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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아녹이 기억할 것입니다
작가 : Naram
작품등록일 : 2020.8.17

어린 아이들이 말하기를,

후대의 선생들이 가르치기를,

세계의 역사가들이 기록하기를,

당신은 비열하고 악독한 손가락질 받아야 마땅한 자라 비웃을지라도

아녹께선 그날의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1. 기름부음 받은 자들 - 9
작성일 : 20-08-21 23:18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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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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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칼의 왼쪽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헤인은 무엇을 담보로 내놓으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대놓고 아스칼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

 

  “역시 단 것은 몇 개 먹으면 속에서 올라오네요. 센님께선 이런게 뭐가 좋다고 계속 드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답변은 오늘 계약시간 전까지 부탁드립니다. 내일이면 저희도 다른 마을로 이동할 예정이라서요.”

 

 

  둘 사이에 고요한 시간이 흘러갔다. 티리에는 기나긴 고민 끝에 편의성을 생각한 갈색 샌들을 골랐고 상인에게 가격을 묻더니 대뜸 흥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인은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너희같은 사람들은 여럿 봤다.”

 

 

  갑작스러운 말에 헤인의 발걸음이 멈췄다.

 

 

  “상대방에게 유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빼앗는다.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도려내고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목을 쳤었지.”

 

 

  아스칼의 손이 허리춤에 착용한 시미터의 검집을 으스러지듯 잡았다. 헤인은 그 모습을 보진 않았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노기와 명백히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살기를 느끼고 롱소드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남에게 조금도 주는 것 없이 빼앗고 빼앗고 빼앗는다. 네 주인이 찾는 간식이 저잣거리에 널려 있는 것을 말하는지 사람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티리에와 상인의 흥정이 끝났다. 티리에는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고 상인은 그저 귀엽다는 듯 허허 웃고 있었다. 이제 저 소녀는 신발과 옷을 들고 그에게로 달려와 자신의 성과를 자랑할 것이다. 아스칼은 그 모습을 놓지지 않겠다는 듯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가라. 지금은 보내주지만 만약에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려 한다면 빛의 그라스트와 안식의 바리안께 맹새코 너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왠지 운수가 좋은 것 같더니 사실은 덫을 밟았군.”

 

  “딱히 위협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만약 그렇다 한다면 무르군요.”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이지.”

 

 

  잠시 말을 멈춘 아스칼은 그에게 들리도록 뒷말을 흘리며 티리에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 너희의 사정도 포함해서.”

 

  “...”

 

 

  헤인은 말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인 주인에게 드릴 간식을 사러 식료품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스칼이란 남자는 여타 다른 용병들처럼 멍청하지 않았다. 관찰력은 센의 말처럼 굉장히 뛰어났고 언뜻 드러난 것에 불과하지만 그의 몇몇 움직임에서 제국 서부귀족의 예법이 소소하게 보였다. 연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나름의 뒷배는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무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균형잡힌 신체, 여유롭지만 경계를 풀지 않는 자세, 그리고 덩치. 소녀쪽은 모를까 아스칼은 상당히 탐나는 인재였다.

 

 

  ‘하지만 너무 뛰어나서 쫑났지.’

 

 

  설탕에 절인 말린 무화과를 집어들며 계속해서 생각했다.

 

  자신의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지만 상대의 정보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집단과 이용당하기 싫어하고 안전을 우선으로 삼는 집단. 센과 아스칼은 군신관계라면 모를까 용병과 고용주로선 좋은 관계를 가지긴 힘들었다.

 

  안전장치라도 걸어두고 싶지만 워낙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도리어 이쪽을 적대하면 귀찮아지니 그냥 놓아줄 수밖에 없는 상대다. 반대로 생각하면 영리한 사람이라 구태여 다른 작업을 하지 않아도 저들은 알아서 입을 다물 것이다.

 

  정리를 마친 헤인은 들고 있던 설탕에 절인 말린 무화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강한 단맛이 입 안에 휘몰아쳤다.

 

 

  ‘역시 단 것은 나와는 맞지 않아.’

 

 

  설탕에 절인 말린 무화과와 사탕을 몇 개 추가로 구매한 헤인은 몇 없는 노점상들에 들려 단 것 위주로 요깃거리 몇가지를 산 후 센이 머무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이 되었다.

 

 

  “...”

 

  “...”

 

 

  여관 1층 식당겸 로비를 겸하는 곳에서 두 남자가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짧은 갈색머리의 젊은 남자는 조금 딱하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고 그 대상인 백발 거구의 전사는 애써 담담하게 시선을 마주하는 듯 했으나 상당히 민망해보였다.

 

 

  “돈이... 상당히 급하셨나보네요.”

 

  “음.”

 

  “뭐라고 하셨더라.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이지’”

 

  “크흠.”

 

  “빛의 그라스트와 안식의 바리안께 맹새코 너희를 용서치 않을...”

 

  “크흐으으으으크흠”

 

  “왠지 운수가 좋은 것 같... 알겠습니다. 그만할테니 눈에서 힘좀 푸시죠.”

 

 

  헤인은 좋은게 좋은 것이기에 아스칼을 놀리기는 그만 두기로 했다. 짧은 뒷조사로 아스칼과 티리에의 신상도 조금이나마 확인한 상태이고 센은 티리에가 마음에 들었는지 조사 이후엔 그들을 정식으로 고용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전날 일도 있었고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반쯤 포기했었는데 상당히 돈이 급했긴 했던 것 같다.

 

 

  “계약내용은 전과 동일합니다. 어제는 제 독단으로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도 있으니 사과의 의미에서 착수금은 조금 더 넣었구요. 계약서는 여기 있으니 읽어보시고 서명하시죠.”

 

 

  아스칼은 별다른 말없이 계약서를 처음부터 천천히 확인했다. 주점에서 나눴던 내용과 달라진 점은 없었고 독소조항도 보이지 않았으며 착수금에 관한 부분은 센스있게 계약서엔 명시하지 않았다. 의뢰내용이 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이것처럼 손쉽게 큰 돈을 버는 일도 드물었다.

 

  조금 걸리는게 있다면 정보에 관해선 일방적이라는 것인데 고용주는 고용자에게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모든 정보를 알릴 필요가 없지만 고용자는 고용주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했다. 다른이에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지만 그래도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담보 없이 두달분에 해당하는 거금을 당겨 받는 대가라 생각하세요. 이 이상은 양보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다. 이 이상은 욕심이겠지.”

 

 

  아스칼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사이 여관주인이 훌륭한 냄새를 풍기는 점심메뉴를 그들 앞에 놓아주었다. 매콤한 양념을 바른 양고기와 보리빵, 포도주가 전부였는데 양고기에서 나오는 냄새는 배고프지 않는 사람이 지나가더라도 식욕을 자극할만큼 매력적이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헤인은 좋은 타이밍에 식사를 건내준 여관주인에게 눈인사를 건낸 후 조금은 퍼석한 보리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돈은 어디에 쓰시려구요? 사치를 부리는 분처럼 보이진 않는데 빚이라도 지셨습니까.”

 

 

  단순히 거금을 어디에 쓰는지 궁금해진 헤인의 질문이었다. 일례로 헤인의 시선은 양고기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는 왼손의 포크와 오른손의 나이프에 고정되어 있었고 말투 역시 가벼웠다. 하지만 방금 계약을 한 아스칼은 정보에 관한 계약조건을 이행해야 하는지 음식을 앞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별로 알리고 싶지는 않지만 계약에 따라 이야기 해야겠지.”

 

  “그렇네요. 첫 계약 이행으로 칩시다.”

 

 

  둘 모두 음식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지만 헤인은 그것을 먹으며 가볍게 말하였고 아스칼은 식기에 손도 대지 않으며 조금 진지해졌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어머니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서다. 뭐... 몸값이라 부르는 것도 웃기긴 하는군.”

 

  “아. 가정사.”

 

 

  입을 향해 양고기를 가져가던 헤인의 손이 천천히 멈추었다. 그냥 가볍게 물어본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상대의 아픈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았다. 한쪽에서 티리에와 함께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식사중인 센을 흘끗 바라본 헤인은 양고기를 입에 넣으며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센님이 물어보실 때 하는 걸로 하죠. 여기는 괜히 무거운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망치고 있는데 저쪽만 신난걸 보니 괜히 심술이 나네요. 밥이나 먹읍시다.”

 

 

  헤인의 말에 아스칼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센은 과장된 포즈로 양고기를 잘라 앞으로 내밀었고 티리에는 깔깔거리며 그 고기를 낼름 받아먹었다. 활발하고 여러 사람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던 티리에가 저렇게 좋아하는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 했다. 애초 그가 있던 곳은 딱딱하고 경직된 곳이었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벌이는 티리에의 돌발행동은 아스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기에 행복해하는 티리에에게 대놓고 수상쩍은 저 남장 여자와 거리를 벌리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밥 안먹어요?”

 

  “이것도 말해야 하나?”

 

  “아뇨. 다만 당신이 굶는다면 센님 앞에 앉은 피기 직전의 백합화가 속상해 할 것 같아서요. 제가 조금만 더 젊었어도 한번 만나보려 노력했을텐데 아쉽군요.,”

 

 

  아스칼은 나이 차이가 많아야 다섯 정도 밖에 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상한 말을 하는 헤인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만 이대로 멍때리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기에 고용주의 말대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여러 상념들은 한쪽에 치워두고 양고기를 한점 배어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알싸한 마늘향과 과일의 단맛이 양고기의 육즙과 어우러져 입 안에서 기분 좋게 맴돌았다. 여기에 고소한 보리빵과 달면서도 씁쓸한 포도주가 함께 하니 혀 끝에서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 밀려왔다.

 

 

  “맛있군.”

 

 

  처음 먹어 보는 것이 아님에도 이번 식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큰 만족감을 줄 것 같았다. 수상쩍긴 하지만 악의가 있어보이진 않는, 좋든 싫든 최소 두달 이상을 함께 해야 하는 고용인에게 속으로 작은 감사를 표했다. 음식이던, 아이의 행복이던 앞으로의 여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기를 그라스트에게 짧게 기도했다.

 

  그리고 별 생각 없는 것처럼 양고기를 씹어 삼키는 헤인 역시 바리안에게 짧게 기도했다. 이번엔 부디 오래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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