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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마트료시카의 연인들
작가 : 뮨뮴
작품등록일 : 2016.10.20

범죄와 마약의 도시, 그리고 속내를 보여줄 수 없는, 마트료시카같은 여인들의 사랑이야기.

 
마트료시카, 셋.
작성일 : 16-10-20 21:14     조회 : 452     추천 : 1     분량 : 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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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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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되면 공화국의 볼품없는 진흙땅 위에도 눈송이가 떨어진다. 봄, 여름, 가을 내내 추잡한 갈색으로 물든 풍경도, 그때만큼은 꽤나 볼만해진다. 도시 위에 내린 눈송이는 대부분의 치부를 덮어준다. 얼어 죽은 죄인의 몸을 가리는 수의처럼.

 끝이 없는 진흙평야와 자작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낡은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S시가 나온다. 공화국이 구소련 시절에 연방국이었던 시절에 건설된 S시는, 소련이라는 자본력이 빠져나간 지금은 껍데기만 남은 도시였다. 먼 곳에는 관심 없는 서방권도, 외부로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소련 붕괴 이후의 러시아도 신경 쓰지 않는, 버려진 공화국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은 도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S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무관심 덕분이었다.

 

 러시아 마피아, 체첸 마피아, 동유럽 마약 카르텔, 극단주의 무장세력. 사법부의 사각지대를 노린 범죄조직이 몰려들어 S시를 나누어 차지한 덕분에 그곳은 무국적의 노숙자부터 인터폴의 추적을 받는 국제범죄자까지, 교도소보다도 다양한 범죄자들이 들끓는 곳이 되어있었다. 불법무기부터 헤로인까지, 인신매매부터 잠수함까지. 구할 수 없는 물품은(범죄를 통해서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없다는 범죄의 박람회 같은 도시가 된 것이다.

 

 클럽 ‘시베리아’의 메인 스트리퍼 중 하나인 댄서도 그 도시의 일원 중 하나다. 그래서 범죄에는 질릴 정도로 익숙하다고 생각해왔다. 뭐니 뭐니 해도 살인은 연중행사, 납치는 월중행사, 절도는 주중행사로 벌어지는 도시에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와선 성희롱 정도는 행사라고 이름 붙여주기도 뭐하다. 그래서 스트립 극장의 오너가 엉덩이를 주물럭대는 경우에도 능청스럽게 웃어넘길 수 있다. 물론 속으론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선배가 꺼내든 주제는 오너의 그런 행실이었다.

 

 “그래도 정말 싫지 않냐, 꼬맹아.”

 

 “쉿, 선배. 들어. 그리고 꼬맹이라고 부르지 마.”

 

 “뭐 어때. 오너는 이제 너한텐 손대지도 못하잖아. 꼬맹아. 어제 너 덕분에 살았다며?”

 

 “은혜 같은 거 아는 사람이게? 밀린 월급이나 제대로 지급해줬음 좋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한 댄서들이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에 들어온 오너다. 좁아터진 탈의실은 언제나 땀 냄새와 싸구려 향수 냄새가 가득해 불쾌한 장소지만, 저 작자까지 들어오면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어진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부분이라면, 그 오너가 평소대로라면 고압적으로 나왔겠지만 오늘은 상당히 기가 죽어있다는 것이다. 하진 코가 저런 모양세로 부러져있으면, 누구라도 기세등등하긴 어려울 테지. 오너의 얼굴을 뒤덮은 붕대가 우습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해 댄서와 선배는 등을 돌리고 몰래 키득거린다. 그게 눈꼴시었는지, 오너는 금세 삿대질을 해온다.

 

 “거기, 뭘 그렇게 웃고 자빠졌어? 빨리 준비해!”

 

 “네-네, 알았어, 오너. 근데 오너가 나가면 더 빨리 준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맞아요-. 아님 돈 내고 보시던가? 싸게 모실게요, 오너니까.”

 

 선배가 일부러 천천히 스웨터를 벗으며 킥 웃었다. 오너는 씨근거리며 뭐라 잔소리를 해올 기세더니,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사나운 눈초리만 남긴 체 탈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댄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라면 전화가 오든 말든 기분이 상했다면 길길이 날뛰는 게 오너의 성질머리인데.

 

 “아, 진짜 갔다.”

 

 선배도 놀랐는지, 어깨를 으쓱한다.

 

 “어째 코 부러진 뒤로 좀 괜찮은 남자가 된 거 같지? 꼬맹아?”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렇게 마음에 들면 저 사람이랑 결혼이나 해버리지?”

 

 “우엑. 죽어도 싫어. 그리고 너, 꼬맹이 맞잖아.”

 

 에나멜 재질의 짧은 제복풍의 옷으로 다 갈아입은 댄서가 혀를 내밀어준다. 남미 출신 미녀인 선배의 구릿빛 몸은 댄서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늘씬하게 근육이 붙어있어 약간은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꼬맹이라고 불릴 이유는 전혀 없단 말이지. 키가 큰 건 확실히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한번만 더 꼬맹이라고 부른다면 나도 뚱땡이라고 불러 버릴 테다. 선배, 확실히 지방 많은 편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선배보다는 조금 말랐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댄서는 잠시 멈칫한다. 고양잇과 맹수 같은 여자의 얼굴을 지우려고, 얼굴을 몇 번 흔든다. 왜 그런 사람을 지금 떠올리는 거야, 뜬금없이. 자, 다른 생각하자. 이제 또 일을 나가야하니까.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잘 받도록 화장을 짙게 고치며, 댄서는 짐짓 쾌활하게 선배에게 말을 건다.

 

 “선배, 오늘은 지명 없어?”

 

 “없어-. 거지새끼들. 요즘 불경기잖아.”

 

 지명이란 건 프라이빗 룸 안에서 벌어지는, 소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한 개인 쇼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 은밀한 장소에서 공연을 하는 것인 만큼, 훨씬 변태적인 놈들이 모이긴 해도, 그만큼 팁이 세다. 프라이빗 댄스가 장기인 선배는 꽤나 자주 지명 받는 편이었고, 그 덕분에 제법 주머니가 두둑한 편이었다.

 

 “나도 지명 같은 거 좀 많이 받아봤으면.”

 

 “웃겨, 너 같은 꼬맹이가? 하긴, 초등학생 좋아하는 일본인 같은 놈들도 있다더라.”

 

 “아, 진짜! 선배!”

 

 투닥거리려 달려드는 댄서를 피해 도망가며 선배가 킬킬 웃었다. 이상하게 유치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니까. 그때, 탈의실 문이 열려 장난은 중단된다. 오너가 서있었다. 바운서들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는 것 같은 초조한 시선이, 댄서를 바라본다.

 

 “너, 지명이다.”

 

 댄서는 조금 당황해, 대답이 늦고 만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말은 이런 때 통하나?

 

 “네…?”

 

 “빨리 준비해라.”

 

 “별일도 다 있네, 꼬맹이가.”

 

 조금 꺼림칙한 느낌에 망설이던 댄서의 등을, 선배가 쿡 찔러 밀어주었다. 댄서는 그제야 얼굴에 반색을 띤다. 지명은 오랜만이었고, 집세는 벌써 삼주치가 밀려있었으니까. 집주인 할머니의 바바야가같은 얼굴을 떠올린 댄서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았어요, 오너. 어떻게 준비할까요?”

 

 “밖으로 나갈 거다. 옷 입어.”

 

 댄서의 얼굴에서 금세 웃음기가 사라졌다. 선배조차도 얼굴을 굳혔다.

 

 “밖? 무슨 소리에요?”

 

 “그래, 오너. 우리 파트 타이머도 아니잖아? 왜 밖으로 가라는거야?”

 

 “젠장, 난들 아냐고! 빨리 준비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설명이나 좀…!”

 

 “선배, 그만!”

 

 댄서가 급히 나서서 선배를 제지했다. 오너의 얼굴이 심상찮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명백히 겁에 질린 눈치였다. 메인 스트리퍼는 보통 고정된 가게에서 근무하지만, 가끔은 다른 가게에 파견을 나가기도 하니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렇게 겁에 질린 이유는 뭘까. 댄서는 몸을 돌려 선배와 오너를 진정시키며, 잠시 뜸을 들이곤 물었다.

 

 “지명자는 누구에요?”

 

 오너의 대답 대신, 탈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선배가 놀라 짧게 비명을 지른다. 안 그래도 좁은 탈의실이, 갑자기 오그라드는 느낌까지 든다. 사람보다는 북극곰과 고릴라를 양복 안에 쑤셔둔 것 같은 거구가 둘이나 들어온 것이다. 둘 다 낮은 천장에 정수리가 닿을 정도로 덩치가 크다. 이마에서 뺨까지 문신을 한 ‘북극곰’ 쪽이, 화강암 같은 얼굴로 방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이내 언짢은 눈으로 오너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까?”

 

 누가 들어도 당장 나와, 라는 뜻이다. 황급히 의상 위에 그대로 코트를 걸치며 댄서가 팔을 휙휙 휘둘렀다. 다 됐어요! 다 됐어! 오너 쪽도 정신없이 변명을 시작한다.

 

 “그게, 죄송….”

 

 “아가씨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변명이 시작하기도 전에 ‘고릴라’쪽이 위협적으로 다가들었다. 오너가 어리둥절해하자, 고릴라가 댄서를 손으로 가리킨다. 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아가씨…요?”

 

 전화가 울린다. 오너는 황급히 전화를 꺼내 수신버튼을 누른다. 작지만, 짜증이 섞여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는 서늘한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댄서도, 어제 들었던 그 나른한 목소리가. 러시아 마피아의 영애였다.

 

 

 [그 애, 마음에 들었으니까. 데려와.]

 

 짧은 대화조차 없었다. 정체불명의 전화가 툭 던진 그 말 한마디에, 오너는 순순히 댄서를 내주었다. 코트까지 손수 입혀주는 오너는 유별나게 신사적이었다. 평소의 때 같으면 벌이가 시원찮다며 댄서들에게 화를 내거나, 엉덩이를 주무르거나, 아니면 나와 보지도 않았을 텐데. 꼭 귀중한 거래품을 취급하듯이 댄서를 대하는 오너의 행동 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하다. 선배만이 불안한 눈치로 덩치 사이에 잡혀 끌려가듯 하는 댄서를 보지만, 그마저도 이내 닫히는 문에 가려버린다.

 언젠가 선배가 잡담 중에 지나가듯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즈텍 제국에서, 태양에 심장을 바칠 목적으로 선정된 제물은 죽기 직전에 생애 딱 한번 신처럼 정중한 취급을 받는다고, 그 후에는 가슴이 갈리고 심장이 꺼내진다는데. 아, 왜 하필 지금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걸까.

 더럭 겁에 질린 댄서는 양쪽에 선 고릴라와 북극곰에게 몇 번이나 사태에 대해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댄서는 끔찍한 불안상태에 빠졌다. 인신매매, 장기매매, 고문살해, 온갖 흉흉한 단어가 머릿속을 둥실둥실 떠다닌다.

 

 ‘내가 어디가 마음에 들었다는 거야. 건강해보이니까 비싸게 팔릴 만하는 소리 아냐?’

 

 차라리 대놓고 정욕에 물들어 숨을 헐떡거리는 부자 손님이라면 목적이 뻔하니까 괜찮다. 그런 불쾌한 경험은, 댄서가 직접 당한 적은 없었지만 다른 스트리퍼들은 흔하게 당하는 일이었다. 이 도시에서 스트리퍼와 매춘부의 경계는 모호한 편이고, 오너는 별로 양심적인 놈은 아니었으니까. 스트리퍼를 변태들에게 팔아먹는 건 일도 아닌 놈이다. 조금 웃긴 표현이지만, 그건 흔한 일이다. 흔한 일은 상식적인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상식적이지 않다. 상대는 동성이고, 속을 알 수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여자였으니까.

 그녀가 어떤 의미로 댄서에게 마음에 들었다는 소리를 한 건지 짐작을 할 수도 없었다. 왜 그녀를 도와준 건지, 왜 클럽의 오너를 두들겨 패고 남자 하나를 반죽음으로 만들어놓고도 태연했는지 모른다. 왜 척 봐도 무지 위험해 보이는 경호원을 고작 스트리퍼 하나 데려오기 위해 둘씩이나 보내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여자라는 걸 빼면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럴 거면, 괜히 장난 따위는 걸지 않는 거였다. 복도를 걸어 나가며 댄서는 양쪽으로 힐끔거리며 눈치를 본다. ‘고릴라’도, ‘북극곰’도 그녀를 보지 않는다. 그나마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의 가게에는 손님조차도 없다. 기이하게 텅 빈 복도를 걸어가며, 그녀는 그나마 얼굴에는 문신이 없어 덜 무서워 보이는 ‘고릴라’쪽에 말을 한 번 더 걸어본다.

 

 “저기…. 저희 가게는 출장서비스는 안하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덜컹.

 

 어느새 출구까지 왔던 것일까. 고릴라와 북극곰이 대꾸조차 안하고 육중한 철문을 열어젖히자, 겨울밤의 냉기가 갑작스럽게 파고들었다. 댄서는 으힛, 하는 신음을 내며 싸구려 코트를 여민다. 스트립극장이 문을 막 열기 시작하는 늦은 저녁. 밖은 어두워, 아직 어둠에 적응되지 않은 눈에 보이는 것은 허옇게 휘날리는 눈발을 빼면 별로 없다. 철제 계단 아래의 바닥에는 이미 눈이 수북하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가로등 대신 퇴폐적인 네온사인이 대신 조명을 담당하는 뒷골목. 댄서는 바로 그 뒷골목이 괴이한 적막감에 휩싸인 것을 눈치 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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