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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심장 밀렵꾼 : 비존재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20.8.20

타인의 심장을 갈취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심장 밀렵꾼 준명. 그리고 그런 그의 심장을 원하는 한 여신. 그 애증 섞인 관계는 이윽고 서울을 한바탕 뒤흔들게 되는데....
아노미의 끝자락, 혹은 타락한 도시의 말로. '심장 밀렵꾼 : 비존재'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비존재_ 06
작성일 : 20-08-25 18:05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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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을 멈춘 후의 첫 숨은 악에 받친 신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터질 것 같은 심장. 휘청거리는 걸음에 수동적으로 끌려가 벽을 짚었다. 까칠한 벽돌의 감촉. 주변을 살피니 푸른 유리가 아닌 암적색 벽돌이 주변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주택가 근처까지 달려온 모양이다. 지금 위치한 곳은 그 중에서도 협소한 골목길이었다. 앞은 높이가 2M 쯤 되어 보이는 벽으로 막혀 있었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본능적으로 그것을 보고 뜀박질을 멈췄겠지.

 ‘하필 또, 막다른 길이네.’

 어째서 내 인생은 그 꽉꽉 틀어 막힌 벽과 이리도 인연이 깊은 건지. 이쯤 되면 막역지우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아주 뭣 같은 사이. 빚을 갚지 못해 검지가 댕강 하고 잘린 이후로 내키는 대로 걸어온 탓이라지만, 어디로 가든 결국 막다른 골목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봐. 아주 막장으로 치닫았잖아.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대신 돈을 쏟아 붓는 인생이었다. 뭐 언젠가는 다 찰 줄 알았지. ......구멍 뚫린, 나라는 인간마저도.

 “하아....” 한숨을 내쉬며 건물의 벽에 등을 대고 미끄러져 앉았다.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연초건 전자담배건 전부 코트에 넣어 두었다. 아까 내다 던졌잖아 그거.

 자책인지 짜증인지, 벽에 뒤통수를 몇 번 갖다 박았다. 생각보다 아파서 더 짜증이 솟아오른다. 포기하고 목에 힘을 풀었다. 잘 생각했다는 듯 벽이 뒤통수를 받쳐주었다.

 전력의 20%는 데려오지 않았으므로 일단 무리를 해서라도 계획을 속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투명한 녀석들에 대한 대책도 서지 않은 판국에 재차 싸워봤자 밀릴 것이 뻔하다. 우선 그 머릿수부터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 소멸 시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한나절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완전 분리 상태의 인간들을 동시에 유지시킬 수 있는 거지?

 해답 대신 찾아온 것은, 어디선가 떨어진 깡통이 땅을 구르는 소리였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자 주택의 옥상에서 먼지가 부하게 일고 있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충돌의 소음. 맞은편 벽에 있던 커다란 쓰레기 폐기 통의 뚜껑이 바스러지며 내 쪽으로 넘어졌다. 널브러진 쓰레기봉투들이 무언가에 치여 사방으로 미끄러진다.

 “설마...!” 아직 따돌리지 못한 적이 있었던 건가?

 분명 누군가 달려들고 있다. -그렇게 판단하고 황급히 몸을 뒤틀었다. 아니나 다를까 겨드랑이 옆을 빗겨 나간 사시미 칼이 ‘깡’소리를 내며 벽돌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내 흙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칼. 주춤거리는 발걸음에 흙이 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실 같은 신음도 들리는 것 같았다.

 ‘베였나...?’

 보통 대충 잡고 무식하게 휘두르면 미끄러져 손을 베이기 십상이다. 전문 밀렵꾼이라면 그럴 일이 거의 없겠지만, 찌를 때에도 칼의 각도가 밑으로 꺾여 있던 것을 보았다. 다시 말해 칼부림이 서투르다. 전문 인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머리를 굴리는 사이 다시 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몸을 뒤로 내뺀 것과 동시에 카각 소리를 내며 벽을 긁은 칼이 목젖을 스쳐 지나갔다.

 콱! 콱! 콱! 네 발로 기어 도망치자 적의 칼이 발 근처를 계속해서 찍으며 따라붙었다. 그대로 일어섰더라면 사정권에서 벗어났겠지만-

 “큭?!” 급한 마음에 발에 걸려 한 번 더 엎어졌다.

 그 사이 거리가 좁혀져 다음번에는 반드시 찍힐 거리에 육박했다. 어째야 하지? 보이지도 않는 팔을 잡는 것은 무리다. 우선 보이는 칼을 노려야만 한다.

 돌아누우며 발을 뻗어, 내리 찍히는 칼날을 뒤꿈치로 후려쳤다. 캉-! 땡그르. 딱딱한 구두 굽에 맞아 튕겨나간 칼이 벽을 때리고 그 앞에 떨어졌다. 멈칫 발을 구르는 소리. 적은 칼을 주우러 갈 것이다. 무기가 있다면 그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마추어들의 습성이니까. 이때가 기회다. 칼을 향해 달려 나가며 쓰레기 더미에서 굴러 나온 공병을 집어 들었다. 칼을 선점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노리는 것은, 그 칼을 주워드는 적의 손등.

 칼이 바닥에서 떠오르고, 나 또한 공병을 치켜들고 도약한 순간-.

 “윽!” 보이지 않는 적과 충돌하여 허공에서 속도가 우뚝 멈춰 섰다. 이어지는 수직 낙하.

 물론 이것도 예상했던 일이다. 당황하지 않고 넘어지는 도중 허리를 뒤틀어, 칼자루 부근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까앙, 쿵. 등 전체로 땅에 낙하한 탓에 척추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것은 적도 마찬가지일 터. 재차 칼을 떨어뜨리고 소리 죽인 비명을 횡사하는 적을 나의 왼손이 붙잡고 있다. 까끌한 느낌인 것을 보니 옷을 붙잡은 모양이다. 적이 당황해 뒷걸음질 쳤지만 나는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질질 끌려가며 오른손을 뻗어 칼을 주워들었다. 잇따라 나를 떼어내려는 듯 어깨며 갈비뼈, 등에 가해지는 발길질을 오롯이 받아냈다. 이를 악물고 발길질이 가해지는 방향을 향해 칼을 마구 휘둘렀다.

 “윽!” “흐윽-!” “으흑!” “흑!!” 서로의 처절한 숨소리가 교차했다.

 손목이 적의 정강이에 걸리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적의 칼질을 품평한 주제에 돼먹지 못한 자세로 내 손을 베이기도 했지만-

 이윽고 발이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거하게 일었다. 그리고 아직, 그를 붙잡은 왼손은 놓지 않았다. 복부에 발길질이 강하게 내리 꽂히는 것을 무릅쓰고 주변을 더듬어가며 나아가 마운트 자세를 취했다. 더듬던 손바닥에 오밀조밀하게 징그러운 것들이 와 닿았다. 아마 안면이겠지. 손아귀에 이빨 자국이 나며 피가 흘렀지만 아무 곳에나 칼을 찍어 박자 이빨은 절로 벌어져 나를 놓아주었다. 조금 손의 위치를 올려 이마를 짓눌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몸부림치는 적을 눌러 제압하며 숨을 정리했다. 허공에 짧은 입김이 연속으로 피어오른다. 그것이 시야를 가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턱을 타고 내리는 나 자신의 피를 훔치고자, 칼을 찔러 넣었다는 사실을 깜빡한 채 그대로 손을 들었다. 상처를 들쑤시며 칼이 뽑히자 터져 나오는 소름 끼치는 비명.

 “아 미안. 후, ....깜빡, 깜빡했다야.”

 그 짧은 소리조차 힙겹게 새어 나왔다. 적 또한 체념했는지 점차 저항이 줄어갔다.

 길목을 지나던 여자 한 명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소스라치며 넘어지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어딘가로 냅다 도망쳤다. 그럴만한 상황이겠지만 이건 전부 다 내 피라고. 땅에 쓸리거나 공병 조각에 베이거나, 혹은 발로 차인 곳에 피멍이 터진 것뿐이다. 적은 피를 흘릴 수도, 애초에 보이지도 않는 몸이므로 딱히 그렇게 잔인한 장면은 아니었을 터인데. 뭐 어쨌든.

 “그 모습, 심장을 빼앗긴 거야?”

 칼을 든 쪽의 셔츠 소매로 땀과 피를 닦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적의 이마를 누른 채 물었다.

 “............”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그 여자가?”

 아무래도 입막음을 철저하게 해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 규모의 조직을 가지고 있음에도 별 소문이 나지 않은 것이겠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괜찮아. 이번 일이 잘만 풀리면 우리 회사로 들어오게 해줄 테니까. 그보다 지금 말 안 하면 죽는걸.”

 죽는다는 말이 말장난으로 통용되는 바닥이 아니니까, 재량껏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한다.

 “.....빼앗긴 건 맞아.”

 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자유의 기회를 주지.”

 “자유의 기회?”

 “그래.” 그렇게 답하며 적은 고개를 거칠게 휘두르려 들었다.

 이마에서 손을 떼어내자 적은 그제서야 다시 말을 이었다.

 “그녀가 내준 의뢰, 리퀘스트라고 불리는 것을 소멸 시간 내에 해결하면 잠시 심장을 되돌려줘. 물론 잠깐 링크시킨 다음 바로 적출해서 금고에 반납해야 하지만. 단순히 소멸 시간을 초기화시키기 위한 용도인 거지.”

 “무슨....”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자신이 직접 손도 대지 않고 이만한 규모의 조직을 형성한 건가.

 .......이건 좀 위험한데.

 “조언이랄까, 의뢰도 달성 못 했고. 어차피 이대로 돌아가면 죽으니까 말해주는데-“

 각오를 다지려는 건지, 가쁜 숨을 짧게 한 번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 보스를 잡으려는 심산이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아.”

 “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그럼. 희대의 X새끼 전지석. 요새 모르는 사람 찾기도 드물어.”

 망가져버린 성대의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그는 그런 같잖은 별칭을 읊었다.

 “하지만 생각해봐. 이딴 잔인한 방법을 강요하는데, 반항적인 감정을 품은 놈들이 오죽 많겠냐고. 그걸 단신으로 전부 묵살시킨 여자야. 처음에 돈이 있던 것도 아니고, 소속도 출신도 불명이야. 오직 가냘픈 여자의 몸만으로 그 많은 인원의 반란을 제압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럼...?”

 내가 되묻자 적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인간이 아니라고, 그 여자.”

 “무슨 소리지?”

 “신이든 뭐든, 뭐 그런 거겠지. 이 이상은 몰라.”

 “.......알았다.”

 반쯤 헛소리로 여기고 알았다고 답했지만, 요즘 세상에 그렇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대뜸 세상을 뒤집어 엎어놓은 시점에서, 신은 자신 혹은 자신들의 존재를 대놓고 시인한 셈이었으니까.

 피로 탓에 잠시 눈을 감자 눈꺼풀이 불에 타듯 작열하는 것이 느껴졌다. 대화도 끝났겠다, 눈가의 핏방울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때.

 “가려거든 죽이고 가라.”

 그가 내 바지 자락을 붙잡았다.

 “잘 끝나면 받아준다니까?”

 “그냥 살기 뭣 같아서 하는 소리야.”

 “.........”

 혹시 반격의 여지를 살피고 있는 것인가 의심했으나, 그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싫음 니 심장 빼서 주든가. 그거 가져가는 게 내 의뢰거든.”

 ........뭐, 그럴 수는 없지.

 길게 끌 것 없이, 편히 잠들게 해주었다.

 어느새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엎질러져 있었다. 분명 추운데 따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하늘이었다. 이대로 삶을 내려 둘까 생각하게 만드는 잔학한 포근함.

 물론 거기까지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기습이라도 당했다간 꼼짝없이 죽을 체력이므로.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나려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준명의 전화였다.

 “웬일이냐, 전화를 다 하고.”

 짤막한 인사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준명이 말했다.

 “만났어. 그 여자.”

 “그 여자가 누군데”

 “마린 심장, 가져간 여자.”

 “뭐....?”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 너무 지쳐 목소리에 감정이 제대로 묻어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

 “놓쳤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준명이 그런 황당무계한 소리를 내뱉었다.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말투였지만, 아마도 어쩔 수 없는 결과였으리라. 일단 그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바로 내일, 마린의 심장을 건 오프라인 경매가 열린대.”

 해가 금세 떨어져서, 순식간에 주변이 어둑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XXX

  

  

 하늘은 빛을 잃어가는 와중에 도시는 어렴풋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꽤나 진행되어 광원의 위상이 역전될 때까지, 나는 지석에게 지금까지의 사정을 설명했다.

 “알겠으니까, 일단 너는 나서지 마. 내가 계획을 너한테 털어놓은 게 무슨 이유에서라고 생각해?”

 귀에 가져다 댄 액정 너머로 지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0층에 위치한 오피스텔의 발코니. 그곳의 난간에 팔꿈치를 올려둔 채 턱을 괴듯이 핸드폰을 귓가에 대고 있었다.

 “정 그러면 내가 경매에서 심장을 가져오면 되잖아. 돈을 써서라도.”

 “그거 생각해봤는데, ....역시, 직접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슨 수로.”

 지석이 나무라듯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1000억을 빌려주는 대출 업체는 없다?”

 “굳이 돈으로 가져오지 않더라도....”

 “그럼 뭐 물리적으로 충돌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조직 하나가 일망타진 당했어. 그것도 국내 최대 규모인 우리 회사가 괴멸 당했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조직을 상대할 필요는 없어. 심장을 되찾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잖아.”

 “아니, 하......”

 거기서 말이 끊기고, 여러 잡음과 짧게 떨리는 호흡이 섞여 들려오기를 잠시. 이윽고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게.”

 공기가 가득 베인 목소리였다.

 “그냥 옛날에 그녀의 일부였던 세포조직, 그것뿐인 거 아니야? 네가 옛날에 그렇게 싫어하던 나랑 하나 다를 게 없잖아. 잔뜩 쌓아놓고 쓰지도 않을 거 뭐하러 무고한 사람들 인생을 그렇게 망쳐놓느냐며. 지금의 너라면 그 말을 들었을 때 뭐라고 대답할 거냐고.”

 “...........미안.”

 결국 그의 말에 답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길을 택했지만, 나에게는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안? ......그래. 내가 벌인 일이니 그럴 필요도 없지만 정 사과를 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을게. 근데-“

 차오르는 감정을 숨과 함께 억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딴 두 어절로 끝날 상황이 아니야. 말 했잖아, X됐다고. 아끼던 동생도 뒤지고 수년간 쌓아 올린 회사의 인력 80%가 죽었어. 지금 싸그리 무너진 회사 손해 메꾸려면 검지는 둘째 치고 내 심장, 내 몸 전체를 갖다 팔아도 못 메꿔. 그것뿐이야? 그 모든 걸 갖다 꼬라박아서라도 갱생하길 바랬던 친구 놈은 제 발로 목을 대주러 간다네?”

 “정말로 미-......”

 “그러니까 그딴 사과 집어 치우고 당장 손 떼라고!!!”

 고막이 먹먹하게 마비될 정도로, 지석의 크나큰 고성이 전해져 왔다. 핸드폰이 과열되는 것이 그의 분노 탓인 것만 같았다. 지석은 계속해서 출처 모를 울분을 토해냈다.

 “그렇게 상황이 등 떠미는 대로 걷다 보면 그 끝이 어딘지 알기나 해...? 목표했던 걸 손에 넣으면, 시달려왔던 갈증이 해소될 것 같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 꿈같은 소리 하지 마 원하는 곳에 도달한 다음 남는 건 죄책감이나 후련함이 아냐 적응이지. 더 이상 내가 죽여 온 이들이랑 내 곁에 있는 지인들의 차이가 뭔지 설명할 자신이 없어지면, 그땐 진짜 끝인 거야.”

 “이번 일을 끝나고 바로 손을 뗄 거니까 걱정 마.”

 “무사히 끝날 거라는 생각이 안 드니까 그렇지 이 등신아. 그 여자가 네 심장 뺏겠다고 굳이 경매를 연 이유가 뭐겠어? 생각이나 해봤어? 설사 네가 최고가를 불렀다고 하더라도 곱게 넘겨 줄 것 같든?! 그 여자는 최종적으로 네 심장을 달궈놓는 게 목표 아니야 마린 심장이 그 미끼인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잖아!”

 “다 알고 진행하는 일이야.”

 “아니 X도 몰라 너 같은 애새끼는!! 매번 그렇게 철판 깔고 나가서 제대로 심장 한 번 만져본 적 없잖아! 그렇게 애쓰면서 순수하게 남아놓고 왜 이제 와서 다 갖다 버리려는 건데?!! 다시는 거기로 못 돌아가는 사람도 있어!! 아직 갱생할 여지가 있다는데 왜 그렇게 말을 들어먹질 않는 거냐ㄱ-....!!!”

 뚝.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 단출한 효과음과 함께 지석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도시 저 아래서 피어오르는 신경질적인 경적과 바람소리, 그리고 이웃집의 잡다한 소음들이 다시금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마치기 전에 끊어버린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어차피 내가 이번 일에 개입하겠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알리기 위한 전화였으니 딱히 상관없겠지.

 반쯤 의도적으로 기울인 손바닥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도시 속으로 점이 되어 사라진다. 잠시 동안 손에 남은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그 손을 그대로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양쪽 다 차갑고 건조해서 마대자루라도 쓰는 듯한 소리가 났다. 도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손등에 작고 차가운 물방울이 몇 번 닿아 터진다.

 ‘비가 내리나....?’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행히 아직은 맞을 만한 수준이어서, 달아오른 몸을 식히는 겸 실내로 들어가지 않고 발코니에 머물렀다.

 여러 군데에서 고개를 내민 전광판에서는 여전히 경매 건에 대해서 송출되고 있었다. 마린의 전성기 시절 공연 영상을 재생하거나, 경매의 장소와 시간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반복했다. 그 중 가장 큰 전광판의 뒤에서는 커다란 폭죽까지 펑펑 터져대고 있었다. 아마 그 여자가 벌린 일이겠지. 자금을 사용했든, 신으로서의 능력을 사용했든. 이목을 끌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 둔 것이리라.

 “정말 사람 하나 멕이려고,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네.”

 우리 위대한 신님께서, 친히도 말이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지. 그래. 이런 게 사랑이다.

 오히려 다른 것을 사랑이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한없이 위선에 가까운 것이겠지.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것도

 존재를 위한다는 거짓말도

 잊혀져 가는 추억을 부정하며, 추잡하게 발악하는 일도.

 그런 건 분명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이쁘장한 감정이 아니니까.

 조금씩 새어 나오는 실소를 막을 수가 없어서, 나는 스스로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윽고 한쪽 눈꺼풀이 심하다 싶을 만큼 파르르 경련하는 것으로, 비로소 그것이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검지를 반으로 접어 눈꺼풀을 지그시 누르는 그 동안에도

 전광판 위의 마린은 여전히, 그리고 하염없이.

 의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춤을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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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비존재_ 10 (END) 2020 / 9 / 1 250 0 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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