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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14. 기분 나쁜 눈웃음
작성일 : 20-08-24 01:59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10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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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기가스만 풀풀 날렸다. 흰색 승합차에는 스티커를 붙였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밖에서는 선팅 유리 너머를 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반면에 안에 타고 있는 용범은 세상을 감시한다. 그게 그의 위치와 상응했다. 그는 부쩍 건조해져 버린 감정이란 걸 생각했다. 그런 만큼 오히려 머릿속은 깨끗했다. 그는 이유 없이 글로브박스를 열었다. 4연발 마취 총이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알루미늄 총열이 오늘따라 매끄러워 보였다. 반신 혹은 신의 번개가 말이다.

 큰삼촌의 셋째 아들 현우와 작은삼촌이 죽었다. 몇 시간 간격으로 말이다. 현우는 어디서 났는지 군대에서나 쓸 법한 매서운 나이프로 자신의 몸을 수없이 할퀴었다. 보기 싫은 것들이 몸 밖으로 떨거지처럼 쏟아진 채로 죽었다. 작은삼촌은 변기에 얼굴을 처박은 채 발견되었다.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낼 사인이었다. 익사.

 하지만 용범은 무념무상에 가까웠다. 가족의 죽음에 익숙해진 것도 있었다. 가족과 죽음이라는 단어를 놓고만 보면 익숙해짐의 의미가 유별나긴 하지만. 그러나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연기자 몇 명만 빼고 장례식 이후 바로 자기 생활로 돌아갔다. 현호도 그랬다. 친동생이 죽었지만 12센티 전용 밑구멍 침낭만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용범은 성기에 손을 댔다. 지퍼를 내려 페니스를 꺼낸 뒤 딱딱한 것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두덩에는 털이 오른 닭살이 따개비처럼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거기까지 핏줄이 덩굴처럼 감겨 있었다. 얼핏 보면 천하의 변태나 하는 문신이었다. 경악할 정도로 신체의 기본 구성 요소치고는 남사스러웠다.

 쿠퍼액이 조금씩 새는 물구멍이 화끈거렸다. 그의 입가가 이중인격자 특유의 갈고리 모양이 되어 볼에 걸렸다. 그 여자의 밑구멍이 얼마나 보드랍고 따사로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다 못 해 빨아보고 싶었다. 그는 흔들던 것을 멈추었다. 지저분한 짓은 안 될 일이었다. 그의 자리와 맞지 않았다. 현호의 여자. 친척의 여자였다. 먹고 버릴 여자 말이다.

 “따먹고 만다.”

 그가 다짐하듯 말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해당하는 목적 말이다. 그녀의 하찮은 몸뚱어리는 근원적인 것이고 더 핵심에 집중하자면 친척 제거가 제1순위였다. 결국 현호만 제거하면 그녀의 밑구멍이 24시간 열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페니스를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굳게 닫힌 윗입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볼록해졌다. 마치 두더지라도 있는 것처럼.

 앞유리창은 길거리를 활보하는 청춘들을 반영하고 있었다. 깐 지 얼마 되지 않은 보도블록 위의 연인들. 길가는 건물의 차지였다. 파란 하늘에서는 비행운이 전깃줄처럼 달려 있었다. 무시무시한 7월의 무더위는 여자들의 몸에서 직조물을 많이도 걷어냈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살갗이 여기까지 보이는 듯했다. 한 사람에게서 두 개씩 나온 하이힐, 운동화, 슬리퍼들이 보도블록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용범은 핸들에 턱을 올렸다. 그의 초점은 떡볶이 노점 앞을 지나는 연인에게 있었다. 엇비슷한 키에 체력 좋아 보이는 커플이었다. 그는 눈짓으로 사촌을 걷어내고 여자만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들이 시야에서 벗어나면 차로 따라가거나 발을 이용할 것이었다. 그들은 길을 따라가는 것 같다가 진로를 바꿨다. 현호가 여자의 손을 잡아끌면서 손으로 애먼 데를 가리켰다.

 용범의 시선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 양쪽에 큰 골목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쪽이 목적지인 듯했다. 그는 내리기로 했다. 캡 모자를 쓰고 있으니 적당히 거리만 둔다면 들킬 염려는 없었다. 그는 모자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호도 모자를 쓴 사촌의 모습이 낯설 것이다. 그러니 설령 맞닥트린데도 모르고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는 사람들에 섞여 걸었다. 번화가라 유동 인구가 대단했다. 여름의 열기에 체온까지 근접하니 숨쉬기가 힘들 때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향수 냄새는 좋았다. 그는 큰 머리에 묻은 땀을 닦아내면서 걸었다. 어디 한쪽에 붙거나 하지 않았다. 길 가운데로 걷는 데 열중하다가 필요할 때면 피하곤 하는 식이었다. 굳이 뒤 돌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이 시야를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커플은 오랫동안 걸었다. 덥지도 않은 지 손을 잡은 채로. 길 양편에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옷, 액세서리, 미용실, 디저트 가게 등이 있었다. 커플은 과일 주스 가게에 가서 주스를 사서 나왔다. 하나만 사서 나눠 먹는 볼썽사나운 짓은 하지 않았다. 두 개를 사서 바꿔 먹는 짓을 했지만. 커플은 쇼윈도에 진열된 패션 아이템을 구경하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가끔 걸음을 멈춰 마주 볼 때는 입맞춤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분위기만 잡을 뿐이었다. 현호가 여자 친구의 머리카락에 코를 갖다 댔다. 용범은 대단한 녀석이 별걸 다한다 싶어 혀를 찼다. 길이 끝나고 커플은 사라졌다. 왠지 그는 느낌이 왔다. 커플은 모텔을 찾고 있다. 대낮에! 하지만 돼지국밥집에서 데이트를 하는 중년 불륜 커플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을 현실에서 진행하진 않을 터였다. 오붓하게 껴 있는 앞니의 고춧가루. 하물며 그들은 예쁜 20대 초중반의 연인이 아니었던가.

 그는 뜀박질을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놓쳤을 것이다. 그는 왼쪽 입가에 혀를 갖다 댔다. 손가락을 핥은 것처럼 짠맛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에 박수를 쳐줄 뻔했다. 그들은 모텔에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텔 건물과 가까워질수록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가 샘솟았다.

 대낮에 모텔이라니. 그는 입술을 쭉 당기면서 잡아 뜯을 기세로 지퍼 부분을 움켜쥐었다. 뻔히 사람이 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여자였다. 뒤늦게 민망함을 느꼈다. 귀두는 제2의 두뇌. 외부로 노출된 최첨단 장기. 최후의 특수부대가 들고 있는 고성능 살상 무기이자 정복지의 깃발.

 그는 조가비 모양의 회백색 계단을 올랐다. 모텔 카운터에는 뽀글 파마를 한 50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입술이 두껍고 코 양쪽에는 점이 나 있었다. 얼굴은 삭막한 데 꽤나 친절했다. 그래선지 그는 앞서 들어간 커플이 몇 호실에 묵나 물어볼 수 있었다.

 “여친이에요. 헤어지자고 난리를 치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걱정 마세요. 옆 호실에 얌전히 있을 테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여기 보증료예요.”

 그는 보통 방비의 두 배를 건넸다. 여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자리를 떴다. 구시렁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돈을 받아 처먹으면 그만이니 닥쳐줬으면 했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도 모르는데 무슨 배짱으로 손님을 파는가. 귀하의 손님이 아니었는가. 무슨 일이 있든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책임 전가의 형태일 것이다. 용범의 웃는 인상이 꽤나 만만했을 터였다.

 “모자란 년.”

 그가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전에 말했다. 너무 조심을 떨어서 본인의 귀에만 간신히 들릴 정도였다. 신의 음성이니 아무나 들으면 안 되는 게다. 이렇다. 신도 욕은 한다.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남성 신은 거의가 난봉꾼에 색마가 아니었던가. 욕도 무지 잘했을 것이다. 그는 602호실에 들어가기 전에 긴 복도를 건너다보았다. 603호실 현관문에 귀를 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까마득하게 들었다.

 602호실에 들어간 그는 기계처럼 신을 벗고 방 침대에 앉았다. 두 손을 그쪽 무릎 위에 가볍게 올린 채 정면의 벽만 응시했다. 방음이 옳게 되지 않는 모텔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벽을 통해 신음을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녀의 사타구니에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지금 이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낙인이 찍힌 남자의 사진이었다. 30초 반. 노란색으로 염색한 까치 머리에 얼굴이 험상궂었다. 나이프로 잼을 바르듯 송진을 발라 딱딱하게 굳힌 사람 같았다. 볼이 쏙 들어가 있고 광대와 눈썹 두덩이 튀어나와 있었다. 눈빛은 사나웠다. 혈액 순환이 좋지 않은지 갈색빛의 입술이 흉측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모텔을 나가는 걸음이 빨랐다. 차가 있는 데까지 가서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생수와 초콜릿을 샀다. 초콜릿을 한 조각씩 앞니로 톡 부러트려 엉성하게 씹으면서 운전을 했다. 실수로 조작하여 워셔액이 분사되었다. 와이퍼가 닦았다. 한 번 운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콜릿은 나쁘지 않았다. 시원한 물을 마시니 이에 껴 있던 카카오 찌꺼기가 미음처럼 넘어갔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의 침 맛. 펠라티오를 끝낸 여자의 침 맛.

 그날 새벽이 되기 전에 남자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쏴아아. 알루미늄 호스에서 쏟아진 물에 맞은 그릇, 접시에서 게거품이 번졌다. 점순은 빨래 장갑을 낀 손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막 개수대에서 물이 넘치려는 찰나 그녀는 레버를 내렸다. 물이 쪼르르 물러간 호스에서 물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가까스로 싱크대 바깥으로 넘치지 않은 수면이기에 통통 튄 물방울만으로도 굉장한 위협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릇들을 거칠게 젖혀내면서 바닥 뚜껑을 벗겨 물을 뺐다.

 꾸르르 하고 소화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녀는 가만히 물속의 것들을 보았다. 음식물 찌꺼기와 기름기가 맴도는 그릇들. 가뭄에 드러난 저주지 바닥의 것들처럼 보였다. 수년 전 실종된 차량과 실종자 가족들. 거실 TV를 통해 미제 실종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이 나왔다.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나리의 작품이지만 그녀로선 알 길이 없었다. 실종 피해자들의 정체는 일가족 사기꾼이었다. 역할을 정하고 독거노인들을 농락해 푼돈을 빼돌렸다. 그중 두 명을 죽였다. 썩은 지 한참 지나 발견된 까닭에 두 건 모두 고독사로 잘못 알려졌다. 하지만 그런 정체는 나리만 알기에 보잘것없는 명예는 영원히 지켜진다. 일가족은 동정받아야 마땅한 사람들로 길이길이 묘사될 것이었다.

 그녀는 개수대 바닥을 막고 물을 틀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울음은 터지지 않았다. 그녀는 연신 한숨을 내쉬면서 수세미에 세제를 다시 듬뿍 묻힌 뒤 설거지를 시작했다. 하도 울어서 머리가 아팠다. 해열제 두 알을 먹은 상황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더러운 그릇을 수세미로 문지르던 그녀는 무심결에 식칼을 잡았다.

 식칼이란 생각도 안 했지만 몸은 기억하는지 조심스럽게 옆면을 쓱쓱 닦았다. 그러다가 뾰족한 칼끝이 눈에 들어왔다. 절정의 완벽을 보여주는 선에 그녀는 홀릴 뻔했다. 생명을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베어내는 칼날. 한 번에 죽일 때도 있지만 두 번도 죽이는 칼날. 옆으로 돌리자 형광등 불빛을 토해냈다. 일순 눈이 먼 듯해 그녀는 눈을 급히 감았다. 눈을 다시 떴을 때 칼날에 비친 자신의 흐릿한 초상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을 죽이고 싶었다. 동서와 몸을 섞은 남편을. 그들이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떻게 동생 장례식이 끝나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남편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점숙에겐 비밀이 있었다. 바로 담배였다. 그날도 남편 몰래 담배를 피우기 위해 숨어 있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녀는 끔찍한 광경을 목도했다. 남편을 따라나서는 동서의 모습이 왠지 수상했다. 둘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숨어 있는 숲 언저리와 가까운 곳이었다.

 남편은 지퍼를 내리더니 동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힘으로 내리눌러 펠라티오를 하게 만들었다. 동서의 뒤통수를 끌어당기면서 주위를 탐색했다. 더러운 신음을 했다. 동서를 일어나게 만들었다. 동서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있을 때 바지를 내렸다. 동서가 나무를 잡고 엉덩이를 치켜올렸다. 같은 여자가 봐도 야했다. 하지만 그는 손장난만 좀 치고 뭔가를 지시했다. 동서가 웃어댔다. 쉬쉬. 남편이 검지로 입술을 막는 제스처를 했다. 그는 바지를 완전히 탈의하고 동서를 안아 올렸다. 삽입 장면을 보기 위해 상의를 이로 물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동서가 마치 아기 원숭이처럼 남편에게 꽉 매달렸다.

 “여보?”

 점숙은 화들짝 놀랐다.

 “뭐해? 몇 번을 불러?”

 그녀는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뭐야, 울었어?”

 그녀는 목청을 다듬고 싶었다.

 “어, 응.”

 오래도록 입을 다물고 있었던 탓에 남의 목소리가 나왔다. 가래가 낀 듯 목구멍이 갑갑했다. 그녀는 목에 힘을 주며 큼큼거렸다.

 “왜? 왜 울어? 무슨 일로 그래?”

 남편이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애정 어린 미소를 지었다.

 “죽은 할머니 생각이 나서.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거 있지. 꿈에서 나오셨거든.”

 “실없기는.”

 그가 아내의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주었다. 귓불을 매만지면서 한동안 사랑스럽게 29년을 함께 산 동반자를 바라보았다. 연애 횟수까지 합하면 30년이 훌쩍 넘는 영원의 시간이었다. 원래 그는 처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점숙을 알게 되면서 이혼을 했다. 전처와 살 때는 무척 폭력적이었었다. 하지만 천년의 배필을 만나고부터 사람이 달라졌다. 가정적이며 온화한 사람이 되었다. 그 영향으로 자식들 중에 크게 엇나간 아이가 없었다. 점숙으로 보자면 누군가 특정한 상황을 가미하면 사고가 날 타입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았다. 그 결과는…….

 그녀는 만약 자신이 바람을 피우는 걸 남편에게 목격당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긴 밤을 보낸 적이 있다. 남편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더욱이 그 상대라 시동생이라면.

 “이리 와. 마누라.”

 그녀는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남편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가슴이 뛰었다. 이상하게 흥분이 되었다. 야생의 동물들이나 느낄 법한 감정이란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만 있었다면 그의 목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커피 마실래?”

 그녀가 말했다.

 “좋지.”

 아내의 정수리에 볼을 파묻는 남편. 그녀의 볼이 씰룩거린다.

 

 해연은 조립식 건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조립식 건물인 만큼 현관이 불안했다. 안이 스티로폼으로 채워진 문이었다. 도둑 걱정이 없는 마을이긴 하지만 그건 평소 때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옆집에서 도와줄 것이다. 한 가족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 일과 같으니까. 하지만 외부 세계에는 위험한 인간이 많다. 뉴비틀의 남자처럼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더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뉴비틀의 남자. 그는 정말로 위험했다. 드러난 위협이 있는 이상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순간 용범이 생각난 그녀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낙천적이다 못해 현실에 아예 안주해 버린 사촌 생각에 마음까지 헝클어지는 듯했다. 큰일이 닥쳐야 용범은 극도의 낙천주의를 철회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많은 게 변했겠지만.

 그녀는 뉴비틀 남자가 다시 돌아오리란 걸 알았다. 그 남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엑스교는 끝이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남에게라도 이 사실을 고할 작정이었다. 장남인 현승은 엄밀히 말해 친오빠이니 그녀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5남매 중 둘만 남았다. 연이어 벌어진 불운을 함께 겪었다. 들어 줄 것이다.

 그녀는 현관문을 두드렸다.

 “오빠?”

 그녀가 소심하게 말했다. 잠깐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현승의 모습에 그녀는 여기까지 오면서 했던 모든 생각이 혼자만의 착각이란 걸 알았다. 장남은 편집증 환자 같은 몰골로 탐색하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마치 이방인을 대하듯. 품에 칼이라도 있지 않은지 묻고 싶은 듯한 눈매로 위아래를 훑었다.

 “무슨 일이야?”

 현승이 흡사 입에 오징어라도 있는 것처럼 침을 질겅거리며 말했다.

 “들어가도 돼? 할 말이 있어.”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들어와.”

 그가 그녀의 정수리 너머를 보았다. 마치 마약 거래를 하는 사람처럼 경계심이 상당했다. 하지만 여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5분도 되지 않아 경계심은 폭발하는 울화가 되었다. 여동생이 말도 되지 않은 소리를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다. 그는 강압적으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독단을 부리기도 했다. 그 모든 게 그녀의 정신병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상이란 건 그도 그녀도 알았다.

 “너 많이 피곤하냐? 어제 몇 시간 잤어? 설마 이상한 꿈 꾸고 온 거 아니지? 그렇다면 정말 네가 어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거야. 알지? 네가 무슨 고대 그리스의 예언자라도 되는 줄 알아? 그리고 용범이? 당연히 그런 반응이지, 멍청아. 그럼 바지에 오줌이라도 싸야 되냐? 네 말 듣고 오들오들 떨어야 해? 뭘 바라는데? 집에 가서 따뜻한 차 한 잔 먹고 쉬어라. 틈틈이 낮잠을 자면 몸에 좋다더라. 5분 정도는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돼. 실천해. 그리고 네 느낌을 말해. 몸 상태가 어떤지 나한테 보고하란 말이야. 알아듣겠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오빠 나는 정…….”

 “시끄러! 쫑알쫑알 말대꾸하지 마라. 네가 여동생이었길 망정이지 현호가 내 귀중한 아침을 망쳤다면 분명 핏물을 삼켜야 했을 거다. 내 말이 거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네 이야기가 화가 나. 무슨 생각이야, 응? 가족의 죽음에 이상한 거를 끼워 넣고 말이야, 어? 일본 만화에라도 심취해 있냐? 가서 좀 쉬어. 취미로 요리 같은 걸 해보도록 해 봐. 그럼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거다. 잘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할 줄 아는 걸 만드는 게 중요하지. 너 22살이다. 어린 나이가 아니야. 네 인생은 네가 만들어야지? 이상한 데 빠지지 말고……. 가! 가서 실천해.”

 현승의 조립식 건물은 컴퓨터 책상이나 서랍, 장롱, 싱크대 정도의 필수적인 가구만 있었다. 연구를 위한 장비들 때문이라도 잡다한 걸 들이긴 힘들어 보이긴 했으나 심플할 걸 좋아하는 그의 성향 탓이 컸다. 하지만 아무래도 도구의 개념 자체가 찬장 같은데 넣어놓지 않은 이상 번잡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녀는 동물 털로 짠 직물과 모래찜질 용구, 플라스크나 막자사발 같은 걸 훑어보았다. 유리 장 밖에 내놓은 것도 있고 안에 있는 것도 있었다. 실험 도구와 각종 설비로 가득한 과학실의 느낌이 났다. 벽에는 화로가 있었다. 그 위에는 새카맣게 그을린 큰 솥이 걸려 있었다. 현승도 과거에는 죽은 현오처럼 황금 변성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개의 화로를 들였다가 지금은 하나만 남긴 상태였다.

 방 안은 온통 약품 냄새였다. 그것이 현승을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예전에 엄마가 화학 약품에 관해 걱정 어린 말을 했으나 그는 앞뒤가 꽉꽉 막힌 사람이라 듣지 않았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가는 것 같았다. 해연 역시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현승과는 한 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벽하고의 대화는 조현병이 생겼을 때나 가능할 것이었다.

 그녀는 눈을 옮겨 창가 쪽 벽장을 보았다. 공작석이나 청금석 같은 것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이름 모를 큰 돌들의 전시는 마치 값비싼 유성을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저기서 돈이 되는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오빤 31살이면서…….”

 그녀가 소심하게 말했다. 오래도록 담고 있었던 말이었다. 자기 자신은 무시한 채 남의 허물만 알고 바른 소리만 하는 게 싫었다.

 현승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시선을 깔고 있어서 소리밖에 듣지 못하는 중이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냐? 나하고 싸우자고? 오빠하고 싸우고 싶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콧김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엘릭서 연구 중이야?”

 “그래, 반쯤 미친 상태야. 그리고 해연아……? 오빠 서른 하나 맞아. 오빤 가족들에게 모든 걸 바쳤다. 20대를 바쳤어. 요 몇 년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오빤 늘 가족만 챙겼잖아, 너도 알다시피. 오빠는 가족을 최고로 여긴다. 엑스교는 말이야, 최고야! 엘릭서를 연구하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우리 가족 중에서는 말이지, 너야. 응? 오빤 해연이에게 제일 먼저 엘릭서를 주고 싶어. 너만 보면 걱정이 든다. 애도 아니고 쪼그매가지고서는. 오빠가 한심하니?”

 그녀가 턱을 더 내리고는 양쪽으로 흔들었다.

 “고맙다. 하지만 넌 안정이 필요해. 그런 다음 뭘 할지 결정해. 엑스교를 위한 연구를 해도 좋지만 널 위한 걸 하도록 해. 요리도 좋지. 글을 써 보는 것도 괜찮겠네. 편지 같은 거 말이야. 아니면 일기. 아무튼 너만은 네 자신의 삶을 살아 봐.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응? 다른 사람들처럼 무작정 엘릭서니 하는 거에 빠지지 말고 너만의 도전을 하란 소리야. 엘릭서…… 후, 정말 힘든 길이다. 정말 힘들어. 해연아? 이건 어때? 다른 종교에 관해 알아보는 거야. 네가 우리 종교의 사상이 되는 거지. 알겠니, 해연아? 이제 내 동생은 너밖에 없어. 사촌들이야 친척이지 어떻게 가족이 되겠어. 가서 쉬어. 그리고 오빠한테 보고를 해. 네가 뭘 하고 싶고 뭘 할 건지. 자, 가보도록 해.”

 

 충격이었다. 용범은 마주 보고 있는 존재를 향해 들었던 망치를 내려놓았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 빈손을 들어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하면서. 그는 호문쿨루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여태 관상식물처럼 키우던 살덩이가 아니었다. 수집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싱싱한 시체. 빼빼 마른 노란 머리 남자가 당첨자였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늘 가지고 있던 증조할머니를 향한 뜻 모를 증오와 욕심이 일순 사라졌다. 포기하고 있던 호문쿨루스 제조에 성공했다는 기쁨은 없다였다. 말 그대로였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감상으로 치자면 심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퉁퉁 튀는 박동이 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는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그러자 입가에서 기쁨의 미소가 번졌다. 위아래 이빨이 떨어졌다 붙어다 가를 반복했다. 이가 부딪치며 달달 소리를 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그가 물었다.

 호문쿨루스는 안면마비 환자처럼 한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는 입술만 들썩여 댈 뿐이었다. 눈에서는 어떤 생각도 내비치지 않았고 얼굴에선 감정이 없었다. 몸은 살짝 굽히고 있었지만 손가락을 구부린 대 뿌리 같은 앙상한 두 팔은 몸뚱이에 가만 붙어 있었다.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딱히 없는 거 같았다. 그가 뒤로 물러서자 따라오는데 머리도 자유자재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만 허리는 펼 수 없었다. 그가 가서 배와 등을 잡고 중심을 맞춰보려 했으나 실패였다. 정상적인 시체라면 필수로 가져야 할 사후경직이 저주처럼 허리에 들러붙어 디스크를 파괴한 듯했다.

 “내 이름은 김용범이야. 김용범.”

 그가 말했다.

 “스물여덟이야. 보다시피 남자고. 김용범. 김용범.”

 그가 연이어 말했다.

 “새로 태어난 걸 축하한다. 호문쿨루스. 네 이름은 호문쿨루스야. 난 네 돈이 필요해. 너한테 아무 쓸모가 없는 돈이 말이야. 넌 무지 똑똑해 보이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잘할 거야. 나는…… 조물주지. 따지고 보면 네 아빠란다.”

 용범이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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