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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해파리를 사랑하는 방법
작가 : 빈파
작품등록일 : 2020.8.11

사고로 인해 연기를 그만두게 되고 쫓겨나다시피 마이애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해타.
무작정 죽으려고 향했던 바다에서 자신에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준 시안을 만난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원래 하고 싶어 했던 연기를 배우며 배우가 되지만 시안은 쉽게 해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숨 쉴 만 해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커진 것 같은데."
"너는."
"...네?"
"너는 숨 제대로 쉬고 있냐고. 호흡 제대로 하고 있는 거 아니잖아."

사라진 시안을 음악방송 대기실 복도에서 만난 해타. 수면 위에 떠돌던 해타가 이제 가라앉고있는 시안을 심해 속에서 꺼내주려고 한다.

 
Beach 1
작성일 : 20-08-25 01:20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6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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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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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 한 달 때쯤 입원했을 때 옆 병실에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나는 1인실을 사용했었고 나올 때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빠져나와야만 했었다. 고급진 VIP 병실을 내주기에는 내가 너무 모자라고, 그렇다고 2인실이나 6인실을 주기에는 사랑받는 딸의 이미지가 있었어야 했기 때문에 병원 가장 끝에 자리 잡은 1인실을 내어줬다. 소란스러웠던 6인실에는 엄마가 입원해서 엄마를 보살피러 온 남학생이 한 명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하루에 여러 번 발작하는 엄마를 보기가 고통스러워 병실 밖으로 나돌던 남학생이었다. 가끔 병실 밖으로 나오던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남학생의 목소리가 퍽 다정했었다. 몰래 듣는 처지였어도 다정하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좋아 한쪽 팔에는 링거를 꽂은 채 벽 뒤에 숨어 노래를 몰래 들었다.

 

 남학생의 엄마가 큰 발작으로 쓰러지던 날에도, 같은 병실을 쓰던 70대 노인이 피를 토하면서 결국 세상을 떠나던 날에도, 20대 대학생이 병원비를 내지 못해 병실에서 쫓겨나던 날에도 남학생은 내 병실 앞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고운 목소리로 조용히 내 병실 앞 복도만 울리다 금방 사라지게.

 

 내가 죽으려 했다가 실패한 날에도 똑같은 노랫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언제든 노래를 멈추지 않던 남학생이 노래를 멈춘 날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

 

 

 

 거의 원액을 담아 흰 잔의 바닥이 보이지도 않은 블랙커피를 쭉 들이켜고 미사 발 앞에 잔을 쿵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미사는 내가 본명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듯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 외로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은 것인지 한국에 살 때 어디서 살았냐, 어느 고등학교에 다녔냐,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뭐였냐 사소한 거 하나하나 물어봤다. 그런데도 가족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아 선을 넘지 않는 미사.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 관심이 많고 오지랖이 많아 보여도 그 이상은 넘어가지 않는 항상 경계선 밖에 있는 사람.

 

 “다른 애들이랑은 인사했어?”

 

 미사가 팔을 뒤쪽으로 뻗어 푹신한 침대 위에 팔 두 개로 몸을 지탱했다. 시선이 흰 이불 위로 향했다. 페인트 껍질이 가득한 이불 위. 일주일 봤지만 미사 성격으론 내가 잠깐이라도 나갔다 온 새에 이 방을 아예 다르게 만들어놓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랬으면 하는 바람도 있긴 했다. 자다 일어났을 때 입안에 페인트 껍질 들어와 있는 거 기분 되게 나쁘다. 길 가다가 새똥 맞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맞은 적은 없지만.

 

 “마주친 적이 없어서요.”

 

 입안에 쓴 커피 맛이 가득 남아있었다. 입을 벌리면 ’에스프레소‘하고 자막이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네가 방을 안 나간다는 생각은 안 하지?”

 

 “저 나가는데요.”

 

 “학교 갈 때 빼고.”

 

 “...”

 

 “없지?”

 

 일주일 동안 이곳에 지내면서 미사 말고는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이 없다. 아니 아예 만난 적이 없다. 시차 적응을 하는 중에 학교도 억지로 다니는 중이라 제정신 차리기도 힘들어 누구와 만나 사교성을 기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낯선 사람은 처음 이 나라에 온 날 산호를 만난 것으로도 충분했었고 더는 남에게 신경 쓸 기력도 없었다.

 

 “너 여기 하루 이틀 있을 거 아니잖아.”

 

 미사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장난기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변하면 유독 그 차이가 컸다.

 

 “이미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뭔 하루 이틀이에요.”

 

 다리를 모아 앉아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얼굴 양옆으로 긴 검은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미사가 원한 답이 내가 원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미사가 원하는 답을 하면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네가 죽으면 그 사람들이 네 슬픔을 이해할까.”

 

 목 뒤에서 미사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침대에서 내려온 것인지 어느새 내 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양옆으로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한 손에 쥔 미사가 엉킨 머리카락을 꽤 거칠게 풀었다. 머리카락을 풀면서 당겨지는 두피에 순간적으로 입 밖으로 신음을 내뱉을 뻔했으나 입술을 물어 고통을 꾹 참았다.

 

 “이해하긴커녕 네가 죽었든 살았든 신경 쓰지도 않을걸.”

 

 “...좀 돌려서 말하면 어디 덧나요?”

 

 그가 내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잡아 정수리 쪽으로 올려 말아 묶었다. 목 주변의 머리카락이 사라져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돌려서 말하면 해나가 이해를 못 하길래. 내가 친히 직설적으로 말해줘야지 네가 이해를 할 것 같아서.”

 

 “미사 씨는 다 알고 말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음 잘 묶였네. 뻔뻔한 얼굴을 하고 세상 환하게 웃는 미사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지만 원래 웃는 사람에게는 욕도 못 한다고 했었나 침도 못 뱉는다고 했었나 그저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내 양어깨를 잡아 손쉽게 제 쪽으로 몸을 돌린 그가 제 옆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실핀을 뽑아내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실핀으로 고정했다.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맨날 내 앞머리 이렇게 핀으로 꽂았거든 그때는 이게 그렇게 싫었는데 내가 해주고 있네.”

 

 “미사 씨 늙은 것 같아요.”

 

 “너랑 몇 살 차이 안 날걸. 해나야 너 앞머리 까고 다녀라. 이마 예쁘네 왜 내리고 다녔어.”

 

 넓은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짝하고 때리더니 커피잔들을 챙겨 일어섰다. 겉으로 보기엔 예쁜데 가까이서 보면 클 뿐만 아니라 두껍기도 한 손과 맞닿은 이마가 후끈거렸다. 이 인간 손을 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철판을 달고 다니는 걸지도 모른다. 진짜 아프다 이마 부으면 어떡하지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뭐야.

 

 미사가 남의 속은 다 뒤집어놓고 유유히 커피잔을 방을 나갔다. 그가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꽤 무거웠다. 머리가 무서워서라는 핑계를 대며 바닥에 널브러져 누웠다. 누워있는 내 주변으로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짐이 가득했다. 캐리어는 양쪽으로 펼쳐져 옷가지가 풀어 헤쳐져 있었고 젖은 가방을 말리느라 짐가방 안에 있던 짐들은 방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방은 생각보다 크기가 컸다. 혼자 지내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방이었지만 다른 방은 2인용에 큰 방이거나 3인용에 큰 방이어서 차라리 1인용이 나을 것 같아 처음 그대로 쓰기로 했다. 2층에 끝에 자리 잡은 방은 큰 창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 남성 두 명이 앉아 있어도 충분히 널찍한 크기의 창.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실눈을 뜨고 집중을 해야지 저 멀리 수평선 끝에 간신히 보이는 푸른색. 창문에서 떨어져 바다로 입수하는 건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네가 죽으면 그 사람들이 네 슬픔을 이해할까.‘

 

 미사의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내가 죽어봤자 내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내가 슬픈가 지금?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내가 슬프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건 슬픔을 모욕하는 것이 아닌가. 나를 이해하는 것은 없다. 나조차도 내 감정의 정의를 의심하며 이해하지 못하는데 과연 누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말 하나에 쉽게 휘둘리면서 혼란을 겪는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 동안 내 몸 하나 챙기지 못하고 그 인간이 짜놓은 계획이나 실천하려 영어 하나 못하는 머리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온통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산소통 없이 화성에 놓인 것 같이 숨쉬기도 힘들었다. 물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도 현재는 없을 뿐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좇으며 억지로 버텨야만 했다. 화성의 중심을 향해 땅을 파도 물은 앞으로도 영원히 나오지 않을 텐데.

 

 “사약을 탄 건가….”

 

 입은 여전히 썼다. 안타깝게도 혓바닥은 쓴맛을 느꼈다. 매운맛은 통증이었고, 떫은맛은 압력이라고 했다. 쓴맛은 혓바닥이 느낄 수 있는 감각 중 하나라서 피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혓바닥을 뽑으면 안 느끼려나. 근데 혓바닥 뽑는 건 조선 시대 고문 중 하나 아닌가. 난 현대사회에서 굳이 조선 시대의 고문을 다시 불어오려는 끔찍한 상상을 했고, 목구멍이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가 헛구역질을 하고 나서야 그 생각을 멈췄다.

 

 12시가 지나고, 1시 가까이 돼서야 점심을 챙겨주려는 미사의 부름에 시체처럼 제 기능을 하지 않았던 몸을 움직였다. 온몸이 삐거덕거리는 듯 관절 하나하나 움직일 때마다 뼈가 뚜득거렸다. 미사가 묶어준 머리카락은 풀어 헤쳐져 반은 묶인 상태, 반은 풀린 상태로 머리끈에 고정돼 겨우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몸이 자꾸만 비틀거렸지만, 문에 머리를 박고 싶지는 않아 손을 뻗어 문손잡이를 꾹 아래로 눌러 문을 열었다.

 

 “아악!”

 

 “흐, 읍...”

 

 방문을 열자마자 눈앞을 가로막는 빨간색 머리카락은 둘째치고 그 빨간 머리가 내뱉는 비명에 놀라 입을 틀어막고 겨우 비명을 참았다.

 

 “미사 오빠 여기 왜 귀신이 있어! 지금 낮 아니야? 드디어 내가 미쳤나 봐 귀신이 보여 어떡해.”

 

 사람을 앞에 두고…. 저기요…. 억울하지만 차마 입이 열어지지 않아 반쯤 풀린 머리카락을 차라리 다 푸는 게 나을 것 같아 머리끈을 잡아당겨 나머지 머리카락도 아래로 풀러 어깨 위로 흘려보냈다.

 

 “서제인 말 좀 가려서 하지.”

 

 빨간 머리카락 뒤로 빨간 머리카락. 이번에는 짧은 빨간 머리카락이다. 내 시야에 가득히 들어온 풍성한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옆으로 치우고 내 앞에서 나와 시선을 맞추려는 듯 허리를 숙인 두 번째 빨간 머리카락. 근데 있잖아요. 당신도 손 떨고 있는 거 다 보여요….

 

 “죄송해요. 쟤가 겁이 많아서.”

 

 목소리는 꽤 정중했다. 근데 당신 여전히 손 떨고 있는 건 어떻게 할 건데. 그거나 해결하고 대인배같은 표정을 짓지그래.

 

 “아, 아니에요. 제가 누워있다 나와서. 죄송해요.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어요.”

 

 양옆으로 커튼을 친 머리카락을 처리하기엔 빗도 없고 거울도 없어 산발된 머리를 정리할 수가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거나 일 층에 있는 미사에게 가서 부탁하거나.

 

 “저 이름이….”

 

 “죄송한데 저 먼저 좀 내려갈게요.”

 

 내 얼굴을 확인하려는 듯 얼굴 사이 간극을 좁히는 두 번째 빨간 머리를 뒤로하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한 손에는 머리끈, 한 손에는 내 머리채를 앞으로 쥐고 있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미사 씨 머리 좀 묶어주세요.”

 

 한 손에는 신문, –아마 신문에 있는 십자 말 퀴즈를 맞히고 있는 것 같고- 다른 한 손에는 커피잔 –콜라인 게 분명하다-을 든 채 다리를 꼬고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미사가 정면에 들어왔다.

 

 “너 어디 십 대 일로 싸우고 왔어?”

 

 “귀신! 이 아니네…?”

 

 무턱대고 머리를 들이민 나에게도 당황하지 않고 커피잔과 신문을 식탁 위에 내려놓은 미사가 내 왼손에 들린 머리끈을 가져갔다. 미사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첫 번째 빨간 머리는 빵을 입에 문 채 씹지도 못하고 –내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제인 넌 내가 저번부터 말했지 오컬트 그런 것 좀 그만 찾아보라고.”

 

 “그니까요. 형 쟤 오컬트 동아리 들었어요.”

 

 여전히 거친 손길로 엉킨 머리카락을 푸는 미사에 머리가 자꾸 뒤로 당겨졌다. 첫 번째 빨간 머리카락의 이름인 것 같은 제인에게 뭐라 하며 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올려 묶는 미사와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두 번째 빨간 머리.

 

 “서제리 내가 오빠한테 말하지 말라 그랬지.”

 

 “뭐래 넌 말 안 해도 티 다나.”

 

 제리가 투덜거리는 제인 옆에 앉아 콜라인지 커피인지 정체 모를 것이 따라져 있는지 커피잔을 들어 쭉 마시더니 잔을 살며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참 전에 내 머리카락을 다 묶은 탓에 내 얼굴은 아무것도 가려져 있는 것이 없었다. 한참을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그가 환하게 웃었다.

 

 “아까 이름 안 알려주셨는데.”

 

 “이름이요?”

 

 “네 아까 이름 안 알려주시고 도망치셨잖아요.”

 

 도망친 게 아니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음 따지고 보면 도망친 거네. 서늘해진 목덜미를 마른 손으로 매만지다 시선을 내려 내 쪽을 올려다보는 제리와 눈을 마주쳤다.

 

 “해나.”

 

 이거 내 목소리 아닌데.

 

 “왜 형이 말해요?”

 

 “넌 이름 물어보기 시작하면 나이부터 어디 살았는지 하나하나 다 물어보잖아.”

 

 “그건 형도 그러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

 

 겉으로 보기에는 성숙해 보였는데 파고들고 보면 어린애가 맞는 것 같긴 했다. 대략 열일곱? 열여덟? 많아봤자 나랑 두 살 차이겠지만 생각보다 그 차이가 크다. 무려 고등학교를 갓 입학한 나이랑 수능이 코앞까지 다가온 나이니까.

 

 눈앞에 보이는 빨간색 머리카락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제리의 정수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처음 느껴보는 주변의 온도에 온몸이 저렸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도 항상 영하를 유지했던 온도는 겨우 나 포함 넷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금방 열을 만들어냈다.

 

 “저 올라갈게요.”

 

 처음 느껴보는 온도에 몸이 저려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들었다. 다리가 자꾸만 후들거려 땅이 기울어지는 것 같다는 착각을 받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땅이 기울어지고 자꾸만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아 멀미가 끌어 올랐다.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향했다.

 

 “밥 안 먹어?”

 

 미사의 다정한 목소리와

 

 “언니 왜 올라가요!”

 

 처음 보면서 벌써 언니라고 부르는 발랄한 제리의 목소리.

 

 “속 안 좋은 것 같은데요.”

 

 어리면서 성숙한 척하느라 변성기가 온 제리까지. 집 안을 가득 채우는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들이 속에서 정체불명 모를 감정을 자꾸만 올려보내 토할 것만 같았다.

 

 누구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계단을 뛰어 올라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방의 창을 모두 닫아놔 탁한 공기가 가득했다. 힘이 풀려 방문에 기대 주르륵 주저앉았다. 숨쉬기가 버거웠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숨이 막히고 울렁거리는 병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새로운 것은 익숙해지고 또 다른 낯선 것이 생겨난다. 낯선 것은 끝이 없다, 새로움은 불편해지면 낯선 것이 되어버린다. 나는 내가 겪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후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겪은 나는 아직 새로움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 속이 울렁거리는 낯선 것들밖에 남지 않았다. 산호의 노란 머리카락도, 미사의 미세한 경계선도, 흰 이불보 위 페인트 껍질도, 제인과 제리의 빨간 머리카락도 모두 낯설었다.

 

 완벽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위 뿌리를 내리고 곧게 서 있는 야자수. 절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회색빛의 아스팔트 길. 사실 알고 보면 아스팔트 위 서 있는 야자수가 낯선 게 아니라 해변 위의 아스팔트가 낯설었던 게 아닐까. 발목까지 차오른 물이 미지근했다. 이대로 목 끝까지 차오르면, 난 그때야 낯설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
 

 Mail: b8403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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