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무협물
후계자는 네가 해
작가 : 박시인
작품등록일 : 2020.8.4

묻혔던 비밀과 얽히고설켰던 사연들이 드러난다.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내라고 등 떠밀렸는데, 맞서는 대적자가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 이 검왕의 아들과 그를 제자로 삼았던 천마의 후예는 결국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음모에 빠졌을 때에도 갖가지 기연을 만나게 되는 제법 운이 좋은 사내. 또 고난을 겪을지라도 끝까지 의리와 헌신의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가려 애쓰는 올곧은 의식의 소유자, 그런 주인공의 이야기.

 
#8. 검림(劍林)을 뚫든가, 도화림(桃花林)을 건너든가
작성일 : 20-08-28 09:01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538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8. 검림(劍林)을 뚫든가, 도화림(桃花林)을 건너든가

 

 

 

  주유곤은 여자들의 설레는 마음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었다.

  잔을 훌쩍 비우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 의백부께서는 정말 돌아가신 것이오?”

  그러나 당영영은 자기 앞에 놓인 잔을 홀짝 비운 다음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무릇 하룻밤은 짧아도 정애(情愛)는 하염없는 법! 왜 서두르시나요?”

  암시를 담은 말인데 주유곤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잔을 내려놓지 않고 다시 물었을 뿐이었다.

  마치 토끼 한 마리를 잡아채려고 노려보는 올빼미 같았다. 집요했다.

  “내 의백부께서 정말 돌아가셨소?”

  그러거나 말거나 당영영의 대꾸는 묘했다.

  “소왕야가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맞을 수 있을지요.”

  그다음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주유곤이 다그쳤다.

  “뭐라고 하신 것이오? 뜻을 알 수 없군요.”

  발성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이건 올빼미가 날개를 접고 가만히 토끼굴을 노려보는 지혜가 아니었다.

  전혀 티를 내지 말아야 했는데 침착함을 잃은 모습을 노출하고 말았다.

  상대의 감춰둔 패는 보지도 못했는데 자기 패를 먼저 내보이다니!

  경험 미숙을 드러냈다.

  그런 심정으로 묵묵히 맞은편 잔을 채워주자 또 아련한 음성이 건네왔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에서는 곧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 말을 듣고 이번에는 침착해지기로 했다.

  굳이 상관보주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도 이제는 중요한 일 같지가 않았다. 위기감이 생겼다.

  그렇다고 다시 또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담담히 되물었다.

  “어떤 위험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런 담담한 태도를 보자 당영영이 오히려 조바심이 난다는 듯 걱정스럽게 말했다.

  알 수 없는 여인이었다.

  어떤 사연 때문에 이러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다만 걱정하는 음성에 거짓은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은 검림(劍林: 칼의 숲)을 뚫고 나가야 할 테지만 그 전에 먼저 도화림(桃花林: 여인들의 유혹을 뜻하는 은유)을 통과해야 하니 이를 어쩌면 좋지요?”

  주유곤이 냉철하게 말했다.

  “함정에 빠졌을 땐 창칼의 숲까지 앞을 가로막는 법! 그런데 도화림은 또 뭡니까?”

  당영영이 비 맞은 매화꽃 같은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음색에도 쓸쓸하게 풀죽은 기색이 느껴졌다.

  “거친 바람이 부는 허허벌판에서 필요한 건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그게 뭘까요?”

  “기대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임풍옥수(臨風玉樹).”

  “그러니까 그 바람막이 나무가 이 몸이라는 뜻입니까?”

  대꾸하지 않은 당영영은 알 수 없는 말을 또 뱉어냈다. 음색이 점점 우울해졌다.

  “세상에는 결핍을 지닌 여성들이 많습니다. 그 임풍옥수의 수액(樹液)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도 있고요.”

  주유곤은 문득 현의용녀의 충고가 생각났다.

  자신의 신분 때문에, 강호에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강호인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리라는 말이었다.

  만약 어떤 허튼 소문이 번진다면 걷잡을 수 없다고도 했다.

  그 말속에는 헛된 생각을 품은 날파리들까지 들러붙을 거라는 뜻이 포함돼 있었다.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 것인가? 내 혈맥에는 태생적으로 대력열화신공의 기운이 스며들어있다. 이게 나를 도화림의 올무에 빠뜨리는 딱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단 말인가?

  문득 냉추하가, 서문옥연이, 진상설이 자기를 바라보던 눈빛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등소연의 표정도 떠올랐다.

  또 의미는 다르지만 자기 어머니는 어떻고!

  자신의 외형을 보면서 그 아버지의 영상을 떠올리기를 잘했다는 건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보며 느끼는 심정의 사무침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생각해보면 가엾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여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지.

  자기 부친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내였다고 들었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맛본 결핍을 다른 종자들은 알 리가 없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뭇 여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지겨워졌다.

  짜증 섞인 발성이 튀어나왔다.

  “하룻밤 내 노리개가 돼도 기꺼운 것들이 있다는 말인가? 남은 평생, 어찌 하늘을 대하려고!”

  이번에도 당영영의 대꾸는 담담했다.

  마치 인지상정의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어법이었다.

  “사람은 본래 악하고 하늘은 무심하니 그들은 그걸 상관하지 않는 겁니다.”

  “낯선 말이로다. 하늘이 무심하다는 건 알겠으나 사람도 선(善)하지는 않다?”

  “어떤 아름답지 않은 일 앞에서 사람들은 아주 조금 삼가기는 하더군요.”

  “당연한 일 아닌가!”

  “자신이 쌓은 교양과 받은 훈계를 떠올리면서요.”

  “왜 번거롭게 말을 끌고 있소? 방금 내가 당연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곧 본색을 드러내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더이다. 하늘은 그냥 지켜보기만 할 뿐이고요.”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당영영은 제법 많은 독서량을 가진 사람의 식견을 내보였다.

  그러나 주유곤이 볼 때는 그 식견도 치우침을 벗지 못한 것이었다.

  자기 안목을 일반화해버리는 것.

  가소로웠다. 발성을 빙글 돌렸다. 빈정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소저가 원하는 건 뭡니까?”

  “저는 다만 간절할 뿐입니다.”

  “무엇이 간절하다는 거요? 소저께서도 결핍을 지니시었소?”

  당영영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있다가 눈을 뜨며 말했다.

  “소왕야께서는 제가 겪은 시간 속 이야기를 들어주실 뜻이 있으신가요?”

  처연한 음색이었다. 반드시 털어놓아야 할 말 같았다.

  들을 뜻을 묻는 말에는 결연한 억양이 들어있었다.

  이상했다. 주유곤의 심정도 함께 처연해졌다.

  꼭 들어줘야만 할 사연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모를 일이었다.

  머릿속에서 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정신이 말갛다가 흐려지며 야릇한 충동이 돋아나왔다. 불쾌한 끈적거림은 아니었다.

  그걸 지그시 억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제 앞에 마주쳤던 바람들이 말해줬죠.”

  “바람들이요? 얼마나 많은 환난을 겪었기에 그런 표현을 하는 겁니까?”

  당영영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던 말만 이어갔다.

  “누구의 가슴에라도 손톱 스쳐 간 자국은 있는 것이니.”

  순간 주유곤은 자기 가슴이 후벼 파이는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안타깝게 되물었다.

  “그래서요?”

  “이를 들춰내지 않고 껴안아 덮으면!”

  “그러면?”

  돌연 억양에 강세가 들어갔다.

  “다쳤던 것은 아물어 역사가 되고!”

  “그게 어찌 역사가 될 수 있단 말이요?”

  주유곤의 반문하는 억양에도 강세가 들어갔다. 내뱉는 말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건 보이지 않는 결핍감의 표출이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얼굴도 가물가물한 존재라는.

  그러나 당영영은 그걸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괴로운 심사를 아는 현인처럼 부드럽게 말했을 뿐이었다.

  “기억들 또한 잠들어 가만히 숨 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유곤은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몇 마디 말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벼락같이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 질렀다.

  “닥치시오!”

  여태 그가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난폭함이었다.

  벌떡 일어나 부서진 탁자를 걷어차는 동시에 당영영의 손목을 낚아채려 했다.

  당영영은 몸을 숙이지도 일어서지도 않았다. 의자에 앉은 그대로 미끄러지듯 몸을 피했다.

  조용히 이어지는 음성은 놀라지도 않은 것 같았다.

  “소왕야께는 이제 두어 번의 관문만 남게 됩니다. 자중하시지요.”

  주유곤이 잠시 정신을 차린 듯 거칠게 되물었다.

  “두어 번의 관문이 남았다니, 그건 무슨 뜻인가?”

  “왜 격동이 일어나셨을까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격동이 일어났느냐고?

  그러나 이 격동의 까닭은 생각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야릇한 충동이 이어졌다. 가슴은 또 쓸데없이 쿵쾅거렸다.

  새삼 당황스러웠다.

  침착하려 애쓰며 빠르게 되물었다.

  “이 까닭을 소저는 아신다는 거요?”

  “간단해요. 우리가 음양주(陰陽酒)를 같이 마셨으니까요.”

  “음양주? 그건 또 뭐요?”

  당영영은 다그치듯 묻는 말에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조곤조곤 설명해주듯 자기 하던 말만 이어갔다.

  “제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일 년 전입니다. 그 전의 십사 년 동안은 당문일절(唐門一絶) 당진진(唐陳陳), 제 당고모(堂姑母)께서 상관보주를 돌보셨답니다.”

  “그러니까 사천당문에서 십오 년 동안 제 의백부를 보살폈다는 말입니까? 어찌 검왕부가 관여하지 않았을까요?”

  “검왕의 뜻이었답니다. 그 전에 제 당고모께서는 검왕과 음양주를 나눠 마셨고요.”

  주유곤은 급격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야릇한 충동이 자꾸 북돋아졌다.

  가능하면 당영영에게서 떨어지려고 몸짓을 추슬렀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분명 진진설이 준 해독 영단을 먹었는데?

  몸에 번지는 기운이 이상해서 불쑥 물었다.

  “술에 독을 넣으시었소?”

  “아니요.”

  주유곤은 과연 순수한 사내였다. 의심하지 않았다.

  그 대답을 듣고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말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내 몸속에 번지는 이 야릇한 기운의 까닭은 무엇입니까?”

  당영영이 새삼스럽다는 듯 주유곤을 바라봤다.

  “소왕야는 과연 군자시군요. 그 언사가 솔직하며 아량은 크고 활달합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주유곤은 자신의 결연함을 감추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어서 사실이나 말 하시오.”

  언사는 거칠지 않았다. 하지만 어투가 분명했다. 자신은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의외의 박력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영영이 다소곳이 대답했다.

  “독은 아닙니다.”

  “그럼 뭐요?”

  “다만 그 술의 성질이 심령을 미혹하는 것이니 심신을 걷잡지 못하게 될 뿐입니다.”

  “무엇이라? 미약(媚藥: 심신을 홀리는 약)을 넣었다는 건가?”

  당영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연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소왕야께서는 이제 그 심신의 관문을 뚫으셔야 하는 겁니다.”

  “알 수 없는 말이로군. 심신의 관문을 뚫어야 한다니?”

  “교양이 쌓인 마음에서는 거부할 테지만, 몸은 지금 여인이 필요할 테니까요.”

  “이건 또 무슨 더러운 수작질이오?”

  “그 관문에 들어서지 않겠다면 혈맥이 부풀다가 결국은 터져버리게 됩니다.”

  그 말을 듣자 돌연 주유곤이 탄식을 했다.

  “주유곤아! 딱하구나! 네 허장성세가 네 삶을 망쳤도다!”

  순식간에 변한 분위기였다.

  자신에게 왜 그런 심리적 충동이 일어났고, 자신이 왜 그런 자책의 말을 뱉어내는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붉어지는 얼굴에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눈빛에서는 붉고 푸른 빛이 돋아나왔다.

  알지 못할 충동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또 다른 심사가 돋아났는지 거칠게 중얼거렸다.

  “아비의 손길도 제대로 못 느꼈다는 결핍감에 시달린 삶.”

  주유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21. 의지할 대상은 누구인가 2020 / 9 / 30 268 0 5342   
20 #20. 남해신궁(南海神宮)의 등장 2020 / 9 / 28 277 0 5292   
19 #19. 무릇 어설픈 그릇에는 보배를 담지 않는 … 2020 / 9 / 25 251 0 5595   
18 #18. 아프냐? 나도 아프다. 2020 / 9 / 23 260 0 5323   
17 #17. 저 아이가 애처롭지도 않은가? 2020 / 9 / 19 252 0 5576   
16 #16. 건방진 거야, 개성이야? 2020 / 9 / 18 256 0 5345   
15 #15. 이 번뇌를 누가 알랴? 2020 / 9 / 15 271 0 5208   
14 #14. 자식은 낳기도 하고 얻기도 하는 법 2020 / 9 / 15 268 0 5609   
13 #13. 이 몸을 또 한 번 내놓으라고? 2020 / 9 / 10 276 0 5107   
12 #12. 기회인가, 덤터기인가. 2020 / 9 / 8 280 0 5656   
11 #11. 소림사로 가기 전에 2020 / 9 / 3 264 0 5476   
10 #10. 너는 닥치고 내 말을 들어라 2020 / 9 / 1 261 0 6125   
9 #9. 그가 고통의 세월을 견딘 까닭 2020 / 8 / 29 261 0 5223   
8 #8. 검림(劍林)을 뚫든가, 도화림(桃花林)을 건… 2020 / 8 / 28 265 0 5386   
7 #7. 이상한 여인 2020 / 8 / 26 285 0 5374   
6 #6. 그의 생사 확인도 중요하다, 그러나 2020 / 8 / 25 269 0 5282   
5 #5. 과연 만만치 않은 전대고수의 관록 2020 / 8 / 21 270 0 5121   
4 #4. 얼핏 지나쳤을 그 일도 알고 보니 사무침… 2020 / 8 / 13 277 0 5385   
3 #3. 고달픔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대의 염원은 … 2020 / 8 / 12 269 0 5309   
2 #2. 그래서 요구사항이 뭐요? 2020 / 8 / 8 281 0 5354   
1 #1. 의혹의 끝자락에 있는 것은 2020 / 8 / 4 460 0 520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