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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8. 감미로움
작성일 : 20-08-21 04:44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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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를 찌르는 악취. 용범은 식초 냄새를 맡은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렸다. 대충 꼬아 놓은 비닐 꼭지는 풀려 있었다. 습기가 찬 것처럼 갈색의 액이 맺혀 있었다. 바닥에도 제법 흥건할 것이었다. 시체가 썩으면서 나오는 부패 혈성액이었다.

 “내 말 들려?”

 약간의 변화도 없었다. 어제 준 정액은 딱지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비닐에 흘린 건 거의 옅어지고 없었다.

 “언제쯤 일이 생기려나. 아빠나 엄마라는 말부터 시작할 거 같지도 않은데.”

 그는 슬슬 회의감이 생긴 상태였다. 엘릭서나 황금 변성 같은 거로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정통하는 호문쿨루스 집단을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넌더리가 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종의 유희나 호기심 충족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예를 들어 돌을 조각하거나 글을 쓰는 것과 같이. 취미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누구는 어항을 손질하고 누구는 관상용 식물을 기른다. 집에 소박한 식물원을 만드는 이도 있다. 정신 상태가 안 좋은 쪽이라면 집에 개들을 풀어 놓고 말 그대로 개판을 벌이는 작자도 있다. 대게 여자 쪽이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강박적으로 야동이나 긁어모을 것이었다.

 혹시 피규어를 모으는 취미와 동일 선상이 아닐지 고민해 본 그였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마음과 혼합되어 변질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거기다 기술자의 심리와 과학자의 마인드가 혼재되었을 터였다. 정치인의 포부와 철학자의 말도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구더기가 들끓는 도막 시체를 보았다.

 구더기는 대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저 녀석들 중 몇은 분명 그의 정액을 음미했을 것이다. 그저 한낱 파리가 되어 날아가 버릴까? 똥이나 싸대고 병균이나 옮기는? 통통한 몸이 팡 터지며 내놓은 건 구더기 떼. 침으로 녹여 먹는 펠라티오 마니아.

 그는 고무통의 뚜껑을 닫았다. 우유 향이 나는 비누로 손을 여러 번 씻었다. 세면 거울에 비친 얼굴에는 회한 같은 게 있었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건 일종의 연습이었다. 잘되지 않았다. 24시간을 거의 빼놓지 않고 웃고만 있는데 이렇게 부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잘 때도 웃는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잠자리를 같이한 여자들이 그랬다.

 방으로 돌아간 그는 옷을 갖춰 입었다. 폴로셔츠를 입고 골프바지를 입었다. 하늘색 로퍼를 신기로 했다. 왼쪽 손엔 알이 큰 시계를 찼다. 앉아 있으면 발목이 올라갈 거를 대비해 하얀색 장목 양말을 신었다. 일부러 빨간 색소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아 먹었다. 펠라티오의 귀신이 여기에도 붙었다. 일을 처리하자 입술이 아주 새빨갰다. 혀도. 건치를 정리하기 위해 미지근한 물에 가글을 했다.

 그는 보관해 두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하얀 포장길 양쪽으론 싱그러운 잔디가 깔려 있었다. 초입에는 나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집들은 모두 안정감을 준다. 도로를 중심으로 왼편에 줄지어져 있는 집들이었다. 오른편엔 아무것도 없다. 그는 도롯가의 연석과 보도블록에 발을 반반 걸쳐서 걸었다.

 조부의 집은 먼 편이었다. 집성촌의 집은 대개 미국 가정집의 배치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조부의 집도 다르지 않았다. 예외인 현승의 조립식 건물을 지나쳤다. 유령의 집이 된 나무집도 지났다. 유령의 집만큼은 미국식 가정집과 엇비슷해 현관문이랄 게 없었다. 발로 차면 부서지는 게 무슨 현관문인가. 한국의 아이들 방보다 약한 현관문. 그러니 미국에선 총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한국 아이들 방엔 은행에서 털어온 현금이 수북하게 쌓여 있을지도 모를 일.

 그는 뒤로 고개를 돌려 주인 잃은 나무집을 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힘차게 다리를 움직였다. 마치 기운을 복돋우려는 듯. 한시도 힘이 빠진 적이 없지만 아까보다 기분이 좋아지긴 했다. 조부의 집은 다른 집과는 다르게 정원이 다채로웠다. 목을 매달아 놓기 좋은 큰 나무들. 일생을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할 수도 있는 희귀한 유실수. 개성 만점의 풍향계.

 딩동.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금 누르려다가 멈칫하고 더 기다리기로 했다. 싱글벙글한 미소. 안에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는 차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외지인의 차였다. 마을을 지나치는 것뿐이었다. 검은색 뉴비틀 차의 운전석 문이 열려 있었다. 마침 팔이 나와 걸쳐졌다.

 뺀질뺀질하게 생긴 샌님이 목례를 건네기에 비웃어 주었다. 물론 상대방은 친절한 사람이다 싶을 것이었다. 샌님은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있었다. 차가 쌩 지나갔다. 하지만 왠지 여운이 남았다. 용범은 자신도 모르게 현관문 근처에서 물어 나오면서까지 끈질기게 시선을 따라 붙였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헛기침 소리가 뒤따랐다.

 ‘헛기침 한 번만 더 하면 죽여 버린다.’

 용범이 생각했다. 그는 뒤돌아서면서 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서 찬란한 빛이라도 쏠 생각으로. 안에까지 키가 비슷한 이들은 당근과 같은 채소를 아삭아삭 씹기 좋게 컸다. 입을 다문 그는 안쪽 이빨을 혀로 쑤시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말했다.

 “증조할머님을 뵙고 싶어서요. 꿈에서 증조할아버지가 나오시기에 괜히 생각이 나던걸요.”

 “증조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놈이?”

 “사진을 봤습니다. 사진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래?”

 “멋진 분이셨어요. 증조할머니의 남편인 걸 대번에 알아봤는걸요.”

 “그러냐?”

 “실제로 만나 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제 꿈에 나타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꿈에서 뭐라 시든?”

 “증조할머님을 업고 계셨어요. 저도 그래야 한다고 하시던걸요.”

 말을 마친 용범은 앞니 뒤쪽을 혀로 콕콕 찔렀다. 노망이 났나, 빨리 안으로 들여보내 주기나 할 것이지 하면서.

 이제야 조부의 눈이 손주의 손으로 향했다. 용범은 과일 바구니를 들면서 증조할머니를 위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꽃장식이 되어 있고 나무를 엮어 만든 예쁜 바구니였다.

 “들어오겠니?”

 “감사합니다.”

 죽어라. 그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할아버지 곁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증조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불을 피우지도 않은 벽난로가 타고 있기라도 한 듯이 어지간히 노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쭈글쭈글한 양손은 무릎을 덮고 있는 담요 밑에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보지를 만지고 있었다.

 “할머니 저예요, 용범이에요.”

 용범이 말했다.

 증조할머니가 아 하는 듯 눈꺼풀을 늘어트리면서 헤헤 웃었다. 정말로 지겨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마치 벽난로가 말을 건넸다고 믿는 듯이 아궁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는 조부가 다가오는 소리를 추적하면서 무릎을 꿇듯 앉았다.

 “할머니 제가 과일을 좀 가져왔어요. 과일 좋아하시죠? 예쁜 바구니에 담겨 있기에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샀어요.”

 아늑한 실내였다. 카펫이 깔려 있고 오래된 소파가 있었다. 벽에는 그림 액자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밑 찬장에는 빈 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자그만 샹들리에가 창문에는 먼지가 좀 앉은 듯한 느낌의 커튼이 늘어져 있었다. 벽난로 옆 벽에서 야트막하게 튀어나온 선반에는 커피콩 가는 기계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커피콩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할머니?”

 “그만둬라.”

 “그치만 할머니…….”

 “귀찮아하시잖니?”

 그럴 수가 없었다. 증조할머니는 옹알이를 하듯 중얼대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행복한지 얼굴에 있는 갈매기들이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순간 자신의 노년기를 그녀에게서 발견한 용범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이러니 다들 엘릭서에 미친 거야.’

 그는 자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부가 보기엔 더없이 상냥한 얼굴의 손주였다.

 “과일 바구니 이리 주거라. 증조할머님을 위해 사 온 거 아니었냐?”

 “네, 여기 있어요.”

 “뭐 마시련?”

 “전 괜찮습니다.”

 “아니야, 뭐 좀 들어라. 커피 마실래?”

 “한 잔 주시겠어요?”

 “소파에 앉아 있도록 해라.”

 “증조할머님과 함께 있을게요.”

 “앉아라. 다리 아프다.”

 “알겠습니다.”

 ‘저 개자식.’ 용범은 특유의 환한 눈웃음에 잠긴 얼굴로 소파로 갔다. 오래된 소파였다. 색이 바랜 곳도 있고 뜯긴 곳도 있었다. 왜인지 특별히 진한 곳도 있었다. 테이프 질을 했던 자국도 있었다. 집구석에선 이렇게 살지만 일가의 모임에만 등장하면 조부는 카리스마 넘치는 제사장이었다. 용범은 한편으론 훌륭한 세상이다 싶었다. 다른 한편으론 집구석 잘 돌아간다 싶었다.

 소파는 디귿 자의 열린 부분이 왼쪽에 있게 포진되어 있었다. 가운데에는 유리를 덮은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에는 크리스털 재떨이와 접은 신문이 있었다. 4년 전의 것으로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인테리어라고 하기엔 우습지만 조부의 습관에서 비롯된 장소 배치였다.

 조부는 한 번 건든 건 거의 제자리에 둔다. 테이블을 집에 들일 때 사촌인 현승이 도왔는데 그때 가지고 온 신문이었다. 4년째 저 자리인 것이다. 때론 그런 습벽에 놀랄 때가 있었다. 고모부의 말로는 그런 습성이 있기에 자신의 모친을 극진히 보살핀다고 한다. 휠체어를 다른 사람들한테 넘기는 법이 없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후세대의 시선에서 보면 배워야 할 자세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용범의 입장으로 보자면, 그는 호로 자식이었다. 부모가 없었다.

 달그락 소리를 듣고 그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가 두 개의 자기 컵이 담긴 쟁반을 들고 오고 있었다. 손자가 받으려 하자 살짝 신경질적인 기운으로 쟁반을 뺐다. 그리고 발걸음이 빨라져서는 테이블에 내렸다. 용범이 뭔가라도 하려는데 조부도 거들어서, 버릇없게도 자신의 컵만 챙긴 꼴이 연출 되었다.

 “제가 드리려고 했는데.”

 손자가 변명하듯 말했다.

 “일없다.”

 순간 용범은 과일에 약이라도 치고 올 걸 싶었다. 물론 부질없는 짓이었다. 조부는 결벽증 환자처럼 과일을 깨끗이 씻은 뒤 껍질도 깎을 터였다. 의심 같은 걸 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먹는 게 맞으니까.

 용범은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직 뜨겁다. 뭐가 그리 급하냐?”

 “아, 예. 그러고 보니…….”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김 탓에 코 밑이 약간 습해졌다. 조부는 상석에 앉아 있었다. 첫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불쾌감이 솟구치기에 용범은 눈썹 선을 선하게 그렸다. 자신은 옆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조부를 보려면 불편하게 고개를 돌려야 했다. 조부를 본다는 인식 자체가 왠지 기분이 나빴다. 자신은 낱낱이 파헤침을 당하는데 상대는 자연 보호색을 띠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 요즘 좀 어떠냐?”

 용범은 우선 눈알을 굴려야 했다. 너무도 뜬금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낙인을 수집하러 다니는 선택 받은 사나이였다. 그런 사람에게 요즘 어떻느냐고? 같은 동네를 사는 마당에 안부를 묻는 건 아닐 터였다. 생각해 보니 의식 때마다 조부가 자신을 냉담하게 대한 것 같기도 했다.

 “전 좋습니다. 그게, 할아버지는요?”

 “말마따나…….”

 “예?”

 “네 말마따나 잘 풀린다니 다행이다.”

 그는 조부를 쳐다보았다. 누가 이간질을 하는 걸까? 하지만 자신에게 그럴 만한 사람이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그는 조부의 안색을 살폈다. 조부는 길에서 흔히 보이는 고양이처럼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얼굴에 얼굴 털이 하얗게 셌다. 어떻게 보면 점잖은 모습으로 음흉함을 숨긴 노친네의 전형이고 어떻게 보면 기관의 장 같은 연륜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굵은 실로 짠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중간에 자개단추가 하나 비어 있었다. 74살. 만약 사회적인 파워만 있었다면 20대 여자들도 넘기겠다는 얼토당토 안 할 칭찬을 들을 법한 인상이었다.

 “엘릭서는 잘 될까요? 엘릭서, 사촌들이 엘릭서 연구에 열심히라 기분이 좋더라고요.”

 “잘 될 거다. 그건 내가 보장한다. 그게 빨리 성과를 보여서 모두가 불멸의 존재가 되어야 해. 나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내가 영원히 산다 뭐 이런 소리가 아냐. 무슨 말인지 알겠냐?”

 “그럼요, 할아버지. 저도 할아버지처럼 되고 싶습니다.”

 ‘노망난 노인네야.’ 용범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모두가 그런걸요. 더욱이 남자라면 할아버지처럼 되고 싶을 수밖에요.”

 조부가 헛기침을 했다.

 “커피 들자.”

 “네.”

 “연구 잘 되어 가냐?”

 “네?”

 “연구를 한다면서?”

 용범은 아무에게도 호문쿨루스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조부는 대충 던져서 원하는 걸 캐낼 생각이었다. 지금에서 용범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현호였다. 하지만 현호가 욕실에 갔을 리가 없었다. 외출할 때 그는 항상 문단속을 한다. 욕실 문도 필수로 잠그는 게 당연했다. 현호가 아니라면 사촌 동생들일 수도 있었다. 자기 딴에는 놀이랍시고 남의 집을 엿봤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망할 놈의 꼬맹이들. 장남이란 20살짜리 놈도 아직 철이 안 들었는데 열여덟, 열여섯이라면 말 다 했다.

 “엘릭서라면, 네.”

 “엘릭서냐?”

 “네. 물론이죠.”

 “잘해보자. 커피 마셔.”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음, 향이 정말……!”

 “그래? 다행이구나. 과일은 아직 냉장고에 안 넣었다.”

 “아? 네.”

 “너는 보면 볼수록 고모를 쏙 빼닮았구나.”

 “제가 봐도 그렇더라고요.”

 “증조할머님도 닮았어. 네 생각도 그렇지?”

 “물론이죠. 증조할머님을 뵐 때 놀랄 때가 있을 정도로요. 오히려 부모님보다 증조할머님과 고모를 닮은 거 같아요.”

 “같다가 아니야. 그게 진실이지. 증조할머님과 애란이 그리고 너로 이어지는 계보지. 그런 눈웃음은 어디에도 없다.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어. 너도 알 게다. 그렇지 않냐?”

 “제 자랑거리죠.”

 “그래야지. 커피 들자.”

 “네. 향이 좋아요.”

 “그럴 게다.”

 용범은 커피 맛이 나는 안쪽 이들을 혀로 드르륵 쓸었다. 커피 맛은 별로였다. 차라리 맥심에서 스틱으로 나오는 걸 먹고 마는 게 나았다. 그게 더 풍미가 있었다. 아마 커피를 보약처럼 달달 달여서 가져온 것일 터였다. 물에 탄 커피 가루가 대체 무슨 맛이 있겠는가. 사약과 다름이 없지.

 “음.”

 그는 커피 맛을 음미하는 척했다. 일상이 연기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저기 영감도 실은 식물을 키우는 심정으로 모친을 돌보고 있을 터였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스타라도 된 듯. 가공의 갈채에 흠뻑 젖어서.

 “커피가 감미롭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는 거 같네요.”

 “거 참, 칭찬도 과하다.”

 “정말인걸요.”

 용범은 조부에게 있던 시선을 거둬 얼마 남지 않은 흙탕물을 보았다. 거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흐렸다. 색만 남아 있었다. 그는 증조할머니를 생각했다. 호문클루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액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현실감이 불러일으켰다. 정신이 바짝 당겨졌다. 이왕이면 할망구의 아들에게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정한 모자 관계를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보기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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