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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마트료시카의 연인들
작가 : 뮨뮴
작품등록일 : 2016.10.20

범죄와 마약의 도시, 그리고 속내를 보여줄 수 없는, 마트료시카같은 여인들의 사랑이야기.

 
마트료시카, 하나.
작성일 : 16-10-20 20:59     조회 : 785     추천 : 3     분량 : 6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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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여인의 몸이 빛 속에서 녹아들고 있었다. 밝은 청록색에서, 천박한 적색으로 바뀔 때마다, 스트리퍼의 몸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음란하게 반짝거렸다. 댄서의 표정은 먼 과거에 벗어던졌을 수치심의 자취와, 색정적인 요염함이 섞여 붉다. 그 여린 몸이 꺾이고, 휘고, 다시 펴지고, 흔들린다. 반짝거리고, 어둠에 잠겼다, 다시 빛난다.

 마피아 영애는 무대에서 흔들리는 댄서를 보며 경멸이 살짝 담긴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을 알아본 것일까, 댄서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다. 기둥에 매달린 댄서가, 몸을 휘어 잠시 관중들에게 고혹적인 시선을 나눠주다, 영애의 얼굴에 멎는다. 그녀의 입에도, 영애처럼 웃음이 걸려있었다.

 즐겁나? 남자들 앞에서 옷을 벗으며 몸을 흔드는 게? 영애는 고개를 갸웃한다. 영애의 의구심까지 풀어줄 생각은 없는지, 이내 댄서는 시선을 거두고 다시 몸을 흔든다. 작은 손이 몸의 곡선을 타고 내려가다, 에나멜 재질의 옷을 만지작거리며 애를 태운다. 환호, 야유, 웃음. 장난스럽게 미소를 띤 댄서가 치마를 벗어던지자 괴성에 가까운 환성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별난 일도 다 있군요. 보스의 따님이 이런 곳을 먼저 방문해주시고.”

 

 영애는 옆에서 들려온 걸쭉한 목소리에 눈을 찌푸렸다. 스트립 클럽 ‘시베리아’의 오너를 맡고 있는 간부다. 남자는 대부분 질색이지만, 그 중에서도 싫은 남자다. 보스의 친척 중 하나라는 이유로 간부직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몸에 걸치고 있는 옷과 시계의 반만큼이라도 가치 있게 굴지 못하는 남자다. 능력도, 처세도 서툴러 이런 싸구려 스트립 클럽이나 운영하는 주제에, 야심만은 커서 항상 영애에게 접근해오는 남자. 영애는 한 번도 그를 가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애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다시 댄서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너는 무시가 기분 나쁜지 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능글맞게 계속 수작을 걸어온다.

 

 “여긴 숙녀분이 오기엔 어울리지 않는 장소잖습니까? 원하신다면 남자아이들이 있는 가게를 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짜증나는 남자다.

 

 “천박하긴.”

 

 “네?”

 

 “이건 사업장 점검일 뿐이야. 여기도 곧 내 가게가 될 거니까. 방해되니까 입 좀 닫아주지 않겠어?”

 

 오너는 입을 다물었다. 표정을 감추려 애쓰는 모양이지만 입술이 꿈틀거리는 게 다 보인다. 같잖은 놈. 영애는 다시 눈을 돌려 자줏빛 형광 속에서 셔츠를 풀기 시작한 댄서를 주시한다. 적어도, 저것이 가치 없는 남자보다야 훨씬 더 볼만한 존재인건 분명하다.

 

 ***

 

 댄서는 춤을 사랑한다. 음악도, 노래도, 빛도, 리듬도, 동작도 전부 사랑했다. 춤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댄서의 소중한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줄곧 그랬었다. 춤만을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춤 말고는 사랑할만한 것이 없었던 걸까. 아마도 양쪽 전부일 것이다.

 빈민굴에서 썩은 빵을 훔치며 뒹굴어도, 자기를 범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촌의 집에서 눈치를 보며 잠들어도, 춤만 있다면 견딜 수 있었다. 고생 끝에 간신히 얻어낸 일자리가 스트리퍼였어도, 설령 그게 남자들의 눈앞에서 옷을 벗어던지며 추는 천박한 일이라 해도, 좋았다.

 붉게 물든 관중의 얼굴이 좋다. 무대 위의 자신의 몸을 보면서 열광하는 관중들이 좋다. 그들이 자신의 쇄골을, 가슴골을, 허리를, 골반을 보면서 내지르는 흥분으로 가득한 숨소리가 좋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들의 여신이다. 그걸로, 좋다.

 

 그런데, 오늘은 붉게 물들지 않은 얼굴이 있다. 특이한 관중이다. 수염 돋은 얼굴, 대머리 얼굴, 애꾸눈까지 섞여있는 그 가운데에서, 단아하고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여성의 얼굴이 떠올라있다.

 

 살갗위로 속옷만 남긴 체 기둥을 끼고 빙글 빙글 돌면서, 댄서는 그 차가운 얼굴에 궁금증을 느껴 계속 쫒는다. 양계장 한가운데에 우아한 맹금류가 날아든다면 저런 위화감이 들까. 주변의 다른 이들과 달리 애욕에, 성욕에 물들지 않은 그녀는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동양계인지, 서양계인지 알 수 없는 신비한 외모. 어깨를 드러낸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여자는 흥분한 관중들의 약간 뒤에서 댄서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접촉에는 관심 없는 이들을 위한 높은 관중석에 앉아있던 덕분에,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도 댄서는 그 여자의 날씬한 몸매를 알아볼 수 있었다. 모델이나, 배우 같은 직종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이목구비. 옷을 보아하니 어디 파티 같은 곳에서 놀다, 재미삼아 들려본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녀가 가녀리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음지에서 일하는 댄서는 그런 종류의 인간을 조금이나마 안다. 저 여자는 철없는 호기심이나 치기로 이쪽저쪽 돌아다녀보는 부잣집 아가씨 따위가 아니다. 훨씬, 훨씬 위험한 무언가가 분명하다.

 

 그래서 댄서의 마음을 끈다.

 

 ***

 

 영애는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해, 오너에게 직접 와인을 가져오라 시켰다. 부하를 시킬 생각도 못하도록 직접 골라서 가져오라고 시켰으니, 지금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와인 셸러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흥, 하고 비웃는다. 기분 나쁘게 달라붙는 남자는 그래도 싸다.

 지루했다. 그녀는 VIP 석에 마련된 높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턱을 괸다. 곁눈질로 다른 무대와 가게 인테리어를 파악해 나간다. 스테이지는 셋. 그나마도 둘은 비어있고, 손님은 서른 명이 넘지 않을듯하다. 저질 스피커의 음질이 갈라져, 벽을 불규칙하게 때리고 있다. 별로 마음에 드는 가게는 아니었다. 관객들은 천박하고, 수익도 시원찮고 인테리어는 엉망이다. 하긴, 오너가 그 모양이니까. 인수하게 된다면, 매각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단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지금 춤을 추고 있는 스트리퍼 정도일까.

 스트립 댄스 같은 것엔 별 관심이 없지만,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라면 다르다. 남자의 것이라고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여자에 비하면 댈 것도 없다. 그 중에서도 저 댄서는 상등품이다. 이런 가게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공연이 절정에 이른 것인지, 저질스런 환호와 야유가 뒤섞여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마피아는 힐끗 눈을 돌려 무대를 다시 보았다. 여자가 없었다. 눈을 조금 낮춘 뒤에야 영애는 땀에 젖은 반라의 댄서가 무대에서 관중석으로 내려온 것을 눈치 챘다. 테이블 사이를 거닐며 남자들에게 눈웃음과 손짓을 보내는 스트리퍼가 보인다.

 아하, 테이블 댄스라는 건가. 약간 흥미가 동한다. 흥분한 남자들이 댄서에게 달라붙어온다. 그러나 감히 그녀를 만지지는 못한다. 그것도 규칙인 것 같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저 탐욕스러운 얼굴로, 환호나 야유나 애원을 날리며 댄서의 주변에 모여 원을 그린다. 남자들에게 아낌없이 웃음을 나눠주고, 단골로 보이는 손님에게는 손으로 키스를 날려주는 댄서를 보며, 마피아는 픽 웃는다. 남자들이란. 마피아는 흥미가 식어 얼굴을 돌리고 테이블을 톡톡 두들긴다. 와인은, 언제쯤 오는 걸까.

 

 그런 그녀의 얼굴에, 기이한 열기를 띤 무언가가 다가와 살짝 문질렀다. 마피아가 의아함과 불쾌함에 눈을 치뜨며 고개를 돌리자, 그 댄서의 손가락이 자신의 볼에 닿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남자들 상대하기도 바쁠 스트리퍼가 여기까지 와도 괜찮은 건가. 주변은 어느새, 고조되는 음악을 제외하면 조용하다. 낮게 웅성거리는 관객들이 몰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영애는 표정 없이 댄서를 잠시 올려다보았다. 짓궂은 표정이 가득한 댄서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영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대었다.

 

 뜨겁고, 촉촉했다. 그저 장난에 가까운 입맞춤일터.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서 땀내와 섞인 싸구려 향수냄새가 훅 끼쳐, 묘하게 관능적이었다. 마피아도, 댄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한쪽은 약간의 의구심을 담아, 한쪽은 장난기를 담아, 그 가운데에서 시선이 섞인다. 섞인 시선이 녹아내려 바닥에 떨어진다. 남자들의 옅은 감탄과 질시가 귓가에서 떠다닌다.

 

 입술이 떨어지자, 댄서는 가볍게 손가락으로 영애의 턱을 매만진다. 그녀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돈 많은 손님들에게 달라붙어 아양 떠는, 매춘부들이나 지을법한 그런 웃음이 아니라, 그저 순진한 미소다. 그래서 마피아의 딸은 딱히 불쾌감이 떠오르진 않는다. 눈썹을 살며시 기울일 뿐. 댄서가 활짝 웃었다.

 

 “아름다우세요, 손님.”

 

 “…고마워. 이건 뭐지?”

 

 “서비스.”

 

 그럼 팁이라도 줘야하나, 마피아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댄서는 환호를 지르는 관객들 사이로 들어가 다시 무대 위에 서 브래지어에 손을 넣었다. 이제 클라이맥스인건가. 영애는 입술을 매만지며 재미있어했다. 그때 오너가 도착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가씨. 어울리시는 걸 준비하….”

 

 “여기서는 스트리퍼들이 키스도 해줘?”

 

 기껏 가져온 와인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영애는 질문부터 꺼냈다. 뭔 일이 있었나싶어 무대를 슬쩍 둘러보던 오너가 손을 내저었다.

 

 “뭐, 여긴 싸구려 매춘업소가 아닙니다만, 댄서들이 먼저 해오는 거라면 가능합니다. 그게 아니면 접촉은 금지….”

 

 “꺄악!”

 

 댄서의 비명이 환호를 가르고 들렸다. 덩치 큰 남자 하나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무대 위에서 끌어내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흥분한 손님인 것일까. 모양새를 보아하니 그보다는 질 나쁜 경우인 것 모양이다. 댄서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지만 무리인 것 같았다. 영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뭔데.”

 

 오너도 꽤나 당황한 듯, 허둥거리는 눈치였다. 손을 크게 내저으며 경호를 담당하는 바운서들을 끌어 모은다.

 

 “아, 젠장. 이런! 죄송합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지금 쫒아내겠….”

 

 오너가 다급히 바운서들을 불렀을 때, 영애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와인병도 함께 사라진 후였다..

 

 ***

 

 씨팔, 이래서 남자 새끼들이란. 댄서는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가끔 이런 놈들이 있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날뛰는, 대가리가 아니라 아랫도리로 생각하는 병신들. 지금 그녀를 무대 아래로 끌어들이려는 남자도 그런 부류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 거친 숨소리가 거슬린다. 마약이라도 한 것일까. 빌어먹을.

 

 “이거 놔…!”

 

 “후욱, 후!”

 

 남자는 대답이 없다. 아니,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시뻘게진 눈 아래에서 딱정벌레 같은 코 안으로 거칠게 숨이 드나들고, 헐떡거리며 벌어진 입가에선 허연 거품이 흐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가벼운 코카인 정도는 하고 들어오는 손님은 꽤 많았지만, 그런 경우조차 아니다. 돼지 발정제라도 처먹은 건가? 팔에 거센 힘이 더해지자, 댄서는 짧은 비명과 함께 무대에서 끌어내려 바닥에 던져진다. 부딪친 등이 아팠지만 신음을 낼 틈도 없이 다시 거세게 끌려간다.

 

 당연하게도, 관중들은 누구 하나 도와주려하지 않는다. 자기 일도 아닌데다가, 돈도 안내고 특별한 구경거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자기들끼리 벽을 만들어 바운서들이 못 오게 시간을 벌어줄 기세다. 덩치 큰 남자가, 듣기 싫은 숨소리를 내며 얇은 브래지어와 팬티에 손을 댔다. 댄서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잠깐만, 참자. 한두 번 당하는 일도 아닌걸.

 

 그렇게 이를 악문 댄서의 귀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났다. 빠각, 우두둑하는 소리가. 그리고 뒤이어서 조금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에 가득 찬 비명 소리.

 

 “아으, 아그아악!”

 

 댄서는 눈을 떴다. 이상한 각도로 꺾인 팔을 잡고 발광을 하며 바닥을 기어 다니는 덩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검은 이브닝드레스에 쌓인 날씬한 다리. 아까, 장난기가 들어 입을 맞추었던 여자 손님이 손을 톡톡 털고 있었다. 손에 들려있는 것은, 우습게도 와인 병이었다. 문득 그 느릿한 모습에서, 댄서는 먹잇감의 숨통을 끊고 발톱을 핥는 고양잇과 맹수를 연상한다. 댄서가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을 때, 덩치가 바닥에 뒹굴며 다시 비명을 질렀다.

 

 “히크아악!”

 

 “시끄럽네.”

 

 챙그랑, 콰직.

 

 댄서는 놀라서 숨을 삼켰다. 등을 돌려 남자에게 다가간 여자가 남자의 정수리를 향해 와인병을 내리친 것이다. 비명이 순식간에 뚝 끊기더니, 그 부근을 중심으로 인간의 벽이 순식간에 물러섰다. 깜박거리는 조명 아래서 피인지, 와인인지 모를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주, 죽은 거 아냐?”

 

 “미친 여자 아니야?”

 

 여자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다, 깨진 술병을 던져버리고 자신의 옷을 내려다 본 후에야 얼굴을 찌푸렸다.

 

 “묻었잖아. 빌어먹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댄서가 급히 달려가 덩치의 등을 만져보았다. 머리가 깨져 움푹 들어가 있었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뭐….하신 거에요, 손님…!”

 

 옷을 털며 투덜거리던 여자가, 댄서의 말을 듣더니 조금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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