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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이' 곳에 행복 한가득
작가 : 레마
작품등록일 : 2020.8.16

의문도 모른채 이세계로 온 주인공.
원치도 않던 이세계로 온 주제에 옷 한 벌 없이 갑자기 서바이벌이 시작되는데....

안녕하세요. 레마입니다.
이번에 첫작품으로 '이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딱히 투고가 처음은 아니지만, 제대로 플롯과 설정을 짜고서 쓰는 작품으로서는 첫작품이에요^^;
제 소설이 대체적으로 설정과 임팩트보다는 등장인물간의 갈등, 해결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번에 배경을 이세계로 잡았을 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이세계물과는 상당히 다를 거에요. 조금 스포하자면 주인공은 무능하니까요. ㅎㅎ
게다가 이 작품은 제가 동경하는 '동심'과 '평화'를 중점으로 분위기를 표현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치유물'이 그 의미 그대로 적용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낚시아님)
그냥 항상 웃으면서 볼 수있는 치유되는 작품이라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2 - 치유의 마녀 -3
작성일 : 20-08-30 15:33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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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숲에서 찾은 오아시스 같은 곳.

  그곳에서 한 여성이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나를 쳐다본다.

  내 아쉬운 머리로, 내가 알몸이라는 것도 모르고 당당하게 여성에게 다가간 결과다.

  이대로 있으면 여성이 어딘가에 신고해서 경찰이 오지 않을까.

  참, 여기에 전화기는 없겠구나. 체포되는 게 가장 마음 편한데 말이지.

  그렇다면 나도 양심이 있는 몸이다.

  터덜터덜 모포를 떨군 곳으로 향해, 힘없이 주워들고선 몸에 두른다.

  “...얘들아. 가자.”

  “...뀨?”

  라임이는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첫 만남부터 알몸이었으니, 사람은 알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다시 숲으로 향하려고 하니 라임이는 촉수로, 작은 늑대는 입으로 내 다리는 잡아 말리기 시작한다.

  ...작은 늑대야 이빨이 조금 아프니 좀 더 살살 물지 않을래?

  역시 갑작스러운 행복은 금방 사라지는 것인가.

  나를 못 가게 하려는 둘을 질질 끌며 숲으로 향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았다.

  물론 고개만이다.

  “저...저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일단 집으로 오실래요?”

  ...네?

  여성은 나에게서 대각선 아래로 시선을 떨군 상태로 말을 걸었다.

  그 표정을 보니 역시 이곳은 현실이라는 것이 체감되었다.

  정말 새빨간 얼굴은 터지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빨개져, 부끄러움을 손바닥으로 다 못 가리고 있었다.

  내가 만난 여성 둘은 너무 극단적이었다.

  여기사는 표정이 아예 없어 이곳의 사람들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눈앞의 여성은 내가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반응이 컸다.

  그보다 친절하긴 한데 괜찮으세요?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알몸의 남성을 여성의 집에 들인다는 게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왜요?”

  예의상, 힘없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자기 혐오가 점점 심해져, 더 이상 사람과 만날 수 없는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숲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내 운명이 아닐까.

  “짐도 없이 이곳에 오신 거 같아서...어딘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옷 정도는 있으니 드릴 수 있어요.”

  나는 잠시 고개를 숙여 내 모습을 살펴본다.

  나뭇잎 잔뜩 붙어 빨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허름한 모포, 게다가 커다란 나뭇잎을 엮어 만든 신발.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당연히 사정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지.

  딱한 사정이든, 머릿속 사정이든, 일단 난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라임이와 작은 늑대를 내려다본다.

  라임이는 강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작은 늑대는 바닥에 앉아 헥헥 거리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렇다 쳐도, 이 녀석들까지 내 자책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계획을 조금 바꾸었다.

  애초에 알몸으로 돌아다닐 정도다.

  얼굴에 철판 깔았다고 생각하며, 자존심과 창피함을 버리기로 했다.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의 여행에 필요한 식량만 얻게 된다면,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나자.

  “아. 그럼 염치불구하고 실례하겠습니다.”

  여성을 따라 오두막에 들어섰다.

  밝고 행복함이 가득한 밖의 인상과는 다르게, 내부는 커튼이 모두 쳐져 있어 상당히 어두웠다.

  그럼에도 여성은 잡동사니가 가득한 집안을 이리저리 잘도 움직이더니, 나에게 옷을 들고 와주었다.

  “저...맞는지 모르겠지만...입어...주세요.”

  아직도 나와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성.

  뭐, 남 말할 처지가 아닌 게,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하더라도 나도 양심이란 게 있어,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고, 고맙습니다.”

  제대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나는 받은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만에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어느 정도로 빨랐냐면, 나에게 옷을 건네준 여성이 뒤를 돌아 한 발자국 정도 걸었을 때 내가 다시 들어간 것이다.

  여성은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나도 그렇고 여성을 위해서도 그렇고 빨리 옷을 입어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식탁에 마주 앉아 여성이 내준 차를 건네받았다.

  라임이와 작은 늑대는 밖에서 대기시켰다. 이유는 이런 잡동사니가 많은 집에서 민폐까지 끼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 레아라고 합니다.”

  “네? 아, 저..저는 시하라고 합니다.”

  뚝.

  뭐가 끊겼냐고? 당연히 대화가 끊기는 소리지.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양손으로 쥐고 있는 찻잔밖에 보지 않는데, 대화가 가능하겠나.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어둠 속이긴 하지만, 레아의 얼굴과 손가락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게 훤히 보일 정도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여기사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만큼은 아니지만, 레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여성이다.

  대신, 여기사가 나락에 핀 한 송이의 꽃처럼 닿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움이라면, 레아는 그 누구에게나 밝게 비춰줄 태양과도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답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친근한 감각이 강하게 와 닿는 사람이다.

  “조..좋은 집이네요.”

  “아! 네, 네! 감사합니다...”

  뚝.

  내가 전에 물어본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여성과 원활히 대화하려면 어떤 주제를 꺼내는 게 좋을까.

  나는 지금 정렬적으로 레아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이유는 알몸을 보여준 변태에게도 친절을 베푼 레아에게 미소를 안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변을 살피며 대화의 주제를 찾기 시작했다.

  주변에 잡동사니들은 대부분 유리로 된 것이 많았다. 장식품이나 병, 구슬 등 말이다.

  그것들은 진열되어있는 느낌은 아니고, 대충 바닥에 널브러져 넘어진 것도 있었다.

  그럼 일단 이걸로 가볼까.

  “주변에 유리로 된 장식품이 많네요.”

  “아, 네.”

  하지만 레아는 아주 잠시만 나와 눈이 마주친 후, 곧바로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지뢰를 밟은 것일까. 왠지 아까 보다도 고개가 더 내려간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길 바란다.

  “저, 기분 나쁘진 않으세요?”

  “...네?”

  갑작스러운 자책에 놀라 얼빠진 소리를 흘리고 만다.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봐도 내가 책망당할 상황이 아닌가.

  지금 머릿속에서 여러 변명을 생각 중이다. 왜 알몸으로 이곳에 도착했으며, 자신에게 왜 알몸을 보여주었으며 등등 말이다.

  레아의 손가락이 자신의 가슴팍으로 이동한다. 여전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허둥대고 있었지만 말이다.

  “저, 그것들은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하지만 잘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어서...”

  “정말요?”

  나도 모르게 식탁을 손바닥으로 치며 일어서고 말았다.

  레아의 몸이 펄쩍 뛰며 놀란 것 같아 미안해진다.

  “조금 살펴봐도 될까요?”

  “네, 네! 그러세요.”

  그냥 곁눈질로 바라본 장식품부터 살펴봤다.

  내가 손에 잡은 건 비둘기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어둠이라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손에 만져지는 날개의 감촉을 보면 세밀한 부분까지 깔끔하게 묘사해 보통실력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정말로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취미 삼아 가끔 만들고 있어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내 또래가 취미로 만들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잡동사니를 잔뜩 파는 가게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만한 물건도 아니었다.

  내가 비록 세공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어딘가 문제가 있거나 아쉬운 부분을 찾을 수 없는, 어딘가의 지역에서 대회를 연다면 압도적인 완성도로 1등을 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물품에, 이 멍청이는 레아와 대화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작품 감상모드로 들어가고 말았다.

  “우와~. 이건 사슴이네요.”

  그래도 유리인 만큼 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감상한다.

  크기가 내 무릎까지 오는 상당한 크기였기에, 만지는 것을 최소화하며 감상한다.

  “이런 걸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마법인가요?”

  “아니요. 직접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고, 처음부터 유리의 재료가 되는 광물을 녹여서 일일이 모양을 만들고 있어요.”

  일단, 레아의 말이 어려웠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 관심은 오로지 세공품에 향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세공품들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빛에 반응하며 무지갯빛으로 반짝인다.

  웬만한 보석보다도 훨씬 아름답다고 느끼는 정도인데,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레아가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딱히 이곳에 있으면서 할 일도 없거든요. 제 얼마 없는 장기 중 하나예요.”

  “팔지는 않으세요?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저도 그럴려고 했는데요. 가끔씩 오는, 상인 일을 하는 제 친구가 도저히 팔 수 없는 물건이라고 해서...”

  뭔 소리지 그게?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이런 퀄리티의 물건은 본 적이 없다.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레아 정도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가치 있는 세공품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저도 취미로 만드는 것뿐이라, 딱히 돈 받고 팔고 싶지는 않아요. 이런 제 작품이라도 원하시는 분에게 드리고 싶어요.”

  그때, 돌아본 레아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안심과 행복을 포함한 얼굴.

  그 순간 나의 시선은 다시, 세공품들을 잊고 레아를 쳐다보게 되었다.

  레아도 이번에는 얼굴이 새빨개지는 일 없이, 내 눈을 제대로 바라봐 주었다.

  역시나 레아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외견에 의한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처음에 여기사를 만났을 때 느꼈던 아름다움은 분명 눈이 즐거워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레아에게서 느낀 아름다움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해지는 감각에 의한 아름다움이다.

  내가 느낀 레아의 친근한 감각은 항상 누군가를 위하는, 그 누구라도 도울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다.

  처음 비유했을 때 비교한 ‘태양’이 이토록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레아 이외에는 없겠지.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레아와 마주 보고 앉았다.

  이제는 분위기가 쌀쌀해지는 것 없이, 비교적 처음보다는 자연스러워졌다.

  차를 한 모금 입에 넣는다.

  분명 처음 느껴보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기는 했지만, 의외로 거부감은 없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이 감각 어디서 느껴본 것 같은데.

  “차는 어떠세요? 입에 맞으세요?”

  “네! 오히려 맛있어서 놀랐어요.”

  “다행이네요.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미소.

  지금 내 얼굴을 설명한다면 그밖에 없을 것이다.

  뭐지, 이 행복한 기분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 친절을 받아서 이런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여기사를 만났을 때도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지금은 훨씬 그 이상의 감정이다.

  마치 여자를 갈아타는 나쁜 남자 같아서 미안하긴 하지만, 여기사, 당신은 내 운명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새로운 사랑에 눈뜨고 말았다.

  “밖에 있는 아이들은 괜찮나요? 먹이라던가...”

  “네...아니요! 이래 봬도 숲에서 잔뜩 먹고 왔기 때문에 무언가 주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숲에서 많이 고생하신 것 같고, 마음껏 쉬고 가셔도 괜찮아요.”

  “그렇긴...하지만, 그래도 옷이라던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해서, 민폐인 것 같아...”

  조금 어정쩡하게 대답하며 시선을 피하니, 레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내 안에서 자존심과 본능이 서로 충돌한 순간이었다.

  내 기준으로 오랜 시간 숲속을 방황하며, 드디어 물과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오아시스에 왔다.

  하지만, 그곳은 사유지였고, 그 주인을 사랑하고 말았기에 민폐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 남자는 반한 여자 앞에서 강해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 말이다.

  “민폐라니 어떤 민폐 말인가요? 오히려 저는 이곳에 사람이 와주어서 지금 너무나 기뻐요. 이 집에 친구 이외의 사람이 들어온 건 처음이거든요.”

  “제가...처음이에요?”

  “네. 이곳은 가장 가까운 마을도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사람이 웬만하면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거든요.”

  확실히, 내가 처음에 여기사의 마차에서도 내렸을 때, 주변에 사람이 살만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맨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기뻤어요. 드디어 우리 집에 손님이 와주었다는 것이.”

  “저, 알몸이었는데요.”

  ...이 멍청이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포근해지니, 눈치도 포근한 밥 위에 얹어 말아먹었나 보다.

  하지만 뭐, 괜찮다.

  첫 만남부터 알몸이었는데 이 여성과 어떻게 되리라고는 바라진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레아에게 언젠가는 꼭 은혜를 갚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어딘가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정이 있고.”

  레아는 내 알몸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좀 빨개지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떠올리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요?”

  “밖에 있는 아이들이 시하씨를 믿고 따르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래서 상냥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아니요. 저를 그렇게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지금쯤, 한창 저희 자식이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 하는 상상을 하는 도중이라서요.

  까딱 잘못하면 늦둥이 계획이 세워질 뻔했습니다.

  물론 방금 얘기했던 대로 지금 건 단순한 상상일 뿐이지, 레아와 어떤 사이가 되고 싶은 것도, 내게는 그럴 자격도 없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이번 대화만 끝나면 남자답게 이 집을 나가자.

  그녀에게 지은 죄도 있고 하니, 더 이상 그녀를 내 더러움에 오염시키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그녀의 미소를 마음에 새기고, 있는 힘껏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당분간 이 집에 머무르셔도 괜찮아요.”

  내 전신에 번개가 떨어졌다.

  커다란 충격에 굳어있던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레아는 계속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다른 마을로 걸어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예요. 며칠 후면 상인인 제 친구가 마차를 타고 올 테니, 그걸 타고 가면 돼요.”

  레아는 그러고서,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는 맑은 미소를 나에게 뿌려주었다.

  “그때까지, 이곳에 충분할 정도로 식량도 있으니 마음껏 쉬시다 가세요.”

  난 고개를 숙였다.

  또 다른 딜레마가 나를 덮친다.

  레아는 마치, 내가 이 집에 머무르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 시켰는데, 과연 이대로 떠날 수 있을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를 두고, 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에 들리더니 곧장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으로 들리는 레아의 목소리를 듣자니, 라임이와 작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것 같았다.

  이러면 마치 이대로 이야기가 끝난 것 같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레아에게 다시 돌아가, ‘우리는 여행하는 몸이라 떠나야 한다.’라고 말을 꺼낼 수 있을까?

  레아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금만 생각하더라도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 목적은 단 하나다.

  최대한 이성을 유지 시키며, 레아에게 그 어떠한 민폐도 끼치지 않을 것.

  그렇다면 먼저 바늘부터 찾자.

  조금이라도 이상한 생각을 하면 팔뚝을 콕콕 찌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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