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도련님 오늘 못보셨어요?”
저녁이 되도 강이가 돌아오지 않자, 분녀는 저자거리 여기저기 강이를 찾아나섰다.
“산에도 안계십니다.”
정남이 혁과 강이의 아지트인 산중턱에도 다녀왔지만, 강이를 찾을 순 없었다.
밤이 됐는데도 강이가 돌아오지 않자, 강이네 집은 온 집안에 횃불이 켜진 채 긴장감이 돌았다.
“혁이 도련님도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답니다.”
혁의 집에 다녀온 정남이 광재한테 걱정스런 눈빛으로 고했다.
“어디 간다고 들은 건 없다더냐?”
“예, 나으리께서도 도련님 찾으러 나가시고 안계셨습니다.”
“대체, 이녀석들 어디로 갔단 말이냐.”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윤씨부인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무슨 기별이 왔을 것이오.”
“이 비에 괜찮을까요?”
“괜찮아야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광재도 불안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대체, 어디 가신 겁니까?”
정남 또한 안절부절이었다.
“강이 도련님~~~”
빗속에서도 정남은 강이를 찾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혹시 산의 구덩이나 바위 아래로 떨어진 건 아닐지, 아지트로 다시 돌아가 샅샅이 훑고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강이 도련님~~ 혁이 도련님!! ”
소리쳐 불러봤지만, 정남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터덜터덜 코빠진 채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강이가 탔던 말이 집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강이는 없이, 말만?”
“예, 마님. 말고삐에 피가...”
말만 돌아온 것도 놀랄 판인데, 말고삐에 피가 씻긴 자국이 있단 분녀 말에, 윤씨부인은 급기에 앓아누웠다.
“혁이랑 같이 있으니, 너무 큰 염려는 마시오. 부인.”
“...........”
“산적 소굴에서도 살아오지 않았소.”
윤씨부인한테 하는 말이었지만, 광재는 자기 자신한테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도련님, 대체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정남은 말발굽에서 강이가 간 곳을 추측해보려 했지만, 비 때문에 씻겨가 알 수가 없었다.
‘아, 도련님! 어디에 가신 겁니까, 대체!’
정남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 * * * *
혁을 찾아 나섰던 도균은 족집게 선생을 찾아갔다. 요즘 혁이 족집게 선생 제자들과 어울려 다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혼례식에서 봤습니다. 죽마고우라면서 친구도 같이 왔던데요.”
족집게 선생의 특제자와 도균은 마주쳤다. 특제자는 혁하고 칼이 몇 번 오가기도 전에,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오자, 큰 낭패감을 맛본 후 밤낮으로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글쎄요. 저는 일찍 돌아와서 그 후엔 어디로 갔는지...”
특제자는 혼례식에서 혁을 보자, 자기의 완벽한 패배가 떠올랐고, 승부욕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젠간 너를 꼭 이겨주마. 기다려라!’
뒤풀이도 마다하고 족집게 선생을 달달 볶으며, 연습 또 연습 중이었다. 그래서 무리들이 혁과 강이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혹 거기서 신방을 훔쳐보고 있는 거 아닐까요?”
도균은 그 길로 혼례식이 열렸던 집으로 쫓아갔지만, 이미 저녁이고 비까지 쏟아져 구경꾼들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대체 어딨는 거냐?’
발길을 돌려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저쪽에서 신랑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어 저건 혁의 말인데?’
도균은 한눈에 혁의 말을 알아봤다.
“자넨 누구길래, 우리 아들 말을 타고 오는가?”
“예? 누구세요?”
“혁 아버지네. 우리 혁은 어디 있는가? 강이도 같이 있었을텐데?”
“예? 그게... 저는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본부에서 칼을 휘두르는 걸 본 신랑은 똥줄이 타들어가도록 도망쳤다. 이 무섭고 두려운 마음을 색시를 품으며 날려버리고 싶었다. 색시 품에서 위로받고 싶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부리나케 산을 내려오는데, 언덕에 있는 혁의 말을 보게 됐다.
‘어디 골탕 좀 먹어봐라. 흥!’
신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혁의 말에 올라타 죽어라 달려 집으로 돌아온 것인데, 혁의 아버지와 딱 마주칠 줄이야!
‘혁이 아버지한테 무예를 익혔다 했지? 혁이 그 정도면, 아버지는 얼마나 더 뛰어날까?’
신랑은 도균의 눈치를 슬쩍 봤다.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간 뼈도 못추릴 것 같은데..’
‘그래 말하지 말자. 말 안하면 모를 거야.’
신랑은 입을 다물기로 작정했다.
“오늘 신혼 첫날밤이라니까요.”
“혁이 어딨는지 말할 때까진 못간다.”
“저 진짜 모른다니까요. 그냥 말이 있길래 타고 온 거 뿐이에요.”
“말의 앞뒤가 안맞지 않느냐? 신랑이 신혼첫날밤에 신방을 뛰쳐나갈 급한 일이 뭐가 있다고!”
“아 몇 번을 말해요. 뒷간이 급해서...”
“뒷간이 말 타고 다녀올 거리도 아니고, 또 뒷간 다녀왔다는 자네 옷엔 흙이 잔뜩 묻어있다.”
“아 몰라요 모른다구요, 진짜!! 왜 제 말을 안믿으세요.”
“자넬 지금 처음 봤는데, 어찌 믿을 수 있겠나? 게다가 사라진 혁의 말을 타고 왔는데.”
“아 몇 번을 말해요. 그냥 말이 있어서 탔다니까요. 제 말을 믿으세요.”
“자네, 애들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가?”
“예! 아니, 아니 아니요!”
신랑이 화들짝 자기 말에 놀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진짜 몰라요. 정말이에요. 제가 어찌 압니까. 혼례식 치러봐서 아시잖아요. 얼마나 정신없는데요. 왜 제 말을 못믿으세요.”
“자넬 지금 처음 봤는데, 내 어찌 믿어?”
왜 날 못믿냐, 처음 봤는데 어찌 믿냐... 똑같은 대화가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다. 도균은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당장 말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마음 같아선 신랑 목에 칼이라도 들이대고 싶었으나, 칼이 없었다.
‘지금으로선 이놈이 애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데...’
이럴 땔수록 침착해야했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들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틀림없는데.....’
도균은 좀처럼 좋은 묘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설마 날 죽이기야 하겠어? 난 모르는 일이야. 모르는 일.’
신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 * * * *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신랑은 그 비를 쫄딱 맞으며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딜 가는 거예요?”
칠흑 같은 어둠뿐이라 앞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되돌아가려고 말머리를 돌리면, 뒤에서 도균이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악!”
뭔가 검은 물체가 자기를 덮치는 거 같아 눈을 몇 번이나 감고, 무서움에 소리를 얼마나 질러댔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오줌도 몇 번이나 지린 거 같다.
“저 말할게요! 말할게요, 말한다구요!”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천둥 번개가 치고, 세찬 장대비가 퍼붓다보니, 신랑의 외침이 도균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 뛰어내리자!’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리려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지만, 그만한 배포가 있을 리 없었다.
‘무슨 신혼 첫날밤이 이래!’
‘내 첫날밤을 돌려줘!!!’
‘돌아가기만 해봐. 혁을 골려주자 작당한 놈부터 칼침을 날릴테니!!’
신랑은 무서움과 두려움, 분노로 가득차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강이네 집에 도착하자 대문에서 강이를 기다리던 정남이 달려왔다.
“나으리!”
“강이는 아직이냐?”
“예,”
* * * * *
신랑은 광에 갇혀있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으라십니다.”
으실으실 추웠는데 보송보송 마른 옷으로 갈아입자,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있었다.
‘대체 여긴 어디야? 혁이네 집인가? 날 죽이려는 거야 혹시?’
신랑은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하필 혁의 말을 타고 와서!’
‘왜 하필 안가던 그 길로 가서, 딱 마주 치냐고’
‘우리가 혁을 공격한 걸 알면, 나 여기서 죽겠지?’
‘아, 혁이 방으로 쳐들어왔을 때, 거기서 제압했어야 했는데....’
그러다 혼자 있을 신부 생각이 났다.
‘아, 지금 아리따운 내 신부는 뭐하고 있을까?’
신부 옷고름을 풀던 생각에 빠진 신랑은 히히히 웃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문이 열리면서 정남이 들어왔다.
‘저 눈빛 좀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무사구나. 스승님보다 잘 싸우겠는데? 오호~~’
정남한테서 느껴지는 진정한 무사다운 외모와 풍채에 신랑은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잡혀왔다는 걸 인지하곤, 정남의 강한 눈빛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정남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칼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신랑은 칼날을 보자 긴장돼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으윽!”
정남이 칼끝을 신랑의 목을 향해 겨눴다. 겁에 질린 신랑은 뒤로뒤로 물러나며 벽까지 뒷걸음질 쳤다.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었다.
“허흐윽”
눈빛으로, 칼로 신랑을 제압한 정남은 자기가 들고 온 얇은 옷 하나를 공중으로 던졌다. 얇은 스카프 한 장이 넘실대는 것처럼 공중으로 날던 옷이 춤추듯 사뿐히 떨어지고, 정남이 칼날을 위로 향하고 서 있자, 옷이 떨어지면서 칼날에 스르르 베어지며 떨어졌다.
‘아악! 얼마나 날카로우면, 옷이 그대로!!! 베어져?’
봤지? 하는 눈빛으로 정남이 신랑을 한번 쏘아본 후, 칼을 옆에 두고 신랑을 바라봤다. 신랑의 시선은 계속 칼로 향해 있었다.
‘나는 남자다. 용감한 남자다. 겁 없는 용맹한 남자다!’
쫄지 않으려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중인데...
“도련님!”
정남의 부름에 신랑은 움찔했다. 날카로운 칼날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신랑은, ‘도련님’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져 공포감이 극심해졌다.
“도련님, 혁이 도련님과 강이 도련님을 보셨지요?”
두려움에 침을 꼴깍 삼키던 신랑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댔다.
“협조를 잘해주시면, 바로 신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정남은 낮고도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눈빛만큼은
‘지금 당장 널 잡아 죽이고 싶다’
이글이글 불타는 분노의 눈빛으로 신랑을 쏘아보고 있었다.
“딸꾹! 딸꾹!”
정남의 눈빛과 목소리에 얼마나 기가 눌렸는지, 신랑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무서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아 무슨 신혼 첫날밤이 이래!! 나 돌아갈래~~~~~!! 엉엉”
신랑의 울음소리가 광 안 가득 찼다.
* * * * *
모든 얘기를 신랑한테 들은 정남은, 당장 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광재는 극구 말렸다.
“비가 거셉니다. 벼락도 칩니다. 도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러기에 널 보낼 수 없다. 강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벌써 생겼을 것이다. 니가 이 밤에 간다 해도, 한치 앞도 안보이는 어둠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근처에 가 있다가, 날이 밝으면 더 빨리 모셔올 수 있습니다.”
“눈이라도 좀 붙여라. 좀 쉬고 날 밝으면 다녀오너라.”
“........”
“왜 대답이 없느냐?”
“알겠습니다, 나으리.”
강한 바람이 불어 창문이 흔들릴 때마다 강이 걱정에 정남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도련님, 조금만 참고 계세요. 곧 달려가겠습니다.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