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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흘러내림(제3권) - 꽃잎
작가 : 말레이
작품등록일 : 2020.8.20

이 소설 "흘러내림"은 언어의 시작 점인 창세 때부터 2040 여 년 대의 미래까지를 언어와 문자를 소재로 이어가는 소설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언어 등의 모든 것이 오늘 우리모두에게까지 흘러 내려왔으며 이 흘러내려옴은 막힐 수 있는 강과 내처럼 수평적 흐럼이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수직적인 흘러내림이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 중의 귀한 우리의 문자(한글)와 언어(한국어)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그 배에 복된 소식도 나누어야 한다는 주제로서 제1권 - 뿌리, 제2권 - 나무, 제3권 - 가지, 제4권 - 광합성 중의 제3권이다.

 
변질된 언어
작성일 : 20-08-30 18:58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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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질된 언어!

 

 “예의가 있고 대의(大義)를 알고

 상하(上下)가 화목하다.” 제갈공명(諸葛孔明)

 

 제1대‘단군왕검’에 이어 47대‘단군고열가’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전쟁을 하지 않고 군대를 양성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는 청년들로 하여금 경전을 읽게 하고 무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니 이것이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도, 백제의‘싸울아비’의 모태가 되는 국자랑(國子郞), 천지화랑(天指花郞)이다. 단군 조선이 72개국으로 해체된 후(기원전 3세기) 동방의 나라들에 왕들이 들어섰으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왕들은 단군조선의 하나님 교를 믿고 숭배하며 서로 간에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로이 사니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이를 두고,

 

 “예의가 있고

  대의(大義)를 알고

  상하가 화목하다”

 

 하여 칭찬을 금치 않았다.

 그러나 이후 중국에서 이러한 동방 나라들의 화목을 깨기 위하여 불교를 고구려에 추천하고 고구려가 불교를 받아들이자 백제와 선비족이 고구려의 불교 수입을 강력히 반발하며 전쟁을 개시하고 이 후 고구려가 백제에 보복을 하고 동방의 나라들에 전쟁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가자 신라, 백제의 왕들도 왕권 전제화를 위해 서둘러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혼란이 더욱 계속되다가 끝까지‘하나님 교’를 고집한 가야는 신라의 군사들에게 짓밟히고 가야의‘하나님 교’를 전수 받아 고수하던 일본의‘야마토국’조차 후에 불교를 받아들임으로 동방은 불교의 천하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신라, 백제, 고구려에 불교가 더욱 번창하면서 나라는 점점 더 피폐해지고 민족정신은 사라져 갔으며 결국 일제시대 에는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 역사 고서 20만 권을 불태우고 단군 조선사를 삭제시킨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국사를 편찬시켰으며, 조선총독부의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한국인 제자들이 오늘날 한국 역사학계에 포진하여 식민사학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상 속에서 기독교는 서양 종교라고 배척을 하였으나 성경 창세기에 분명 우리민족의 나라인‘환국’과 그‘환국’을 세운 임금‘환인’이‘앗수르’이며, 노아의 세 아들 중‘셈’은 황인종의 조상이고‘함’은 흑인종의 조상이고‘야벳’은 백인종의 조상이며‘셈’으로부터 우리민족과 유태인, 룻, 터키, 봉골족, 시리아인 등 이 나온 것이다. (후에‘룻’족이 동방으로 진출하여‘예맥족’으로 불리고 부여, 고구려, 돌궐 등을 세운다.)

 창세기는 기독교의 경전이지만 또한 서양과 동양의 고대사에 대해서 명료하게 적고 있는 역사서이다. 그 편찬자는 바로 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한 때 왕자로서 자신의 근본이 유태인임을 깨닫고 출애굽을 이끌어낸 모세였다. 그가 이집트의 왕자였으므로 황실 서고의 많은 자료들을 접할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고 후에 자신이 기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창세기는 그만큼 중요한 고대사의 사료인 것이다.

 단군들이 쓴 고조선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考)에는 하나님은 셋이시며 하나이시고 하늘 궁전에 계셔서 만물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라고 나온다. 이는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최남선 같은 민족 사학자도 단군을 제사장으로 보았으며, 삼국유사에도 단군은 제터 단(壇)에 우두머리 군(君)인 제사장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서양 종교가 아니라 형제인 유태인들이 세운 종교이고 우리민족 역시 단군이 세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국 이 둘은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살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렇듯 기독교로 출발한 고조선의 영향력이 언제부터 불교나 유교가 들어와 적어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마치 불교나 유교가 우리의 원 뿌리인 것처럼 인식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고대 인도의 인더스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 쪽에서 흘러 들어간‘셈’족의 한 줄기인‘드라비다족’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우리와 같은 SOV(주어/Subject - 목적어/Object - 동사/Verb) 순의 형태 형태의 교착어이며 가야를 통해 들어온 드라비다어는 우리말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인더스 강 일대에 정착한 드라비다족의 신앙은 수메르와 같은 자유분방한 다신교였다.

 그때‘야벳’계열의 언어를 사용하는‘아리안’족이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남하했다. 그들은 창조주‘브라흐마’에게 소와 양으로 제사하는 유일신 종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하고 인더스 문명을 말살하기 위해 엄격한 계급제도를 만들고 그들을 노예계급으로 묶었다. 그러나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의 다신교에 혼합됐듯이 창조주를 섬기던 아리안의 신앙은 드라비다족의 다신교와 섞여서 힌두교가 됐고 창조주 ‘브라흐마’는 힌두교의 여러 신들 중의 하나가 됐던 것이다.

 인도‘가비라’성에서 고다마 싯다르타(BC 560-480)가 성주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 인도는‘힌두교’와 연합한 계급제도가 더욱 분화되어 그 폐해가 막심했다. 본래 고다마 싯다르타의 사상은 계급제도와 결탁한 힌두교의 신들을 축출하기 위해 제기한 무신론적 구원론이었다. 그것을 종교로 육성하여 포교를 시작한 것은‘마우리아국’의‘아소카’왕(BC 272-232)이었다.

 그 때까지도‘고다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인 비폭력, 불살생의 원칙이 지켜졌는데 대륙에 들어오면서 점차로 살생유택을 내세우는 호국 불교로 변모하게 되었다.‘동이족’과의 협력을 포기했던 후한 광무제의 아들‘명제’는 유학을 대체할 통치 이념을 모색하다가 AD 67년에 호국 불교를 들여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후한에 들어온 그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온 것은 소수림왕 2년 즉 AD 372년이었는데 아무리 교통이 불편한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불교의 전래가 300년도 넘게 걸렸던 것일까? 그것은 고구려에서 불교를 막아낸 강력한 종교 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샤머니즘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무당이나 점쟁이의 세력이 불교를 300년 동안이나 못 들어오게 했다고 하나 고구려 초기는 이미 기독교 국가였었다.

 고구려는 말 타고 활을 쏘는 전투적 혈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고구려 초기에 전쟁을 잘했던 왕들은 모두 대신들에 의해 제거되곤 하였는데 고구려 제5대 모본왕은 군대를 이끌고 한나라의‘북평’,‘어양’,‘상곡’을 지나 태원’까지 쳐들어가서 요동 태수(太守)의 항복을 받아냈던 영웅이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는 그가 성품이 포악하여 측근에게 시해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6대 태조 대왕의 동생인‘수성’은 한나라의 유주자사, 현토태수, 요동태수 등이 침입해 왔을 때 선비족과 연합하여 이를 대파하고 현토와 요동 땅을 수복한 맹장이었다. 왕이 죽고‘수성’이 즉위했는데 그도 역시 신하에게 살해당했다. 삼국사기는 역시 그가 포악했기 때문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 이후로 고구려의 영토는 위축되기 시작하고 국력은 약해지기 시작한다. 왜 전투적인 민족이었던 고구려에서 전쟁 잘하는 영웅이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온 선조의 정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날로 연약해지던 고구려는 16대 고국원왕 때에 이르러서 큰 수모를 당하게 되는데 동족인 선비족의‘모용황’이 쳐들어와 환도성을 불태우고 왕의 모친과 왕비를 잡아갔으며 왕은 달아나 겨우 목숨을 건지는 치욕을 당하였는데 이러한 일이 있음에도 형제 국 이었던 백제는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동이족 모두가 한나라와 대결하여 싸우는데 슬그머니 물러서 있던 고구려가 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자 고국원왕은 초토화된 고구려를 다시 일으켜 보려고 호국불교를 생각하게 되었고 위나라 승려 굴마(堀摩) 등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백제의 근초고왕이 쳐들어와 고국원왕을 죽이자 살해당한 부친의 뒤를 이은 소수림왕은 즉위 이듬해에 더 이상 대신들이 이의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해 호국 불교를 도입하고 불승인‘아도’에게 절을 건축하도록 승인을 하였다. 아도는 위승‘굴마’와 고구려의 여인인‘도녕’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 후 AD 384년에‘호승’(護僧)‘마라난타’가 백제를 방문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로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흔적이 없었음을 생각하여 보면 이‘마라난타’라는 이름은 아람어로‘주님 속히 오시옵소서.’라는 뜻의‘마라나타’와 유사한 말이다. 호(胡)는 서역에서 왔다는 말이고 당시 기독교의 선교사도 승(僧)이라는 말로 불렸으니 그가 불교의 승려가 아니라 기독교의 선교사였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어쨌든 불교는 고구려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신라 포교를 위해 전력을 다하였으며, AD 488년에는 불승이 왕궁에 잠입하여 소지왕의 왕비와 통정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고구려가 받아들인 이후 다시 155년이나 지난 뒤인 AD 527년 법흥왕 때에 이르러서였다. 이 때 불교 도입을 주도한 세력이 병부령‘이사부’와 어릴 때 고구려에 들어가‘혜량’이라는 승려로부터 수계를 받고 돌아온 무장‘거칠부’등의 군부세력이었다. 그들은 대신들을 위협하여 호국 불교를 들여오고 다시 5년 후인 AD 532년 기독교의 종주국이었던 금관가야를 쳐서 멸망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종주국을 친 명분을 세우기 위해‘거칠부’는 신라 국사를 편찬하면서 가야의 수로왕을 난폭한 자로 만들고 가야가 신라를 여러 번 공격한 것으로 개작하여 기록해 놓아 버렸다.

 한편 고구려에서는 호국불교를 받아들인 후에 광개토왕 이라는 영웅이 나타나서 백제와 신라를 압박했고 또 장수왕이 그 뒤를 이었다. 장수왕은 불승‘도림’(道琳)을 첩자로 백제에 들여보내‘개로왕’을 미혹케 하여 국력을 소모시킨 후 군사를 몰고 들어가 개로왕을 죽임으로서‘고국원왕’의 원수를 갚았다. 그리고 그 후에 신라까지 불교를 도입하고 가야를 멸망시키자 백제의 성왕은 마침내 백제에도 불교를 들여오기로 결심했다. AD 541년에 성왕은 양나라로부터 불경과 불상을 도입했으며 일본에도 이를 전하여 동방 3국과 일본이 다 불교 국이 되었고 후한(後漢), 위(魏), 진(秦)에 이어 대륙을 석권한 선비족의 나라‘북위’(北魏)와‘하화’족의 나라인‘양나라’등 동방의 모든 나라가 다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불교가 들어온 것은 단지 왕위를 위한 것이었지 결코 백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백성을 위한 것은 바로 홍익인간의 정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로 시작되었다가 불교와 유교로 점철되어버리고 말았는데 이제 금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기독교를 회복해가고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지난 오랜 동안 우리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유일 신앙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그 동안 숱한 민족적인 고난을 당하여 왔던 것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불순종의 삶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이 왔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 민족은 2,000년대에 크게 쓰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시고 준비시켜 놓으신 하나님의 마지막 섭리와 경륜을 이루시기 위한 동반자로 택정하신 민족이요 백성이며 이를 위하여 그 동안 연단과 훈련을 시켜 오시다가 오늘 이 민족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뛰어나게 해 주시면서 복음의 역량을 나타내게 하시고자 함을 기억하여야 한다.

 지금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이른바 한류(韓流, Han waves)는 바로 전 세계가 한국인을 사랑하고 흠모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대역사(大役事)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 한류의 주연은 한국의 선남선녀들이지만 그 연출은 바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와 인자를 사랑하는 족속! 개국 이래 단 한 번도 타민족을 침략하지 않은 민족! 그리고 여러 가지 흠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쓰시고자 남겨 둔 민족이 바로 우리 동이족이요 단군의 후손들인 한민족이요 대한민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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