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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25. 달콤한 일상
작성일 : 20-08-30 08:20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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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미쳤어.”

 부식이 말했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차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한시라도 빨리 미치광이에게서 벗어나고 팠다. 하지만 지금은 만사가 다 귀찮게 느껴졌다. 은샘이 혼절을 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된 연유는 현호 때문이었다. 그가 일어나자마자 선택한 공격 대상이 다름이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가 끼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망상 환자처럼 끊임없이 중얼거렸을 때 눈이 이따금 휙 까뒤집혔다. 죽일 작정으로 연인의 목을 졸랐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게 그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모른다.

 부식은 하마터면 갈비뼈가 요절날 뻔했고, 그 집의 장남인 현승은 은샘이 죽지 않는 선까지는 도왔다. 그다음 공격 대상이라 곧바로 졸도를 해버렸지만. 집안의 어른이란 인간은 그저 호통만 쳐댔다. 나리의 요청으로 부식은 은샘을 밖으로 이끌었다. 현호가 보이지 않았었다. 아마도 뒤이어 벌어질 상황을 나리는 알았던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폭발음을 듣고 폭죽이니 뭐니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우린 사람을 구했어요. 영웅이라고요! 이야 마블 히어로 안 부럽네. 좀비 남 캐릭터도 보통 희귀한 게 아닌데 히어로하고 조합을 하니까…….”

 나리가 발랄하게 말하는 걸 부식이 잘랐다.

 “무슨 미친 소리야?”

 “걱정 말아요. 뒤에 탄 아가씨는 잠을 자고 있는 거니까. 아주 달곰한 잠에 빠져 있는 거라고요. 기분 나쁘다고 제 말을 똑바로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종종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거 아주 나쁜 취미라고요.”

 “경찰에 알려야 해.”

 “그러면 안 되는 거 알면서.”

 “전화할 거야. 할 거라고.”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어?”

 “뚱뚱보 아저씨도 죽었어요. 혹시 개 좋아하세요? 개들이 근처에 돌아다니다가 고소한 냄새를 맡고 올 텐데. 아마 종아리나 팔정도를 물어 갈걸요. 그걸 눈으로 보면 얼마나 거지 같다고요. 개도 결국엔 동물이에요. 짐승이요. 크게 신경 쓸 거 없어요. 더 이상 형을 괴롭힐 사람은 없어요. 자유롭게 살면 되는 거잖아요? 내심 기분 좋죠? 비꼬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형이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좀비 남이라고 놀리는 입장이지만 실은 제가 형의 친구예요. 형의 생각을 안 다는 뜻이 아니에요. 결국 형을 도운 건 저예요.”

 부식은 대꾸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달리는 차는 부식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을 감았다. 무슨 말이든 하려고 해도 입술만 열리지 목젖이 움직이지 않았다. 혀도 대리석처럼 무거웠다.

 “사고였어.”

 “형은 죄가 없다는 거 알고 있어요.”

 “아니! 폭발 사고 말이야!”

 “텐션 좋고!”

 나리가 킬킬거렸다.

 “좀 사악해지자면 여자 친구를 돈으로 재는 건 아니었어요. 형이 좀비 남 버전이라 마음에 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나쁜 짓은 나쁜 짓이었죠. 안 그래요?”

 “정신 나간 새끼 아냐, 이거?”

 “이야……!”

 “형 눈 밑에 뭐가 있었는지 아세요?”

 순간 부식은 온몸이 결정화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눈이 먼저 미끄러지면서 인두겁에 덮인 해골을 데려갔다. 뉴런들이 번개를 때리고 옥수수를 튀겨 댔다. 들키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지 진땀이 나는 손을 시트에 은근슬쩍 닦았다. 과대망상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틀린 답을 하면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할 거 같은 교활함이 치가 떨렸다. 만약 자신 혼자 과도하게 상황에 빠져 있는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다행이었다. 적어도 눈 밑 표시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니까.

 “주름살이나 있겠지.”

 부식이 흐릿하게 보이는 운전석에서 앞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한층 누그러진 태도였다.

 “낙인이 있었습니다. 알파벳 엑스랑 점이 연이어 찍혀 있는 건데 그거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아요. 좀비 남 같은 사람한테는. 그런데 생각보다 위험한 거였기도 하고요. 형 같은 사람한테는…….”

 부식이 입술을 들썩였다.

 “잊으세요. 이젠 사라졌으니까. 눈 녹듯이 사라져 있더라고요.”

 “왜야?”

 “무슨 말이죠?”

 나리가 고개를 돌렸다. 다시 정면을 본다.

 “나한테 그런 게 있었던 이유가 뭐냐고?”

 “본 적이 있는 거로군요? 그 마크, 본 적 있죠? 은샘 씨도 그걸 보는 눈이 있는 거 같았죠? 형도 알잖아요. 이야 안 그래요? 형도 은샘 씨 말에 놀랐잖아요? 맞죠?”

 부식은 반 정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손을 들어 머리 위 손잡이를 잡았다. 붙이고 있는 두 다리는 이미 문 쪽으로 움직인 상태였다. 얼굴이 자꾸만 어깨에 파묻히는 건 인식의 범위 밖에 있었다. 느껴질 때마다 고개를 돌려도 끝에는 항상 볼이 파묻혀 있었다.

 “걱정 마세요. 없어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요새도 자주 보세요?”

 “나한테도 그런 게 있었다고?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내가 했으니까.”

 나리가 말했다.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똑똑한 음성으로.

 부식은 배꼽 밑에 깍지를 슬그머니 꼈다. 침묵. 땀이 번져 미끄덩거리는 엄지를 비비면서 앞에서 들이닥치는 흑백 도로만 응시했다. 그는 엔진 소리에 섞인 자신의 숨소리를 찾았다. 그리로 신경을 돌리고 있었다. 잠시 집으로 향하는 중이라고 착각하며 끔찍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차는 목적지가 없었다. 그저 자동차의 기능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상기하고부터 그는 얼굴에 있는 핏기를 머리털이 몽땅 빨아 먹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입이 바싹 말랐다.

 “이상한 말 같지 않나요? 하지만 저는 형에게 그렇게 해야 했어요. 저는 원죄가 있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그냥 지나갈 수 없게 설계된 몸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중학교 때 갑자기 생긴 능력이에요. 친구가 죽었는데 별로 친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그 애를 가장 가깝게 여겼죠. 그 아이는 집단 강간을 당하고 자살을 해버렸어요. 모르겠어요. 그 이후에 생긴 능력입니다. 어쩌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게 갑자기 등장을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얼굴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일을 해요. 누가 원해서도 아니고 돈을 주는 받고 하는 일도 아니죠. 저는 선한 인간도 그렇다고…… 하하, 악인도 아닌 거 같고요. 제 눈이 시작이죠. 저는 그 사람의 내면의 것을 보고 그대로 전달합니다. 그것과 가릴 것 없이 만난 사람은 하나 같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군요. 표정을 보니까 여러 일을 겪었나 봐요? 제 경험상 낙인을 많이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건 그냥 개인차인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 중 몇몇은 병원 치료를 받죠. 일상생활이 힘든가 봐요. 그리고 낙인이 지워지는 걸 말하자면, 죄질의 차이인 거 같아요. 그럼에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본인의 눈 밑에 있는 게 지워졌는데…… 알아보지 못했죠? 알아봤나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반응만 봐도 알죠.”

 “소름 끼치는 놈이야 너. 그런 생각 안 해?”

 “글쎄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불행한 인간이겠죠. 저는 제 자신이 너무도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 하나를 사랑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저라고요.”

 “맥이 빠지네.”

 “그게 정상이죠.”

 부식은 마치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리듯 팔을 올린 어깨 너머로 시선을 줬다. 어둠이 깃든 창밖을 주시했다. 유리창에 비친 나리의 옆모습 탓에 곤란했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엿보고 있다고 생각지 않을까 하여 피곤한 기분이었다.

 “형 이제 제대로 사세요.”

 나리가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죠?”

 그가 재차 말했다.

 “친구로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이 나쁘다면 어쩔 수가…….”

 “없는 건 아니겠지.”

 “그러게요!”

 두 사람이 웃었다.

 

 11 : 42.

 “벌써……?”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일어난 부식은 크게 하품을 했다. 속에 있는 걸 다 비운 듯한 기분이었다. 머릿속과 뱃속을 모조리 표백한 기분이었다. 어제의 일이 꿈같기만 했다. 나리와 야간 드라이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땐 늦은 새벽 무렵이었다. 부식은 걸어 다니면서도 졸고 있었던 상태였다. 얼마나 심각했으면 부축까지 받았다. 한숨 자고 일어난 지금은 들이쉬는 쾌쾌한 공기마저 산뜻했다. 그는 들숨을 크게 빨았다. 정말 그랬다.

 어제와 자신과 오늘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인간임을 피부로도 느낄 수 있었다. 침샘에서 침이 폭발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반가운 소리가 났다. 오늘부터는 칼로리를 조금씩 늘릴 생각이었다. 머리로는 시도를 했지만 몸으로는 옮기지 않던 것을 비로써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새장의 빗장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왜냐면 애초부터 문은 안에 있었다. 그러니 빗장을 건 것도 부식 자신이었다.

 용문이 죽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사고사였다. 윤재가 그랬고 민수가 그랬듯이. 그는 무덤덤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이 놀라웠다.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뇌세포의 신호에는 감탄했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발을 질질 끌듯 부엌으로 가서 단백질 쉐이크를 만들었다. 평소보다 닭가슴살을 더 넣었다. 목구멍에 털어 넘기면서 헛구역질을 했지만 좀 더 지키고 있으니 소화가 되었다. 딸꾹질도 나오지 않았다.

 ‘쓰레기였잖아? 사고라고.’

 일가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국 사고였다. 폭발 사고를 자초한 주인공도 그 집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는 나리와 함께 여자를 구했다. 그 집 사람에게 전이했다는 것을 그도 나리에게 받았다. 그들보단 훨씬 전에.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 눈 밑에 있었다던 낙인은 지워졌다. 그는 평소에는 않던 춤까지 췄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어제 훈훈하기 그지없었던 드라이브의 파트너였던 나리를 멀리하고픈 마음이 샘솟았다. 꽤나 컸다. 솔직히 나리가 두려웠다.

 

 알바를 쉰 지 이틀째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일을 못 간다고 둘러댔었다. 은샘은 아래 입술을 꾹 물면서 라이터를 가지고 놀았다. 담배에 대한 생각이 싹 달아났다. 애초에 흉내 내기에 불과했던 거라며 금연 선언을 한 그녀였다. 등 뒤에서는 TV가 떠들어 대고 있었다. 뉴스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부러 시간에 맞춰 K방송사로 채널을 바꾼 것이다. 지명은 낯설었다. 하지만 생소한 단어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의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고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메인 뉴스를 차지했다. 아마도 이 일이 잠잠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특히나 특정 요소 같은 경우는 절대로 잊히지 못할 터였다. 부탄가스에서 시작된 화재 사고로 한 가정이 파괴되었다 까지는 그녀도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채 되지 않는 가정집들의 비밀이 속속들이 드러나자 오금이 저렸다.

 산불로 번진 화재 사고였다. 하지만 일가의 두 사람은 사고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었다. 아니 그런 듯 보였다. 20대 초반의 여자와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플래시 세례를 받는 걸 보았다. 20대 여자는 기자들을 향해 대뜸 자신은 살인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집 주변을 파보면 시체들이 나올 거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묘목을 심은 땅을 팔 때마다 오래된 시체들이 나왔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도 있었다. 매장 전까지 살아 있었음을 짐작케 할 만한 끔찍한 시체도 있었다. 사체의 일부분만 있는 것도 있었다. 짐승이 손 덴 흔적은 없었다. 처음에 은샘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하지만 자기 혼자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그중 한 명과 연락을 했다. 박나리가 아니었으면 그녀도 화재에 휘말렸을 것이다. 나리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의 일은 비밀로 하자고 했다. 우리는 어쩌다 휘말린 것이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라며.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꼭 그래서 입을 다물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 친구가 살인자 집단의 일원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라도 입을 놀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인생을 망치기가 싫었다. 그 집안은 엑스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죄인들을 납치해 살해했다고 한다. 2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은 이제 유령 마을이 되었다. 가족들의 죽음은 동행한 여자아이와 키가 엇비슷한 20대 여자가 밝혀야 할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폐쇄된 국가와 같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철저히 외부와 단절하고 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사회생활, 예를 들면 쇼핑이랄지 뭐 그런 건 하면서 산 것으로 보이고…… 외부 사람들을 상당히 적대시 생각했을 가능성이…… 사고 자체가 일반적인…… 최고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니겠어요? 가족이라고 하면 통념 이상의 비밀 유지가 가능하고 서로를…….

 그녀는 흑흑하고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날 편의점에 출근한 그녀의 얼굴에서 어떤 이상한 낌새도 없었다.

 부우웅. 나리는 조이패드를 잡은 팔이 가는 방향으로 몸까지 기울였다. 평면 브라운관 안에서 빨간색 스포츠카가 위험천만한 해변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 끊임없이 추격해 오는 통해 자칫 실수만 해도 추월당할 판이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구불구불한 도로 바깥에는 평온한 바다가 마치 박물관의 사파이어처럼 따듯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껏 집중을 한 그는 강아지처럼 뜬 눈으로 어깨까지 들썩여댔다.

 “이 게임 괜찮네.”

 그가 침을 삼켰다. 그러자 집중도가 떨어졌다. 2시간을 넘게 한 거 같았다. 피로가 몰려와 눈꺼풀을 양손으로 문질렀다. 마침 점심때라 중국집에 전화를 넣었다. 탕수육 작은 거를 시켜서 앉은 자리에서 해치웠다. 뱃속이 기름기 탓에 부글부글하는 거 같았다. 그는 콜라를 마시면서 자리에 앉았다. 강아지 흉내를 낸답시고 발톱으로 목을 긁으려 하다 발라당 넘어갔다. 캔에서 콜라가 엎질러졌다. 하지만 그는 흥미 없는 눈빛으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곧 사라질 거면서 탄산이 취이이하고 쓸모없는 짓을 했다.

 

 따르릉.

 “여보세요?”

 부식이 전화를 받았다.

 “좀비 남 씨 뭐 합니까?”

 “그냥 있지.”

 “저도 그냥 있었어요.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 그래?”

 말을 한 건 본인이면서 마음이 불편한 부식이었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되새겼다. 관계가 변했음을 직감한 것도 아니었다. 원래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그는 나리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3인방과의 재회와 같은 때였다. 3인방과 나리의 얼굴이 교차해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득 용문은 좀 괜찮은 인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만날래요? 밖에 나올 수 있어요?”

 “나가면 나가는 거지. 굳이…….”

 “저는 예의 바른 남자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요.”

 “어디서 만나지?”

 “정하세요. 제가 가죠.”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 택시가 있어.”

 “아뇨, 약속 장소에 가 있겠다고요.”

 나리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음성만 들으면 나무랄 데 없이 듣기 좋은 소리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변질되어 보였다. 사악함이 보이는 것이다. 자꾸 3인방과 비교해 보는 부식이었다. 3인방보다 마음이 편하지만 따지고 보면 훨씬 위험한 박나리. 그런 것이었다. 그는 나리 역시도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니까 알게 되는 것이었다.

 “혹시 팥빙수 좋아해? 내가 살게.”

 “이야 좋죠! 근데 형도 먹어야 해요? 나중에 설사를 하든 뭘 하든 간에! 이야 좀비 남과의 팥빙수라……! 먹는 모습 기대해 봅니다? 오늘은 심심하지 않겠네.”

 “좋아.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나도 먹는 연습을 좀 하고 있어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네요. 두 시간 후에 봐요.”

 “어.”

 “그리고 형?”

 “어, 왜?”

 “손목에 있는 그거 가리는 게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거예요. 좋은 뉘앙스는 아니잖아요.”

 “줄곧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마도요.”

 “알았어. 고마워.”

 전화를 끊고 부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멀뚱하게 서 있었다. 그는 뒷걸음질 치듯 물러나 창 쪽으로 향했다. 손으로는 손목의 빗금들을 만지면서 상가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초록색 방수 페인트 일색이라 눈요기는 되지 않았다. 개중에는 멋들어진 것도 있었지만 좀 먼 곳에 있었다.

 /././. 그는 문신을 생각했다. 영서를 생각했다. 그녀는 모를 몹쓸 짓을 생각했다. 문득 국밥집에서 범죄 모의를 한 걸 후회했다. 거기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결백하고 떳떳한 사람이었다. 만일 수상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는 피해자로 비칠 줄 알았다. 고통스러운 낯빛을 보면 잡혀 있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거듭 생각하면 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졌다. 거기 몇 개의 눈들이 그들을 지켜보았을까.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놓쳤던 시선의 총합은 몇 번이었을까.

 그러나 지금 그는 자유로웠다. 마을에서 나리가 말했다. 얻어 가는 게 있을 거라고. 부식은 진짜 얻었다. 그것의 의미를 파고들자면 괴롭지만 그는 얻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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