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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24. 왕
작성일 : 20-08-29 08:11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7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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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조등이 까만 대기를 익혔다. 바짝 삶아진 것들이 앞유리창으로 빨려 들어왔다. 용범은 딴 세상에 가 있었다. 아직도 은샘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남은 듯했다. 커브 길이라든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양이 빈대떡을 무리 없이 돌파하고 있음에도 그는 운전대에 없었다. 그는 은샘의 집에 있었다. 진짜 그녀의 집 말이다.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는 몰라도 그가 있는 곳은 바로 거기였다.

 실오라기가 가득한 털모자가 생각나는 곳이었다. 침대든 어디든 깔끔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레이스 달린 침대에 깔린 이불이 볼록했다. 다리를 배 쪽으로 모으고 옆으로 돌아누워 있을 터였다. 그는 두근 반 세근 반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다음에는 뭘 할지 정확히 모른다. 우선은 뒤에서 안고 있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향긋한 천국이 사라졌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불 안에 뭐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날뛰는 심장이 고함을 질러대는 걸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이 풀린 눈매에 잔주름이 몇 줄 패였다. 맞은편에 상향등을 켠 자동차 두 대가 차선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15미터 정도 거리였다.

 그는 후진을 하기 위해 뒤쪽을 살폈다.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장난감 차처럼 차가 뒤로 위이잉 하고 빠졌다. 마치 과속방지턱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운전대를 꽉 잡고 클랙슨을 누르는 자리에 얼굴을 처박았다. 어떡하다 이렇게 되었나 고민했다. 답이 나올 리 없었다. 눈을 험악하게 굴리고 있는데 입에서는 웃음이 실실 나왔다. 이번에는 견인차와 이즈레미 문신을 한 남자가 개기일식의 살인마처럼 각각 차선을 차지하고 있었다.

 글로브 박스에 눈이 갔다. 마취 총에 대한 생각은 1초도 안 걸려 번득 지나갔다. 설마 하여 필사적으로 뒤졌다. 마취액이 하나도 없었다. 낙인 수집은 힘들고 위험이 수반되는 일이라고 알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이렇게 보잘것없는 인간이거늘. 그는 이를 악문 채 손톱으로 핸들을 긁어댔다.

 ‘인간이 아니지. 나는 인간 따위라고 부를 수가 없지.’

 그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시체를 바라봤다. 턱을 더럽히고 있는 걸 닦아내려다 그만두었다. 앞가슴도 젖어 있었다. 문득 아까 노래방에서 여자에게 무슨 짓을 했을까 하는 게 궁금해졌다. 그는 룸미러와 사이드미러, 앞유리창을 번갈아 주시했다. 강행 돌파를 할 묘안이 딱 하나 있긴 했다. 문신을 한 원숭이 녀석에게 엉덩방아를 선사하며 달아나는 것이다. 고깃덩어리 위를 구르는 차체에 앉아 있을 걸 생각하면 기분이 더럽지만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었다.

 뼈 몇 군데 부러지는 데 그칠 수도 있었다. 더러운 아이디어를 낸 얼굴은 박살 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증거가 남기에 안 된다. 그는 신이지만 일단은 인간 세계에 살고 있는 반신이기도 했으니. 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후진이 아니었다. 남자는 반대쪽 차선에 있으니 차선을 변경해야 했다. 시원하게 받아버리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날이 밝을 때까지 어디서 짱 박히면 된다. 아니면 어디 모텔이라도 들어가 샤워를 좀 하고 쉬는 것이다. 시체는 그를 좋아하니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 병으로 인한 자신감은 아니었다.

 남자가 피해 주기만 하면 더없이 좋았다. 영화에 미쳐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나온 놈이 아닌 이상에야 작정하고 달려드는 차를 보고도 그 자리를 지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뿐 용범은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진로를 막고 있던 차량이 아까부터 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즈레미 남자가 창을 두드렸다. 용범이 아무것도 하지 않자 검지를 아래로 향하게 했다. 용범은 남자가 원하는 대로 창문을 내렸다.

 “내려.”

 남자가 말했다.

 “가족 차량입니다. 봐주세요.”

 용범이 말했다.

 남자가 차 안을 두리번거렸다. 조수석부터 보는 게 당연했다. 용범이 고개를 돌려놓았기에 침흘리개라는 사실은 비밀이 되었다. 남자는 뒤 좌석에는 관심이 없다가 뒤늦게야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개조된 차량인 걸 알고 어이없어했다. 뒤에 탄 둘은 군용 트럭에 실려 가는 군인처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무슨 일로 그러는 거죠?”

 “아, 타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들이라서 말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구할까 하는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어서 그러는데 순순히 차에서 내려 줄래?”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그런 제스처는 조심해 주세요. 제 아들딸들이 보면 오해를 한답니다. 심장을 뽑아갈지도 몰라요. 더욱이 저 같은 사람에게 접근을 할 때는 좀 더 예의를 차려야 한답니다.”

 용범이 큼지막한 눈웃음을 지었다.

 남자가 운전석의 손잡이를 때각 제겼다. 마치 자신이 지옥의 사자라도 되는 듯 과장되게 침착한 표정을 지으면서. 열린 문을 왼손으로 잡아 완전히 젖히며 엄한 데를 쳐다보면서 다른 손으론 용범의 멱살을 잡고 끌어냈다. 약간씩의 튜닝이 된 두 대의 차에서 각각 한 사람이 내렸다. 하나가 더 투입되어 둘이서 용범을 구타하기 시작했고 남은 한 사람은 승합차 검사에 들어갔다. 욕지기를 하면서 조수석 문을 연 그는 말을 무시하는 중년 남자의 코를 손으로 꾹 잡았다. 바로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진짜일지는 몰랐다.

 “시체, 씨발 시체야!”

 “뭐라고?”

 “야! 설치지 말고 하던 거나 잘해.”

 “시체라고!”

 이즈레미 남자가 용범을 감시하기로 하고 다른 사람이 차에 투입되었다. 뒷문을 여는 소리에 이어 안에 들어가는지 철판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덜렁거렸다. 그리고 비명과 함께 차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즈레미 남자가 바로 뛰어갔지만 토하는 소리만 내고 묵념에 들어갔다. 시체 발견자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때마침 비가 내려주지 않았다면 용범은 이번 일로 많은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세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재깍 비가 내려준 데에 감사했다.

 그는 짐칸 문을 닫았다. 문틈 사이로 진한 핏물이 흘러내렸지만 금방 빗물에 씻겼다. 그는 희석되고 있는 붉은 액체를 지켜보았다. 스마트폰 불빛의 도움으로 말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발견한 살점은 발로 걷어 차버렸다. 번호판을 달리 단 걸 괜히 확인을 해보았다. 오른쪽 팔에 미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거의 마을에 도착할 즈음 얼굴 한쪽에서 경련이 찾아들었다. 그는 차를 타고 진입로로 밀어 넣다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했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런 통증이었다. 마치 허공밖에 없던 팔꿈치에 강제로 철심을 박고 남의 팔을 심은 것처럼 말이다. 마취액이 생각났다. 일단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뼈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태이니 우선은 자가 조치다. 그는 떨리는 몸으로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갔다. 앞도 잘 분간이 안 될 만큼 시력 저하가 심했다. 장염을 온몸으로 앓고 있는 기분이었다.

 팔이 부러진 것 같은데 겨우 그것 때문에 이 지경이 된단 말인가. 고통 탓에 이를 갈며 화장실 찬장에서 약품 상자를 꺼냈다. 코를 찌르는 고기 썩은 내도 지금만큼은 구역질을 부르지 못했다. 그는 흡사 전날까지도 제 새끼처럼 돌보던 어린 염소의 다리를 아무 이유 없이 찢어발기는 표범과 같은 얼굴로 마취제를 놓았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무릎이 자꾸만 앞으로 튀어 나가려고 했다. 멀쩡한 손을 휘저으며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결국 고무통에 몸을 처박고 말았다.

 얼마나 잠에 빠져 있었을까.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그는 환한 형광등 불빛에 당했다. 마음이 너무도 평온해서 혼절하기 직전까지의 상황도 잊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무심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그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무인도에 표류된 사람처럼 갈기갈기 찢어진 바지 밑에는 약간의 살점만 겨우 붙은 하얀 뼈만 앙상했던 것이다. 두 다리가 다 그랬다. 팔은 부러졌던 오른쪽 팔꿈치에 미치광이 의사 솜씨의 뼈마디가 붙어 있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인데 부러졌던 팔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그는 팔의 개수를 세고 또 셌다. 세 개. 하지만 더 많은 셈이 필요했다. 주변에 널려 있는 건 그가 가지고 살던 두 개의 다리였다. 정확히는 무릎 밑 부분이었지만. 신체 일부였던 것이 식은 고깃덩어리가 되어 구더기에 지배당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별나게 느껴졌다.

 고무통의 시체는 완전히 죽어 있었다. 그가 넘어지면서 고무통을 안고 쓰러졌던 게 분명했다. 그럴 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무엇이든 믿지 못할 게 있겠는가. 완전한 호문쿨루스가 되기 직전의 시체는 단단히 토라진 것처럼 잇몸이 삭아서 사라진 아래턱을 완전히 비틀고 있었다.

 “내가 변성되었다고? 호문쿨루스와 내가 합…….”

 입으로 꺼내기도 민망했다. 하지만 그는 괴로워하기는커녕 허탈한 듯 웃어댔다. 이게 연금술사의 삶이기도 했다. 연금술의 금속 변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죽음이다. 이 부패의 단계를 거쳐야지만 돌멩이에 불과했던 것이 황금의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금속 내의 원자들이 성질을 바꾸는 것이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면서 즉 죽음을 맞이하면 새로운 생명의 시대가 도래한다. 진정한 가치를 가진 돌. 흔히 철학자의 돌이라고 일컫는 현자의 돌. 그 붉은 색 돌은 신에게 걸맞은 물질로서 주인에게 영원불멸을 선물한다. 그는 현자의 돌 자체가 되었다.

 그는 시체를 대충 고무통에 집어넣었다. 욕실 바닥 청소도 대충이었다. 수압으로 치우려 했으나 구더기는 제법 무거웠다. 사라졌던 자리에서 또 구더기를 발견한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구더기의 산란지! 그는 샤워기를 세면대에 던져놓고 옷을 벗었다. 앞으로는 긴 바지가 필수가 되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상관없이 다리만은 냉혈한이었다. 상의는 좀 고심했다. 한 팔꿈치에서 두 개가 튀어나온 걸 한 데 묶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큰 소매가 필요했다.

 결국 그는 속옷만 입은 채 밖으로 나갔다. 그는 몇 걸음 만에 호문쿨루스의 이름을 지었다. 첫 번째 호문쿨루스는 머리색에서 따와 금발이고 큰숙모는 센스를 발휘해 실종아동으로 했다. 오늘 채집한 죄인은 장차 호문쿨루스가 되면 정력왕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예정이었다. 오늘의 변성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메르세데스의 주인에겐 위치에 걸맞은 호칭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황제였다. 황제 다이어트의 준말이었다. 구더기들에게 얼마나 자상하고 자애로웠는지 모른다. 천사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썩어서 옆으로 드러난 이빨들은 펠라티오에 취약하단 건 기본 개념이니 탑재해야 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는 싱겁게 웃었다. 능글맞게 웃는 게 그리도 밥맛이었는데. 머리 벗겨진 50대가 선물한 팔다리가 그는 마음에 들었다.

 잽도 날려보고 발차기도 해 보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뿐하게 점프로 하고 도약도 해보았다. 현관을 박차고 나갈 때는 순간 스피드를 이용했다. 무엇이든 예전보다 잘 되었다. 80대 노인이 28살의 몸으로 돌아간 듯이 산뜻하고 황홀한 기분이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던 어제인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 문을 열었다. 조수석에는 얼굴이 뜯겨 나간 예비 정력왕이 있었다. 아래턱만 남은 목구멍에서 넘친 피가 시트를 더럽히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먹을 거 같더니. 먹성을 어쩐담.”

 실종아동은 마치 모성애가 부족한 아기 동물이 사육사를 바라보듯이 머리통을 돌려 갉아먹으면서 그를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금발은 머리 가죽을 성의 없이 씹고 있었다. 씹어 넘길 마음이 없는 까닭에 질긴 비계를 먹는 노인처럼 되새김질만 해댈 뿐이었다. 둘이서 20, 30대의 건장한 청년을 셋이나 말끔하게 먹어 치웠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는 머리 없는 시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육에 대한 흥미는 들지 않았다.

 그는 운전석에 앉은 채 스마트폰을 살폈다. 머릿속이 어찌나 맑은지 아드레날린 주사를 큰 거로 열 방 정도 맞은 기분이었다. 김현호라고 떠 있는 이름에서 설렘을 느껴야 한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전화를 넣었다. 신호음은 오래 갔다. 현호가 받는 게 아닌가 하여 쌉싸름한 생각이 번져갔다.

 “여보세요……?”

 “어! 은샘 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용범의 표정이 어두웠다. 눈웃음이 가신만큼 두 눈에서는 푸른빛을 띠는 듯한 만월이 두둥실 떠올랐다. 가늘게 누워 있는 눈구멍에서 동공이 핑퐁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나길 여러 번이었다. 상대는 여자가 아니었다. 어딜 봐도 남자가 여자 흉내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요?”

 “누구냐, 너?”

 “은샘이요.”

 상대는 최대한 말을 줄였다. 들키지 않으려 함이리라.

 “거기 어디야? 마을이야?”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예.”

 “집이고?”

 “예.”

 “보나 마나 현호네겠지?”

 “오브콜스!”

 “기다려.”

 “네.”

 용범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생명을 가진 것들이 발산한 죽음의 냄새를 흠뻑 들이마셨다. 벗은 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랐다. 그가 오른팔을 움직이자 팔꿈치에서 삐져나온 뼈다귀가 축 늘어진 페니스처럼 덜렁댔다. 뼈다귀가 그의 손등에 손을 포개려 들었다.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위팔뼈가 빨래처럼 감기는 듯했다. 괴상한 느낌이었다.

 두 개가 하나가 되는 걸 기다렸다. 상상 속에서의 이런 상태는 배로 강한 힘을 갖게 되는 밑천이다. 어디까지나 환상이지만. 그는 두 다리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마치 절단한 다리에 최첨단 의족을 연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로 쭉 밀면 페달이 있는 하단부에 구멍도 뻥 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는 할 일이 없어진 시체를 돌아봤다. 만약 이 스마트폰을 오늘 이때 버려야 한다면 저 목구멍에 넣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대로 쓸 만한 것이기에 참는다. 대신에 현호에게 볼 일이 좀 있었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우선의 목적은 거기에 있었다. 김현호. 요 근례 분 불행의 전염병에 그 이름이 궤적을 그리고 있다면,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 있을 예정이었다.

 굳이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시동을 걸었다. 잠깐 동면했던 쇳덩이가 눈을 떴다. 기분이 좋은지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안광을 발했다.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집 현관을 태울 것처럼 밝혀댔다. 보닛에서 입김 같은 연기가 들끓었다. 석탄을 퍼 넣은 홀로코스트 행 열차처럼 배기구에서 검은 연기가 으르렁거리며 토해졌다. 차는 보도를 따라가다가 연석을 내려가면서 털썩거렸다. 두 번째 들썩거렸을 때 그의 커다란 이빨들이 딱 하고 부딪혔다.

 “아야.”

 그가 크게 웃었다.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다. 힘이 넘치고 기운이 샘솟았다. 룸미러를 통해 본 대두는 일생에서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매력적인 인간이었다. 91년생 김용범이라는 사람의 28년 동안의 모습 안에서도. 김용범이라는 사람이 28년을 살면서 보았던 모든 사람 중에서도.

 엄청난 굉음이었다. 반사적으로 핸들을 폭음의 반대 방향으로 비끄러맬 수밖에 없었다. 조수석의 시체가 앞으로 넘어가 자세를 바꾸다 발판 쪽에 끼었다. 좌석 뒤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용범은 석상처럼 굳었다. 눈웃음 형태로 굳어진 눈 근육이 깎아지면서 눈구멍이 커다랗게 변했다. 흰자의 둥그스름한 면이 얼마나 드러났으면 뒤통수에 손만 데도 눈알이 튀어나올 거 같았다.

 집이 전소되고 있었다. 굉음으로 미루어 보건대 뭔가가 폭발한 것이다. 휴대용 가스버너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현호 집에 그런 게 좀 쟁여 있을 것이었다. 그는 은샘의 전화를 두 번 받았고 첫 번째 건 것은 확실히 그녀였다. 불의 기세로 보건대 주변 집까지 번질 거 같았다. 집집마다 꽤나 떨어져 있지만 주변 일대가 산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많은 사람의 얼굴이 지나갔다. 맨 끝에 진리의 얼굴이 걸렸다. 하지만 그는 외면하듯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엑셀을 밟자 유흥가의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창에 어렸던 불의 그림자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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