 마취 총에 대해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이제야 생각난 것이었다. 그녀는 칼을 챙겨 왔는데 되도록 위협만으로 데려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저 뒤태란……!

 문득 이런 일을 잘하려면 준비물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체력도 길러야 하고 민첩해야 한다. 그녀는 아래 입술을 씹으면서 눈을 빛냈다. 두 눈의 안광이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시트를 뒤로 젖힌 뒤 마치 남자라도 된 듯 다리 하나를 계기판에 올렸다. 손톱을 깨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부자 아가씨가 된 듯한 그 느낌,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백화점의 명품 매장에 걸려 있던 백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는 침을 삼켰다. 숨은 죄인들을 처리하는 대가로 하늘이 내리는 선물들. 그녀는 당장 그런 게 눈앞에 있는 거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그랬다! 승합차 뒤쪽은 갖가지 크기의 선물 상자로 꽉 차 있었다. 환한 빛을 내는 게 신기했다. 앞쪽도 그랬다. 산해진미처럼 군침이 도는 명품 백의 향연이다. 프라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그녀의 무릎 위에도 수북했다. 무겁기는커녕 황홀한 기분이 전부였다.

 그녀는 침만 흘리지 않는다 뿐인지 거의 그런 상태였다. 백일몽에 잠겨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누가 보면 약에 취했다고 믿고 말 것이었다.

 

 검은색 모자와 선글라스가 은샘의 은신처였다. 눈에 띄는 액세서리는 삼가야 맞았다. 키가 커서 남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음으로 싼 것들로 구성된 패션이었다. 어두운색이면 그것대로 시선이 모일 것이므로 색상을 적당히 배치했다. 다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거리에 나와 있으니 스트레스였다. 평소에는 쏟아지는 눈길에 대적할 마음으로 유명 모델이 된 자신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스트레스였다. 한 번씩은 짜증이 치미는 걸 참지 못해 가서 눈알을 빼버리고 싶었다.

 선글라스 안에 있는 그녀의 차가운 시선은 보물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낙인이 보이지 않았다. 딱 보기에도 성폭력범, 사기꾼, 강도, 살인범처럼 생긴 천치들 천지였다. 그런데도 쉬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순간 그녀는 아차 싶었다. 낙인의 크기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깨알처럼 작은 게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말이 되었다. 이 많은 무리 중에서 죄인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문득 편의점 생각이 났다. 그리움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너무도 비참하고 구차한 곳이 아니었는가.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니나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예전과 다른 기운이 물씬 풍기는 지금의 모습을. 그녀는 굳이 시간을 들여 편의점으로 향했다. 세심한 주의를 계속하였으나 낙인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머플러 소리가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 그리로 고개를 돌렸다. 왠지 이 사람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산 오토바이에 올라탄 가죽 부츠의 남자는 쭉 찢어진 눈보다 주름살이 깊은 사람이었다. 왼쪽 눈 밑에 얼룩이 있었다. 그녀는 다가갔다. 그가 쳐다본다. 낙인이었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낙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왜? 관심 있어?”

 남자가 말했다.

 그녀가 승낙의 미소를 한껏 지었다.

 “시간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시간이야 무궁무진하지. 전화번호?”

 “오토바이 태워줄래요?”

 “전화번호부터.”

 남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치 너 아니고서도 여자는 널리고 널렸다는 듯이. 눈 밑에 담배 냄새가 날 거 같은 누런 애교살이 잡혀 있었다. 양쪽 볼은 모래라도 묻은 듯 모공이 넓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가 대단한 미인이었다. 애인이 있었던 것이다. 핸드폰 대리점에서 나온 초록색 머리의 여자는 17세기 유럽 삽화에나 나올 거 같은 고전적인 미를 지니고 있었다. 매우 서구적으로 생긴 그녀는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기 전에 침부터 뱉었다.

 “안 가?”

 여자가 말했다. 은샘 쪽은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가야지.”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은샘에게 윙크를 했다. 요란한 머플러 소리가 멀어졌다.

 “지랄들을 해라.”

 멀어지는 오토바이를 보며 은샘이 실실 웃었다. 엉덩이 양쪽으로 다리가 벌어진 17세기 삽화 녀를 보고 있으니 웃음만 나왔다. 남자 친구의 상태로 보아 어떤 인간인지 알만했다. 그러니 저 여자는 자신과는 급이 다른 것이다. 여러모로.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손에는 도넛 상자가 들려 있었다. 돈 아깝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그러나 펑크를 낸 오후 알바 대신 근무를 서고 있는 점장의 얼굴을 보고 기분이 달라졌다. 그의 왼쪽 눈 밑에 낙인이 찍혀 있었다.

 “점장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제가 술 한 잔 사 드리고 싶은데…….”

 “술? 좋지! 진짜 쏘는 거야?”

 점장은 눈은 상대의 이목구비가 아닌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은샘은 점장을 칵테일 바로 데리고 갔다. 점장 따위야 포장마차가 제격이지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서라도 최소한 칵테일 바여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두어 잔 마신 후 취한 척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점장은 즉시 점잖던 태도를 다른 식으로 바꿨다. 일어나자고 부축을 했다. 점장의 팔에 기대고 있던 그녀는 열이 확 올랐다. 점장이 계산을 하기 위해 그녀의 핸드백을 뒤졌던 것이다. 모텔비도 그렇게 계산되었다. 어쩌면 카드도 챙겼을지 모를 일이었다.

 침대에 눕혀진 은샘은 가슴부터 주무르고 들어오는 더러운 손길에 버럭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왜 그렇게 숨을 헐떡여 대는지 모를 일이었다. 개처럼 쉭쉭 거리기까지 했다. 점장의 손이 급하게 그녀의 사타구니로 와 필사적으로 뭔가를 뒤적거렸다. 팬티를 벗길 생각은 않고 그녀를 옆으로 돌아 눕혔다. 그리고는 죽기 살기로 그녀의 은밀한 부위와 항문 주름을 핥아댔다.

 싫지만 그녀는 느끼고 말았다. 당장에 죄인을 단죄하고 사회적 보상금을 취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골뱅이가 된 이상 아직은 무리였다. 힘에서도 한참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엉덩이 골짜기에 질퍽질퍽 침을 발라대던 혀가 멈췄다. 가슴에 와 있던 손아귀에서도 힘이 나갔다. 침대가 요동칠 때 그녀는 꽤 놀랐다. 살도 살짝 밟히고 말아서 발차기를 해버릴 뻔했다.

 그녀의 실눈에 들어온 건 엽기적이게도 벽을 기어오르는 점장의 뒷모습이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곧 점장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이어 자동차가 찌그러지는 충돌음이 부한 먼지처럼 502호실까지 튀어 올라왔다. 그녀는 몸을 추스르는 것도 잊고 창문에 매달려 아래를 보았다.

 “뭐야 이거……?”

 그녀는 낙인 수집에 관한 것만 알지 다른 건 모른다. 낙인이 찍힌 사람은 대개 6시간 안에 사망한다는 거. 그 방법은 자살이다. 용범 일가의 낙인 수집(목표물들은)은 예의 범위에서 빗겨 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나리가 팩트 폭력을 하고 다녀도 죄인의 수는 일정한 편인 것이다. 나리의 입장에서 다행인 건 기차역이 있는 도시라 어중이떠중이가 꼬이는 도시라는 점이다. 그래서 낙인을 찍은 상태로 타 도시로 가는 사람이 있다. 그에 그치지 않고 곧 낙인을 하사받을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인간이 나타난다.

 “개새끼가 왜 나한테 피해를 주느냐고!”

 

 집에 돌아온 은샘은 옷을 훌훌 벗어내며 욕실로 갔다.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머리를 마구 흩트렸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받으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에 다녀왔다. 맞은편 여관 창문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년 남자가 점장의 찬란한 최후를 전부 목격했다. 그가 경찰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걸 듣고 있자니 잠이 쏟아져서 혼이 났었다. 멍청한 점장한테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인데도 굳이 지갑까지 챙기는 더러운 꼼수까지 부리는 인간이었다. 열을 삭히려 편의점 주인인 척하면서 돈이나 챙길까 했지만 역시 생각만으로 끝났다. 그런 짓을 했다간 뒷일이 감당이 되지 않으니까.

 그녀는 코로 숨을 길게 내뱉었다. 숨에서 희미한 알콜 냄새가 나는 거 같았다. 낙인 수집이란 거 생각보다 어려웠다. 솔직히 자신이 없어졌다. 혼자 힘으로 해내기가 힘들다. 그녀는 아직도 게으르게 침대에 누워 있을 용범을 떠올렸다. 그러자 픽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샤워기를 걸이에서 떼어내 수압을 즐기려다가 번지는 웃음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질식할 듯 웃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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