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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골든게이트 키퍼
작가 : 폴라로이드
작품등록일 : 2020.8.12

현계와 이계를 잇는 골든게이트를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들의 치열한 전쟁

 
제 7화 미치광이와 마녀
작성일 : 20-08-24 09:59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4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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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 화 >

 

 - 아카데믹 발레단 대표실 -

 

 “혜련아. 나 좀 봐주라.”

 “아니 선배가 그 정도 파워도 없어. 거절하면 되잖아.”

 

 아카데믹 발레단 단장 민혜련은 대표 김이섭을 구석으로 몰아 붙였다.

 

 “그러고 싶은데 이번엔 입김이 좀 세니까 하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그 냄새나는 입김을 뭐하려고 맡아. 아니 우리가 명성이 없어 실력이 없어.”

 “그 입김이라도 있으니까 공연도 하고 단원들 월급도 주고 그러는 거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후원금하고 보조금 없으면 힘들어. 진짜로 이번 공연 취소될 수도 있어.”

 

 김이섭은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아니 대표님. 우리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 누구 후원으로 이 자리에 오른 거 아니라고. 대표님하고 나, 그리고 우리 단원들이 피 땀으로 아카데믹 세운거야. 그 딴 후원 없어도 돼. 언제부터 우리가 윗선에 휘둘렸어. 낙하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 알잖아.”

 “혜련아. 다 알겠는데 이번만 내 사정 좀 봐줘라. 진짜 진짜 한 번만! 응.”

 

 애걸하는 목소리가 김이섭의 목에서 튀어 나왔다.

 

 “대표님. 뭐 죄졌어? 성추행이나 횡령 이런 거 한 거야.”

 “아니. 넌 진짜. 날 뭘로 보고.”

 

 발끈하는 김이섭을 보고 민혜련의 목소리는 다소 차분해졌다.

 

 “그런데 왜 그래.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 없었잖아.”

 “너도 대표 자리에 앉아봐. 때깔 만 좋지 해결해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야. 이꼴 저꼴 더러운 꼴 다 봐야 한다고. 그래도 이번엔 우리한테 좋은 일이야. 내가 그건 장담할게.”

 “흠.”

 

 민혜련은 입술을 다물고 가자미눈으로 김이섭을 노려봤다. 김이섭이 눈을 내리 깔았다. 숨기는 뭔가가 더 있다는게 확실했다.

 

 “도대체 걔 뭔데. 대단한 실력파라도 돼?”

 “…초짜래.”

 “뭐? 초짜?”

 

 김이섭의 말에 민혜련의 눈에 핏줄이 섰다.

 

 “대신 아무것도 안 시키고 그냥 넣어만 달래.”

 “심지어 초짜라고?”

 “배역 안 줘도 되고. 그냥 뒤에 세워놔. 그냥 그렇게만 해도 된다고 했어.”

 “배역이 뭐 애들 눈깔사탕이야. 주란다고 주게. 진짜.”

 “그러니까 주지 마. 아니면 막 갈궈서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만들면 되잖아. 네가 제일 잘 하는 거. 그건 내가 뭐라 안 할게.”

 “내가 언제 애들 갈궜다고 그래.”

 “아니 내 말은 열정을 다해서 가르쳤다는 거지.

 “하여튼 조용히 살려고 해도 날 가만 안 놔둔다고. 그 낙하산 갈가리 찢어놔도 뭐라 하지 마. 알았지.”

 “아, 그래, 그래. 알았어. 니가 지지든지 볶든지 알아서 해.”

 “아우, 진짜 더워!”

 

 민혜련은 심장에서 열기가 쭉 뻗어나가 목까지 뜨거워짐을 느꼈다.

 

 “너. 성질 좀 죽여. 그러다 병나겠다.”

 

 말문이 막힌 민혜련은 김이섭을 죽어라 째려볼 뿐이었다.

 

 ⁎ ⁎ ⁎

 

 - 발레단 연습실 -

 

 심호흡을 하는 발레리노. 토슈즈를 자기 발에 맞게 고치는 발레리나. 기본 동작을 점검하는 발레리노. 호흡을 맞추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 단원들은 고된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진짜 너무 한 거 아냐? 낙하산이 뭐야.”

 “그러게. 앵그리 마녀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선배. 단장님께 뭐라고 좀 해 봐요. 이건 진짜 아니잖아요.”

 “그 마녀가 그랬겠어. 그 위지. 그 위.”

 “대표가?”

 “에이 설마. 아무리 대표라도 앵그리 마녀한테 꼼짝 못하잖아.”

 

 삼삼오오 앉아 스트레칭을 하던 단원들은 한마디씩 불평을 터뜨렸다. 단원 모집 기간도 아닌데 뜬금없는 신입단원이라니. 누가 봐도 낙하산임에 분명했다.

 

 “여기 낙하산으로 꼽힐 정도면 제법 실력 있는 거 아냐?”

 

 그 말에 단원들은 살짝 긴장 했다. 한정되어 있는 배역. 누군가가 온다는 건 또 다른 누군가는 나가야 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아는 정보 없어? 국립발레단 소속인가? 거기 아니면 여기 들어올 정도의 베짱이 없을 텐데.”

 “병아리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일제히 눈동자들이 움직였다. 발레리노 구태한이었다. 거드름이 흘러넘치는 얼굴이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복도 지나가다가 들었어. 낙하산이 초짜라던데. 앵그리가 갈기갈기 찢어 버린데. 마녀 실력 안 되면 빡 도는 거 알잖아.”

 

 “그래? 오늘 제대로 한 번 갈기갈기 찢어져 볼래!”

 

 민혜련이 어느새 팔짱을 끼고 뒤에 서있었다. 단원들은 벌떡 일어나 봉으로 달려갔다.

 

 “너희들 말대로 오늘 내가 빡 돌았으니까 서로 성질 긁는 일 없도록 하자.”

 

 단원들은 바짝 긴장한 채 준비운동에 들어갔다. 저기압일 때 마녀를 건드리면 그날은 골로 가는 날이라는 건 불문율이었다.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발끝하나 손끝하나 낭비하는 동작이 없었다. 혜련의 눈빛은 먹이를 찾는 매처럼 날카로웠다.

 

 “다리 꽉 안 붙여! 설렁설렁 넘어갈 생각하지 마.”

 

 단장의 목소리엔 단단한 철심이 박혀있었다. 몇 분 만에 단원들 등골에 땀이 맺혔다. 수년 동안 반복해온 기본 동작이었지만 할 때마다 힘이 들었다.

 

 “동작을 정확하게. 낙지다리처럼 흐느적흐느적 거릴래. 그런 썩어 빠진 정신상태로 공연을 제대로 소화할 수나 있겠어. 수정이랑 효주는 잠깐 이리 와 봐.”

 

 갑자기 혜련은 두 명의 단원을 불렀다.

 

 “너희 둘 중에 한 명을 이번 호랑전설의 주역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오후에는 대연습실로 와.”

 “은희 선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수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속 주역이었던 은희는 지난달에 파드되 (발레리노와 발레리나 둘이서 함께 추는 춤)를 하는 도중에 착지를 실패하는 바람에 다리가 틀어졌다.

 

 “은희는 이번 공연에서는 빠져. 그러니까 너희들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지 알겠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네.”

 

 수정과 효주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돌아가 봐. 자. 자. 폴드브라.”

 

 마녀의 매서운 목소리가 단원들 귀에 꽂혔다.

 

 “대나무야? 확 꺾어 버린다. 부드럽고 우아하게.”

 

 그녀는 보이지 않는 회초리를 사정없이 휘갈겼다.

 

 “후들 후들 거릴래. 다리에 힘을 주고 중심을 제대로 잡아. 무릎 펴. 다시!”

 

 다부진 체격의 발레리노가 엄마한테 혼나는 아기새처럼 쩔쩔매며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다리 붙이고. 더 높이.”

 

 마녀는 오늘따라 단원들을 매섭게 몰아 붙였다. 생각지도 않은 새로운 단원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머리에 피가 쏠렸다. 그것도 낙하산이.

 

 ‘나를 뭘로 보고.’

 

 혜련은 입을 꽉 다물고 좀 더 세차게 단원들을 몰아쳤다.

 

 모두가 열중하고 있을 때 문이 스르르 열렸다. 낯선 기운이 금세 연습실을 가득채웠다. 후줄근한 아디다스 체육복이 어슬렁어슬렁 들어왔다.

 

 ‘잰 뭐야?’

 

 “여기 아카데미 발레단 맞나요?”

 “보면 아시겠고. 그런데 누구신지?”

 “임서원입니다.”

 

  혜련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팔짱을 낀 채 서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불꽃이 튀었다. 눈은 서원에게 딱 붙이고 나노 단위로 훑기 시작했다.

 

 키 170. 탄력적인 몸. 미끈하게 뻗은 팔 다리. 도자기처럼 맑은 눈. 긴 목선에 쇄골이 깊다.

 

  마녀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서원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검정 때가 덕지덕지 붙은 자기 운동화가 보였다.

 

 “앗!”

 

 서원은 얼른 운동화를 벗어 차버렸다.

 

 “그러니까 그대가 오늘 오신다는 신입 단원이시구만.”

 

 마녀의 목소리에 냉기가 감돌았다.

 

 “제가요? 아닌데. 전 단원이 아닌데요.”

 

 마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냥 여기 가라고 해서 왔어요.”

 “누가?”

 “윗분이요.”

 “윗분 누구?”

 “마운틴 고릴라.”

 

 암호같은 말에 마녀는 한 번 더 힘을 주어 신입단원을 노려봤다.

 

 “아니 본부장이요.”

 “본부장? 어떤 본부장?”

 “그건 비밀이에요.”

 “무슨 킹스맨이야. 좋아. 그렇다 치고 비밀 본부장이 왜 거기를 여기로 가라고 했는데?”

 “그것도 비밀이에요. 제가 비밀요원이거든요.”

 

 비밀요원이라는 말에 단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참 가지가지 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비밀요원이지 발레 단원이 아니다.”

 “네. 그냥 잠깐 여기 있는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마녀는 콧방귀도 나오지 않았다.

 

 “이봐요. 임서원씨. 여긴 당신이 그렇게 성의 없이 잠깐 늘러 붙어 있는 곳이 아니야.”

 “성의 없진 않아요. 전 꽤 진지해요. 중요한 일이거든요.”

 “진지해? 단원도 아닌 당신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진지하지 않아. 여긴 목숨 걸고 발레하는 사람들만 있을 수 있는 신성한 곳이야. 무슨 일 때문에 여기 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장 나가는 게 좋겠어.”

 “…믿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나가면 이 발레단은 끝이에요. 이렇든 저렇든 해체됩니다.”

 “뭐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마녀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거렸다.

 

 “말 그대로예요. 제가 지금 여길 나가면 여기 있는 사람 누구도 여기 있을 수 없어요. 당신을 포함해서.”

 

 서원의 강력한 눈빛을 마녀의 눈동자가 맞받아쳤다.

 천둥 번개가 서로 맞부딪혀 사방으로 불꽃을 튀겼다. 대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 들어 올 수 있는 건 오직 발레 단원 밖에 없어.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여길 들어올 수 없어.”

 “전 이미 들어 왔는데요.”

 

 그때 김이섭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단장님. 이 아가씨 우리 단원이야. 단원. 그러니까 좀 참아. 아가씨 단원 맞잖아. 회장님이 단원이라고 그랬어.”

 

 김이섭은 혜련과 서원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랬잖아. 아가씨. 제발 단원으로 들어 온 거야..”

 

 김이섭은 애원했다. 서원은 입술을 꽉 깨물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그래요. 단원 맞아요.”

 “봐, 봐. 맞잖아.”

 

 김이섭은 어깨를 축 내리며 혜련에게 말했다.

 

 “대신…그냥 잠깐 구경하는 단원. 딱 그 정도 까지만.”

 

  쩔쩔매는 김이섭 앞에서 민혜련도 한 발 물러섰다.

 

 “좋아. 대신. 딱 사흘만이야. 많이 양보했어.”

 “좋아요. 딱 사흘까지만 구경하는 단원으로. 그런데…점심은 언제 먹나요?”

 

 서원은 손목시계를 보며 배를 만지작거렸다.

 

 “제가 늦잠 잔다고 밥을 못 먹었거든요. 열 두 신데.”

 “밥은 각자 알아서 먹어.”

 “뭐야 고릴라. 밥 준다고 했는데.”

 

 혜련은 서원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연습에 방해 되지 않도록 해. 뭐 보면 알겠지만 극한 직업이 따로 없다고.”

 “그건 말로 알아듣는 게 아니죠.”

 

 한 발작도 물러 서지 않는 서원이었다.

 

 “그럼 직접 경험해 봐. 뭣들 해! 연습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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