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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28. 추적
작성일 : 20-08-31 07:51     조회 : 236     추천 : 0     분량 : 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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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샘은 손톱을 깨물면서 빨간 벽돌집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불법 투기된 쓰레기들이 잔뜩 쌓인 벽에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쓰레기 투기 금지. 그녀는 무심코 핸드백을 뒤졌다. 담배가 있을 리 없었다. 피고 싶단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손이 문제인 것이다. 식도를 타고 들어가는 연기 생각도. 차마 나리에게 기척을 할 수 없었다.

 승합차가 조용히 섰다. 그녀는 쌩하고 조수석에 올랐다. 용범은 마치 요술 공주 셀리 같은 이름의 여자 어린이를 위한 완구의 그림처럼 눈망울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차와 함께 그의 몸도 위아래로 이상야릇하게 덜덜거리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왜 혼자야?”

 그가 말했다. 정말이지 맑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래서 그녀는 인상을 써버렸다.

 “집에 없어.”

 “그렇단 말이야?”

 “왜 그렇게 즐거워해?”

 “기분이 좋은 걸 어떻게 해. 그냥 웃음이 나와. 멈출 수가 있어야지.”

 “역겨우니까 웃지 마.”

 “내 팔 때문에?”

 용범은 얇은 후드 재킷을 입고 있었다. 한쪽 팔을, 손이 하나 더 달린 별종을 가슴팍에 집어넣고 있었는데 그게 멋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내 다리도 좀 사랑해줘.”

 다리는 청바지 속에 있었다. 그에게 돈을 받고 그녀가 사 온 것들이었다. 그녀는 일가의 비밀을 모두 알고 말았다. 결정하는데 딱 하룻밤이 걸렸다. 아침잠이 많은 그녀인데 그날만큼은 새벽바람으로 일어났다. 잠에 빠져 있는 그를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본인도 잘 몰랐다. 그녀는 함께하자고 말했다. 그는 웃었다. 당연한 대답이 나왔던 것이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예의 지하였다. 예상외로 번화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만큼 용범은 스스로를 떳떳하게 생각했다. 필요한 가구나 가전제품을 사는 일에 며칠이 필요했다. 오늘도 이것저것 둘러보러 갈 참이었다. 솔직히 그녀는 용범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니까 인간 자체로는. 몸뚱어리는 혐오스럽기 이를 때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몸을 주었다. 왜냐면 삶이란 것에 실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었다.

 용범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실로 믿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믿어야 하는 건 그녀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 일이다. 그녀는 이야기에 매료 되었다. 그것들이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 모델 지망생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편의점 알바생이 증발했다. 직업학교의 간호조무사 과정을 염두고 두고 있던 비참한 현실주의자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장난 전화의 주인공이 나리임을 발설해 버렸다. 정신을 잃었을 때 드문드문 깬 적이 있었다. 아주 느슨한 정신의 장난이었다. 그때 장난꾸러기처럼 말하고 있던 나리의 목소리와 얼굴을 보았다. 부식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 같았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자신을 구해 줄 사람으로 대체하는 일이.

 “만약 나리 오빠와 만나면 어떻게 할 거야?”

 “몇 번이나 말해. 죽여버릴 거야. 빼는 거 없기다?”

 “알았어.”

 “난 제발 그때 네가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아주 사소한 일이잖아. 그치?”

 “응.”

 “배고프다. 배 안 고파?”

 “인도 카레 먹지 않을래?”

 “너무 싱거운데 그거. 활동적인 걸 하자고. 고기 먹으러 가자.”

 용범의 눈동자가 스르륵 미끄러져 눈 끝에 걸렸다. 현호 자식이 어떤 기분으로 살았을지 이제야 대충 짐작이 갔다. 이 좋은 걸 혼자만 누리고 살았다니! 주제도 모르고 호사를 누렸던 것이다. 부관참시도 시원찮다 싶었다. 용범은 꿈에도 그리던 연인과 함께라 정말 행복했다.

 

 간밤에 하도 몸부림을 쳐 대서 이부자리가 엉망이었다. 나리는 맨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었다. 큰 대자 모양으로 누워서 눈만으로 살짝 열려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은샘을 본 거 같았다. 한 번이 아니었다. 며칠 사이 여러 번 왔다 간 걸 안다. 의심 이후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상당히 진척된 관계라고 여겼는데 그게 얹힌 기분을 주다니.

 그녀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 이렇게 멀어지는 편이 나았다. 그는 집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녀 혼자라면 어쨌든 괜찮다. 하지만 감이 좋지 않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땀 때문에 쩍쩍 소리가 났다. 샤워부터 했다. 씻고 나와서 바디로션을 가볍게 발랐다. 엉뚱한 데를 보면서 겨드랑이를 문지르고 사타구니를 비볐다. 그는 딴생각을 하느라 혀로 어금니를 만지고 있었다. 마치 비딱하게 담배를 문 사람과 같은 모양새였다.

 그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서 돈 계산을 했다. 계좌에 있는 돈과 방을 빼고 나오는 돈을 합하면 어렵지 않게 집은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모나미 펜을 똑딱거리다가 이로 육각 면을 질겅질겅 씹었다. 돈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직업을 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주점 웨이터 같은 게 돈이 된다고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났다. 그는 두 다리 사이에 양팔과 상체를 늘어트리면서 땡볕이 쏟아지는 창밖의 세상을 멍하게 응시했다. 마치 남의 나라 같았다.

 점심은 식빵을 구워 대충 때운 그였다. 신발장에서 신을 걸 골라 보다가 쪼리를 질질 끌고 집을 나섰다. 맹꽁이자물쇠를 채우고 방수페인트가 발라진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는 발길을 멈춰야 했다. 개미가 까만 먼지처럼 자욱하게 뒤덮여 있는 기분 나쁜 물체 때문이었다. 그는 더워도 사나이답게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그 자세로 상체를 길쭉하게 수그렸다.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더덕더덕 털이 붙어 있는 게 영락없이 인간의 살코기였다. 따지고 보면 껍데기로 다리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모르지만 용범이 남기고 간 흔적이었다. 다리에 붙어 있던 마지막 고기였다. 그것을 떼어내 적당한 장소를 고르느라 두리번거리던 그가 얼마나 킥킥댔는지 모른다. 혹시나 음성 변조자가 바보처럼 놓치지 않을까 하여 고심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통으로 발견했으니 승합차 뒤에서 애인과 섹스를 나누고 있는 그는 얼마나 기쁠까.

 “우와 고추 다 까지겠네! 왜 이렇게 잘 빨아?”

 그만큼 그 상황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호문쿨루스 따위는 금방 잊어버린 전직 호문쿨루스의 왕 다운 발언이었다. 지금 대중매체에는 거짓 보도가 이어졌다. 호문쿨루스는 시체가 아니라 산 사람이라고. 그리고 가족들에게 인계된다고.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호문쿨루스는 고기만 애타게 찾을 뿐이었다.

 나리는 미어캣처럼 길게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골목도 비어 있었다. 그는 서둘러 차가 있는 곳까지 내달렸다. 대문을 세게 닫고 말았다. 차에 손을 데기 전에 망설였다. 차 키를 꺼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은샘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복습했다. 평범한 대화다. 이 상황에서도 딱히 이상한 점이 없었다. 고기는 놔두기로 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알아서 부패할 것이었다. 만지고 싶을 리 없었다.

 그는 깍지를 낀 팔을 핸들에 올렸다. 눈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차 키를 꽂을까 말까 했다.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잠시 후 차가 움직였다. 부식의 집 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바꿨다. 은샘이 일하는 편의점이 목적지였다. 당연히 그녀는 없었다. 점장도 그녀의 행방을 궁금해했다. 그럴 것이다. 그녀가 채운 일수는 43만 원 정도의 시간이니까. 그는 은샘의 주소를 얻어서 이동했다. 그녀는 친구와 산다고 했다. 빌라 3층이었다. 벨을 눌렀다. 누구냐고 묻기에 간단히 소개했다.

 “걔 갔어요.”

 “갔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몰라요. 미친년이 찾지 말래요.”

 나리는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했다.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은샘이 때문이라면 됐어요. 질렸어, 정말.”

 

 진동 벨이 울렸다. 나리는 의자를 무릎으로 밀고 일어났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가져왔다.

 “고마워요.”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이십대 초반의 여자로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있었다. 광대가 얼마나 널찍하게 튀어나와 있는지 장난감도 앉혀 놓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건 은샘에 대한 안 좋은 기억 탓인 거 같았다. 그리고 나리는 피해 심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라고 느꼈다. 확실히 은샘과 이 여자를 두고 논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환희의 대상이 은샘이라면 이 여자는 짧은데 다리는 더 짧고 남자도 아닌 것이 여자도 아닌 인간이었다. 목소리로 보자면 성숙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매우 조숙한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허스키에 가까운 소리를 냈을 테고.

 “은샘 씨는 어떻게 집을 나가게 되었나요?”

 나리가 어울리지 않게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그러고 싶어나 보죠 뭐. 찬바람처럼 와서 짐만 챙기던걸요. 몇 개 되지도 않아요. 옷 같은 거밖에 없거든요. 찾지 말래요. 미친년 아니에요, 완전? 누가 찾겠대?”

 “사이가 좋지 않으셨나 봐요?”

 나리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지만 여자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참 나! 좋을 수가 있겠어요? 처음에만 개념 있는 척하다가 어울리기 시작하면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데요? 남 이용하기 선수라니까요. 벗겨 먹은 남자만 몇 명인 줄 아세요? 아직 어려서 다행이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 싹수가 보여! 전부 다 알바하면서 어렵게 사는 오빠들인데 걔 때문에 빚쟁이가 됐다니까요.”

 “얼마나요?”

 “어떻게 보면 크지 않은 돈일 수도 있어요. 많아 봐야 200만 원 정도니까.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돈 없는 대학생이 알바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살겠어요? 번번이 돈 뜯기듯 만나다가 기어이 빚까지 생겨버렸다고요. 걘 사람이 만만해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괴롭히는 독종이에요!”

 “그 사람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시종 돌아앉아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경멸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리를 향한 반감 탓이 아니었다.

 “그쪽도 돈 뜯겼어요?”

 “아뇨. 사귄 적 없어요. 그냥 알고 지냈다 정도밖에 할 말이…….”

 “수상해.”

 그는 못 이기는 척 힘겹게 말을 꺼냈다. 자신의 집에 누군가 왔다 가곤 하는데 혹시 그녀가 아닐까 한다면서. 연락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녀에게 연락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고, 개인적으로도 말 못 할 사연이 있다면서. 그러자 그녀가 웃음을 섞어 말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는 3개 정도를 예상했는데 12개나 되었다. 나중에 확인할 때 그는 무척 놀란다. 한결같이 하는 말들이 있었다. 그 여자는 미친 사이코라고.

 “걔가 얼마나 미친년이냐면요? 경제학과에 잘생긴 겸임 교수님이 새로 왔거든요? 젊은 교수님과 인사를 한 번 트기 시작한 이후로 변태로 만들지 않겠어요? 애들도 진짜 그렇게 생각했고 교수님은 지옥 속에서 살았어요. 지금이야 괜찮겠지만 본인을 제외한 이야기예요. 여학생에게 눈길만 가도 속이 제대로 뒤틀릴 일이 있을걸요?”

 “정말 은샘 씨가 나쁜 짓을 하고 다녔다면 지금…….”

 나리는 말을 끊고 무의식적으로 손뼉을 가볍게 쳤다. 마치 탐정 나부랭이 씨가 된 듯해서 괴로웠다. 그는 조용히 킁킁거렸다. 쪼리에서 발 냄새가 올라온 듯했기 때문이다. 풋크림까지 바르는 깔끔 남으로써 그럴 리 없다.

 “예쁘잖아요. 22살이고. 또 영악하죠. 모델을 하겠다면서 여기저기 얼마나 몸을 대주고 다녔다고요. 누가 봐도 사기인데 말이에요. 그게 소문이 나서 졸업생들까지 나서서 별 지랄을 다 했다니까요. 늙은 교수 중에서도 걔 딴 놈들이 있대요. 전부다 수면 아래에 있어서 모르는 거지. 걔가 얼마나 뻔한 거짓말을 잘 하는데요. 전부 다 지가 피해자라니까요? 모델 에이전시 그런 데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하기는 하는데 제 발로 다시 찾아가서는…… 암튼 재벌한테 시집을 갈 거라면서 바보 같은 게, 쯧.”

 그는 얌전한 아가씨였던 은샘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의 말투와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디 한 곳 흠잡을 데 없는 괜찮은 아가씨라고 생각했었다. 내심 부식이 그녀에게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하여 혼자 신이 나서 힐끗거렸던 그였다. 좀비 남이 칡넝쿨 같은 뇌를 가진 게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쯤 좀비 남이 무척 불쌍하게 느껴졌을 테니까.

 “상상이 잘되지 않네요. 정말 놀라운 얘기예요.”

 “나도 상상이 되지 않아요. 내가 먹은 음식에 쥐약이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게.”

 나리가 집중했다.

 그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렇잖아요? 안 그럼 제가 살아 있겠어요?”

 

 오락실. 격투 게임기 앞에 앉은 나리는 벌써 6명째 물리쳤다. 어지간히 약이 오른 한 사람이 수 번 도전한 건 빼고 말이다. 그는 한쪽 다리를 떨면서 버튼을 눌러댔다. 버튼도 버튼이지만 조종 막대기를 놀리는 손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의 재간에 상대방은 실수 연발이었다. KO로 상대방을 보냈다. 그는 이번에도 누군가 동전을 넣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화면은 그저 흘러갔다. 컴퓨터가 캐릭터를 고르고 라운드 1이 시작되었다.

 끝판에 거의 다다랐을 때야 그는 뒤에 누군가 있음을 알았다. 늘 있는 일이라 상관없었지만 이따금 들리는 뚝 소리에 겨드랑이 밑으로 눈길을 주었다. 또 침이 석고상의 머리처럼 떨어지며 뚝 소리를 냈다. 그는 활짝 벌린 다리를 달달 거리면서 연신 조종판을 뒤집었다. 기어이 끝판. 뒤에 있는 사람이 동전을 세면서 반대편 게임기에 앉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침 뱉기에만 집중할 따름이었다. 마치 입안에 끝없이 샘솟는 화수분이라도 있다는 듯 침이 마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게임 좆같이 하네.”

 뒤에서 말했다.

 나리는 무시하고 버튼만 두드렸다. 파이널 보스를 가볍게 젖힌 그는 스툴 의자에서 일어났다.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니 엔딩 스토리엔 관심이 없었다.

 “야? 게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좋냐?”

 나리는 상대방을 슬쩍 보았다. 안에 있는 걸 잡고 꺼낸 듯 턱이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긴 남자였다. 눈 주위는 색소 침착이 심하고 머리는 며칠을 안 감은 듯했다. 보통 키에 입 냄새가 매우 심했다.

 “네가 치사하게만 안 했어도 네 판까진 안 갔다!”

 “혹시 공무원 준비하세요?”

 “뭐?”

 “그렇게 보였어요. 나쁜 말은 아니잖아요? 공부는 좋은 거랍니다. 저도 자격증 공부 좀 할까 해요. 그럼 이만.”

 “와 이 씨, 뭐만 한 게 사람 열 받게 만드네. 야?”

 먼 거리도 아닌데 남자가 뛰어왔다. 그러면서 아직 나리의 온기가 남아 따끈따끈한 스툴 의자를 잡아챘다. 나리는 크게 한 발 던지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남자의 눈을 주시했다. 남자의 맹렬한 기세를 단숨에 찢고 새카만 동공 속에 있는 비밀을 파헤쳤다. 넋이 나간 남자의 손에서 스툴 의자가 떨어졌다. 발이 찍혔지만 남자는 멍하게 입만 벌리고 있었다. 충치로 뒤덮인 치아에서 맴돌던 투명한 점액이 입가를 돌다가 쭈욱 흘렀다. 빨랐다. 남자의 눈 밑에 X. 마크가 진하게 올라왔다.

 “그럼 이만.”

 나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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