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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심장 밀렵꾼 : 비존재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20.8.20

타인의 심장을 갈취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심장 밀렵꾼 준명. 그리고 그런 그의 심장을 원하는 한 여신. 그 애증 섞인 관계는 이윽고 서울을 한바탕 뒤흔들게 되는데....
아노미의 끝자락, 혹은 타락한 도시의 말로. '심장 밀렵꾼 : 비존재'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비존재_ 02
작성일 : 20-08-20 19:13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1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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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은 타인의 존재를 사랑하지 못한다. 아니, 사랑할 수 없다. 그 이전에 타인이라는 존재를 실감할 수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한들 그 시점에서 이미 그것은 타인이 아닌 주체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어느 저명한 검색엔진은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많은 양의 기사를 다루는 우리의 친근한 초록창이지만,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말해 두어야만 한다. 수정해 두어야만 한다. ‘존재’라는 단어를 끼워 넣은 것만으로 위의 문장은 사랑과는 동떨어진 뜻을 가지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새싹들이 그런 잘못된 정보를 보고 배우도록 놔둘 수는 없다.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이 또다시 짐승으로부터 유리되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으으,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이다. 기껏 성공에 가까워진 나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놓아둘 수는 없지.

 그러니 조금 정정을 해보자면

 사람은 타인의 존재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좋아하고, 현상에 이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성과 살을 부빌 때 발생하는 호르몬의 분비를 열렬히 사모하며

 ‘송혜교’라는 이름으로 정의된 시각 이미지로부터 행복을 느끼거나

 자신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라 판단되는 하찮은 생물로부터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고양이라거나.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반면에 연인의 손가락이 바늘에 찔렸다고 해서 그와 같은 양질의 아픔을 통감할 수 없으며

 연인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존재의 상실에 대해 단 0.1%조차 이해할 수 없다(물론 한 번 이상 죽어본 사람에 한하여 이성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충족을 위한 수단이고, 상대방의 존재를 오롯이 이해하고 보듬어준다는 그런 뜨뜻미지근한 미담 따위는 성립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영혼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이전과 같은 행동 양식을 가지기만 한다면, 인간은 여전히 그 껍데기를 사랑할 수 있다. 동시에 딱 거기까지 일뿐.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는 파악할 수조차 없도록, 그렇게 태어난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인형을 사랑할 수 있다.

 염세나 인간 혐오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그것뿐이므로, 그것뿐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런 것뿐이다. 애초에 나라는 존재가 염세주의에 찌들어 있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세상을 아끼고 사랑해야만 하는 입장이므로, 그런 오해는 되도록 삼가 주었으면 한다.

 물론 요즘의 박식하기 그지없는 젊은이들이라면 구태여 부탁하지 않아도 이해해줄 것을 안다. 그들은 이미 그것을 깨우치고, 현재 몸소 실천하는 단계에 있으므로.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세대가 아닐 수 없다. 뭐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기성세대로부터 경박하다는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가벼운 계약 같은 사랑이나 관계도 나름 영리한 처세술에서 기인한 것이니 딱히 그렇게 미움 받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미움 받을 짓은 아니고, 가히 멍청하다고 칭하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아주 영리하고, 대단히 멍청하다.

 이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의 상태를 모두 가지고 있는다는 자랑스런 쾌거를, 우리의 신세대들은 마침내 이룩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정말이지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응.

 감동을 받아서 저지른 일이었다.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그것이 이렇게나 깜찍한 결과를 가져다 줄 지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살면서 저질렀던 일들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저 조금의 형식을 바꿔준 것만으로 인간들은 그동안 쌓아 올린 가식을 모두 허물고 야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찌 이리도 흥미로운 생물인지. 어항 속에 담을 동물을 한 마리만 고르라 한다면, 나는 단언컨데 인간을 선택할 것이다. 아가미로 호흡을 하지 못하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압도적인 1등이다.

 짜르릉-. 출입구 부근의 방울이 울렸다.

 사람이라고는 바텐더와 구석에 앉아있던 나뿐이었던 펍 안으로, 걸인의 행색을 한 남자가 발을 들였다. 어깨에는 활어처럼 펄떡이는 심장이 담긴 뜰채를 걸머지고 있었다.

 꽤나 맛있어 보이는 남자지만, 손을 대기보다는 일단 지켜보는 편이 좋을까

 뭔가 재밌는 예감이 팍!하고 들고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한 모금 들이마신 다음

 나는 사라졌다.

 휘리릭.

  

  

 X X X

  

  

 물 대신 하늘을 담아둔 유리벽과, 물고기 대신 생동하는 붉은 생명들.

 ‘붉은 아쿠아리움’이라는 이명을 가진 그 펍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다. 한 변이 50m에 달하는 유리 큐브로 그 이중 유리벽 안쪽에는 무수히 많은 심장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채, 제각기 다른 박자로 박동하는 심장들이 마치 바다 속의 정어리 떼와 같은 압도적인 생명력을 뿜어댔다.

 “어, 왔어? 마침 네가 가져온 상품을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는 중이었어.”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바텐더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액체와 심장이 담긴 실린더였다. 그는 유리벽에 기대어 놓은 기다란 사다리의 정상에서, 진열장으로부터 그것을 꺼낸 다음 한 손으로 품에 안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하하, 무작정 쌩으로 들고 와서 수질 오염시키는 건 매일마다 한결같구나. 친우여.”

 낚시꾼의 꿈틀거리는 뜰망에서는 핏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인테리어 목적으로 바닥에 1cm 가량 채워 올린 수면이 점차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보고, 바텐더는 웃는 낯짝으로 일러주었다.

 “선도가 우선이라며. 굳이 상품의 질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어딘가에 담아 오길 바래?”

 “고작 몇 초 가지고 가치가 왔다 갔다 하지는 않아.”

 유리 너머로 회색 구름이 요동치는 동안에도 내부에는 바람소리 하나 새어 들지 않아서, 방대하고 적막한 그 공간에 두 명의 목소리만이 메아리 쳐 울렸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그런 적막은 익숙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 펍 자체가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의 손님을 유치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시스템이 바뀐 이후로는 같은 공간에 두 명 이상 있는 것조차 본 적이 드문 것 같아.”

 서로의 심장을 갈취할 수 있도록 세상이 바뀐 후로는, 타인과 같은 공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드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감정싸움에서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심장을 빼앗기기 일쑤이므로, 그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나요 손님? …어라?”

 바텐더는 방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바 테이블의 끝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너 혹시 방금 전까지 저 구석에 있던 여자 손님 못 봤어? 올라오는 길에 마주쳤다거나.”

 엇, 혹시 나를 말하는 건가?

 헤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딱히 나쁜 감각은 아니구나.

 오지랖을 떨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일단 잠자코 지켜보도록 하자.

 “…….이야기나 하자고 온 게 아니야.”

 낚시꾼은 한사코 대화를 거절했지만, 바텐더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잠시 정리하는 동안 그새 사라지셨네. 와인도 병째로 들고 말이야. 주문은 칵테일로 시키고는 말도 없이 옆에 있던 와인을 따라 마시더니, 돈도 내지 않고 가 버렸어.”

 이거 오랜만에 자유로운 영혼의 손님을 봤다며, 바텐더는 싱글거리며 와인 잔을 닦아냈다. 그렇게 다 닦아낸 잔 중 하나를 집어든 그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는 꺼내온 실린더 뚜껑을 연 다음, 그것을 잔에 반쯤 채워 따랐다. 심장의 곁을 떠나고 나서도 액체는 붉은 기운을 계속해서 머금고 있는 것이 출처만 모른다면 외관은 칵테일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너도 조금은 그런 사람들의 성격을 닮아봐. 정말 반반 섞어놓으면 딱 좋을 텐데. 친구의 거처를 찾아와 놓고는, 입구에서 발을 들인 그대로 가만 서있는 건 너무 융통성 없는 거 아니야?”

 바텐더는 따라 놓은 심주(심장과 함께 발효시킨 술)를 테이블의 건너편에 슬쩍 밀어 옮기며 멀찍이 떨어져 서있는 낚시꾼을 바라보았다.

 “정 없이 멀찍이 떨어져 서 있지 말고, 와서 한 잔 해.”

 그는 웃으며 술을 권했지만, 낚시꾼은 전신을 덮은 로브의 모자를 뒤집어 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핏방울이 수면에 닿아 터지는 소리만이 서너 번 들려올 뿐이었다.

 “스읍-.”

 못난 짓을 하는 아이를 혼내듯이 혀를 찬 바텐더는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없어서 못 먹는 심주야. 한때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가상 캐릭터로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여자의 심장으로 발효시킨 술이지. 2주년 이벤트랍시고 얼굴을 가린 채 캠을 켰다가 가면이 벗겨졌을 때, 그 때 신나게 욕을 얻어먹고는 분리된 심장을, 계속해서 노리고 있던 우리 펍 직속 밀렵꾼들이 잽싸게 빼앗아 왔어.”

 마치 무용담이라도 늘어놓듯이 말하며, 그는 실린더의 입구 부분에 걸려 있던 상품 명찰을 빼내어 중지에 걸고는 의기양양하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여줬다. 15억원이라는 엄청난 단위의 가격이 금색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수치 계열의 최상급품이라고. 마시고 그 자리에서 오르가즘을 느껴버린 심주 마니아도 있었어. 덕분에 의자를 닦느라 고생 좀 했었지. 어때, 이래도 안 마실 거야?”

 바텐더는 가늘게 눈을 닫은 채 미소 짓고 있었다. 그 포커페이스 탓에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어떤 의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일부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라면, 심장이 분리되기 전에 그냥 적출해줄 수도 있어.”

 낚시꾼의 역린을 건드린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프로답지 못한 발언이네. 전문 심장 밀렵꾼이라면, 눈앞에 찢어발기고 싶은 상대가 있더라도 곱게 정서적으로 살해하도록 노력해야지. 떽, 그럼 못 써.”

 살벌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 치고는, 양쪽 다 차분한 말투였다. 아마 의도적으로 감정을 죽이고 있는 것이리라. 일종의 자기방어 태세였다.

 “……”

 “……”

 침묵이 오가는 몇 초간 감정을 추스른 낚시꾼은, 대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던진다.”

 “뭘?”

 “심장.”

 “응?”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기울인 바텐더의 앞에서, 낚시꾼은 뜰채를 아래에서 위로 크게 한 바퀴 휘둘렀다. 그러자, 부웅-. 원심력에 의해 뜰망의 품을 떠난 심장이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바텐더에게 향했다. 표피에 맺혀 흐르던 핏방울들이 수면과 바 테이블 위로 빗발쳤다.

 “야이 씨…!” 행여 터질까 허둥대며 심장을 받아낸 바텐더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낚시꾼을 쏘아보았다.

 뚫어져라 그를 응시하다가, 일렁이던 수면이 잠잠해질 때쯤 바텐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싫으면 이 일을 관두던가. 돈은 벌고 싶은데 어정쩡하게 튕기면 결국 너도 그냥 떼쓰는 어린애인 거야.”

 한층 독해진 어조로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되찾고 싶다며, 네 예전 여자의 심장.”

 하지만 낚시꾼은 바텐더가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이미 그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였다.

 “보수는 계좌로 송금해줘.”

 그 한 마디만을 남겨두고 그는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나 정도 되는 거물이 이렇게까지 호의적으로 도와주는 거, 흔한 일 아니다? 다 내가 옛 정 생각해서 해주는-!”

 낚시꾼의 정수리가 플로어 밑으로 완전히 잠길 때까지

 그는 시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떵떵 소리쳤다.

 오오, 집착한다, 집착.

  

 차츰 그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렇게 속이 빤히 보이는 수로, 걱정하는 척 좀 하지 말라고.”

 돈에 환장한 녀석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하나하나 상대하다가는 어느새 심장을 빼앗기고 말리라. 옛날에는 분명 저런 녀석이 아니었는데, 몇 년 전의 한 사건을 기점으로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진짜 말 그대로 믿을 놈 하나 없네.’

 사람이 사람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사라졌달까, 순수한 관계가 멸종해버린 시점부터, 최근의 사회는 쭉 그런 느낌이었다. 이게 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 빌어먹을 현상 때문이다. 신이 있다면, 아니 이제 와서는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멱살이라도 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그 녀석의 목소리는 멎어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층의 층계참에 첫 발을 내딛으려 한, 그 찰나.

 쿵쿵쿵쿵쿵…! 누군가의 난폭한 발소리가 점점 커지며 들려오더니-

 이윽고 나의 옆을 쏜살같이 지나친 무언가가 몰고 온 바람에, 로브의 후드가 벗겨졌다.

 “~!!!”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이곳으로부터 위층, 즉 펍을 향해 올라가는 층계를 따라 피로 된 발자국이 주르륵 이어져 찍혀 있었다.

 “이건….!”

 나는 서둘러 그것을 쫒아 다시 펍을 향해 올라갔다.

  

 바닥에 채워진 수면이 사정없이 터져 나갔다. 선혈과 물의 파문이 일렬로 이어지더니,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그 보이지 않는 침입자는 바텐더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

 “뭐, 뭐야?!”

 [내놔! 나의 심장이야!! 그녀가 몸을 던지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나의…!]

 아마도 심장을 탈취할 요량이리라.

 바텐더는 서둘러 무전기를 꺼내들었지만 그가 말을 채 마치기 전에 침입자가 그의 허리를 붙잡고 밀어 넘어뜨렸다.

 “야 올라와서 이 자식 막…! 크학!”

 [내놔! 내놓으라고 이 쓰레기 새끼야!]

 형체는 없지만 드문드문 묻어 있는 피로 인해 윤곽이 드러난 침입자. 그는 바텐더를 드러눕힌 다음 그의 위에 올라타 심장을 탈취하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바텐더 또한 심장을 쥔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은 채 발버둥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두 남성의 몸부림에 수면이 정신없이 요동쳤다.

 “흐하-!” 침입자의 뱃전을 발바닥으로 밀어 버티며, 바텐더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는 듯 조소를 내비쳤다.

 “이거, 너 거구나?”

 [쳐 웃지 말고 내놓으라ㄱ…!]

 ”너 거 같지?”

 [뭐…?]

 “하긴 이십 몇 년간 달고 살았으니까. 너 거 같겠지.“

 자신의 발언에 몸싸움이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자, 바텐더는 자신의 말투와 표정을 어느 정도 차분하게 되돌렸다. 그럼에도 들썩이는 흉곽이 그가 흥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있잖아, 물건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기 게 아니야.”

 그는 차오르는 숨조차 억지로 눌러 담은 채로 말했다.

 ”돈이든 상황이든, 타인이 갈취할 수 없는 무언가로 꽈악 묶여 있어야, 비로소 그게 자기의 것이 되는 거지. 그래서 나는 돈이 좋아. 봐, 너의 심장도, 수년을 너랑 붙어있던 너의 신체의 일부조차도, 이제는 나의 것이 되었잖아.”

 [개소리 하지 마!!]

 침입자가 움찔거리자 그는 다리에 더욱 힘을 주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침입자는 답답한 심정을 고스란히 내비치며 그의다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어 보았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신체를 돈을 주고 매입하고는, 그게 너의 것이라고? 그럼 그 사람의 존재는, 그 주변 사람들의 목숨은?!! 소중한 부모님이 낳아주신 누군가의 몸은, 그까짓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뭐라는 거야 씨… 아무리 외쳐봐야 안 들린다고. 얼추 분위기 보고 파악해야 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지 않겠어 형씨?”

 침입자야 소리를 내지르고 있겠지만, 그의 말대로 타인의 시선에서는 음소거 상태의 발악에 불과했다. 피로 어설프게 윤곽이 드러난 입술만이 움직일 뿐인 것이다. 바텐더는 대충 상황을 파악하며 말을 이어갔다.

 “뭐 대충 나한테 화가 난 것 같은데, 그럼 네 여자는? 나와 달랐다고 생각해?”

 [뭐…?!]

 “끝까지 너의 심장을 달라며 육체적 자살을 요구했던 네 여자 말이야. 들었어. 참 간도 크지? 어째 전철 상판에서 그 짓을 할 생각을 했나 몰라.”

 [그녀는, 그녀는 나의 심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잖아! 심장을 빼앗긴다고 죽지 않아. 설령 육체적으로 죽더라도 심장이 박동하고 있는 한 나의 의식은,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녀는 나를 정신적으로 소유하고 싶었던 거야. 진실한 사랑을 원해서 그런…!]

 “흐하하!” 바텐더는 입을 크게 벌리며 짧게 웃더니, “난리 치는 걸 보니까 화를 돋구고 만 모양이네, 미안미안. 보기보다 순수하구나? 너.”

 진심으로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ㄹ…!]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큼 하찮아 보이는 것도 없어. 너도, 자기가 진짜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멍청한 여자도. 하나같이 벌레보다 지능이 낮은 족속들인 거야. 그러니까 대놓고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서 허둥대다가 결국 엄한 사람들한테 심장을 빼앗긴 거지 뭐.”

 그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고개만을 들어, 계단을 올라온 뒤로 가만히 상황을 방관하고 있던 낚시꾼에게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 나의 친우여!”

 그의 목소리가 공간에 메아리 쳤다. 하지만 낚시꾼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다만 바텐더의 위로 올라탄 침입자의 분노 어린 파장만이 공간을 터질 듯이 메우기 시작했다.

 “흐흐흐으-!”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심장의 박동이 더욱 빨라지는 것을 느낀 바텐더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처럼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좋아, 최상급품이 되어가고 있다고!!”

 [닥쳐, 이-]

 오른팔의 형상을 한 굳은 선혈이 한껏 치켜 올라갔다.

 [쓰레기 자식아아!!!]

 “이 X끼 잡아!!”

 긴장을 한껏 머금고 있던 침입자의 팔이, 바텐더의 코에 수직으로 내떨어지기 직전. 바텐더의 외침을 듣고 그의 수하 두 명이 펍에 도착했다. 그들은 낚시꾼을 지나쳐 달려가 침입자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크, 으윽…!]

 분하다는 듯이 덤벼들려는 침입자였지만 커다란 덩치의 두 명에게 붙잡힌 그의 팔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끌어내!”

 침입자가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바텐더는 부하직원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뒤, 긴장이 풀린 듯 수면에 털썩 뒤통수를 내려 두었다. 그러나-.

 [심장이 남아있으면 정신은 소멸하지 못 해. 빼앗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녀와 같이…!]

 침입자는 붙잡힌 손에 꼭 쥐고 있던 소형 수류탄에 악착같이 머리를 가져다 댄 다음, 안전핀을 이빨로 물어 빼내었다. 크기가 작아 눈치 채지 못하였던, 침입자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가져온 최후의 보루. 뇌관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바텐더의 눈이 크게 치뜨였다.

 [다 같이 죽자, 쓰레기들아.]

 침입자의 손에서 떠나간 수류탄이 공중에 떠오르고, 안전핀이 빠진 지 몇 초가 지나 점화의 막바지에 이른 수류탄은-

 돌연 나타난 뜰채에 낚아 채여 그것과 함께 한참 멀리 떨어진 방의 구석으로 내던져졌다.

 [아, 안 ㄷ...!!]

 콰앙!!

 날카로운 굉음을 자아내며 파쇄된 유리벽과 바닥의 잔해가 아득한 도시 밑바닥으로 낙하하여 모습을 감추기까지 불과 몇 초.

 진열되어 있던 심장이 남긴 선혈을 칠칠치 못하게 묻힌 채, 유리 구멍이 매서운 밤바람을 들이마셨다.

  

 .................엇.

 끝난 건가?

 끝난 모양이다.

 준비해둔 팝콘도 다 못 집어먹을 만큼 흥미로운 전개였다. 평점 9.9점! 참고로 0.1점은 내 자존심이다. 여하튼. 무진장 재미있는 전개였다.

 조금 이따 팬미팅이라도 나가볼까?

 배우의 심장이라도 빼앗아 전시해 두면

 그야말로 장관일 테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갈 채비를 하러 돌아갔다.

 .........근데 어디로 돌아가야 되지? 갈피가 안 잡히지만, 뭐 어디로든 가볼까나.

 폼 나는 코트라도 빼어 입고 와야겠다.

  

 딱 내 발끝까지. 그곳의 바닥은 도시 속으로 먹혀 들어갔다. 바닥을 채우고 있던 물이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다량의 피가 섞여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으스스한 바람에 스친 피부는 온 닭살을 곤두세웠다.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차가운 기류의 소음. 그 아래 어딘가에 덮이어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흐흐흣, 흐흣!”

 고양된 감정을 억지로 진정시키려는 웃음. 그 녀석은 두 손으로 심장을 꼬옥 붙들어 안은 채, 마치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든 아이처럼 달콤한 감정에 빠져 있었다. 도시 상공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그의 젖은 백발이 나부꼈다. 손에 들린 심장은 손가락 모양대로 표피가 눌려 들어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왼손의 검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그의 모습 따위가 눈에 들어올 만큼 나의 의식은 냉정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사라진 거야…?”

 “몰라, 그런가보지. …흐흣! -흐으.” 그는 거의 신음에 가까운 웃음을 목 깊숙이 눌러 담고, 부상당한 병사와도 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물음에 답했다. ”일정시간이 다 되면 사라지니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맞춰서, 흐, 온 거겠지.”

 모르는 척 물어본 나였지만, 분명 그의 말대로 침입자는 이 세상에서 이미 사라졌으리라.

 심장은 어느 방향이든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그 주인으로부터 분리되며, 그 후로 심장을 타인에게 빼앗기게 되면 육체는 점점 물리적인 기능을 잃어간다. 처음에는 형체, 다음으로는 소리, 그 다음으로는 질량. 그리고 마지막에는, 세상과 관계하지 못하는 영혼. -즉 존재만이 어딘가에 덩그러니 놓인 채 물리적으로는 완전하게 사라지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심장을 빼앗긴 자의 말로이자, 2년 전에 갑작스럽게 도입된 이 세계의 시스템인 것이다. 이렇다 할 과학적 맥락조차 찾아볼 수 없는, 너무도 명백한 신의 장난이었다.

 “너, 언링크 상태야 지금.”

 언링크(un-link)란 육체로부터 심장이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아직도 누운 채인 친구 녀석의 왼쪽 가슴 부근이 투명해져 있었다. 심장 또한 가시적으로 드러난 채 붉은 이채를 발한다. 나는 그에게 경고 삼아 일러주었지만...

 “가져가려면 가져가. 어차피 너라면, 그러지 못할 걸 알아.”

 그는 동요조차 하지 않고 대답했다.

 ”심장에 손도 못 대서 거추장스러운 뜰채나 들고 다니는 주제에.”

 “......”

 그의 명령에 곁에 있던 두 명의 부하직원이 물러났다. 그들도 그로부터 돈을 받고 있기에 섣불리 심장을 주워 가지 못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분리된 심장의 계열 자체도 그다지 가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희열에 관련한 심장은 밀거래계에서 그다지 높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빼앗아 가봤자 한 달 치 월급보다 덜 나올 것이 뻔하다.

 “너야말로 조금만 더 격양되면 심장이 분리될 것 같은걸. 로브 밖으로 삐져나와서 떨리고 있는 손가락부터 좀 진정시키라고. 그렇게 단순해지면, 심장 빼앗기는 거 금방이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지만, 그의 입장에서 나의 심정을 예상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리라.

 평범하게 사랑하고 있던 둘의 사이를 이간질한 것도

 진실한 사랑이라는 달콤한 신앙에 여성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 것도

 전철 위로 유도해 그녀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도 전부 나의 설계였으며

 남자 쪽의 물리적인 소멸 또한 내가 그의 심장을 뜰채로 건져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으므로. 게다가 심장을 잃은 육체의 발악을 목격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통은 반나절이면 사라지고도 남는 시간이다. 심장을 채어간 지 7시간이 넘도록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나의 뒤를 쫒았다는 것은 적어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으며 동시에-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깊었다는 것을, 빼앗긴 심장에 대한 미련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명백하게 시사해주는 일이었다.

 불쾌한 감정에 잠식되어 있던 나의 의식을 뚫고 친구 녀석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뭐라는지 하나도 안 들리고, 형체는 보이지도 않는데-.” 목소리는 가라앉아 잠겨 있었다. ”뭐라고 외치고 있고, 또 어떻게 행동할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겠더라.”

 나는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간헐적으로 몇 대의 자동차만이 지나치는 밤의 도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렇다니까. 사람이란 게 참 빤해. ….절박하면, 솔직해진다고.”

 로브 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 풍성하게 떠올랐다.

 부풀었던 로브가 다시 가라앉을 동안, 잠시 뜸을 들이다가.

 “너도 마찬가지야 준명아.”

 서로 잊어버리기로 했던, 그 사람으로서의 이름을.

 그는 명확한 발음으로 읊조렸다.

 “……이름.”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

 “이제 사람으로 돌아가라. 살 곳은 없겠지만, 연명할 방법이야 아직 많잖아. 네X버만 들어가도 온라인 근무 구인 공고가 좀 많냐.”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솔직히 보고 있기 힘드니까.”

 그는 즉답했다.

 ”너 한 건 할 때마다 토하고 나자빠지잖아. 그렇게 해서 심장을 되찾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남아있는 그녀의 영혼이 자기 심장 찾아줬다고 좋아할까봐?”

 ‘그게 나의 방식이니까’ 라고 받아치기에는, 그의 말은 너무도 정론에 가까웠다.

 “영혼이 살아있긴 무슨. 단순히 존재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거.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알고서, 모른척하는 거잖아.

 위로 받기 위해서 만들어낸 허상이잖아.

 초월적 존재보다는 자애로운 신을 믿는 것처럼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난 그런 거 역겨워서 못 참아. 솔직히 말할게. 어중간하게 이 업계에 섞여 있을 거라면, 차라리 사라져줬으면 좋겠어. 옛 정으로 도와주는 것도 한계야.”

 “…….”

 결국 나는 한 마디도 받아 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너무 복잡해서, 오히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머리를 밤바람이 식히게 놓아두고서

 다채로운 빛을 점점이 찍어놓은 도시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바람 탓에 떨어지는 물줄기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내 다음 목표는, 네 예전 연인의 심장을 앗아간 여자야.”

  

 “뭐?! 어째서…” 갑작스러운 선언에 내가 고개를 돌리고 묻자-

 “그냥, 돈이 되니까. 빈말이 아냐.”

 그는 포근한 도시의 불빛을 이불 삼아 덮은 채, 눈꺼풀을 내리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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