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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9. 족쇄
작성일 : 20-08-22 02:07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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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분주한 사람이 있었다. 정장도 다려야 하고 구두도 닦아야 했다. 아주 좋은 모습이 좋았다. 왜냐면 무척 신이 났기 때문이다. 최부식이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단순 자살로 바로 결론이 났다. 왜냐면 정황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문은 거울 앞에 서서 치실로 이를 손질했다. 건더기가 나오는 건 삼켰다. 그런 다음 흉하게 앉아서 정장을 다렸다. 차례로 구두도 닦았다.

 재미 삼아 선을 본 적이 있다. 웬 촌년이 나와 기분이 새긴 했지만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진 왠지 설렜다. 그런 설렘을 지금도 느끼고 있었다. 왠지 옷을 입고 자신의 옆태와 뒤태를 훑어봐야 할 거 같았다.

 “인생이 정말 즐겁도다.”

 뿌르르릉. 뿡. 삐이이익.

 “아, 방구 소리 좋다! 냄새 봐라, 냄새!”

 그는 하품을 하며 스마트폰을 찾으러 갔다. 아직도 남은 게 있는지 항문을 통해 가스가 푸르르 흘러나온다.

 

 용문과 10분을 넘게 통화를 나눴다. 물론 민수는 통화 내내 거의 대답만 했을 뿐이다. 문윤재가 죽었다. 최부식 같은 얼뜨기가 해낸 것이다. 듣고 듣고 또 들어도 놀라울 일이었다. 용문과의 통화 전에는 여자들의 메시지를 받았었다. 일일이 정성껏 답했다. 여자들한텐 그렇다. 사타구니에 달려 있는 게 다르니까. 가만 생각해 보면 윤재가 죽은 걸 왜 일일이 자신한테 확인받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엇다리로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초인종이 울렸다. 잠깐 듣고 있다가 나가 보니 집배원이다. 빨리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제 딴에는 정중하게 말한다. 요설을 내뱉은 주둥아리가 건방졌다.

 “됐으니까 빨리…….”

 그는 힘을 모았다.

 “뭐라고요?”

 집배원이 말투가 좀 전보다 버릇없다. 50대쯤 보이는데 멍청한 게 매를 번다.

 “거어어어지어어엇!”

 민수가 얼굴을 들이밀며 입을 쩍 벌렸다. 두 배는 커진 듯한 목이 마치 말 뒷다리 같았다. 핏줄이 도드라진 게 엄청나게 위압적이었다.

 “……아니 이보세요?”

 집배원이 항변을 하려 들자 그가 주먹을 확 들고 냅다 붙었다. 집배원은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안 하면 죽을 줄 알아라?”

 민수는 등기를 구기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봤더니 상장이다. 일전에 시 문학상에 응모했었다. 지인들이 알면 꽤나 웃겠지만 말이다. 가작이었다. 상금은 얼마 안 되지만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상장을 펼쳐 들고 몇 번이나 글귀를 읽었다. 학교 다닐 때는 꿈도 못 꿔 본 걸 서른이 넘은 후에 이루었다. 벌써 상장만 다섯 개였다. 오늘 거까지 치면 여섯 개. 여태 산문으로만 상을 받았었다. 시는 처음이다. 책장 한 칸을 할애에 상장을 펼쳐 놓았다. 안양에서 이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속으로 말했다.

 그는 옷장을 뒤졌다. 윤재가 선물해준 정장을 입기로 했다. 신발은 그런 게 없었다. 대충 알아서 신을 생각이었다. 우선은 배달 음식을 시킬 작정이었다. 배가 고팠다. 중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탕수육 중자를 시켰다. 배달이 왔을 때 콜라를 뜯지 않았다. 따뜻한 보리차를 옆에 두고 푸석푸석한 튀김 요리를 입에 욱여넣었다. 독도처럼 조그만 샐러드에 뿌려진 케첩이 싱그럽다. 정액 성분일 수도 있었다.

 그는 종일 스마트폰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윤재의 SNS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놈은 고인이지만 SNS는 얼마나 생동감이 넘치는가 이 말이다. 부식의 리플 따윈 없겠지만 찾아는 볼 생각이었다.

 부식이 고마운 일을 해줬다. 하지만 하나를 더 해줄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용문과 합의를 했다. 평생 부식의 생일을 챙기자고.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준비해 그를 기리자고. 음식? 당연히 그들 뱃구레에 들어갈 제목이다. 술을 실컷 퍼마시는 날이다. 웬만하면 놀기 적당한 날로 잡아야 했다. 놀고 마시면서 그럴 시간이 된다면 가운데가 잘 익어 벌어진 조개를 찾아 돌아다닐 것이었다. 사실 전화 한 통이면 알아서 오는 게 보지 배달이지만.

 그는 샤워를 할 생각으로 웃통부터 깠다. 탄탄한 육체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드러났다. 가슴은 크지만 허리는 가는 동 나이대에선 찾기 힘든 몸이었다. 균형 잡힌 역삼각형의 몸매였다. 하체는 또 얼마나 단단한지 모른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본 적은 없지만 줄기차게 지인으로부터 콜은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몸 가꾸기에 흥미가 있는 거지 잿밥에는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글을 쓰고 있는 몸이 아닌가. 그 시간에 단어나 한자 더 쓰고 외우는 게 나았다. 남들이 보면 배를 잡고 웃겠지만. 만학도가 영어 단어를 가지고 머리를 싸맬 때 그는 국어 단어를 가지고 놀아야 한다. 머리가 어지간히 돌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재밌으니 된 것이다.

 그는 구슬을 박은 자지를 덜렁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통해 물이 뿜어져 나왔다. 머리가 금세 젖어 미역처럼 얼굴에 들러붙었다. 이 다음 커피를 마시고 최부식의 장래에 관해 생각할 것이었다. 최부식의 장례에 관한 장래. 그 생각을 하며 그는 큭큭 웃었다. 한 번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실컷 웃었다. 안 뒹군 게 다행이었다.

 

 따르릉.

 010-62XX-85XX.

 액정에 뜬 전화번호를 보고 안도를 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부식은 자신의 입을 쓸어 내면서 잠깐 숨을 돌렸다. 얇은 살결과 갈빗대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는 수화기를 잡았다가 멈칫했다. 왠지 이 전화기를 들면 발동이 걸릴 거 같았다. 그리고 귀에 가져다 대면 본격적으로 흐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자 반가움은 사그라들고 반감이 일었다. 아버지는 짜증이 섞인 투로 퉁을 주듯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만 닥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부식은 참기로 했다. 아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허공에 매단 자신의 영혼만 바라보기로 했다.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부식아? 아들!”

 “듣고 있어요.”

 “참말이냐?”

 “예.”

 “애비는 네가 정말 걱정이다. 어떻게 되려고 그러니?”

 “네?”

 “나이가 서른다섯이다. 어서 어떻게 좀 해봐라. 네 꼬락서니 휴, 네 꼬락서니를 좀 봐. 거울은 보고 사는 거냐?”

 부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 카메라라도 숨겨 두었나 해서였다. 물론 의미 없는 동작이었다.

 “최부식이!”

 “이름 부르지 마세요.”

 “뭐라고?”

 “큰 소리로 부르지 말라고요.”

 “에효, 말을 말자. 내가 참으마. 이거 원 무슨 말도 못 하게 하니…….”

 “참기는 뭘 참는다고요?”

 부식은 전화통을 잡고 총 맞은 사람처럼 쓸리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조용해서 처음에는 배배 꼬인 수화기 선이 뽑힌 줄 알았다.

 “아버지?”

 “요즘 많이 힘드냐?”

 “아니에요.”

 그는 힘이 빠졌다. 너무 감정이 앞섰다는 생각이었다.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줘?”

 “그럴 생각 있으면 아버지 몸부터 챙기세요. 저 괜찮아요. 살이 붙고 있어요. 몸에 나쁘긴 하지만 라면이 입에 맞아요. 뭐라도 먹으니 다행인 거죠.”

 “라면이라도 어디냐. 내 세상에 라면을 먹는다는 소리에 기분이 들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래, 라면이라도 먹고 어서 힘내서 장가들자!”

 “그렇게 손주가 안고 싶으세요?”

 “당연한 거 아니냐. 애비……!”

 또다시 설교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부식은 아련한 기분만 들었다. 불현듯 라면을 먹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딸꾹질과 함께 헛구역질을 했다.

 “어디 아프냐? 괜찮아?”

 “예.”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이만 끊을게요. 할 일이 있어서……”

 “그래, 할 일이 있다면 해야지. 나중에 다시 전화하마. 너도 한 번쯤은…….”

 아버지가 말을 줄였다.

 “네.”

 부식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넋 나간 사람처럼 시계만 쳐다보았다. 시침 도는 모습을 가만히 지켰다.

 X.

 그는 그 마크를 떠올리고 있었다. 윤재의 왼쪽 눈 밑에 있는 마크. 일전에 모텔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묘하게도 둘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칼로 인한 자해라는 점이 같았다. 하지만 윤재의 경우엔 부식이 가져간 칼이었다. 만약 평화롭게 갈라졌다면 집에서 칼로 자살을 했을까 궁금했다. 아니면 다른 식으로 자살을 했을까?

 ‘그냥 문신에 불과해.’ 그는 도리질을 했다.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싸구려 공포 영화도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그는 깡마른 몸으로 거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천장 불빛 아래에 선 것이다. 그의 모습이 거실 창에 비췄다.

 난 살인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살인을 안 했다. 난 살인지가 아니다. 너는 살인자가 아냐. 넌 살인 같은 거 안 해.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입은 움직이지 않은 채 깨어 있는 뉴런을 통한 전달이었다. 그는 무심코 손등을 물어뜯었다. 영화에서 본 행동으로 반쯤은 의식적으로 흉내 낸 것이다.

 이 인조는 그가 살인을 했다고 믿는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쓰레기 이 인방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었다. 돈도 주지 않을 것이다. 협박에 시달릴 것이다. 평생 끌려다닌다. 그는 갑작스런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거실이 빙글빙글 도는 거 같았다. 무언가라도 의지해야 해서 손을 허우적거렸다. 순간 번개가 번쩍였고 그도 현실 속에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 엉덩이로 몸을 지탱해 있다가 벌러덩 드러누웠다.

 “망할…….”

 뻔한 결론이었다. 알면서도 속았다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속은 것도 아니었다. 마차를 끄는 조랑말처럼 순종적이었고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은 총구가 턱 밑에 닿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조가 그리 밀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오들오들 떨면서 명령에 복종하고 만 것이다. 이 인조, 그들은 살인자다. 부식은 시체 유기를 도왔을 뿐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도왔다. 며칠 전까지 그렇게 살았고 며칠 전까진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늦어 버렸다.

 그는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는 이 인조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살인을 시인하는 영상이었다. 무서워서 그랬다. 칼을 쥐고 협박을 하니 안 그럴 수가 있으랴. 바로 눈앞에서 사람을 칼로 찢어 죽였는데 어찌 싫다고 할 수 있으랴. 만약 영상이 압수되어도 노련한 수사관들이 알아서 진실에 접근할 거라 여겼다.

 땀이나 시선의 방향, 특정 어투, 떨림, 손이나 발의 동작 등으로. 그리고 시체를 찾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면, 포렌식 검사나 CCTV 수사로 인해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대로 사건이 묻혀져 버렸다. 심지어 그는 다행이라 여겼다. 공허한 시간이 쌓이고 쌓였다. 누명을 쓴 자신이 쇠창살을 부여잡고 결백을 호소하는 악몽을 꾸길 여러 날이었다. 힘든 시기에 연인까지 자살을 해 죽음을 뼛속에 그리고 살았다. 점차 몸이 야위어 갔다. 숨어 살 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삼인조, 아니, 이 인조의 덫에 걸렸다.

 나 이 옷 입을까?

 그는 자신의 귀를 막아 버렸다. 죽은 연인의 환청 때문에 괴로웠다. 때로는 행복을 선사하지만 때로는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는 목소리. 죄의식에 사로잡힐 때면 식은땀이 났다. 그녀가 자살하는 걸 막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생각이 나 등골이 오싹했다.

 순간 그는 모골이 송연함을 느꼈다. 자신의 왼쪽 팔 안을 무심코 쓰다듬다가 생각이 난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문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타투리스트가 문신의 의미가 뭔지 물었었다. 당연히, 난생처음 보는 문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죽은 연인이 눈 밑에 한 문신이라고 했었다. 왼쪽 눈 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왼팔에 문신을 박았다. ‘/.’를 세 개로 연이은 것이었다. 그녀와 자신, 언젠간 태어날 2세를 상징한 거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건대 ‘/.’가 아니었다. ‘X.’이었던 거 같았다.

 그는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두 다리까지 확 열고 있었다. 불현듯 그녀는 자살을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살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 방법은 하늘만이 알 것이었다. 우선 일어나야 했다. 약상자에서 신경안정제를 꺼내 입에 넣고 싶었다. 몇 통을 사서 한 데 섞은 게 4분의 1쯤 남았을 것이다. 물과 함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느끼고 싶었다.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낡은 벤츠의 운전석 밖으로 껌 종이가 던져졌다. 민수는 어금니가 불어 터져라 껌을 씹으면서 재규어처럼 나른한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둘둘 만 껌 종이의 은박지가 반짝이며 조리를 신어 튀어나온 발가락에 맞았다.

 “안녕하세요?”

 나리가 말했다.

 민수는 껌만 오물거리면서 나리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턱짓으로 물었다. 들고 있는 게 없는 거로 봐서 잡상인은 아닌 듯했다.

 “이야 악당처럼 생기셨네요.”

 민수가 눈을 가늘게 했다.

 “악당처럼 생기셔서 지나칠 수가 있어야죠. 오락실에 철권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마침 악당 같은 분이 있더라고요. 정말 악당처럼 생기셨어요. 축하합니다.”

 “뭐?”

 구릿빛의 손이 창밖으로 나와 문에 붙었다. 토시를 한 팔은 말랐고 주먹의 너클 부분엔 검은 딱지들이 박혀 있었다.

 “좋은 거 보여드리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실은 당신의 의견은 중요하지가 않아요. 전 그냥 보여드리는 거고 부담 없이 받아들이셨으면 하는데…… 어떤가요?”

 “미쳤냐?”

 “절대로요.”

 “진짜 죽어 볼래?”

 민수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까매서 잘 보이지 않으나 가까이서 보면 눈 밑의 그물 문양 주름살이 선명했다. 나리는 마치 조수석에 누가 있나 보려는지 몸을 낮췄다. 응당 그쪽으로 눈이 갔고 뒤쪽도 살폈다. 이미 봤을 텐데도. 차는 선팅이 되어 있지 않았다.

 “아뇨. 전 오래 살 거예요.”

 민수가 밖으로 낸 팔로 나리의 얼굴을 당겼다. 코가 맞닿을 정도였다. 서로의 눈이 5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있었다.

 “아유 끔찍해라. 눈이 아주 그냥 흉악범이 따로 없네.”

 나리가 여유를 잃지 않고 말했다.

 “안 쫄아?”

 “그럴 리가요. 하지만 이쪽에도 다 사정이 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제 눈을 자세히 보겠어요?”

 “뭐?”

 “영 집중을 안 하시는 거 같거든.”

 갑자기 나리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의 입술도 일자로 누웠다가 오른쪽 볼로 깊게 파였다. 민수는 얼핏 나리의 동공에서 일렁이는 파란색 불꽃을 본 듯했다. 믿기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리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 있는 건 안으로 말려드는 소용돌이였다.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면 그 미세한 파동을 놓칠 수도 있었다. 어쨌건 민수는 봤다. 소용돌이를. 그래서 얌전하게 나리의 뒤통수에서 손을 풀었다.

 “가.”

 민수가 정면만 보면서 말했다. 입가에 전에 못 보던 푸른 정맥이 돋아나 있었다.

 “네, 살펴 가세요.”

 차가 길가에서 빠져나갔다. 나리가 뒤에서 빠이빠이를 했다.

 

 담배를 꽂은 손을 입에서 떼어내며 푸 하고 연기를 내뱉는 용문. 살덩이가 양쪽으로 흘러내리는 코에서 나온 흰 연기가 바람에 날렸다. 그는 괄약근에 살짝 힘을 줘 방귀를 흘려보냈다. 소리 없는 방귀였다. 변기에 밥을 주고 나온 터라 냄새도 없었다. 그는 입에 담배를 문 채 눈을 찡그렸다. 한쪽 눈을 찡긋하자 그쪽 눈썹이 하늘로 치솟았다.

 “어디 보자 에 그러니까…….”

 그는 뒤 호주머니에서 높게 꽂혀 있던 문서를 꺼냈다. 장지갑처럼 긴 종이는 카드가 가득 꽂힌 악어가죽 지갑보다 비쌌다. 훨씬 안전하다 할 수 있었다. 문서를 약간 조작했다. 아주 약간. 이로써 죽은 윤재는 이 인조에게 빚이 좀 있게 되었다. 많지는 않았다. 2억 8천 정도인데 윤재가 가진 것들을 팔면 해결이 되었다. 나머지는 유가족이 가져가면 된다.

 그는 담배 연기를 푸 뿜어내면서 킬킬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대한 처사였다. 문윤재 같은 천치를 돌봐준 대가로 2억 8천이라는 푼돈밖에 가져가지 않다니. 유가족은 아마 4천 정도 가져갈 테다. 더 안 될 수도 있고. 혹자가 어떻게 성냥 홀릭 보안관을 돌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쭉탱이 백만 대였다. 윤재와 이 인조가 얼마나 막역한 사이였던가?

 알고 보면 그들이 먼저 죽어도 재산은 윤재 거였다. 안타깝게도 윤재가 먼저 죽었지만. 어쨌든 이 인조는 유품들로 이것저것 발품팔이를 해야 한다. 차도 팔고 방 보증금 빼고 주점 건물 계약서도 확인하고…….

 뿡.

 “어이쿠 방구가 그만……!”

 그는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쳐다보았다. 마침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여자가 예전에 알던 동생이었다. 꽃을 사랑하는 귀여운 아저씨답게 해바라기 구경을 원 없이 시켜 줬었다. 맛은 별로였지만 이런 데서 만나니 왠지 그날 밤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한 그녀는 냉기만 흘리며 지나갔다.

 “오빤 윤재 오빠가 죽었는데 슬프지도 않아?”

 가버린 줄 알았는데 멀리서 말한다.

 “슬퍼.”

 그가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가렸다. 저걸 어떻게 딸까 하는 고민이 끝났을 땐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장례식장에 와 있단 걸 상기했다. 곡소리가 들렸다. 차들이 어지러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도 안으로 들어가 눈물을 좀 흘려야 했다. 아무리 비즈니스 때문에 왔다지만 그간의 정이 있지 않은가. 윤재의 부모에게 인사도 하고 비싼 종이 구경도 시킬 것이었다.

 그때 엄청난 굉음이 천지를 때렸다. 장례식장에서 소란이 일며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낡은 벤츠가 주차된 차를 받아 버린 것이다. 용문은 얼어버린 탓에 사태 파악이 쉬이 되지 않았다. 눈앞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중고차의 머리가 박살이 났는데도. 그 차가 누구 것인지 대번에 느낌이 왔는데도.

 우르르 몰려나온 사람 중에서 신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용문은 그런 것들을 굳이 모범생처럼 찾아보았다. 탄성 비슷한 소리가 났다. 사고 차량으로 다가가는 사람들도 화들짝 놀랐다. 기름이 샜던 건지 차 밑에서 불이 뒹굴었기 때문이다. 몇몇의 남자들이 차에 달라붙었지만 어찌 된 건지 문이 꼼짝도 않는 듯했다. 불은 흔들거리면서 점차 차를 먹어 치웠다. 물을 길으러 뛰는 사람들,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 안 된다는 구호만 지르면서 손으로는 동영상을 찍어대는 인간들…….

 펑 하는 소리는 폭발음 같았다. 그러나 폭발음이 아니라 차가 불덩이로 산화하는 소리였다. 활활 잘도 탔다. 용문은 어이가 없어서 픽픽 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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