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토크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말씀드릴게 있는데요.”
스토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편하게 스토크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럼 스토크님. 저, 사실 전 연금술사가 아니에요.”
나의 말에 스토크는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말했다.
“안 그래도 그 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했어요.”
그는 처음부터 연신 상냥한 웃음으로 나를 대했다.
혹시라도 내가 연금술사가 아니라고 뭐라 할까 걱정한 것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알아본다니 어떻게 한다는 거지.
나는 스토크에게 물었다.
“알아본다는 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스토크는 손가락은 궁의 정원 가로질러 너머의 건물을 가르쳤다.
“지금부터 태양관으로 함께 가보면 알게 될 거예요.”
태양관은 또 어떤 곳일까.
태양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아주 크려나.
하넨스가 끼어들어 말했다.
“멜리사, 태양관으로 가면 다른 연금술사들도 볼 수 있을 거야.”
“아! 연금술사는 라셀 선생님만 있는 것이 아니었군요.”
그래 이 넓은 나라에 한 명 뿐일 리가 없지.
다른 연금술사들도 라셀 선생님 같은 분들일까?
스토크가 이번엔 검지 손가락을 들고서 말했다.
“참, 태양관은 연금술을 연구하는 곳이에요. 황제께서 멜리사를 위한 방도 준비해 뒀으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웃어보였다.
나는 어차피 이곳에 오래 머물 사람도 아닌데 방까지 준비해 주다니.
게다가 황제가 친히 준비해주다니 너무 부담스럽다 못해 무서워!
우리는 정원을 통해 가는 길로 이동했다.
스토크가 앞장서 가는 동안 하넨스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말했다.
“모르는 것 같아 말해두는데, 그는 저렇게 보여도 일단은 황태자다.”
화, 황태자?!
그렇다는 말은 황제의 아들?
지금까지 말실수 한 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왜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은 거야 그는!
하넨스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궁에는 또래 친구가 없다보니 들뜬 것 같아 보이더군.”
그때 스토크 황태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누가 들떴다고?”
“들뜨지 않았습니까?”
하넨스의 말에 스토크는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넨스 네가 놀아주지 않아서 그런 거야!”
“글쎄요. 아시다시피 저는 공작의 업무가 바빠서.”
하넨스는 익숙하다는 듯 맞받아 쳤다.
두 사람은 친구 같은 관계인걸까?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두 분은 친구이신건가요?”
하넨스는 놀란 듯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보이나?”
그렇게 보이냐 라니 그럼 아닌가.
스토크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컸어요. 크고는 자주 보기 힘들어졌지만.”
스토크와 하넨스는 어릴 적부터 공부와 대련 등을 함께하며 컸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태양관 앞에 도착했다.
이곳이 태양관이구나.
태양관은 마치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희고 큰 건물이었다.
건물의 계단 양 옆에는 호랑이와 사자, 양, 사슴, 뱀 등의 동물 조각들도 새워져 있었다.
연금술사들한테 이렇게 좋은 건물을 쓰게 해주다니 정말 대우가 좋구나.
우리는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우리 쪽을 향해 말했다.
“안녕 하십니까 황태자 전하 그리고 공작님과 아가씨. 먼 길을 오셨군요.”
건물의 중앙 계단에서 흰 장발의 남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흰 장발 머리를 보자 선생님이 생각났지만 키는 조금 더 작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에 키가 작고 짧은 갈색머리를 한 남자가 보였다.
갈색머리를 한 남자는 빈정거리듯 말했다.
“호문쿨루스도 있군.”
호문쿨루스라니 그게 뭐지?
하넨스를 슬쩍 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스토크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두 사람을 소개해줬다.
“멜리사, 여기 키가 크신 이분은 샤이나이고 옆에 키가 작으신 분이 나시르 입니다.”
“작다니!”
“나시르 황태자님께 예의를 갖춰야지요.”
나시르가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는지 버럭 하자 샤이나가 옆에서 말렸다.
연금술사는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건가?
하지만 샤이나의 태도를 보면 저 나시르라는 남자만 그런 것 같군.
원래 성격이 안 좋나보다.
순간 고개를 돌리던 나시르라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시르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너 외국에서 왔다며? 그쪽 연금술과 이쪽의 연금술이 이름이 다른 건가. 아무튼 당장 만들러 가보자고.”
“만들어요?”
그리고 곧 그는 내 옆에 선 하넨스를 보며 말했다.
“어이 호문쿨루스 저 아가씨한테는 손대지 않길 바란다.”
소, 손대다니.
손질한다는 의미인가?
그런데 하넨스라고 부르지 않고 호문쿨루스라니.
나는 혹시나 그가 하넨스의 이름을 몰라서 그러나 싶어 나서서 말했다.
“저기, 이분 이름은 하넨스 인데요?”
“어, 너 설마 모르냐?”
나시르는 한쪽 눈썹을 높게 쳐올리며 정말 모르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에게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던 걸까?
하넨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멜리사, 연금술사는 금과 은을 만들 수 있고 인조생명체도 만들 수 있다고 전에 말했었지?”
나는 왜인지 바짝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작게 웃더니 뒤이어 말했다.
“내가 바로 그 만들어진 생명체다.”
하넨스가 만들어진 생명체?
놀라서 입이 절로 벌어지고 동공이 확장되었다.
21기 훨씬 이전에 그런 게 가능했단 말이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모습 중 무엇 하나도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생각되는 것은 없었다.
나시르는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본 듯 우리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스토크가 나시르를 향해 말했다.
“그도 인간이야. 입조심해라 나시르.”
스토크는 장난스럽던 처음의 모습과 달리 얼굴을 굳히고 낮게 내린 어조로 말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홀 내에는 긴장감어린 침묵이 흘렀다.
나시르는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입을 비쭉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쳇, 괴물 주제에.”
나시르는 사과의 말을 한 뒤에 작게 중얼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하넨스가 전쟁에서의 모습으로 괴물이라 불리었다고 하지만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이유로 괴물이라 불리다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조이듯 아파왔다.
모두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괴물이라 불리는 게 그라고 슬프지 않을 리가 없잖아.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 입을 열었지만 하넨스가 나를 막아섰다.
하넨스를 올려다보자 고개를 양옆으로 가로저었다.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 샤이나가 애써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우리를 새로 준비된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방이라 하기도 애매할 만큼 넓었고 방안에 또 다른 방이 더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방의 바닥은 딱딱한 바닥에 이상한 실험에 사용할 법한 기구들이 있었다.
안의 또 다른 방의 바닥은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고 멋지게 만들어진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벽면의 책꽂이에는 수많은 책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저걸 언제 다 읽는데.
샤이나는 활짝 웃더니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 이곳이 멜리사가 사용할 연구실이에요. 이곳저곳 다니느라 피곤하겠지만 지금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어요.”
샤이나의 말이 끝나자 나시르가 다가와 말했다.
“현자의 돌을 하나 만들면 돼. 혹시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봐. 네 나라와는 방법이 조금 다를 수도 있으니 참고용으로.”
나시르는 내게 검은 표지에 두껍고 무거운 책을 건네주었다.
일단 받아들고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강 훑어보았다.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왜인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일단 몸을 움직여 준비되어있는 재료들과 플라스크 증기기구 등을 조작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난 연금술사는 아니지만 적혀있는 데로 일단 해보는 거야.
실패하더라도 처음 말한 대로 난 연금술사가 아니라고 말하면 돼!
화로에 불을 붙이는 작업들을 하다 보니 이마에서 땀이 흘러 내렸다.
숨을 고르며 창밖을 보자 어느새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넨스와 스토크는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연금술사 둘은 각자 할 일을 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플라스크 속에 작업 물을 넣고 가열하자 큰 연기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콜록콜록-!
이제 끝이다.
“여러분, 이제 다 됐어요!”
다 됐다는 나의 말에 모두 내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플라스크 속을 들여다보니 흰색의 돌이 있었다.
난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 실패했군.
짝짝짝-
“역시 대단하시네요!”
“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샤이나가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붉은색이 아닌데 뭐가 대단하다는 거지?
샤이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연이어 말했다.
“완벽의 붉은색은 아니지만 확실히 현자의 돌이네요.”
나시르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확실히. 흰색의 돌도 치유의 힘이 있지.”
흰색의 돌도 현자의 돌인데다 치유의 힘까지 있다니 처음 안 사실이다.
라셀 선생님은 지금까지 붉은 돌만 보여주셨으니까.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연금술사라 하기 힘든 거 아닌가요?”
그때 스토크가 말했다.
“멜리사, 평범한 사람은 수백, 수천 번을 해도 만들 수 없는 게 현자의 돌이에요.”
그는 왜인지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없는 거라니 혹시 이 세계로 오고 난 뒤 특별한 힘이 생긴 걸까.
아니면 설마 죽기 전날 라셀선생님이 말하신 마지막 선물은 아니겠지?
선물이라고 하셨지만 밝고 따뜻한 빛이 느껴진 것 외에는 못 느꼈었는데.
하지만 다른 짚이는 구석은 더 이상 없어.
정말 선생님이 주신 능력일까?
그때 나시르가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 현자의 돌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목숨을 바치는 놈들도 있거든. 물론 그런 건 떠도는 소문일 뿐이지만.”
나시르는 그렇게 말하고 짧게 혀를 찼다.
하넨스는 내가 만들어낸 흰 돌을 손에 들고서 이리저리 보았다.
그리고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놀랍군. 기특하다.”
하넨스는 그 큰 손으로 내 머리를 헤집어왔다.
“잠, 잠깐만요!”
나의 외침에 그의 손이 멈췄다.
나는 그사이 머리를 다시 정돈하며 말했다.
“당신도 20살이라고 했죠, 그럼 우리 친구인데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거 아니에요?”
볼멘소리로 말하자 의외로 그는 당황해 하는 기색이었다.
하넨스는 곧 변명하듯 말했다.
“파라셀 선생님께서 해주시던 걸 나도 모르게 따라했군. 미안하다.”
“아니, 딱히 사과할 필요는 없는데.”
순순히 인정하고 사과하니 오히려 내가 민망해졌다.
나는 하넨스의 손에 들린 흰색 돌을 가져다 살펴보았다.
매끈한 표면에 검지 한마디만한 크기를 가진 순수한 순백의 돌이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돌이란 말이야?
이 자그마한 돌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또 들은 이야기로는 이 현자의 돌을 얻기 위해 소문을 듣고 습격해오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태양관을 지키는 기사들이 많은 것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돌을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연구를 하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