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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파혼의 전말
작가 : 미세스존
작품등록일 : 2020.8.22

"결혼이고 뭐고, 일주일만 만나보자."

결혼을 고작 두 달 앞둔 커리어 우먼 한미주.

평생 한 번 밖에 못 해본 연애가 아쉬워 결혼이 망설여지는 그때,

운명처럼 나타난 대학 동창 지현민.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변한 그를 보고

미주는 운명처럼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청첩장을 주던 날

늦은 저녁 술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간다.

호기심은 점점 커져 호감이 되어가고,

결혼을 앞둔 두 남녀는 원초적인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사랑 앞에 솔직하지만 한없이 나약한 두 남녀는

결국 위험한 계약을 하게 되는데......

 
6. 혼자선 아무것도 아닌
작성일 : 20-08-23 01:10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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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오전 열한시, 피트니스는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활기를 띄고 있었다.

 

 150평이 넘는 큼지막한 공간엔 휴게실, 필라테스실, 심지어 사우나까지 구비되어 있었고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헬스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째서 인지 정작 사장인 현민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 구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수익이 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근 헬스장과의 경쟁으로 회원비를 줄였지만 나가야 할 지출은 그대로였다. 월세, 관리비, 인건비, 심지어 평수까지 넓다 보니 공과금도 무시 못 했다.

 

 전 달 가계부를 써보니 다행히 적자는 면했으나 사실상 대출금과 이자를 생각하면 만족할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터라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들이 발생할 때면 현민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사전 조사가 덜 이뤄진 것은 아닌지 후회와 풀리지 않은 고민들로 숱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막상 창업을 하니 가게를 둘러싼 모든 것은 자신의 일이자 책임이 되어버렸고 꿈의 경계를 벗어나자마자 급속도로 다가온 현실은 두렵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까지 결심하고 나자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연한 척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요즘은 그게 더 잘 안됐다. 심지어 소희 앞에서도 티가 나는 것 같아 현민은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현민은 카운터에 앉아 들릴 듯 말 듯 한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써야 할 돈 생각을 하자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현민은 헬스장 이외에도 다른 고민이 더 있어보였다.

 

 평소처럼 운동복이 아니라 단정한 셔츠를 입은 현민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딘가 초조한 얼굴이었다.

 

 잠시 후 한 중년의 부부가 헬스장으로 들어왔고 현민은 벌떡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왔어?”

 

 어색하게 건네는 말에서 현민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사실 이 부부는 현민의 부모님이었다.

 

 “어머! 현민아, 너무 잘 꾸며놨다. 성공했구나 우리 아들.”

 

 엄마는 헬스장을 보자마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개업식에 오지 못한 부모님은 이번 방문이 처음이었다.

 

 “천천히 둘러봐. 마실 것 좀 줘? 엄마는 그냥 따뜻한 물 맞지? 아버지는 뭐 드실거에요?”

 

 신이 나서 구경을 하는 엄마와 다르게 아빠는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현민은 녹차를 타와 아빠한테 건넸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건넨 손이 민망하게 현민의 아빠는 잔을 받지 않고 말을 돌렸다. 여기저기를 대충 훑어보는 눈동자는 강한 불만을 내포하고 있었다.

 

 “왜? 온 김에 이왕 구경 좀 하지. 요즘 헬스장이라서 그런가 다르긴 다르네. 무슨 호텔같아. 아줌마들한테 우리 아들 자랑해야겠다. 너무 예쁘다.”

 

 엄마는 장난감 코너에 온 소녀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분주히 살펴봤다.

 

 하지만 아빠는 이미 밖으로 나갔고 엄마와 현민은 어색한 웃음을 주고 받곤 따라 나섰다.

 

 미리 예약해둔 한정식 집은 까다로운 아빠의 입맛을 고려한 음식점이었다.

 

 “많이 드세요.”

 

 현민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고 있었다.

 

 “네가 사는 거야?”

 

 “당연하지.”

 

 애교가 많은 엄마는 언제나 현민을 편하게 하는 존재였다.

 

 “됐다. 돈도 없는 놈이. 차라리 그 돈 모아. 아끼는 게 버는거다.”

 

 반대로 아빠의 존재는 이따금 현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예전 같으면 말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지만 이미 많이 겪어본 터라 현민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세 가족은 서로의 안부를 묻지도 않은 채 말없이 밥만 먹었다. 어색한 정적을 깬 건 이번에도 역시 참지 못하고 튀어나온 아빠의 본심이었다.

 

 “헬스장은 언제까지 할 거니?”

 

 “무슨 말이에요? 왜 또 그래요?”

 

 질문이 의도하는 바를 알았지만 현민은 모르는 척 했다.

 

 그렇지만 말투엔 이미 경계심이 가득 묻어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거나 할 수는 없지 않냐. 결혼하면 애도 생길 텐데 번듯한 직업 알아봐야지. 네가 학벌이 모자라, 재능이 없어? 유학까지 갔다 왔는데 직장이 없는 게 말이 돼?”

 

 “여보, 밥 좀 편하게 먹자. 그 얘기 안 하기로 나랑 약속 했으면서……”

 

 싸움을 예견한 엄마가 핀잔을 주었지만 아빠는 아직 현민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여기가 내 직장이에요. 유학 보내고 학비 지원해 주신 거 감사해요. 그리고 아버지가 원하는 삶 못 살아서 너무 죄송해요. 살면서 차근차근 갚을게요.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기분 좋게 식사해주세요. 부탁이에요.”

 

 현민은 불쑥 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야 했다. 아빠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아들이었다.

 

 “세상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 살아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결혼하면 어떻게 할 건데? 아빠 말 듣고 지금이라도 취업 준비해라.”

 

 “정말 이러시기에요? 여기까지 와서 굳이? 어차피 시작한 거면 응원은 못 해주시더라도 기다려 주실 수는 있으시잖아요.”

 

 현민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 놓았다. 그걸 본 엄마는 걱정이 앞섰다. 그건 일종의 마지막 경고이자 이제 곧 저항하겠다는 표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언제 지금 관두라고 했냐?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었다. 대신 서른은 넘기지 말아라.”

 

 그러면서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앞에 놓인 너비아니를 집었다.

 

 “제가 올해 29살인건 아시는 거죠? 건물 계약도 5년이고 대출 갚으려면 갈 길이 구만리에요. 모르는 거 아니시잖요. 이성적인거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이성적으로 따져 보세요. 이미 벌린 일 주워 담을 때 손실이 얼마나 될지.”

 

 “내가 갚아주마. 아니면 가게 내놓고 다른 사람 구해. 지금 관두는 게 덜 손해야.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아빠 말 듣고 지금이라도 취업 준비해. 그때까진 모두 지원해 줄게. 조금만 더 먼 미래를 생각해라. 네가 하는 이 사업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속 빈 강정이라는 거 다 안다.”

 

 현민은 아버지가 차라리 역정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분하면서도 지나치게 이성적인 아버지의 말엔 약오를 만큼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럴 자격 없어요. 빚져도 내가 진 빚인데 무슨 자격으로 아버지가 갚아요? 아버지한테 빚지느니 차라리 사채업자 알아보는 게 나을거에요.”

 

 참다 참다 현민의 입에서 모진 말이 나와버렸다. 금방 후회를 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순 없었다.

 

 조금 흥분을 했는지 현민의 눈썹이 잠시 위 아래로 흔들거렸다. 그 순간 아빠의 눈썹도 똑같이 흔들거렸다. 그 와중에 부전자전이었다.

 

 “그러면 솔직하게 물어보자. 지금 넌 네 생활에 만족하냐? 유학까지 갔다 와서 재능 다 썩이면서 여기에 갇혀있는 거 말이다.”

 

 “네 만족해요. 어울리지도 않은 경제학 공부하는 것 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 하는 게 훨씬 행복해요. 아버지한테야 돈이 최고의 가치겠지만 저한테는 아니에요. 그리고 갇혀있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 구속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난 거에요.”

 

 언어는 점점 정제되지 못한 상태로 나와버렸다.

 

 “넌 지금 네가 하는 그 말이 얼마나 철없는 소리인 줄은 알고 하는 소리냐?”

 

 상대방 역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점점 데시벨이 올라갔고 엄마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누구하나 물러설 기색은 없었다.

 

 “제가요? 제 눈에는 아버지야말로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보여요. 재산 충분하시면서 지금도 아득바득 돈만 좇으시잖아요. 그러니까 자식도 오직 돈으로만 평가하시는 거고요.”

 

 핏대를 세워가며 따지는 아들을 보며 아빠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지 들어보자.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봐.”

 

 그 말에 현민이 잠시 주춤했다. 섣부르게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들먹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돈은 아니에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나은 삶이고 가치겠죠.”

 

 “그래? 좋아. 그러면 넌 지금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소리겠구나.”

 

 현민의 눈썹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이런 문답식 질문은 늘 부담이었다. 몸이 기억을 하는지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사냥꾼이 몰이를 하듯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네. 물로 돈도 중요하죠. 그렇지만 제 기준하고 아버지 기준 하고는 달라요. 남들 앞에서 꼭 떵떵거릴 만큼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그냥 남들 정도로만 벌면 족해요. 소중한 사람들하고 같이 밥 먹고 가끔 여행 다니는 그런 소박한 삶 정도……”

 

 나름대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놓은 답변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대답은 아니었고 자신도 없었다.

 

 “소박한 삶이라. 그러면 질문을 이렇게 다시 해보자. 현민이 넌 네가 가진 게 뭐라고 생각하냐? 지금까지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벌어 얻은 게 뭐가 있냐?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준비된 게 뭐지?”

 

 “네?”

 

 연달은 물음에 현민은 그 질문이 모두 몇 개였는지부터 기억해야 했다.

 

 “신혼집이야 우리가 전세금 지원해 준 거고, 헬스장도 무리하게 대출을 껴서 한 거니. 과연 네 힘으로 성취한 건 뭐가있지? 대출을 갚으려면 대략 계산해봐도 일 이년으로 끝나진 않겠구나. 자, 그럼 그 소박한 삶에 가까워 지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봐라. 아니, 우리가 지금까지 해준 게 없다면 그 소박한 삶에 가까워 질 수나 있을지 냉정하게 대답해봐라.”

 

 “그거야……”

 

 아빠의 야속한 공격에 현민은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어렸을 적 아버지한테 혼나고 옷을 벗고 집 밖으로 쫓겨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옷도 아빠가 사준 거니까, 이 집도 아빠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까 말 안들을 거면 옷 벗고 집에서 나가.”

 

 그럴 때면 현민도 지지 않고 옷을 홀딱 벗고 당당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는 고작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무능함과 초라함을 절실히 느껴야했다.

 

 지금도 딱 그런 기분이었다.

 

 지극히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 중엔 실상 스스로 얻은 게 하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돈이 필요 없다는 그 철없는 소리도 실상은 다 내가 뒷받침 해줬기에 가능한 말이야.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사실은 좋은 부모 잘 둔 덕에 더 나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불과해. 기분 나쁘겠지만 이게 네가 좋아하는 팩트다. 정신차려라.”

 

 해일처럼 단숨에 밀려온 팩트 물결에 현민의 견고했던 벽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버렸다.

 

 반박할 수 없었고 쓰디쓴 침묵이 목구멍에 멍울 질 뿐이었다.

 

 “그럴거면 집도 해주지 마시지 그랬어요.”

 

 분명한 패배였지만 인정하기 싫은 현민이 마지막 자존심을 부렸다.

 

 “현민아……”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도 우려스럽게 현민을 쳐다보았다. 파도가 다가오는데도 당돌하게 맞서는 모래성 같았다.

 

 “내가 현민이 너만한 나이 때는 하루를 살아내는 게 중요했다. 잘하고, 좋아하고, 하고 싶고의 문제가 아니었단 이 말이다. 돈이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완전히 틀렸어. 돈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거다. 없으면 죽어.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게 요즘 세상인데 어째서 넌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냐!”

 

 마침내 아빠도 참아왔던 분노를 쏟아냈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지만 아빠의 입장에선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현민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현민아, 아빠 말은 우리한테 돈을 갚으라는 소리가 아니야. 용돈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다만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시기가 아니라서 그래. 우리 때야 힘들더라도 아껴 쓰고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 그렇잖아. 그래서 너네만은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사회에 내보내고 싶으니까, 우리가 대단한 여유는 되지 않더라도 전세 구해줬던 거야. 아빠 말 너무 기분 나쁘게만 듣지 마. 부모 마음 다 똑같아. 호강은 못 시켜주더라도 남들 만큼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응?”

 

 이번에도 부자 싸움의 중재자는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의 음성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 덕분에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러면 나도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요. 두 분은 왜, 왜 내가 하는 일이 꼭 실패할 거라고 단정 지으시는 건데요? 이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돈도 많이 벌 수 있어요. 돈 잃자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수익도 웬만한 직장인보다 괜찮아요. 그리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입소문도 타고 있고요. 잡지사에도 연락 왔었어요. 우리 헬스장 내 인터뷰랑 운동하는 영상 찍고 싶다고.”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헬스장 수익에 걱정하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발언에 말까지 더듬는 현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막상 그렇게 말하자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럼 증명해봐라. 이번 년도 안에 네가 그렇게 주장하는 더 나은 삶을 살면서 돈까지 벌 자신 있으면 수치로 보여줘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3개월 남았다.”

 

 효과가 있었는지 아빠도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정작 현민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잡지사에서 그런 연락도 왔어? 잘됐다. 맞아. 요새는 SNS다, 인터넷 동영상이다 그런 곳에서 조회 수 많으면 돈도 번다며? 이번 기회에 잘 해봐. 우리는 그런 거 잘 모르니까.”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한 엄마가 기대에 찬 눈으로 말하자 현민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뭐, 그러니까 내 말은. 아버지가 무슨 말 하시는 지 다 알고 있고, 나도 마냥 철없이 사는 거 아니니까 믿어달라고요. 그리고 고작 두 달 뒤에 결혼이에요. 저 요새 누구보다 중압감 크고 아버지 못지 않게 훌륭한 가장 되려고 노력하니까 당분간만 지켜봐 주세요. 네?”

 

 “알겠다. 노파심에 한 말이니 너무 새겨듣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마디 한 마디 진심을 담은 현민의 화해 신청에 아버지도 손을 건넸다. 그렇게 점심 시간에 벌어진 소동은 일단락 되었다.

 

 “소희는 잘 지내지? 다음에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해봐. 엄마가 결혼 전에 줄 선물이 있어서 그래.”

 

 “……알겠어요.”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 엄마가 소희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만 현민은 싸움이 끝났음에도 좀처럼 우울함에서 벗어 나오질 못했다.

 

 비록 잘 마무리 되었지만 이미 멍이든 기억 주변엔 고통의 흔적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고 혼자 헬스장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현민은 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곱씹고 있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이 비참했다.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닌데 막상 아버지에게 직접 듣게 되니 새삼 남처럼 느껴져 서운하기도 했다.

 

 누구라도 붙잡고 이런 속상한 마음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째서 인지 그 순간 떠오른 사람은 소희가 아니라 한미주였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지현민?”

 

 가장 놀란 건 자기 자신이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현민은 자신을 타일렀지만 이미 주파수가 잘못 맞춰진 라디오는 지지직 혼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소희를 떠올려봐도 자꾸 미주의 얼굴과 그날의 음성이 눈 앞에, 귓가에 아른거리는 건 이미 현민의 본능이 미주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말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생활과 예보>,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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