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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19. X교
작성일 : 20-08-27 09:24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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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실내. 스피커를 통해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단에는 핏빛 양초, 가공되지 않는 돌, 거꾸로 매단 짚 인형, 딸랑이 등이 있었다. 제사장은 검은색 양복으로 말끔하게 차려 있은 상태였다. 신도들처럼 하얀 셔츠에 검은색 타이를 하고 있었다. 낡은 구두지만 역시 깨끗했다. 단추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머리에는 포마드를 발라 양쪽으로 바짝 가르마를 탄 상태였다.

 오망성 마법진 안에는 알몸의 남자가 포박된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마로 바닥을 문지르며 몸을 삐적 거렸지만 포박된 걸 어떻게 할 순 없었다. 입과 코에서 투명한 점액이 늘어졌다. 미간을 찡그려 올린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기어코 흘러내린 것도 이마를 타고 넘는 것이었다. 마치 거꾸로 세운 십자가처럼. 앞니와 잇몸 둘레에 핏물이 차 있는 건 몸부림을 치다 혀를 깨물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진 밖에 경건히 서 있던 신도들은 엄숙한 얼굴로 제사장을 바라보았다. 제사장이 주문을 외듯 큰소리로 이해 못 할 소리들을 읊었다. 마음에서 나오는 건지 진짜로 있는 율법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사냥감을 바라보는 애란의 눈에는 사랑이 넘쳤다. 남편을 꼬신 것도 이 눈웃음이었다. 그리 예쁜 얼굴은 못 되지만 대단한 진가의 눈웃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눈웃음을 이용해 많은 걸 얻었다. 특히 복수하고 싶은 사람을 농락할 때의 기믹이 최고였다. 사람들 간에 살짝 이간질을 해놓으면 끝이 나는 것이다. 그녀는 눈웃음만 준비해 두면 된다. 바보들이 알아서 싸우는 걸 지켜보면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다가, 불시에 나타나 힌트만 주면 된다. 그럼 벌을 받아야 할 놈은 나가떨어질 테다. 그럼에도 그녀는 누구에게도 나쁜 년이 아니었다. 오히려 찬사를 받을 것이다.

 그녀 때문에 게임에서 진 패자? 패자 역시도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녀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뺏은 게 없다. 오히려 위로와 함께 눈웃음을 준다. 꽁꽁 얼어버린 심장을 녹이는 따뜻한 눈웃음을. 이따금 그는 그녀를 생각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번에 맛볼 것이며 눈에 띄게 매력적인 미녀만큼이나 성스러운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해연은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풀어 달라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 푸푸 하고 숨 솎는 소리만 내는 것이다. 머리를 땅바닥에 박고 있는 모습이 불안했다. 혹시 질식 같은 거로 죽어 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스트레스로 인해 생명에 심각한 무리가 간 것이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약해서 무엇으로든 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슬그머니 깍지를 낀 그녀의 양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현승은 신경질이 살짝 묻어 나오는 입가를 혀로 핥았다. 빨리 뭐라도 보고 싶어서 손발이 근질근질했다. 아까 눈 밑을 확인했었다. 낙인이 하도 진해서 일부러 그린 게 아닌가 싶어 문질러보기도 했다. 알고 보면 얼굴이 창백해서 그런 거지만. 나뭇잎 달인 물에 한 번 씻겼지만 남자의 흰 얼굴은 어디 가지 않았다. 원래 연극배우라 화장을 하고 있었다는데 고모 말에 의하면 오히려 화장을 한 게 덜 하얗다는 거다. 그는 저 치가 자위를 하는 상상을 하면서 히죽 웃었다.

 고모의 손을 잡는 진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만 멀뚱멀뚱했다. 연극배우라는 아저씨가 아까 성질을 하도 부려 미웠다. 너무 못되게 굴기에 꿀밤을 놓아주고 싶은 맘이었다. 바보라고 놀려줄 걸 하다가 그만두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배우라는데 그쪽에선 이름 정도는 알려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진리의 생각에는 할아버지가 최고로 유명한 사람 같았으니까. 대통령 할아버지만큼이나 유명한 사람 같았으니까.

 인영은 음부가 화끈거려 혼이 나고 있었다. 격렬한 정사의 영향 때문이었다. 페니스가 문제가 아니었다. 환용이 어찌나 손가락 여러 개를 놀려대는지 미치고 환장할 뻔했다. 더러운 산부인과에라도 온 듯한 착각도 받았을 정도였다. 그녀는 인간 재물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껌뻑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어떤 기분일까? 그녀는 희열 같은 걸 느껴 하마터면 신음을 내뱉을 뻔했다. 마법진의 결계 둘레를 따라 켜진 촛불이 일순 흔들렸던 것도 같았다.

 ‘더러운 죄인 새끼.’

 현호가 생각했다.

 환용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근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주먹을 쥔 양손을 각각 그쪽 허벅지에 붙이고 있었다. 그는 연방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가 눈을 뜨자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사상가의 그것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눈이 먼저 움직이면 한 템포 늦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는 신도들을 살폈다. 모두 진지했고 이 순간에 사명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범은 호문쿨루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 치도 자신의 병사로 만들어 볼까 싶은 것이다. 불가능한 건 알지만 일종의 희망 사항이었다. 상상 자체로는 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아는바 피를 몽땅 뽑아낸 사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빈껍데기뿐인 건 허무맹랑한 공상과 마찬가지였다. 내부에서부터의 변화가 필수였다. 안에서 곪고 썩어야 한다. 온몸을 휘도는 피!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그는 혈관이 부식하여 쪼그라드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아랫입술에 혀를 쑤셔 넣었다. 괜히 마음이 잔인해지기에 싱겁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

 제사장이 두 손을 높게 펼쳐 들고 빙그르르 돌았다. 한 손에는 놋쇠 방울이 잔뜩 달린 딸랑이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든 상태였다. 용범이 보기엔 해괴했지만 현호가 보기엔 근사했다. 진리는 방울 소리에 매료되어 입을 헤 벌렸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눈을 부라리며 제사장을 쳐다보는 환용. 저게 곧 자신의 자리가 될 것임을 알기에 더욱 심각했다. 한편으로 그는 신도 수를 늘린 계획을 했다. 여러 가지 방식이 있었다. 차근차근 계획을 만들고 수정해야 할 거 같았다. 바빴다.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 있는 염소. 말까지 할 수 있는 염소가 덜덜 떨었다. 이빨이 달달 거리면서 위아래로 부딪혔다. 태어나면서 몇 번 지어본 적 없는 험악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제물은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눈치를 챘다. 이 사람들은 미치광이였다. 게다가 사이비 종교와의 조합. 그럴 수만 있다면 오바이트와 똥을 된통 싸고 풀려나고 싶었다. 정신병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현호는 찐빵처럼 부어오른 오른쪽 눈 위 밴드를 매만지며 침을 삼켰다. 제사장이 드디어 칼을 꺼냈다. 천국에서 하사받은 것처럼 하얀빛을 내는 칼! 현호의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칼날에 후광이 번져서 번쩍번쩍했다. 칼이 허공에서 가볍게 휘둘리자 금싸라기 같은 것이 칼날을 따라 솟구쳤다. 칼날이 둥글게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악마의 심장을 꿰뚫는 작살처럼 뾰족해 보이기도 했다.

 “아아아아아.”

 제사장이 엄숙하게 목청을 떨었다. 순간 환용은 어딘가에서 파이프와 오르간 소리라도 들리지 않았나 해서 두리번거렸다. 칼날이 제물의 머리통 위에서 번쩍 들렸을 때 온몸에서 전율이 일었다. 제물의 둥근 곡선을 따라 오돌토돌 돋아난 등뼈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고 싶었다. 어떤 노래 소리가 들릴까 궁금했다. 제사장이 제물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올렸다. 그러자 눈물 콧물 범벅이 된 흉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순간 환용은 환멸과 욕지기가 동시에 나왔다.

 ‘죽여. 씨발. 죽여. 죽여. 죽여……!’

 그는 증오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제물을 쳐다보았다. 그런 적이 없지만 촛불이 일시에 움직인 거 같았다. 파르르 떨리면서 어느 건 불이 꺼졌다가 다시금 심지에 불이 올라 벌게진 걸 본 기분이었다. 제사장이 빨리하지 않으면 자신이 어떻게든 도끼를 가져와 제물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게 될 거 같았다. 검은 털로 뒤덮인 저 가죽 안은 얼마나 혼용무도할까. 저런 게 살아 있다니! 피는 또 얼마나 더러울까? 오수보다 악취가 나고 석유보다 시커멀 것이다.

 하지만 막상 피를 보게 되자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새빨갰다. 두 손으로 받아 마셔야 했다!

 “양동이! 양동이를 가져와!”

 인영이 외쳤다.

 사고였다. 모두가 핏물을 받는 생각을 못 한 것이다. 하나 같이 피 생각만 했다. 하지만 허둥대는 건 애란뿐이었다.

 “됐어! 얼른!”

 환용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자 신도들이 득달같이 제물에게 달려들었다. 제물은 눈을 크게 뜨고 억억거리고 있었다. 입이 열린 목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제사장이 무릎으로 제물의 목을 받쳐서는 피가 더 잘 나게 힘을 주었다. 용범이 제일 먼저 피를 떠먹었다. 후르릅 마시면서 희열 탓에 숨을 헐떡였다. 머릿속에선 종이 울렸고 바닥에 번진 핏물에서는 마치 하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모두가 뒤섞여 피를 몸에 바르고 입에 넣기 바빴다. 허버허버 하며 바쁘게 두 손을 이용해 피를 쓸어 먹었다. 진리는 줄곧 어른들 뒤에서 구경만 하다가 고모가 주는 것만 눈 꼭 감고 겨우 삼켰다. 맛이 없었다.

 

 은샘은 길에 몰래 나와 담배를 물었다. 담배 냄새를 없애기 위해 구강청결제도 챙겼다. 중학생 때 이 년을 피우다 끊은 담배를 일 년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 은근히 떠보는 말로 담배에 대해 물었는데 남자 친구는 싫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담배에 관해서라면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 친구가 금방 올 거 같아 참다 참은 담배였다.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막 불을 붙이려 할 때였다.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얼른 입에 있는 걸 등 뒤로 숨겼다.

 “실례하겠습니다.”

 나리가 말했다.

 그녀는 가만 쳐다보았다. 첫눈에 잘생겼다는 걸 알았다. 지나가는 눈으로 봐도 그럴 진대 자세히 보게 되니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마음이 흔들렸다.

 “저 혹시……?”

 “네?”

 그녀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가 달빛을 등지고 다가오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상대의 눈을 보았다. 마치 좋아하는 스타와 길에서 마주 선 상태에서 서로 진로만 막을 뿐 길을 열어 주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처한 팬처럼.

 

 새벽 2시가 약간 넘어서야 의식이 끝났다. 청소까지 마무리한 상태에서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시체는 산에 묻히고 그 위에 모종이 심어졌다. 동산에서 보는 보름달이 비정상적이었다. 저렇게 크고 음영이 진한 달은 처음이었다. 용범은 달에서 여러 가지 무늬를 발견했다. 토끼 두 마리를 발견한 그는 쓰잘머리 없는 속임수에 픽 웃었다.

 ‘뭐 하고 있을까……?’

 은샘을 떠올린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를 가지고 싶었다. 그녀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사로잡고 싶었다. 그런 로맨틱한 상상은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는 샤워 중에도 침대에 누워서도 은샘을 생각했다. 시샘을 하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현호가 장담했지만 분명 쉬운 밤은 아닐 것이었다.

 그는 선풍기가 돌아가는 쪽으로 서 있는 성기를 문질렀다. 같은 시간에 고모는 식탁에 얼음송곳을 세워놓고 박치기를 했다. 각얼음 더미에서 빼낸 얼음송곳이었다. 쇠로 된 게 유두처럼 딱딱했다. 그것이 그녀의 오른쪽 눈구멍 속으로 손잡이만 남겨 두고 완전히 들어갔다. 동시에 다른 쪽 동공이 휙 꺾인 그녀는 바보처럼 실실 웃어댔다. 손잡이를 잡고 안와를 후벼 파면서. 핏물이 점선처럼 뚜뚜뚜 떨어지다 주욱 흘렀다.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다.

 

 진리는 거실 창문 밖에 서 있는 나리를 발견했다. 나리는 마치 몇백 년을 산 외로운 뱀파이어처럼 무표정하게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는 달빛을 받아내면서 이리오라고 손짓을 했다. 진리는 누가 보지 않나 확인을 하고 창가로 쪼르르 뛰어갔다. 나리가 창문을 톡톡 건드렸다.

 “문 안 열려요.”

 진리가 말했다.

 “그래도 말은 들리네. 반가워. 구면이지?”

 “네?”

 “처음 본 사이가 아니지, 우리?”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리가 무해한 눈웃음을 지었다.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의도하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아이도 반대쪽에서 손바닥을 대니 뭔가 모를 감정이 흉곽께에서 용솟음쳤다. 아이의 얼굴에는 낙인이 없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뭐 하고 있었어?”

 “엄마가요…….”

 “음?”

 “엄마가 낯선 사람이랑은 놀지 말래요.”

 “그래, 맞아. 엄마가 제대로 말한 거네.”

 두 사람이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유리를 통해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순간 나리는 이래서 결혼을 하는 거구나 싶었다. 여자가 아니라 여자아이를 가지고 싶어서라도 평생의 언약을 맺고 싶었다. 잠깐이지만. 그는 창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아이도 망설이듯 따라 했다. 그는 미끄러지듯 뒤로 빠지면서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캄캄한 대기에 뜬 서늘한 인광이 재밌는지 아이가 몸을 비틀며 키득거렸다. 물론 어린아이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환용과 인영은 밤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인영의 집 옥상이었다. 안에 진리가 있긴 하지만 아직 어린 애 아닌가. 둘은 돌아누운 채 몸을 섞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건 아니었다. 열심히 허리를 놀리다 무심코 뒤를 보았을 뿐이었다. 누군가 있었다.

 “안 해?”

 인영이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은……!”

 “뭐야, 왜? 왜 그래?”

 삽입된 상태로 인영이 뒤돌아보았다. 안 들리던 모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액체가 튀었다. 그녀는 얼굴에 묻은 걸 확인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피였다. 환용이 젖은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일어서다가 몇 번이나 무릎을 구부렸다. 그녀는 그녀대로 환용은 환용대로 서로 살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중심 감각을 잃은 탓에 옥상 너머로 까닭 없이 떨어졌다.

 그녀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은 놀랍게도 조카인 해연에 의한 것이었다. 해연은 마치 키 큰 초등학생처럼 어설프게 움직이면서 연신 망치를 휘둘렀다. 막다가 인영의 손가락 두 개가 부러졌다. 작은 한 방에 이가 나갔고 큰 한 방에 이마가 함몰됐다. 그다음부터는 손쉬운 떡메질이었다. 불안해하던 시선이 오간 데 없어진 해연이었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망치를 휘둘렀다. 깨진 두개골이 안으로 폭 꺼지면서 쇠 대가리도 들어갔다. 뇌가 질척이면서 뇌수와 함께 파편을 튀겼다. 망치는 솟구쳤고 또 솟구쳤다. 결국 목에 붙은 건 아래턱뿐이었다. 뇌 주머니는 5천 원쯤 하는 더러운 가면처럼 바닥에 눌러 붙어 버렸다. 삽으로 떠야 할 터였다.

 해연은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적막뿐이었다. 진리가 깨지 않은 게 분명했다. 다행이라면 참 다행이었다. 그녀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면서 핏물이 튄 코를 훌쩍거렸다.

 

 “무슨 소리 들린 거 같지 않아?”

 은샘이 말했다.

 “……응? 무슨 소리?”

 “아무 소리 못 들었어? 쿵 하는 소리 들린 거 같은데?”

 “그냥 자. 자자.”

 현호가 누운 그대로 은샘을 꼭 껴안았다.

 

 다음 날 해연은 아침 일찍부터 깨끗이 단장한 채였다. 아빠의 사망은 어제 확인을 했다. 마음 편히 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후련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따뜻한 우유를 들고 진리의 방문을 노크했다. 당연히 아직 자고 있을 걸 알지만 노크를 생략할 순 없었다. 아이는 덥지도 않은지 이불을 덮고 잔 모양이었다. 발치에 둘둘 말려 있었다. 베개가 아닌 강아지 인형을 베고 잔 건 특이했다.

 해연은 나무 의자를 빼서 가져와 진리를 바라보며 앉았다. 집 안에는 인형이 많았다.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귀여웠다. 인형들은 마치 진리의 보디가드들 같았다. 진리에게 사소한 문제만 발생해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콩콩 때려줄 거 같았다. 해연은 사촌을 깨우기로 했다. 우유가 식기 전에.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건 보호해주고 싶은 존재에 대한 양보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사촌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면 우유는 자신이 먹으면 되었다. 다만 오늘 벌어질 일에 놀라지만 않았으면 했다. 이제 진리는 고아였다.

 “우리 집으로 가자. 언니랑 같이 사는 거야.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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