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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후계자는 네가 해
작가 : 박시인
작품등록일 : 2020.8.4

묻혔던 비밀과 얽히고설켰던 사연들이 드러난다.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내라고 등 떠밀렸는데, 맞서는 대적자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 이 검왕의 아들과 그를 제자로 삼았던 천마의 후예는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음모에 빠졌을 때에도 갖가지 기연을 만나게 되는 제법 운이 좋은 사내. 또 고난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의리와 헌신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려 애쓰는 올곧은 의식의 소유자,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

 
#9. 그가 고통의 세월을 견딘 까닭
작성일 : 20-08-29 06:36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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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가 고통의 세월을 견딘 까닭

 

 

 

  “이제 미약에 중독되어 놀림감이 되겠구나!”

  자신에게 낙담하는 기색이었다. 표정에 처연한 우수가 함께 번졌다.

  “이제 내 하찮은 자긍심조차 사라지게 생겼구나. 그렇다면 아하! 이따위 생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순간 자기 목을 쳐버리려는 듯 등 뒤의 한성검을 뽑아 들려 했다.

  당영영의 몸이 빠르게 펄럭였다. 순식간에 그 팔꿈치 곡지혈과 어깨의 견정혈을 찔렀다. 단전의 기해혈과 목덜미의 풍부혈까지 빠르게 한번 쳤다.

  이어지는 음성이 다급했다.

  “소왕야께서는 존귀한 신분!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얼굴이 더 붉어진 주유곤이 소리쳤다.

  “존귀한 신분? 웃기지 마라! 내 신세는 고아와 같다.”

  예상치 못했던 대꾸에 당영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멈칫거리지는 않았다. 그림자처럼 움직여 주유곤의 불룩거리는 목젖 울대 돌출혈과 갈비뼈 쪽의 장문혈을 찔렀다.

  피하지 못할 만큼 빠른 신법이었다.

  혈도를 찔리자마자 목젖에 무엇이 치밀어올랐다. 쿨럭, 짙은 가래 한 움큼을 창가 휘장 쪽으로 토해냈다.

  그러나 몸이 춥고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이 차갑고 따뜻한 기운이 사타구니 회음혈에 몰려들어 충돌하기 일보직전(一步直前)이었다.

  당영영은 이런 것도 다 아는지 다시 그의 기해혈과 허리 뒤 명문혈을 찔렀다.

  혈도에 내닫는 기운이 조금 사그라지는 것을 감각 할 수 있었다.

  그러자 주유곤이 비장하게 말했다.

  “당 소저는 나를 더 욕보이지 말고 이 혈도를 푸시오.”

  “왜요? 십 오륙 전의 검왕처럼 스스로 목을 칠 시도를 해보시려고요?”

  낯선 말이었다.

  상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빈정거림이 섞였다고 얼마든지 까탈스럽게 여길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문하는 주유의 음색에 노여움이 가득했다.

  “너는 지금 내 존부까지 모욕하려는 것이냐?”

  “감히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럼 네 그따위 어법은 무엇이냐?”

  당영영이 손가락을 한번 짚어 시간 계산을 해보더니 대꾸했다.

  그 얼굴에도 희고 붉은빛이 번지고 있었다. 그러나 태도는 단정했다.

  “이제 시간이 일각(一刻: 약 1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이오?”

  “소왕야의 혈맥에 치닫는 기운을 묶어둘 수 있는 시간 말입니다.”

  의식이 멀쩡한 사람처럼 무슨 뜻이냐고 묻더니 대답을 듣자 돌연 또 어투가 난폭해졌다.

  “어서 사죄하라! 그렇지 않으면 존부에 대한 모욕감 때문에 내가 치를 떨다 죽게 생겼다.”

  당영영은 냉정했다.

  얼굴과 음성까지 차갑게 변해서 말했다.

  “사죄할 일이 아닙니다! 자중하시지요!”

  “그렇다면 까닭을 설명하라!”

  “그때 검왕은 심각한 내상을 입은 채 사천 당문(唐門)을 찾아왔었답니다.”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란 주유곤의 안색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방금까지도 존댓말과 반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 내뱉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심정에 격동을 일으켰으나 자기 부친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걸 가라앉혔다.

  대응하는 어투도 정중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심사가 수시로 변할 것이라고 당영영은 이미 예측했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자신을 억눌러 가라앉히는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은근히 감탄했고 조금 놀라기도 했으나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음양주를 함께 마신 자신의 호흡도 차츰 가빠지는 것은 드러내지 않았다.

  “운남국에 들렀다가 남해를 거쳐 사천에 오시는 중이었답니다. 그런데 그만, 암습을 받으셨다지요.”

  “아! 저런!”

  주유곤은 안타까운 탄식을 터뜨렸다.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젖먹이를 지날 때까지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움이 번질 때면 검왕부의 대청에 걸려있는 초상화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곤 했으나 실제의 얼굴은 아련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부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전해 듣자 사무침이 치밀어올랐다.

  “혈맥이 뒤틀려 있었고, 알 수 없는 독의 침입을 받았으나 치료할 시간을 놓치셨답니다.”

  “아아!”

  신음과 같은 탄식의 호흡이 다시 이어졌다.

  또 쿨럭, 가래를 토하더니 동시에 쫘악, 한 자락 피 화살까지 내뿜었다.

  자기 아버지의 소식에 피까지 토해내다니!

  조금 놀란 당영영이 빠르게 막았던 혈도를 풀어줬다.

  건네는 말이 다급했다.

  “진정하십시오.”

  “괜찮소. 피를 토했더니 시원해졌소.”

  음성은 훨씬 차분해져 있었다.

  그러나 눈빛이 이상하게 번들거렸다.

  “그 사연을 더 듣고 싶습니다.”

  당영영은 눈빛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고 있었다. 조금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독에 침해를 당했으나 시간을 놓쳤으니 어쩌겠어요?”

  “소생은 그 부분에 문외한이오.”

  “당시 검왕은 사천 땅을 지나시는 중이었고 또 사천에는 또 독문명가 당씨 세가가 있지요.”

  주유곤이 다급하게 되물었다.

  “설마 존부께서 최후의 수단으로 이독치독(以毒治毒: 독으로 독을 다스림)의 방안을 취하셨더란 말입니까?”

  “그걸 당문일절(唐門一絶) 당진진, 제 당고모께서 음양비법으로 대치하셨고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주유곤은 알아들었다. 당황한 음성이 이어졌다.

  “어찌 그러실 수 있었답니까? 그건 일생의 결단이셨을 텐데요?”

  후, 한숨을 내쉰 당영영이 차분하게 말했다.

  “당시 제 당고모께서는 혼자의 마음속에 검왕을 깊이 사모하고 계셨답니다. 그러나 그는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고, 붙들려 해도 붙들 수 없었던 분. 그런데 그런 급박한 상황이 닥쳐왔던 것입니다. 기꺼이 자기 몸을 내놓으셨고요.”

  주유곤이 머리를 흔들며 되물었다. 어색한 음색이었다.

  “음양비법에는 무슨 묘한 비결이 들어있을까요?”

  “우리도 음양주를 나눠 마셨으니 곧 알게 됩니다. 시간이 됐군요.”

  순간 귓가에 괭― 징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천장이 빙그르르 돌며 내려앉았다.

 

  눈을 뜨니 이미 날이 밝아있었다.

  옅은 휘장 안의 침상에 눕혀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누운 자리 옆에 한성검이 놓였고, 옷은 정갈한 백색 장삼으로 갈아 입혀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정신을 잃고 옷을 벗겨졌었단 말인지.

  얼핏 얼핏 지난 밤의 일이 떠올랐다.

  당영영의 벗겨진 희고 매끈한 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장문혈과 영태혈을, 또 한 손으로는 기해혈과 회음혈을 가만가만 쓰다듬던 일. 그러자 알 수 없는 기운이 혈맥에 뻗쳐 난폭하게 그 허리를 끌어안고 뒹굴며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는.

  그 장면들이 떠오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침상 모서리에는 당영영이 걸터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그 동작에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교태가 들어있었다.

  엊저녁의 흰색 옷은 연한 녹두색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그 색상이 당영영을 무척 우아해 보이게 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

  “다행히, 한 개의 관문을 또 통과하셨어요. 어서 운기해 보세요.”

  무슨 대꾸를 하려 하자 자기 입술에 댔던 손가락으로 주유곤의 입술을 막았다. 장삼 옷깃을 바로잡아주며 속삭였다.

  “어서 운기조식해서 내력을 일주천시키세요. 특히 장문혈과 영태혈에 음양주의 취기가 맺혀 있는지 살피시고요. 저는 준비할 게 있어서 반 시진 후에 오겠습니다.”

  무엇을 준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우선 침상에 가부좌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렇게 묘시(卯時: 5시부터 7시 사이)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뜨자 차반을 받쳐 든 당영영이 앞에 서 있었다.

  “어서 이걸 드세요. 제가 반 시진을 다렸습니다.”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았다.

  약간 뜨거웠으나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 태도를 보며 당영영의 마음이 묘하게 설렜다.

  냄새도 맡아보지 않아? 내용물이 무엇인지 살피지도 않고? 그냥 내가 주는 대로 마셔 버려? 이건 이 사내가 내 정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거잖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건 당영영 혼자의 생각이었다. 이게 착각인들 어떠리오, 그런 심정도 들었다.

  상큼한 발성이 이어졌다.

  “그 약은 사천당문의 비방이에요. 상하고 지친 간과 담과 위를 어루만져주지요.”

  주유곤은 대답도 없이 가만히 당영영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 참!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시는군요. 곧 놀랄 일이 생길 텐데요.”

  “소저가 내 입을 막지 않았소? 그러니 입 닫고 있을 수밖에.”

  “어머? 그런 장난의 말씀도 하시나요?”

  그 대꾸를 듣자 주유곤도 이상했다.

  평소의 우울했던 심정이 많이 사그라진 느낌 때문이었다. 심신에 활기가 돋아났다.

  운기조식하면서 이미 느끼긴 했다. 내력 운용이 훨씬 편해졌는데, 특히 장문혈에 진기가 막히고 부딪는 현상이 훨씬 줄어들고 있었다.

  “글쎄 말입니다. 말을 하고 나서 나도 놀랐네요.”

  당영영이 얼굴에 매화를 하나 가득 피워 올렸다.

  “아주 좋아요. 그 관문을 아주 잘 통과하셨네요.”

  그 말을 듣자 주유곤이 정색했다. 은은히 자책하는 기운이 스며 나왔다. 부끄러움이 배어 있었고, 무엇이든 책임지겠다고 담담히 각오하는 기색이었다.

  이어진 발성에는 사무침의 여운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몸이 무뢰한처럼 소저를 겁탈하여 신세를 망쳤으니 이를 어쩌면 좋으리오! 하늘을 향해 낯짝을 들 수 없도다!”

  그런데 대꾸하는 당영영의 음성이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당찼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이는 다 예정돼 있던 일이니 마음에 담아두실 필요가 없습니다. 소녀도 소왕야와 함께 난관을 넘어섰으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이제 일 년 후면 이곳에서 영웅대회가 열립니다.”

  “영웅대회요?”

  “네, 그때 이 일의 까닭도 알게 되실 테니 참아주소서.”

  그 일은 더 거론할 필요 없다는 듯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침상에 드리워졌던 휘장을 벽 쪽으로 밀어서 젖혔다.

  “이분이 상관 영웅이세요.”

  “뭐라고요? 그분의 시체를 천으로 감싸놓은 것입니까?”

  “놀라지 마세요. 아직 살아계십니다.”

  벌떡 일어선 주유곤 앞에 펼쳐진 형상은 과연 처연하고 기괴했다.

  마치 지게처럼 생긴 등걸에 기댄 듯, 매달린 듯 앉아있는 인물이었다.

  얼굴과 손과 발만 남겨놓고 온몸이 온통 흰색 붕대로 두껍게 감싸져 있었다.

  주유곤이 부르짖었다.

  “아아! 이 얼마나 참담한 형상입니까? 의백부님이시여!”

  당영영이 차분하게 설명해줬다.

  “그분은 지금 듣지도 보지도 못하십니다.”

  “아예 감각이 없단 말입니까?”

  “그건 모릅니다. 진시(辰時: 7시에서 9시 사이)에 일각(一刻) 정도 깨어나실 뿐이지요. 십오 년을 그리하셨답니다. 그때 말씀 나누십시오.”

  묵묵히 듣던 주유곤이 되물었다.

  “당문의 독을 사용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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