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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壬辰倭亂
작가 : 미스테리
작품등록일 : 2020.8.24

임진왜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전쟁이지만 현재의 세상은 너무나 그와 닮아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속에서 잘못된 역사날조 밎 왜곡의 잘못도 함게 알리며 극단적으로 치우쳐진 임진왜란의 영웅들과 악역들의 배치 밎 인격을 바로잡는 작품을 발표하기로 한다!!~

 
선조의 전쟁준비 계산
작성일 : 20-08-27 11:39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7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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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는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 후, 그래도 역시 가까운 시일 내 전쟁날 건 거의 확실한 지라 가끔씩은 유성룡이나 황윤길 등 전쟁이 일어날 걸 예측한 신하들을 불러서 대책을 논의해보기도 했다.

 특히, 유성룡은 너무나 쉽게 전국동원령을 풀어버린 선조에게 다시금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청을 드리기도 했는데…?!

 

 “전하, 새로운 해가 되었으니 얼른 다시 전국동원령을 해야 할 때인 듯 하옵니다.”

  “전쟁 얘기요? 나도 그건 아오. 하지만 그 동원령은 이번 가을까지 기다렸다가 추수가 끝난 후에나 다시 하도록 합시다.”

  “하오나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시일이 너무 촉박한지라~”

  “지금 그렇잖아도 바닥난 국고에 농번기에 백성들을 동원하면 백성들 자신도 굶주리게 되지만, 세금이 전혀 걷히지 않아 나라가 도산할 거요. 그러니 때와 장소를 가리자는 것 뿐이오.”

  “그야 그렇습니다만…”

  “경의 말씀이 틀렸다고 나 생각 절대 안하오!!~ 전쟁은 날 게 확실하오.”

 

 선조는 유성룡에게 자신이 간밤에 꾼 꿈에 대해 알려주었다.

 

 “허어, 그러하옵니까? 그럼 역시 왜국에서 쳐들어온다는 예지몽이 아니옵니까?”

  “그야 그렇겠지요.”

  “천지신명께서도 이 나라에 미구에 닥칠 변란을 그렇게 예고해주셨으면 서둘러 대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니옵니까?”

  “아니 나도 그건 아오. 단지…”

  “?”

 

 선조는 예상은 하고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는 듯 지긋한 음성으로 이런 설명을 잇는다.

 

 “왜변 전쟁이 날 건 내가 보기에도 과연 확실해 보이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빨라야 5년 후쯤으로 보이니, 지금 당장 먹고 살기 바쁜 백성들을 갈구어서 군병 만들고 성이나 병기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오. 아직 적어도 4번 이상의 농한기가 있을 테니 그 기한 동안 꾸준히 병력을 증강하고 훈련하고 성곽을 보수하도록 합시다~”

  “모두가 하나가 틀린 데가 없고 다 맞는 말씀이긴 하오나… 과연 최소한 5년이나 지난 후에 전쟁이 날지…”

  “이미 알아본 바요. 해몽을 해준 유명한 판수도 길게 잡으면 십 년이 걸리겠다고 해주었다오. 물론 실제론 그렇게까지 오래 가진 않겠지만 최소 사 년은 걸릴 게요. 왜국에 가끔 드나드는 명나라 상인들에게 조사한 바론, 일본의 풍신수길은 바로 작년 초여름에야 전진기지로 쓰기 위해 조선 건너편 항구인 명고옥에 성을 쌓고 있다고 하오. 일본의 성은 우리 조선성보다 훨씬 높고 화려하게 짓는 것이 보통인 만큼, 건축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명고옥 성은 작년 여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면 최대한 빨라야 4년 후 늦가을쯤이야 완공된다고 하오.”

  “허, 그러하옵니까?”

  “하지만 늦가을에 어떻게 전쟁을 하겠소?? 곧 겨울인데?~ 특히 왜국은 우리 조선보다 훨씬 따뜻한 땅이라 겨울에 전쟁을 벌이면 얼어 죽을 텐데… 그런즉, 그 이듬해 봄이나 되어야 우리 조선으로 침공할 것이 확실하오. 그런즉, 왜변은 필시 5년 후 봄이나 나겠지요… 더구나, 왜군들이 바다를 건너오는 시간과 그럭저럭 타고 올 배를 만들고 무기까지 만드는 시간까지 합하면 십 년 후쯤이나 날지도 모르지요.”

 “….”

 

  유성룡은 임금 선조의 의견에 대해 반박할 말은 궁하였다. 너무나 그의 이론은 현실을 제대로 본 타당한 수학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인들, 후일 도요도미의 전진기지인 나고야 성이 그렇게 빨리 완성될 줄 어떻게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은, 바로 그 해에 전쟁이 날줄은 그 자신조차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는데… 오히려 선조 말마따나 빨라야 5년쯤 후에 난다는 사실도 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왜변 전쟁이 날 시, 그나마 최소한이 5년 후란 것이고 아무렴 거대한 성 축조가 그렇게 순조로울 거 같소? 자재가 제때 공급 안된다거나 사고가 난다거나 하는 인력상의 변수와, 비가 많이 온다거나 어디가 허물어진다거나 하는 자연상의 변수도 생길 건 뻔한데… 그런 변수 분 기한까지 포함하면 어쩌면 7년이나 8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오래 끌어 잘하면 십 년 갈 수도 있을 거요.”

  “하긴 그렇게만 된다면야 왜변에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겠사오나…”

 

 그래도 유성룡은 뭔가 약간 찜찜한 기분을 느끼고 토를 달았다.

 

 “아무렴 눈도 귀도 없는 무식쟁이가 여기 이 옥좌에 앉아 있는 줄 알았소이까?~ 과인도 그런 정도는 알고 있고 미리 조사를 했단 말이오.”

  “아, 네~”

 

 유성룡은 아주 그때 뭔가 불길하고 두려운 기분은 느꼈으나, 선조도 왜침 전쟁이 아예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주장이 틀린 데가 하나도 없는 데다 다 사리에 맞는 소리인 이상은 따를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내 그 대신에… 봄여름가을에 백성들을 성 보수 공사와 군역에 동원하지 않는 대신… 올해부턴 만약에 전쟁이 난다면 바로 그 기한까지… 농번기엔 무과과거를 예년보다 세배로 늘려 실시하겠소. 적을 막아낼 장수와 장교를 많이 뽑아 토목공사 대신 인간방패를 많이 만들겠다 그 말이오~”

  “예. 그리 하시옵소서. 과연 현명하신 처사이옵니다.”

  “우선 내달부터 무과를 전국 각처에 실시하여 장수를 뽑도록 하시오.: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그 무과의 책임자는 바로 전쟁에 대비하자는 본인인 여기 좌상대감이 되어주시오.”

  “잘 명심하겠사옵니다.”

 

 이렇게 하여, 선조는 유성룡에게 공사보다는 인재를 많이 뽑아 전쟁에 대비하도록 강한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국방을 위한 각종 공사는 앞으로 시간이 약간은 있는만큼, 어디까지나 농한기에 백성들 생업에 지장이 없는 시기에만 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선조의 의견이 이때 미래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절대로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전망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일본에서 조선에 쳐들어올 전진기지인 나고야성은 전쟁 바로 전해인 늦봄(조선에 알려지긴 초여름으로 약간 와전되었지만)에야 공사를 시작했다. 거대한 성을 축조하자면, 적어도 아무런 자연 및 인재의 방해가 없을 때도 4년이 넘게 꼬박 걸리는 대공사였다.

 그나마 그것조차도 눈이나 비가 많이 와 공사가 지체되지 않거나, 자재나 인력의 확충이 조금도 방해받지 않고 제때 제대로 한번도 예외 없이 잘 공급되었을 경우에만 꼭 4년이었다. 그것조차 겨울에도 축조를 계속했을 경우였다.

 

 실제론?? 물론 인간이 하는 일에 아무렴 이런 완전무결한 결과만 나올 리 없으니 선조가 한 5년쯤 후에나 조일 간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판단한 건, 속단이라기보단 이 시점에선 오히려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 동안이라면, 길진 않지만 결코 짧다고도 할 수 없는 기한… 이 동안에 착실히 백성들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농한기에만 전쟁준비를 한대도 5년 후쯤이라면 어느 정도 방비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너무나 이치에 맞는 선조의 판단에, 더 이상은 반박할 근거가 없어진 유성룡은 그만 어전에서 물러나올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선조의 모든 예측은 절대로 틀린 것도 무리한 것도 아닌 현실 그대로였다.

 실제로 당시 일년도 안될 미래에 전쟁이 난 것은, 정말로 일본 측으로서도 기막힌 우연으로 전쟁의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진짜 임진왜란의 발발 동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기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치고 천축 즉 인도까지 정벌하겠다]는 정복욕을 평소 대신들 앞에서 호언장담을 하였는데, 물론 이것은 새빨간 허위에 불과하였다.

 당시 일본의 인구가 고작 2천만 정도인데, 이 인구를 갖곤 명이나 조선을 점령해도 거기 감독을 할 병력마저도 충당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 엄청난 전쟁비용을 당시 일본의 국력으로 끝까지 댄다는 건 도저히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기대치다. 도요도미 자신도 애초 이게 불가능한 목표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노비일지도 모르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중국인이란 설도 있다), 바늘장수까지 해가며 최하급 무사에서 한발씩 걸어 거기까지 오른 자수성가의 인물이었다. 죽을 고비도 수백 번이나 넘기고, 싸움터에서 평생 잔뼈가 굵어진 위인이었다. 물론 인간승리의 표본이란 긍정적 면도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무척 비천한 사람이고 또한 천박한 본성을 가진 못난 출신이란 부정적 면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못난 주제에 운만으로(물론 노력도 약간은 했겠지만) 출세한 천박한 졸부 근성에 팍 절은 성격의 소유자’ 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과 질투가 매우 심했다.

 원래가 자기가 그런 높은 자리에 오를 자격이 없는 자들이 역사와 신의 장난으로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면, [어떤 놈이 날 죽이거나 쫓아내고 이 자리를 뺏지 않을까? 내가 원래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못난이니까] 라는 걸 잘 알아서, 더욱 감시와 정적에 대한 숙청을 잘하는 법이다. 오늘날도 그렇긴 하지만, 이 때도 물론 그랬다. 도요도미도 그런 비천한 출신 독재자였다(선조도 물론 이런 종류 인간??).

 

 

  (주 : 도요도미가 자신과 똑같이 '운과 실력으로 거기 오른 자수성가자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멀리하고 귀족이자 정통사무라이 출신인 혈통만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한 가토 기요마사를 크게 신뢰' 한 것도 어쩌면 이런 자신의 혈통 컴플렉스 열등감에서 나온 소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가토는 그자신이 죽자마자 바로 배신하는 박쥐에 불과했다. 가토가 고니시를 저보다 나이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야자하면서 멸시한 건, 그가 비천한 출신임을 깔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매우 좋은 독재자… 현실감각이 그는 누구보다 탁월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운만으론 절대 그 최고자리에 오를 수도 없었겠지만… 실력은 운의 촉매제다. 촉매가 없이 운만으론 물론 절대로 출세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겨우 2천만 턱걸이에 불과한 당시 일본의 인구로 조선과 명을 점거한다는 것과 인도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더구나 일본이 당시 오랜 전면내전으로 인해 그렇게 잘 사는 나라가 아니어서 국력도 그렇게 강하지도 않았다. 도요도미가 내전을 완전히 진압하고 곁으로나마 일본을 완전 통일한 때가 1589년이니까 고작 3년 후에 임진왜란을 벌인 셈이다. 이 해에야 겨우 규슈를 완전 정벌하고 일본 본토에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일본 본토가 온통 쑥밭이 된 전쟁 끝난 지 세 해 만에, 또 수십만 병력을 들인 해외전쟁을 일으킨다는 건 그때나 현대나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거북한 상황이다.

 아무리 빨리 가도 그 내전이 끝난 지 한 십 년은 지난 후에나 해외원정 전쟁을 일으킬 거라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인들도 모두들 조선침략 전쟁은 한 17세기쯤이 되어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임진왜란은 도요도미가 전쟁이란 국가지대사를 승리를 확신할 정도의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일으킨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의 전쟁이 일어난 데엔 따지고 보면, 군사적 정복욕보다는 더 커다란 정치적 속셈이 함께 개입하고 있었다~

 도요도미가 임진왜란을 이렇게 빨리 일으킨 건, 기실 [전쟁의 목적은 조선 및 명을 정벌하자는 것(즉 핑계거리)]이 절대로 아닌 다른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그의 진짜 목적인즉, 도쿠가와 이에야스 및 고니시 유키나가 등 후일 자신을 등지고 다시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가문을 공격할 灰色分子形 영주들을 조선 및 명의 전쟁터로 보내어 적들의 손을 빌어 합법적으로 죽여 없애자는 시커먼 속셈 때문이었다.

 후환의 액운거리들을 ‘자기 손 안대고 남의 손을 빌어 코 풀자’ 는 속셈이었을 뿐이었단 뜻이다.

 고니시나 도쿠가와 등을 조선에 보내서 [거기 땅을 뺏어가져라]고 해서 일본 본토에 있는 그들의 영토와 백성들을 몰수할 작정이었고, 그들이 거기서 전사해버린다면 더욱 좋아 조선의 영토마저 자신이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었다. 도쿠가와나 고니시, 고바야카와 등 장차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지 모르는 정적들을 그냥 죽여버리면 명분과 핑계가 궁하고 또 그러면 이들이 얌전히 죽지 않고 자신에게 반기를 들어 한판하자면 엄청난 희생과 손실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죽이지 않고 적의 손을 빌어 죽이려고 말이다…

 결국, 도요도미가 [자신의 명분이 개도 웃고 갈 터무니없는 과대망상] 이자 도저히 일본의 인구와 국력으론 불가능한 목표란 걸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묻지마 정복전쟁을 일으킨 데엔 단순한 침략전이 아닌 이런 시커먼 속셈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 이런 음험한 속셈을 체면상 백성들에게 알리기도 뭐하고 또한 자신의 신하들에게 밝히면 그들이 속셈을 깨닫고 반란을 낼지도 모른다는 위험 때문에 진짜 속셈을 감추었을 뿐이었다. 정복전쟁은 다 핑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너무나 예상보다 전쟁이 일찍 일어난 건 [너무나 모든 상황이 일본측에게 좋게 돌아갔다는 나쁜 운]과 [이 전쟁 자체가 정복이 목적이 아닌 정적 제거용의 음험한 목적에서 일어난 전쟁] 이었다는 복합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였다.

 어떤 허접한 기록에선 선조 이균이 [일본이란 나라가 고작 제주도나 대마도만한 나라라고 착각해서, 전쟁이 난대도 대마도 해적의 해안마을 취탈 정도]로 보았기 때문에 전쟁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우기는데 사실은 그런 것과는 관계가 멀다.

 조선임금 선조도 명색이 임금은 임금이다. 아무렴 일본이 대마도만하게 작은 나라라고 여겼을 리는 없다. 그는 왜국이 최소한 조선보다는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구도 최소한 조선만큼은 된다는 사실도…

 

 

 그러면? 선조가 임진왜란 직전까지 전쟁준비를 사실상 거의 하지 않은 원인인즉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한마디로 [전쟁준비를 하기엔, 일본의 침략야욕을 깨달은 후부턴 너무나 시간이 없었다] 라고 하는 것이 정확히 맞는 판단일 것이다. 실제로 황윤길 김성일이 일본에 다녀온 후부턴 고작 2년이 채 안되어 그 우려했던 전란이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나라의 전쟁준비가 고작 1년여 동안에 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걸 어떤 사람이라도 다 이해는 할 것이다. 더구나, 당시 조선은 소빙하기 때문에 북방지방은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정도여서 농작물 피해가 심해 흉년이 자주 들어 국고가 텅 빈 상태였기에 전쟁준비도 거의 불가능했다. 그 준비에도 돈이나 곡식 면포 등등 물자가 수월찮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니까 알고 보면 조선이 전쟁준비에 게을렀다기보다는?!~ 일본이 너무 신속하고 빠르게(진짜 표현인즉 제대로 준비도 안하고 무작정 성급하게) 쳐들어와서 조선이 장차 일어날 전쟁에 준비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아무리 황윤길이 미구에 곧 전쟁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그 일 이후로 불과 일년쯤 후에 그 전쟁이 벌어질 줄(그 넓은 바다를 수십만 대군이 건너오는 대역사 전쟁이 날 줄) 그 누가 그땐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오히려 선조가 예측한 [짧아야 5년, 넉넉잡고 최대 10년] 이란 전쟁 발발 예측 기한이 훨씬 과학적이고 올바른 판단이라고 그땐 당연시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 곧이란 게, 나라의 역사인 수백 년 간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최대준비기한인 십 년도 무지 짧은 ‘곧’ 이라고 봐도 무방한 기한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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