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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16. 즐거운 방문
작성일 : 20-08-25 04:06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7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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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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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색 뉴비틀이 화창한 하늘 아래서 굴렀다. 40도까지 웃도는 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피곤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나리도 상당히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집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방바닥에만 눌러 붙어 있었다. 꼴사납게 팬티 차림에 선풍기 두 대로 버티다가 오늘 나왔다. 에어컨 바람도 나쁘진 않지만 달리면서 느끼는 자연풍이 좋았다. 손을 창밖에 내빼 신선한 대기가 짜낸 바람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는 피곤한 듯한 얼굴로 앞유리창을 주시하다가 창밖의 손을 움직여 늘어진 손가락을 보았다.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시야에서 이물이 느껴진 덕분에 그는 매혹적인 생각에서 벗어났다. 새 한 마리가 전면 유리창에 빨려드는 스크린을 쪼개며 날아갔다. 그는 한쪽 입 끝을 세우면서 꽤나 관심을 보였다. 새는 날갯짓을 크게 몇 번 하더니 창공을 향해 솟구쳤다. 양쪽에서 팽팽히 당겨 균형을 이루어 주는 것처럼 날갯짓 없이도 떨어지지 않았다. 평온해 보였고 자유로워 보였다. 파도에 하단부가 잠기는 배처럼 중력에 이끌릴 땐 다시 힘찬 날갯짓을 해 하늘에 꼭 붙었다. 새는 새털구름이나 양떼구름 같이 사라졌다.

 도로는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계속된다는 표현이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들과 잡풀, 나무, 이름 모를 꽃, 멀리 능선과 산줄기가 보였다. 똑같은 것들에게 쫓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식물들은 죽은 듯 가만히 있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마법에서 깬다. 몸을 돌려 봉우리로 꽃가지로, 이파리로 그를 조명한다. 어디로 가는지 꽃과 나무와 바람에게 알린다. 꽃가루처럼 퍼진 소문은 산과 산을 돌아 그를 영영 옭아맨다. 진짜 그런 느낌이라 그는 괜스레 나른해졌다.

 “아유, 무슨 상관이람…….”

 그는 창가에 걸쳐 있는 손바닥을 흘깃 보았다. 오늘따라 손금들이 많이 구겨져 보였다. 반쪽 난 왕관처럼 가볍게 오므라진 손가락들.

 그는 재밌는 마을에 관해 생각했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원래는 20명 정도의 사람이 살았던 곳이었다. 그랬던 곳인데 몇 달 사이 여섯 명이 죽었다. 그 죽음에 관해서라면 신이시여, 박나리는 하나도 모릅니다! 그는 마치 머플러를 쓰레기처럼 튜닝한 양카의 양아치라도 된 듯 성의 없이 운전을 했다. 몸과 뒤통수는 등받이에 결합시키고 눈을 내리깐 채로. 때때로 샌들을 신은 발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면서.

 “오늘은 누가 좋을까나? 나는 알 수가 없다네!”

 즉흥적인 노랫말. 혼자만 재미있는 알쏭달쏭한 가사. 갖다 붙이기만 되는 리듬.

 

 애란은 곤히 잠들어 있는 남편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십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남편과 살다 보니 어느덧 47살. 어느덧 쉰이 눈앞이었다. 청춘은 너무도 옛것이 되었다. 참 많이도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특유의 친절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의도적인 친절 서비스는 아니었다. 눈웃음은 형이상학적인 것이었다. 불가항력적이어서 그녀는 봉인을 해제하지 못한다. 눈꺼풀을 들춰내면 용범과 그리고 휠체어의 요정과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수백 명이 터져나간 폐광 어딘가의 보석과 같은 그런.

 인간이라면 그 눈을 보고 기분이 나쁘다 정도를 느낄 것이다. 야생에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는 약자이니 고만하면 됐다. 하지만 타고난 야생의 사냥꾼들은 다르다. 그래서 최대한 거리를 두려 네 다리로 뜀박질을 한다. 빠른 다리가 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의 눈동자에 사로잡힐 것이었다. 대놓고 낫을 뽑고 와서 목을 걷어가도 저항할 수 없다. 달빛 아래 그녀는 모든 포식자의 왕이자 여왕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는 남편의 손을 가만 잡아 자신의 보지 위에 올렸다. 앞으로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남편은 그녀의 보지를 만지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치마를 들춰내 그 안에 남편의 손을 넣었다. 그러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가까이 가야 함은 당연했다. 남편의 손가락이 그녀의 밑구멍에서 부스럭댔다. 마치 덤불 속 토끼처럼. 그녀는 밑구멍으로 그걸 사냥하려다가 말았다. 물이 나오지 않아 아플 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10대 소녀처럼 입술을 예쁘게 다물고 있다가 발치의 양동이를 내려다봤다. 칼이 그 안에서 얼마나 요란하게 울어댔는지 모른다. 남편은 깊이 잠들어 있어 까마득히 몰랐다. 운명의 종소리를 말이다. 로코코 시대의 종소리는 사과즙이 아직 묻어 있는 과도로 쓸쓸히 5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5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는 영원히 쉰이 되지 못하다는 거였다. 그로써 영원히 47의 남자로 남는다. 비교적 젊다. 그의 피로 말하자면…….

 그녀는 남편의 뒷머리를 자기 쪽으로 당기면서 목에 칼집을 냈다. 아무리 신경안정제를 여러 알 먹었어도 이렇게 무딜 줄이야. 술의 힘도 작용했을지 몰랐다. 부부의 금실로 만들어진 따뜻한 액체가 양동이로 쏟아졌다. 마치 즙으로 가득한 호밀 빵인 듯 고목 같은 목에서 썩어서 물이 된 딸기 잼이 흘렀다. 홍해가 흘렀다. 선혈이 얼마나 신성해 보이는지 하마터면 그녀는 두 손을 내어 피를 받아 마실 뻔했다.

 그녀가 머리채를 잡고 뒤로 휙 젖히는 순간에야 그가 눈을 떴다. 불필요한 행동이었지만 양동이를 채우고 있는 피가 얼마나 예쁜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술담배에 절어 사는 사람의 것이 왜 이리도 맑고 선명한지 마치 신들의 만찬식에나 나올 법한 포도주처럼 보였다. 그는 입만 껌뻑거렸다. 힘없이 발버둥 치는 게 아내로서 애처로웠다. 오만 정이 떨어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피를 하도 잃어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피는 머리에서부터 먼저 빠져나갈까? 뇌가 가장 전력 소모가 큰 거로 아는데. 그녀는 약 기운이 떨어진 안마기처럼 침대를 간질이는 발버둥을 슬픈 눈으로 응시했다. 남편이 바보처럼 보였다. 눈은 간절하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으나 몸이 따라줄 리 없었다. 굳이 보겠다면 그의 목을 떼어 내야 했다. 목이 잘린 상태에서도 얼마간 의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게 진짜일까 내심 궁금하지만 실천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침대보가 더러웠다.

 남편의 죽음이 완전해졌을 때야 그녀는 기쁨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죽은 쌍둥이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 귀여운 애들이 꿈에서 나오길 여러 해였다. 얼마 전부터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아빠가 보고 싶다는데 그녀가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다였다. 마음이 놓이고 머리가 맑아지는 거로 봐서 아이들은 아빠를 따라나섰다. 아빠는 아이들을 잘 돌볼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이면 성인이다. 부부는 쌍둥이가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에 농약을 먹여 죽였다. 계획에 없었던 출산으로 고통을 받던 그들이었다. 부모라는 책임감에 시작한 양육이지만 날로 불행하기만 했다. 걸핏하면 울어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옥 같은 삶이 수년이나 계속되었다.

 지금에서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배가 아파가며 낳은 자식이 아닌가. 남편과도 슬슬 힘든 상황이었다. 딱 쌍둥이를 키우는 기분과 비슷했다. 웃어주고 배려해주고 챙겨주고 이해해줘야 했다. 남편은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는 애가 되어 간다는데 그게 현실이 될 줄 몰랐다. 칭얼대고 조르고. 남들이 보기엔 그게 그렇게 보기 좋은지 마냥 웃기만 한다. 그녀는 싸구려 웃음이 싫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진짜로 웃는 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남편은 가엾게도 자살을 한 것이다. 아마도 숨기고 있었던 우울증이 있었던 듯했다. 엽기적인 방식이긴 하나 목을 넥타이로 만든 올가미에 넣고 자위를 하다 죽는 남자들과 견주면 특이점이랄 게 있을까? 그녀는 귀찮은 생각은 접고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가운을 걸쳤다.

 몸이 나른해지게 따뜻한 차를 마셨다. 잠을 자보자는 강박을 갖게 되니 오늘은 밤을 새야 하겠구나 하는 한숨부터 나왔다.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힘을 잃고 추락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부부침실로 가서 잤다. 꿈에서 쌍둥이가 나왔다. 아빠를 만났다고 행복하라면서 활짝 웃는다.

 

 차에서 내린 나리는 기지개부터 켰다. 그리고 고양이가 왜 그리도 스트레칭을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어찌나 개운하고 기분이 좋은지 볼 양쪽에 수염을 그린 고양이 청년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밤하늘에는 별이 많았다. 검은 고양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믐달이 정말 고양이의 눈처럼 보였다.

 그는 제일 끝 집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일전에 여기서 한 남자와 마주한 기억이 났다. 머리가 네모꼴의 대두였다. 사람 많은 곳 같았으면 기억에 남길 필요도 없는 별거 아닌 자였다. 주위에서는 사근사근하게 웃는다고 칭찬을 받을 자였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백치들에겐 친근해 보이고 친절해 보일 것이다.

 보잘것없는 꼬락서니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칭찬일 테니 거기에 얼마나 많은 크림 파이가 집중되어 있을까. 하지만 그의 눈에서는 철딱서니 없는 바보였다. 시비를 거는 것처럼 굳이 차 문을 올라타고 넘어오던 더러운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갈매기 날개처럼 찢어진 눈매에서 눈이란 걸 찾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는 현관을 향해 두리번두리번 걸어갔다. 몇 명 살지도 않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거기서도 여러 명이 죽어줘서 인구가 10명이 겨우 넘는 시골 동창회 같은 동네였다.

 그는 잔디에 난 콘크리트 길을 따랐다. 집 안은 환했다. 그는 현관문 앞에 섰다. 두드릴까 하다가 멈췄다. 창문의 십자 무늬 틀 사이사이 유리를 바라봤다. 내려온 커튼 끝이 풀려서 살짝 창문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그는 창으로 다가갔다. 몸을 벽돌에 기대고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그었다. 삐이이 하고 유리와 살의 마찰음이 들릴 거라 예상했으나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만 빼 들어 창문 너머를 훔쳐봤다. 휠체어를 탄 노파가 벽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마치 이 한여름에 불을 쬐고 있는 것처럼. 거실 소파에도 노인 하나가 있었다. 노파는 뒤통수만 보였지만 노인과 부부일 수는 없었다. 노인은 날 선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따금 노파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봐선 관계가 어디 멀리 있지 않은 거 같았다.

 다만 불온한 건 시선을 옮기는 동작에 힘이 실려 있다는 거였다. 벽에 붙은 에어컨에 붙은 종이들이 비행기 날개에 필사적으로 붙은 사람들처럼 요란하게 들썩였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듭 노파 쪽을 쳐다보면서. 도로 앉더니 다리만 정신 사납게 떨어댔다. 결국 일을 낼 작정인지 노파 쪽으로 가서 휠체어에 타고 있는 걸 끌어내렸다.

 나리는 그저 지켜보았다. 노인이 노파를 올라타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흉악스런 일이 끝났다. 징그러운 게 끝나서 나리는 안도까지 했다. 그런데 노인이 울음을 터트리지 않는가! 자신의 가슴을 양쪽 주먹으로 때려가며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비명을 토했다. 꾹꾹 눌러왔던 고통이 일시에 터졌다는 듯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옆으로 뒹굴 듯 노파에게 떨어진 후에는 흡사 총에 맞은 사람처럼 웅크려서 부들거렸다.

 “내가 대체 뭔 죄를 그리 지었다고 이런 것까지 봐야 되는지 모르겠네.”

 나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멀리 밤하늘을 응시했다. 별똥별이 떨어진 듯하여 그리로 고개를 돌렸지만 먹먹한 우주의 모사체만 있을 뿐이었다. 모기가 물어 대서라도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 꼴을 보아하니 여기는 건너뛰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가건물 같은 곳이었다. 그는 방범창의 창살을 손으로 드르륵거리며 걸어갔다. 그의 그림자가 안으로 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청난 것을 보고 난 뒤인지 까닭 없이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릴 거라고도 열리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 더 초인종에 손가락이 닿으려는 순간 잿빛이 쪼개지며 주백색 빛이 스며들었다. 문이 열리자 성숙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열 살가량 되어 보였다. 입을 열고 쳐다보는 얼굴은 그 나이 또래의 그것보다 꽤나 귀여웠다.

 아이는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되다 보니 귀찮은 절차도 필요 없었다. 한편으론 어린아이라 아쉬웠고 안타깝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도 하지만 그는 자기가 본 걸 아이에게 눈으로 전달했다.

 “진리야, 누군데?”

 아이의 귀를 스치는 먼 인영에 즉각 나리는 눈알을 움직였다. 작은삼촌 일가의 장남인 김진구가 아령을 든 채 서 있었다. 나리는 앞으로 이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남자는 10kg의 아령을 집어 던질 것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리는 피한다. 육체적으론 나리가 아슬아슬하게 밀릴 터이다. 상대가 큰 편은 아니지만 다부진 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싸움에서 누구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서로 가까워질수록 남자는 나리의 눈에 승복한다. 자기 자신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남자는 난생처음 알게 된 진실에 무릎을 꿇으리라.

 

 똑똑.

 캄캄한 방. 눈을 뜬 용범은 잘못 들었나 했다. 노크 소리를 들은 거 같았다. 기다려 보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눈을 감았지만 오히려 정신만 또렷해졌다. 선풍기 바람이 휘몰아쳐 왔다가 물러갔다. 그는 일어나 감시병처럼 고개를 돌리고 있는 선풍기를 쳐다봤다. 노크는 없었다는 결론이지만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집에 누군가를 함부로 들이지 말아야 하는 연유가 있고, 그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불상사라면 신에 대한 모독. 그는 착착 걸어가서 스위치를 올리는 동시에 방문을 홱 열었다. 하마터면 기절초풍을 할 뻔했다. 정액을 먹였던 큰숙모의 시체가 구부정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만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 선풍기만 끊임없이 웅얼거렸다.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11살 여자아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진리는 누구에게도 알릴 생각을 않고 불이 피어오르는 가건물을 바라만 보았다. 마치 방화범이 진화 작업을 하는 화재 장소를 재방문하는 심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장남인 진구가 가스 불을 올린 후 여기저기 불을 내는 걸 말리다가 잘생긴 오빠에 의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연예인처럼 생긴 오빠는 용돈까지 주며 어찌 되는지 끝까지 지켜보라고 일렀다. 돈을 주는 이유가 그것이라면서.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둠 속으로 걸어가 버렸다. 소녀는 진짜로 그렇게 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가 교차하고 있었다. 뭔가를 떠올리면 그중 하나가 또는 여러 가지가 비집고 들어왔다. 골인 지점이라도 있는지 서로 우위를 점하려 했다.

 어떤 이미지가 강해지면 금방 다른 이미지가 거세게 저항을 하여 진한 색을 냈다. 두루뭉술한 진술과 산만한 생각밖에 못 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일 테다. 그러다가 거의 무아의 상태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가스레인지에서 자란 불꽃이 큰 꽃처럼 자라나는 것을. 손으로 안아다 심은 꽃이 커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배시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왠지 나른했다. 가서 불을 쬐고 싶지만 무서웠다. 여름이라 덥기도 했다. 색이 예뻤다. 온통 노랗고 빨갰다.

 “오빠는?”

 아이는 불타는 집 안에서, 돌아다니는 오빠라도 발견할까 싶어 창문 쪽으로 갔다. 멀찌감치. 그리고 나리에게서 받은 지폐를 셌다. 앉은 자리서 되도록 작게 접어 하나씩 불구덩이로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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