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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18. 가족
작성일 : 20-08-26 11:03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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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르륵. 용범은 테이블을 다르륵거리는 자신의 손가락들을 보았다. 실로 대단한 변주였다. 증조할머니가 죽었다. 96살이나 먹었으니 그만하면 호강한 짝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 죽었지 않은가. 더 이상 휠체어의 요정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약간은 아쉽게 느껴졌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눈웃음이 건너온 자리가 그녀의 얼굴이니까. 이젠 더 이상 귀엽게 망치질을 하는 노인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마치 두더지 게임을 처음 하는 어린 여자애처럼 망치를 쳐들고 망설이는 노인네. 말벌집을 쪼개낸 듯한 입술로 헤헤거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머리통을 망치로 더듬거리는 귀염둥이. 이젠 휠체어의 요정을 놓아줄 때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증조할머니에 비하면 진구나 고모부의 죽음은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큰숙모의 실종도 마찬가지였다. 큰숙모라면 본인이 귀한 정액을 먹이며 잘 돌보고 있었으니. 증조할머니를 호문쿨루스로 만들까 하는 생각 때문에 어제는 밤을 샜다. 결국 포기했다. 막상 죽은 사람이 되니 관심이 사라졌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질질 짜는 할아버지의 허여멀건 한 얼굴은 역겨웠다. 성희롱 전문 중견 배우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호문쿨루스는 충실한 가드처럼 그의 뒤에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특별한 존재라서가 아니라도 타인에게 뒤를 내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는 싫었다. 하지만 신하와의 신뢰 관계를 위해서라도 양보할 때는 해야 했다. 그리고 어제 기쁜 소식이 있었다. 썩어 문드러진 고무통의 고깃덩어리가 발작을 시작한 것이다.

 더러운 냄새와 덩치 탓에 괘념치 않을 순 없었다. 방향제를 아무리 뿌려도 소용없는 녀석이었다. 구더기를 자체 생산하기라도 하는지 허연 것들에게 부하게 뒤덮여 있었다. 구역질이 나서 참을 수 없었지만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구더기들이 다 먹어 치울까 봐 겁이 나지만 콩을 집어내듯 일일이 건져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무튼 나쁜 일은 아니다. 얼굴을 갉아 먹히면서 시체만 지을 수 있는 울상을 지어준 건 고맙다. 박수 두 번.

 그는 큰숙모가 있는 고무통도 열었다. 역시 여름이다 보니 구더기를 만난다. 식구들이 훨씬 덜하지만 혐오스러워서라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고무통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도대체 어디서야……? 못살겠네, 정말.”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흉내도 내지 못할 온화하고 평화로운 어조로 말했다.

 “과학수사대들은 돼지를 갖다가 부패 실험을 하기도 한다더니. 근데 난 과학수사대가 아니잖아. 큰숙모는 또 뭔 죄야? 대체 뭐로 보는데?”

 그가 싱글벙글 말했다. 똑같은 근육을 움직였을 뿐인데도 5분 전보다 진한 눈웃음이었다. 잘하면 곧 거기서 빛이라도 날 거 같았다.

 그는 옆에 기대 놓은 뚜껑을 쓱 밀어 올리는 식으로 해서 닫았다. 너무 건성이라서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잠깐 동작을 멈추고 입술만 오물거렸다. 가족들이 누가 있나 셈을 해 보았다. 누가 남았는지 말이다. 한 명씩 복기할 때마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했다. 마냥 웃기기만 했다.

 

 전신 거울 앞에 선 은샘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불렀다. 남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마음에 들었다. 요조숙녀처럼 치마 자락을 잡고 이 자세 저 자세 취하면서 모델이라도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10대들이나 좋아할 법한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 같은 거 말이다.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 주는 남자 친구.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플랫슈즈를 신고 핸드백을 어깨에 걸었다. 방에서는 크게 향수 냄새를 맡지 못했는데 공기가 바뀌니 여자가 느끼기에도 매혹적인 향기가 났다. 컨디션으로 보자면 최상이었다. 그녀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환용은 다리를 덜덜 떨면서 발기부전 치료제 두 알을 먹었다. 먹은 듯 만 듯해서 몸을 탈탈 털고 앉은 자리를 확인했을 정도로 목구멍에 술술이었다. 아내가 죽었다. 당연히 슬픔은 있었다. 기쁨이 그것보다 만 배는 커서 그렇지. 여태껏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한 거 같아서 서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영과의 섹스가 그런 생각을 가중 시켰다. 재수와 아주버니의 관계가 이렇게 발전할 줄은 꿈에서라도 알았겠는가. 우연히 몸을 섞은 게 역사가 된 것이다. 세상엔 남자와 여자라는 반쪽짜리의 절대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좆과 보지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세상에 태어났노라.

 그는 전화를 걸었다.

 “인영아? 갈게. 기다려. 왜 그래? 내 스타일 알잖아. 밖에서 만나.”

 

 148센티미터. 해연은 안을 볼 수 있게 얼굴 쪽 부분만 비닐 포장이 된 인형처럼 서 있었다. 시선이 멀어서 영락없는 인형이었다. 며칠 사이 또 가족들이 죽었다. 엄마는 실종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어제가 오늘처럼 살고 있었다. 장례식도 그저 만찬식에 불과한 느낌이었다. 웃고 떠들었다. 종교의식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변개라도 난 게 분명하다고만 했다. 당장 무슨 수를 내야 하니 의견을 모으자고 했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힘이 없었다. 가족들도 거의 무시 조였다. 모두 자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마약에 취한 사람들 같았다. 심지어 해연 자신도 엄마의 실종에 큰 감각이 없었다. 가족들의 죽음마저 남의 일 같았다.

 “모두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운동화 사이로 맹물 같은 침이 뚝 떨어졌다. 현호는 발로 그것을 문지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여덟. 자신을 포함해 여덟 명만 지구상에 남아 있었다. 아주 행복하진 않았지만 서로의 선을 지키면서 평화를 구사하며 살았던 일가가 무너졌다. 그는 남의 것인 양 자신의 양쪽 손바닥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마치 금방 염력으로 사람 하나를 99층 옥상에서 날려 버리기라도 한 듯이.

 “청혼이라도 해 볼까…….”

 자신이 생각해도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싶어 픽 거렸다. 은샘은 간호조무사 과정을 포기했다. 솔직히 그도 그걸 바랐다. 이참에 그녀를 가족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낙인 사냥을 나서는 것이다. 죄인을 수집하여 일가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으론 깨끗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고 인류적으론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는 방편이었다. 그걸 수행하는 X교 교도들이 도탄에 빠졌다. 어떻게 보면 핵심 멤버만 남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하면 그 누구라도 핵심 멤버로 만들 수 있어 아쉬웠다. 하지만 용범이나 조부만은 인정해야 했다. 그도 그런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는 은샘과 가정을 꾸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금세 사이코틱하게 변질되는 건 염세적인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마을에 평화가 깃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모두들 아닌 척하지만 힘들 것이었다. 그는 젊음과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 다르지만. 그는 아내와 아들딸이 함께 있는 상상 속에서 눈동자의 두 검은 점에 낙인이 아로새겨진 자들을 발견했다.

 아까도 낙인을 발견한 그였지만 관심 없이 보냈다. 다른 여지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용범에게 이가 갈렸다. 어린애 취급하는 게 지긋지긋했다. 원한다면 사촌이 보는 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멱을 따고 포장을 해체해버릴 수도 있었다. 거기다 웃음까지. 피범벅이 된 손을 외과 의사 마냥 병신 같이 쳐들고 미친놈처럼 낄낄대는 것이다. 진짜 그럴 수도 있었다.

 “오빠!”

 은샘이었다. 자연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족 일은 깡그리 잊었다. 커플은 여느 젊은 연인이 그러하듯 군것질부터 했다.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다. 튀김이라면 현호는 오징어 튀김만 먹었다. 원래는 고구마튀김을 먹는데 오늘 없었다. 커피는 사진 전시회에 다녀온 뒤 마셨다. 연극 감상이 사진 전시회로 대체 된 건 주연 배우의 이탈 때문이었다. 낙인이 눈 밑에 박힌 그는 고모의 밥이 되었다. 치마를 들쳐 음모를 싹 민 아랫도리를 보여주고 낚은 것이다. 고모가 낙인을 줍고 다니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마을이 뒤숭숭하다 보니 일선에 나서게 된 것이리라. 역시 고모의 성향대로 예쁜 남자다.

 “손 안 잡아?”

 은샘이 가녀린 손을 내민 채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는 키가 그렇듯 손도 길고 손가락도 길었다.

 “아, 잠깐 딴생각 중.”

 “난 손 내미는 중.”

 둘은 잡은 손을 흔들면서 길을 따라 걸었다. 딱히 목적지가 정해진 건 아니었다. 커플의 기본 개념이 그러하듯 어느 장소 어느 때든 살만 비비고 있으면 그보다 좋은 게 없으니까. 하지만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간 건 잘못이었다. 솔직히 현호는 엉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정도였는데 옆에서 혀로 입천장을 톡톡거려대니 사족을 못 쓰겠는 것이다.

 골목은 큰 편이었다. 저만치는 방위표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는 대충 장소는 기억하자는 심산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미아가 될 일은 없지만. 대충 키스 정도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랫도리였다. 뭔가를 해야지 진정이 될 거 같았다. 혀가 문제가 아니었다. 예민한 건 혀만이 아니니까. 혀는 누리지 못하는 게 있다. 그게 지금 그를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거부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미는 듯했다. 그녀의 목과 턱 안쪽, 유방을 깨물 수도 있었다. 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와 씨발 좆도! 하지 말라고!”

 순간 커플은 긴장했다. 전봇대가 서 있는 쪽이었다. 안쪽 주택가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는데 거기서 찌그러진 깡통이 깡하고 날아 나왔다. 현호는 돌아가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실오라기 같은 보폭에 달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제발 나 좀 봐 달라고 그녀의 옆얼굴을 두 눈으로 때렸다.

 “누가 있는데?”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당겼다. 그리고 양아치 같은 녀석들과 눈이 마주쳤다. 넷이었다. 하나 같이 화려하게 염색을 했고 꽉 끼는 바지에 헐렁한 상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파우더라도 발랐는지 이상하게 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맞닥뜨리고 나서야 연한 화장을 한 게 맞았음을 현호는 깨달았다. 자신과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다. 게이 같은 건 아닌 것 같았고 그저 멋에 살고 멋에 죽는 너저분한 놈들 같았다. 눈 화장까지 한 것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였다. 물론 단적인 면에서다. 그는 몹시 긴장했다.

 “야?”

 넷 중 하나가 거들먹거렸다. 하나같은 표정이었다. 실실 웃는다는 게 뭔지 보여주는 표본들이었다.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지 서로들 의식하면서 커플을 에워쌌다.

 “왜 이러세요?”

 은샘이 남자 친구의 팔에 바짝 안겼다.

 “왜 이러세요오오?”

 넷 중 하나가 따라 하자 셋이 웃었다. 침을 뱉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름살을 자랑하며 먼 하늘을 보는 녀석도 있었다. 앞니가 하나 없는 녀석이 얼굴을 들이대더니 검지로 그것을 문질러댔다.

 “돈 좀 빌립시다?”

 “네?”

 현호가 말했다.

 “거 돈 좀 빌리자고오오.”

 그다음부터는 무차별 폭격이었다. 현호는 순식간에 정복을 당해 바닥에 뒹굴었다. 양아치들이 신이 나서 원숭이 소리를 내며 쫓아다녔다. 마치 다리에 붙은 불이라도 끄려는 모양으로 열심히 두 다리를 놀리는 것이다. 힘찬 동작과 젊은 실루엣만 아니라면 멀리서 봤을 때 주정꾼들인 줄 알 것이었다.

 “하지 말라고요!”

 은샘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는 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남자 친구의 뒷주머니에 든 지갑마냥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만약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온 고등학생들이 아니었다면 큰 변고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감사 인사밖에 없었다. 아직은 어린 그들이니 그것만으로 족했다. 정확히 스무 살이 되면 날아가 버릴 휘발성의 정의감.

 은샘은 남자 친구를 데리고 E마트로 갔다. 화장실에서 대충 몸을 추스른 현호는 문득 세면대 속 얼굴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제야 한쪽 눈이 잘 안 보이는 걸 알았다. 오른쪽 눈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는 깨진 입술에 온수를 끼얹으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씨발. 씨발…….”

 그가 중얼거렸다. 누가 듣는 게 무서운 것처럼 속삭이듯이. 주먹으로 대리석으로 된 세면대를 소심하게 내리쳤다. 탁. 탁. 탁탁. 그러자 분노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거렸다. 위로 찢어진 눈이 도깨비 같았다. 코는 작살처럼 당겨져 있었다.

 “씨발. 좆같이……!”

 떠올려 보면 양아치 녀석 중 누구도 낙인이 없었다. 그딴 놈들이 깨끗한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었다. 깨끗함으로 무장한 김씨 일가에게 어떤 고난이 있었던가? 세상을 위해 이바지하는 지상의 수호천사들에게 무슨 역경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는 침을 퉤 뱉었다. 투하고 뱉었다. 세면 거울을 향해 침을 퉤퉤 투 뱉어 버렸다. 물 얼룩이 번진 세면 거울에서 묽은 침이 제비 똥처럼 떨어졌다.

 

 “얼굴이 왜 그래?”

 운전석의 용범이 조수석 창을 향해 말했다.

 현호는 쑥스러워하는 기색으로 조수석에 앉았고 은샘은 뒤로 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용범은 처음으로 은샘과 인사를 나눴다. 물론 둘은 초면이다. 은샘이 알기로는 말이다.

 “운전 안 해?”

 현호가 말했다.

 용범이 룸미러에서 시선을 거뒀다. 등에서 땀이 살짝 배어났다. 그녀의 향수 냄새가 귀두를 자극했다. 체취까지 맡고 보니 가서 볼이라도 핥고 싶었다.

 “어? 어. 근데 여친분은 어디다 내려다 주면 되냐? 목적지가 어디세요?”

 그가 다시 룸미러를 쳐다보았다. 혀 밑에서 침이 샘솟았다. 가슴 정중앙과 하복부에서 열이 올랐다. 성기에서 오로라가 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은 게 당연하지만 상황상 주먹으로 핏줄이 오른 것을 때려 놓고 싶었다. 기를 좀 죽여 놓으면 적어도 운전을 하는 동안에는 점잖게 있을 테니까.

 “우리 집에 가기로 했어. 우리 집에.”

 현호가 말했다.

 “형?”

 “어?”

 “우리 집에 간다니까?”

 “집?”

 현호가 적극적으로 운전석 쪽을 보았다.

 “집에 안 가시고?”

 “자고 가기로 했어.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잠이니까, 잠. 우리가 늘 자는 잠. 삼 분의 일쯤 투자하는 그거 말이야. 잠.”

 용범은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잠깐 먼 곳을 보았다. 눈에 초점이 돌아왔을 때 큼지막한 눈웃음이 번졌다.

 “고기 좀 사가자.”

 “좋지!”

 아까의 억울함도 잊어버린 현호였다. 은샘은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범이 룸미러를 통해 본 것은, 자신을 의식하는 남자를 인식하고 있지만 모른 척하는 맛있는 여자였다. 그녀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가히 절정에 이르렀다. 얼굴을 서로 문지르며 그녀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싶었다.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면 절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황홀경에 빠진 사람과 같이 백치 같은 얼굴로 운전대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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