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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11. 눈
작성일 : 20-08-23 00:28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1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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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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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6월의 바람이 좋았다. 곧 7월이다. 여름 기운이 힘찼다. 나리는 운전대를 여유롭게 돌리면서 조리를 신은 발로 페달을 눌렀다. 속도계는 100을 넘지 않았다. 직선 도로는 한산했다. 속도를 더 줄이고자 하는 건 지금 현재에 도취 되고 팠기 때문이었다.

 주위에는 협곡을 이룬 초록이 이어져 있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었다. 부드럽게 구르는 바퀴 소리는 듣기 좋았다. 돌멩이가 있으면 쿵쿵거렸고 곧 날쌘 소리를 냈다. 상념에 젖어 있다 돌아오면 고무바퀴의 소음은 애처롭다. 엔진은 툴툴거리지만 그 소음은 마치 자장가 같기도 했다.

 그는 손을 차창 밖으로 냈다. 손가락을 펼쳐 바람을 느꼈다. 절로 눈이 감기려 했다. 어쩌면 이대로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자살 따위는 생각도 안 하는 초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기회만 주어지면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있었다.

 그는 굽이치는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핸들을 좌우로 살짝씩 움직였다. 차 안에는 최신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부분 아이돌 그룹의 노래였다. 팝송의 경우는 매우 편향적이게도 우렁찬 목청의 여자들 차지다. 몇 개 되지 않지만. 때가 이르지만 캐럴도 있었다. 캐럴 중엔 즐거운 게 많아서 그의 성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간은 그의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쉴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거의 동네만 배회하다 일주일만의 진짜 외출이다.

 그는 재밌는 동네를 봤다. 혈연 집단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악행을 안다. 그들 중 몇을 만났고 그들의 원죄를 소상히 보여주었다. 지금쯤은 이 세상에 없는 게 당연했다. 여자는 그냥 보냈다. 끈이 끊어진 조리가 그녀를 살린 게 아니었다.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머리를 식히고자 간 드라이브였다가 의도치 않게 보물찾기에 성공한 것이었다. 마치 산보를 하듯 집을 하나씩 들르면 그만이었다. 남편이 없는 주간마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유부녀들을 돕는 멋진 외판원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미소를 가지고서. 나리와 같은 외판원이 들른 집마다 부부 금술이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궁이 얼마나 애가 탈까.

 그는 노래를 껐다. 좀 진지해지기로 했다. 사 차선이 나오기에 그는 오른쪽으로 길을 텄다. 그가 지나가자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휑한 횡단보도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룸미러를 통해 신호를 무시하는 차를 봤다. 하나가 그러니 몇 대가 흉내를 낸다. 그는 가벼운 코웃음을 쳤다. 등과 머리를 좌석으로 바짝 밀었다. 핸들을 잡은 양손이 평행했다. 마치 좋아하는 여자에게 재롱을 떨 작정으로 자동차 시뮬레이션 부스에 앉아 있는 천진난만한 남자처럼.

 녹이 먹어 벌겋게 변한 철제문이 보였다. 흡사 드림캐쳐처럼 온통 구멍뿐인 양쪽 경첩 문. 앞에 서 있으면 한쪽이 찌그러진 철제문이 자동으로 열릴 거 같았다. 저 안쪽에는 사람이라면 지독히도 싫어하는 유령이 사는 대저택이 있을 터였다. 그는 차에서 내려 철제문을 밀었다. 일전에 철제문을 누군가 차로 받았다. 그래서 엉망이었다.

 굳이 양쪽 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한쪽은 살짝만 밀어 놔도 뉴비틀이 지나갈 수 있었다. 그 정도 운전 능력과 공간 구분 능력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구슬피 우는 우측 문까지 활짝 열 생각이었다. 밀다 보니 맨 아래쪽 경첩이 뿌리를 드러낸 걸 알았다. 문이 바닥을 찧으며 질질 끌렸다.

 막상 문을 개봉하니 도보를 하는 그였다. 그는 생경하게 접근하는 을씨년스런 장소를 훑어보았다. 그는 공동묘지에 있었다. 땅이 헤져 있는 곳이 여러 군데 보였다. 함몰되어 바스라 진 곳도 보였다. 그런 묘지를 보면서 그는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봉분을 유지하는 곳들을 보면서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언뜻 쓸쓸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들은 버림받았다. 폐쇄된 공동묘지에서만이 제집인 자들이었다. 그들은 죽어서만이 갈 곳이 있었다. 자기가 묻힌 곳. 바다에서라면 물고기들의 잿밥에 불과한 운명들인 것이다. 산 사람들은 드라마를 한 편 찍고 제집으로 가면 그만이다. 신나게 섹스를 하고 맛있는 고기를 뜯고 만취의 즐거움에 미친다. 산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는 옛 친구를 찾아 단으로 된 공동묘지 언덕을 올랐다. 소나무들이 있는 곳들을 바라보았다. 힘든 등정이랄 것도 없었지만 숨이 찼다. 삐쭉삐쭉한 이마의 머리칼을 손으로 흐트러트리면서 더위를 식혔다. 7월이면 얼마나 더울까 하여 벌써부터 무서웠다. 비로써 소나무 그늘에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속 시원하게 웃었다.

 고집처럼 조리를 신고 나온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는 발을 들어 발가락에 박힌 솔잎을 빼냈다. 바닥에 수북하게 덮인 주홍색의 물결은 죽은 것이지만 산 것이기도 했다. 그 밑에서 어느 정도의 생명력이 맥동할지는 그로서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바로 여기가 이혜지가 묻힌 곳이었다. 그녀는 산에 뿌려졌다. 죽은 후에도 대접받지 못한 그녀였다.

 “이야 공기 좋다.”

 그는 볼에서 흐르는 땀을 어깨로 닦았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가만 보면 조금씩 움직이는 게 새삼스레 신기하게 다가왔다. 근두운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근두운 같은 가상의 존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느 구름이고 간에 꼬리는 흩어지는 형세다. 괜히 솜사탕과 비유하는 게 아니었다. 뭉게뭉게 뭉치는 것이 마치 소용돌이처럼 보였다.

 감동적인 생각을 하려는 마음과는 달리 머릿속에서는 저녁 메뉴들이 맴을 돌았다. 그러다 눈을 뜬 건 생각지도 못한 인기척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움직이다가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웬 남자가 공동묘지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리는 자신의 차를 찾아 머리를 움직였다. 여기에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얀 승용차는 확인했다. 자신처럼 추억을 모사하는 남자이리라 생각했다. 가까이 가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나무를 지지대 삼아 몸에 반동을 주며 더 깊은 산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와서 킥킥거리며.

 그러다 머리로 툭 떨어진 솔방울에 한쪽 눈이 잠겼다. 시원한 솔 내음이 콧속으로 밀려들면서 열병을 앓는 듯한 혜지의 목소리로 뇌세포를 자극했다. 그는 귀를 막았다. 딱히 괴로워서 아니었다. 괴로울 리도 없거니와.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댄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나 지을 법한 표정을 하면서 입가를 찢었다. 그는 아래 입술을 살짝 이 사이로 물렸다.

 생각을 바꾼 그는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눈은 시종 남자를 찾았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몸동작이 서서히 빨라졌다. 그럴 수 있는 곳은 사뿐히 넘고 완만한 곳에서는 가뿐히 뛰었다. 흡사 연극배우처럼 과한 제스처를 했다. 넘보지 못할 고귀한 존재라는 듯 턱을 고고하게 쳐든 채 시선의 반대 방향으로 양손을 움직였다.

 저기 있다! 그는 활기가 넘쳤다. 온몸에 생기가 넘쳐났다. 그러고자 한다면 발톱의 투명한 케라틴 판으로 태양열 반사판과 같은 빛을 뿜어낼 수도 있을 사람처럼. 조리만 아니었다면 멈추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계속 벗겨지는 조리 끈을 발가락 사이에 끼우느라 발을 털어내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아스팔트였다면 맨발로 갔을 것이었다. 그는 파헤쳐진 황토를 돌아 나와 쯔쯔가무시증를 옮기는 병원균 범벅일 거 같은 죽은 풀들을 지나쳤다.

 남자는 남쪽에서 최남단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 있었다. 단으로 따지면 제일 위에서 세 번째 단이었다. 봉분 앞에서 양반다리로 앉아 있었는데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는 폼이 애처로웠다. 술, 종이컵, 건어물, 과자 같은 것일 것이다. 남자는 종이컵에 술을 따랐다. 봉분에 뿌릴 것이라는 나리의 예상과는 달리 자신의 입에 넣었다.

 나리는 숨을 헐떡였다. 고된 인생이다. 쉬고자 온 것인데. 더욱이 옛날에 얄팍하게 알던 지인의 묘가 있는 곳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눈에 띄는 걸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끌리는 건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남자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남자는 말할 것이다. 입이 아닌 눈으로.

 

 내일모레 칠순을 앞둔 노인은 참을 수가 없어서 번호 키를 눌렀다. 봉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집에 놔두고 왔던 절망이 샘솟았다. 누구하고라도 이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선택한 것이 아들이었다. 신호음이 길었다. 받지 않으리라 예감했다.

 “여보세요?”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부친은 앉으려던 걸 그만두고 땅을 짚고 일어났다. 한쪽 팔은 옆구리에 기댔다.

 “부식이냐? 애비다.”

 “예.”

 “말이 왜 그러냐? 잘못 온 전화를 받은 거냐?”

 “그런 일이 좀 있어서요.”

 “너는 항상 일일 타령이구나? 아니면 피곤하거나. 입바른 말 좀 해주고 싶다만 네 애미 때문이라도 참으련다.”

 “공동묘지……?”

 “이제 잠이 좀 깨는가 보구나? 공동묘지가 엉망이야. 이장 작업을 하든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가 보다. 다들 살기가 어려우니까.”

 부친은 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생각만 굴뚝같았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장 작업 같은 건 안 한다고 못 박아서가 아니었다. 말은 그랬지 아내를 화장해서 바다에라도 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에서 그쳤다. 아내가 죽은 곳은 바다였다. 얼마나 물에서 허우적댔으며 얼마나 살려달라고 애원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졌다.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 그것도 그와 초등학생부터 친구였던 평생 친구와. 친구와는 당시까지도 허물없이 지냈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내를 때렸다. 용서를 하고 때리고 용서를 했다가 때리길 반복했다. 어느 날인가 그녀와 진정으로 화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낚시의 묘미를 가르쳐 주자는 생각이었다. 인내심을 요하는 여흥과 함께 그녀와 여태 못했던 진솔함을 나누고 팠다. 하지만 막상 물에 떠 바다 깊은 곳까지 오니 고이고이 접어 두었던 감정이 물꼬를 텄다. 그것이 풍덩 소리와 함께 광기와 같아져 배에 다가오는 아내를 자꾸만 밀어내도록 종용했다. 뽀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그녀가 물속으로 사라진 뒤에야 후회가 밀려왔다.

 터져 나오는 울음과 함께 배 밑바닥에 얼굴을 처박자 새어 나오던 웃음. 마음이 후련해서 그대로 잘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당분간은 그런 기분으로 살았다. 하지만 어느덧 거울 속 얼굴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같이 햇빛을 보며 꾸벅꾸벅 졸 것 같던 친구와도 선을 그었다. 친구는 10여 년 전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노후 자금을 모두 날린 그는 막무가내로 아내에게 농약을 먹였다. 같이 죽을 작정이었으면서 아내의 1/10가량만 마셨다. 아내는 화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응급실에 실려 간 것도 혼자뿐일 수밖에 없었다. 직접 전화로 구조 요청을 한 그는 섬유질로 변한 폐를 부여잡은 채 10분을 영원인 듯 조금씩 그리고 매우 고통스럽게 죽었다.

 “엄마는요?”

 “놔둬야지.”

 “예.”

 “또 왜 그러냐? 엄마를 바다에 어떻게 뿌려. 그리고 땅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잖냐? 좋은 데 묻어 줘야지, 음? 좋은 데를 알아보는 중이라 시간이 걸린다고 몇 번을 말해!”

 “화를 내시네요.”

 “말이 왜 그러냐?”

 “화를 내신다고요.”

 “그러니까 내 말은…… 아이고, 됐다! 엄마 앞이다. 싸움은 무슨 싸움이냐. 나는 이제 그런 거 할 나이가 아니야. 싸움 상대도 아들놈이 뭐람!”

 부친은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다. 뻔히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스마트폰 액정이 귀에 닿았다가 떨어지길 여러 번이었다. 필요도 없는 눈 그늘을 하면서 눈썹에 붙은 땅방울을 치웠다.

 “산에 다 묻어야 해. 엄마는 산에다가 묻어야 해. 바다는 안 된다. 너도 그 끔찍한 모습을 봤지 않냐? 경치 좋고 볕 잘 드는, 진짜로 멋진 곳을 내가 알아보고 있는데 나중에 말해 주마. 몇 군데 좋은 데를 알아 뒀어. 나중에 말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거라, 음?”

 “네.”

 “그래 바쁘냐?”

 “예.”

 “끊는 게 좋겠다. 일 봐라.”

 툭.

 그는 진이 빠진 듯이 날숨을 내뱉으며 환해진 액정을 봤다. 날치기를 당한 지갑을 남의 동네에서 주워든 사람처럼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땀으로 끈적 거리는 목덜미를 문질렀다. 땀 때문에 살결이 반질거렸다.

 “안녕하세요?”

 부친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누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뜻밖이라서 그는 나리의 위아래를 훑을 수밖에 없었다.

 “후, 날씨가 너무 덥네요.”

 나리가 활기차게 말을 하면서 가슴 쪽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너 무슨 연예인이냐?”

 부친이 말했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런 농담은 생각 못 하고 살았는데 나중에 써먹어야겠네요. 언젠가 아저씨처럼 나이가 들면 말이에요.”

 나리가 부친 옆으로 왔다. 봉분의 비석을 보다가 눈알만 움직여 옆에 선 노인을 봤다. 그쪽 입꼬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지저분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번엔 조리를 쳐다본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나와 있어서 그는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 좋은 거 보여 드릴까요?”

 “좋은 거라니? 너 무슨 병 있냐?”

 진지한 척하고 있었던 나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모양새가 틀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몸에 붙인 두 팔에서 손바닥만 하늘로 향하게 한 채 그 자리서 빙그르르 돌았다. 보니까 어떤 우스갯소리를 해도 상대는 웃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분위기만 험악해진다. 노인의 스타일이 딱 그랬다.

 잰 체는 혼자 다 하지만 어린 여사원들의 엉덩이와 다리만 훑는 밥맛 떨어지는 꼰대. 위에서는 뺨을 맞고 아래에선 은따를 당하는 전형적인 노땅. 회사에서 갖고 있을 지위는 땅 위에선 쓸모가 없다. 거리에선 자존심 내세우다 얻어맞고 집에서 화풀이를 한다. 자식들 앞에서 군림을 하려 하나 커갈수록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마누라가 딴짓을 하는 거 같지만 증거는 없다.

 길거리에 내앉게 되는 운명은 불 보듯 뻔한데 24시간 이어지는 본인의 세상으로 보건대 답은 없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돌이켜 보지만 남들에 비하면 너무 깨끗하다. 어디서 삐끗한 건지 통 알 길이 없다. 인생을 악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쓰레기들이 찾는 먹잇감 중에 한 종류. 그게 바로 눈앞의 남자였다.

 나리는 이 불쌍한 남자를 위해 선물을 하고자 했다. 왜냐면 그는 봤다. 이 불쌍한 남자가 왜 불쌍할 수밖에 없는지를. 그래서 그걸 이 늙은 남자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대체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제 눈, 봐주시겠어요?”

 “뭐?”

 순간 바람이 불자 비늘 봉지가 파닥거렸다. 아내를 물어뜯었던 물고기의 날 선 꼬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이브를 췄다. 안에 든 과자 때문에 검은색 비닐봉지는 무사하다. 물고기들을 낚아 올리는 그물과 같았다. 바람을 담은 투망이 퍼덕거렸다. 그리로 바닷물이 차면서 혓바닥처럼 굴러 나온 파리한 손 하나를 앗아간다.

 여보, 제…… 발! 나 좀 살려…… 웁, 압……!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나리가 잡아주었다. 거의 어금니까지 보일 만큼 큰 미소였지만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랐다. 늙은 남자는 나리의 눈빛을 빨아들일 것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드디어 찾아온 첫 키스에 열망하는 사람처럼 당장에 나리의 옆머리를 움켜쥘 것만 같았다.

 “보이시나요?”

 나리가 정답게 말했다. 계속 다가오려고 하는 늙은 남자를 슬쩍 밀쳐내야 했다. 늙은 남자와 같은 신봉자를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늙은 남자는 곧 무슨 일이라도 터트릴 것처럼 크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리는 그가 소주병을 들 것이라 생각했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머리를 단단한 유리병으로 두들기면서 점점 맥을 못 추고 휘청거렸다. 드디어 병목이 뜯겨 나갔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행동은 응당 드러난 뾰족한 유리 날을 목에 가져대는 것이었다.

 변질된 전의로 인해 총명해 보이기까지 한 두 눈이 기쁨으로 넘쳐났다. 남자의 나이대로 보건대 어울릴 수가 없는 눈빛이었다. 날카로운 면이 목을 부드럽게 찌르고 들어갔다. 핏방울이 톡 올라오더니 쭉 미끄러져 내렸다. 남자는 유리병 끝에 나머지 손을 얹은 후 힘을 줬다. 필사의 힘으로 목을 베고 들어가는 유리 날들이 큰 혈관을 짓이기면서 대참사가 벌어졌다. 차마 더 볼 수 없어서 나리가 몸을 휙 돌렸다. 치가 떨린다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지만 미소는 잃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선 채로 이후에는 쭈그려 앉아서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 자동 사냥을 하는 기사 캐릭터의 움직임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기술이 시전 될 때마다 팍팍 튀는 이펙트로 인해 눈이 호강했다. 운이 좋았는지 사냥을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서 꽤 괜찮은 아이템을 얻었다. 그는 아이템 창을 열어서 신체 모양대로 진열되어 있는 착용 아이템을 살폈다.

 다리가 아플 쯤 되면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한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자동 사냥을 좀 더 보고 있다가 목이 마를 쯤에 어깨 너머를 힐긋 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시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지만 워낙 일상적인 일이라 분별력이 없었던 것이다. 더러운 걸 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만 보면 기분이 좋아 보여서 누구한테 자신의 기분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그때 그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늙은 남자의 호주머니에 스마트폰이 나와 있었다. 거의 10년은 되었음직한 구형이었다. 음료수나 사 먹게 일어나자 싶으면서도 스마트폰에 욕심이 났다. 저딴 거야 누가 주면 열 받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다 싶을 수밖에 없는 골동품이었다. 그는 내부의 것이 보고 싶었다. 속전속결로 죽어 준 늙은 남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말이다.

 그는 터에서 나와 찻길로 연결된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형적인 늙은이답게 스마트폰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숫자 2이나 7 정도의 쉬운 패턴을 만들어 놔도 될 텐데 말이다. 참으로 늙은이들에게 어울리는 암호다. 단순하니까.

 그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진첩을 열었다. 나무나 산 같은 사진으로 도배 되어 있는 것이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엄지로 터치를 하던 그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얼굴에 이상한 웃음기가 맴돌았다. 지하상가 앞에서 만났던 남자의 사진이 있었던 것이다. 좀비 꼴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도 살이 웬만큼 없었다.

 그 아래부터는 본격적으로 좀비 남의 사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저만치를 바라보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일광욕을 벌이고 있는 시체를 향해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는 자기 사진은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다. 흥미는 진작부터 있었다. 좀비 남을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반가웠다. 그는 연락처에서 좀비 남의 전화번호를 단번에 찾았다. 입력되어 있는 전화번호라고는 아들이 유일했으니까. 이발소니 해장국집이니 하는 건 빼야 하니.

 호기심이 생겨 통화 기록을 봤다가 아들이라고 찍혀 있는 게 맨 위에 있음을 확인했다. 잘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좀 전에 통화를 마쳤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늙은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좀비 남이라니 뭔가 놀라웠다.

 “인사라도 할 걸 그랬나. 물론 수를 써야지.”

 그가 혼잣말을 했다.

 좀비 남에게 연락 계획을 즉시 세웠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 화장실 같은 데서 연락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그러다 여기서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알리바이 따위를 생각했다. 다시금 햇빛이 좋아 드러누운 늙은 남자가 있는 저기 위를 보았다. 여기서 연락을 끝내면 알리바이 따위가 뭐가 필요할까. 과학수사 마크가 찍힌 한 벌 옷을 입은 모범생들이 제시하는 시간의 근소 차에 지금의 일들도 포함될 텐데.

 주소 좀 찍어 달라는 문자를 보내고 그는 차 쪽을 보았다. 여기서는 차의 왼쪽 면이 간신히 보였다. 당연히 인적이라곤 없다. 곧 연락이 오겠거니 했지만 감감했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픈데 소식이 없어서 안달이 날 거 같았다. 목이 마르고 배도 살짝 고팠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시체가 있는 곳이 아닌 옛 친구가 뿌려져 날아간 언덕 너머 창공으로.

 예기치 않았던 지금의 상황에 기가 차면서도 한편으론 허탈했다. 불쑥 찾아온 멜랑콜리한 기분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햇볕에 그대로 노출이 되고 있어서 팔등이 따끔거렸다. 한동안 발가락에 걸린 조리를 보았다. 개미가 발목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어느 건 갈피를 못 잡고 무릎에 못 미치는 곳에서 곡예를 했다.

 그는 다리털을 나무로 생각했다. 징그러운 체모와 여자를 연관시키니 혐오스러움이 덜하긴 했다. 다리털은 그녀가 묻힌 곳. 바람에 날아간 그녀를 생각했다. 아마도 사람들의 기관지 속에도 그녀가 있을 것이다. 이름 모를 그들 중 몇은 원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암의 진행이 빨라졌음을 느낄 것이다.

 그는 두 손을 크게 휘둘러 목침을 하며 누웠다. 다리를 꼰 채 흔들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누가 와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살자 아닌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있는데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이걸 깜빡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터무니가 없었다. 먼저 문자를 확인한 그는 양반다리로 일어났다.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는 답 문자를 보면서 혀를 톡 거렸다. 주소를 알고 싶은데 이런 답이라니.

 “역시 피곤한 사람이었네.”

 욘석아 찾아갈까 겁나냐?

 그가 진심을 담아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는 바로 답이 왔다. 자신이 사는 다세대 주택과 퍽 가까운 곳이어서 그는 놀랐다. 좀비 남 정도면 한 번 등장 신을 찍을 때마다 동네가 쑥대밭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좀비 남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국어, 언어에 보면 그런 게 있었다. 소통 부재니 소시민적 뭐 뭐 뭐. 딱 그런 상황 같았다. 진지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다는 거였다.

 그는 기분이 좋아서 차까지 달려갔다. 비행기처럼 두 팔을 펼친 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돌멩이를 밟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팠지만.

 

 며칠을 기다렸다. 일주일 가까이 지났으니 슬슬 움직일 때였다.

 “가만 보자.”

 나리는 현관을 나서기 전에 집안을 둘러보았다. 햇빛이 드는 다세대 주택의 2층은 언제나처럼 한가롭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 그는 우선 햇볕을 쬈다. 검지로는 차 키가 걸린 키홀더를 빙글빙글 돌렸다. 실외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서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그가 내려가는 만큼 담벼락도 키가 커진다. 완전히 담벼락에 지배당했을 땐 대문 한 장을 열면 그만이었다. 포장지에서 색종이를 빼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차는 골목 안쪽에 세워져 있었다. 종종 주차 때문에 따져 드는 사람이 있긴 했다. 그도 더불어 사는 사람이지라 주차할 곳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만 끝내는 골목 같은 데가 최고였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주차 문제와 같이 잡음이 많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몇몇에게는 자기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심어 주기도 했다.

 그런 인간들이야 어떻게 되든 불쌍하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생명 경시로 인한 불도저적 심리에 사로잡힌 건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숨은 살인자가 많다. 어느 정도 남의 인생사를 사달 내는 데 힘썼냐는 기여도의 차이일 뿐. 그들도 그런 쓰레기였을 뿐이었다.

 차에 탄 그는 콘솔박스에서 캔디를 꺼내 입에 넣었다. 커다란 알사탕을 굴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는 메모를 확인했다. 늙은 남자의 핸드폰은 현장에 버리는 게 당연했다. 그는 청결한 사람이므로 지문 같은 걸 제거하고 시체의 주머니에 넣었다. 슬쩍 남자의 얼굴을 봤을 때 일전엔 없었던 엄청난 생동감으로 인해 깜짝 놀랐다. 아마도 남자가 그 나이 동안 누렸던 것이 한 몫에 분출한 모양이었다.

 그날의 생각을 접은 나리는 차를 출발시켰다. 빨리 좀비 남을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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