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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6. 호문쿨루스
작성일 : 20-08-20 00:12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1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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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범은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곡소리가 창밖에서 들렸다. 우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건 사촌지간인 김현오의 죽음 때문은 아니었다. 현호의 형인 현오는 엘릭서 말고는 황금 변성에 조예가 깊었다. 완전 정신 이상자라는 소리다. 납이나 철을 황금으로 바꾸겠다고 난리에 난리를 치다가 결국 죽었다. 콧구멍과 입 구멍이 녹은 납 범벅이 된 채로. 걸이에 걸어둔 끓는 납 그릇이 뒤집어져 그를 덮친 것이다. 넘어지다 허우적댄 것이다. 가족들이 알기엔 그랬다.

 진실은 따로 있었다. 옆으로 누워서 자고 있던 걸 용범이 조져버린 것이다. 그건 어려울 것이 없었다. 밑이 시커멓게 탄 쇠그릇을 옮기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부대찌개를 담아 나오는 그릇과 비슷하지만 훨씬 폭이 깊은 쇳덩이가 좀 무겁겠는가. 양손에 주방 장갑을 끼고도 전해오는 열기 탓에 약간의 화상까지 입고 말았다.

 다행히 현오가 용광로와 가까운 데 누워 있어서 산 것이다. 갔다 부어버렸는데 한 번에 말끔히 끝낼 일은 아니었다. 천천히 쏟아지는 그것이 결국에는 콧구멍에 흘러들고 잇몸을 익히며 목구멍 안으로 쏟아졌다. 엄청나게 요란을 떨어대지만 찍소리도 못하며 현오가 죽었다. 얼마나 괴로워하던지. 목을 잡는 모양새를 보고 얼른 죽게 해달라고 자신의 목을 조르는지 알았었다. 그것을 용범은 경멸 어린 눈으로 죽 지켜보았다.

 경찰에 연락하진 않았다. 당연히 응급차도 없다. 이미 죽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일가의 장례 절차였다. 하루 만에 엄숙하게 끝낸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한다. 용범도 그럴 작정이었다. 황금 변성은 이루지 못했으나 현오는 황금 손에 의해 죽었다.

 그러나 용범은 이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거였다. 진지하지는 않았었다. 사촌을 보낸 것도 우연히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우연히 사촌 집에 들렀다.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죽여 버리고 싶었다. 예전부터 불순물이라 생각했던 인간이었다. 불필요한 요소는 삭제하고 싶었다. 잡동사니를 가지고 있어 봐야 쓰레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건 가족 내에도 통용되는 문제였다.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당연히 증조할머니였다. 96살.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좋은 시절보다는 나쁜 시절이 더 많았을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일본인들에게 나라를 되찾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전이 일어났다. 오랜 독재를 거쳐 다문화 나라를 얻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엿 같은 역사였다. 미래도 불 보듯 뻔했다. 잡동사니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꼴을 안 봐도 되는 것만큼은 증조할머니가 부러웠다.

 역시나 그녀가 좋을 거 같았다. 그럼 할아버지도 편안해질 것이다. 노인은 최선을 다한다. 누가 봐도 효자에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다. 남자로서도 본보기를 다하고 있는 셈이다. 일가의 수장에다 종교의 제사장이 아니었던가. 몇 개 남지 않고 거의 연두색에 가까운 역겨운 이로 씩 웃는 증조할머니. 망치로 때리고 있는 게 뭔지나 아는지 낄낄대며 두더지 잡기 놀이를 해대는 꼴이라니. 선반의 먼지와 같은 존재여.

 그녀는 하루라도 바삐 저세상에 보내줘야 했다.

 용범은 밖으로 나갔다. 로봇처럼 고개를 먼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돌린 후 몸을 돌렸다. 관은 현오의 집에 있었다. 현오는 현승의 조립식 건물에서 같이 살다 분가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집은 크지만 미국의 전원주택처럼 판자때기나 다름없기에 짓는 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황금 변성에 미친 것도 현승에 의한 억압이 풀어져서 나온 것이었다. 현승은 엘릭서에 미쳐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하루 종일 중얼중얼 대며 엘릭서에 관한 이야기만 한다. 상대는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그는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용범은 거룩한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굳이 필요는 없지만 앞머리와 옆머리도 정리했다. 자신은 무척 서글퍼 하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싱글벙글한 얼굴은 손에 손가락이 달려 있는 것과 같고 배에 배꼽이 있는 것과 같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웃고 있었다는 집안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항시 웃었다. 의도하는 건 아니었다. 열심히 노력해도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차갑거나 뚱한 표정이 나올 때도 있다. 슬피 울 때도 있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초인종 위에서 잠깐 손이 머물렀다. 그는 예감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노래하는 듯 들리던 곡소리에 일순 압도될 뻔했다. 들어 주기 힘든 곡조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갔다. 일가의 모두가 모여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휠체어를 탄 요정은 보이지 않았다.

 고모는 고모부의 가슴에 이마를 기댄 채 있었다.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둘이서 춤이라도 추고 있는 줄 알 터였다. 용범은 현우와 눈인사를 하고 작은삼촌 뒤에 섰다. 큰 키에 주변 머리털만 남은 모습으로 형광등 빛을 받고 선 모습을 보자니 인조인간에게 심어 넣는 인공 안구가 떠올랐다. 남반구의 어느 섬도 저렇게 생겼던 기억이 났다. 작은삼촌이 손가락을 안경 밑으로 넣어 젖은 눈가를 훔쳤다.

 작은숙모는 사촌 동생들을 달고 있었다. 삼 형제는 각각 두 살 터울로 맏이가 이제 스물이었다. 집안의 막내면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여동생은 오늘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채 엄마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검은 물방울무늬의 흰 원피스가 어울렸다.

 용범은 그들을 지나쳐 큰삼촌 내외와 인사를 했다. 부부는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숙모보다 여섯 살은 어린 큰숙모. 16살에 현승을 임신한 걸레. 얼마나 많은 좆대가리가 그녀의 자궁을 찾아 외음부를 문질러댔을까. 마술 램프의 지니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정액 세례로 성녀聖人가 되는 걸레.

 용범은 종교의식을 할 때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일가를 둘러보았다. 몹시 보기 좋았다. 엑스교 신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종종 엑스교라는 이름이 싫을 때가 있지만 이런 숭고한 기분에 빠져들 때면 무시 되었다. 단순히 낙인의 모양을 딴 엑스교라는 이름이지만 시간이 덧 입혀지면 고전이 될 것이다.

 용범은 반짝반짝 빛나는 향나무 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현오가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궁금했다. 두 팔을 얌전하게 배에 모으고 있거나 비좁아하며 몸 끝에 붙이고 있을 것이었다. 평온한 얼굴에 머리털을 기분 나쁘게 두르고 있을 터였다. 얼굴은 평소보다 하얗게 보일 것이고 입술 색은…….

 ‘호문쿨루스가 되지 않을래?’

 그는 속으로 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 와서야 든 생각이었다. 그전까진 현오의 중요성에 관해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거 같았다.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호문쿨루스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과정이 뜻깊어질 것 같았다. 그는 그 아름다운 과정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시체를 도막 낸 뒤 완전히 썩게 두고 수주 간 밀봉해 보관한다. 거기엔 주문과 정액이 들어간다. 새로운 날을 상정하는 자정 전 아슬아슬한 시간에 피를 몇 방울 떨어트린다. 그런 뒤에 기다려야 한다. 무작정 기다리면 호문쿨루스가 탄생할 것이었다. 지금도 50대 남자는 고등어처럼 온몸이 토막 나 고무통 속에 섞여 있었다. 김치처럼 익어간다. 하루하루 용범의 깨끗한 혈액을 기다리며.

 연금술에서 전해 내려오는 호문쿨루스 제조 방법은 정액을 증류기에 넣고 40일간 부패시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면 실험관의 미생물처럼 인간 형태의 생명체가 태어난다고 한다. 이건 열대지방의 도마뱀처럼 온도에 민감한 모양이었다. 40주간 말의 체내와 같은 온도에서 돌봐줘야 한다니. 빠트리면 안 되는 것은 날마다 인간의 신선한 피를 먹여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호문쿨루스가 100% 완성되는 것이다. 참으로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호문쿨루스가 몇 기가 되었는가? 용범의 물음에 대답 가능한 이가 있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돌팔이 정신과 의사가 콧노래를 부를 것이었다.

 용범은 자신 있었다. 자신의 비법은 할아버지에게 들은 것이었다. 그가 이 방법을 확신하는 이유는 증조할머니에게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분명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요정은 증조할머니일 수가 없었다. 확인할 방법은 한 가지. 그녀를 죽이는 것이다.

 마침내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끌며 나타났다. 마치 생명을 거래하는 악마처럼 천천히.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현관으로 향했다. 근처에 있던 해연이 묵례를 하며 현관문을 닫고 왔다. 혼자 부엌에서 울고 있던 현호가 용범 쪽으로 갔다.

 용범은 입을 다문 채 윗니를 혀로 쓸었다. 커다란 이빨들을 쓰다듬으며 증조할머니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혀로 어금니를 쑤시면서 그녀를 어떻게 죽일까 고민했다. 눈으로 보기엔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파티의 주인공을 발견한 듯한 모습의 가족들을.

 “형…….”

 현호의 손이 용범의 어깨에 힘없이 올라갔다가 미끄러졌다.

 “괜찮아?”

 용범이 물었다. 솔직히 말해 어깨에 손이 닿았을 때 어깨로 쳐낼 뻔했다. 내가 죽였는데 기분이 어때? 라며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뭔가가 울대 밑에서 간질거렸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을 텐데도 눈치도 없는 병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는 눈웃음을 한껏 지어 보였다. 큰머리가 자아내는 경이가 거기에 몽땅 담겨 있었다. 그의 머리통 정도면 해안에 있는 암초와 헷갈려도 모자람이 없었다.

 “현오 형한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자살일까?”

 용범이 고개를 저으며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사고일 거야. 현오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아. 너도 녀석을 알잖아? 현오처럼 씩씩한 아이가 또 있을까? 어렸을 때 기억나? 무릎이 깨진 현오는…….”

 “아, 웃었어. 아, 진짜 사이코인 줄 알았다니까. 현오 형은 울지 않았어. 아, 진짜 현오 형이 어렸을 땐 사이콘 줄 알았다니까!”

 현호가 눈물을 흘리며 발작적으로 웃어댔다. 그 모습에 용범은 진심으로 현호가 죽이고 싶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흉내 내는 듯한 모습이 정말이지 경멸스러웠다. 이런 성격이었던 것이다. 낙인 수집에 같이 데리고 가 달라는 둥 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순전히 인생이 재미 찾아 삼만 리인 무 쓸모 한 인간.

 역시나 이런 소름 끼치는 짓거리까지 잘도 해내는 것이다. 집구석에 가서는 플레이스테이션 아니면 온라인 게임 그것도 아니면 스마트폰 게임을 밤새 두드려 댈 것이다. 간혹 거울을 보면서 눈물 연습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까지 들었다. 오늘, 내일엔 반드시 그 짓을 할 거 같았다.

 용범은 왼쪽 어금니를 괴롭히면서 할아버지를 맞이하는 가족들과 함께했다. 조부의 말에 따라 모두가 관 주위에 모여 묵념을 했다. 증조할머니는 담요에 쌓인 다리 위에 손을 포갠 채 웃고 있었다. 용범과 고모도 같은 표정이었다. 고모의 눈 밑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기기묘묘하기도 했다.

 ‘저렇게 울 바에야 두 눈을 빼버리고 말지.’

 용범이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발치를 보다 순간 호문쿨루스 군단을 생각했다. 이들 모두가 호문쿨루스라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조금 더 나은 인간도 있었다. 일단 고모와 여동생이 그랬다. 그럼에도 호문쿨루스가 되는 방편이 그들에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이라면 영원 불사의 몸을 줄 수 있었다. 그들이 그리도 원하던 것을 말이다. 엘릭서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 그들 모두가 선택받은 존재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신의 노예로서 영생하는 일이야말로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황홀함이다.

 그는 잇몸이 두툼하게 찬 잇새를 혀로 후비면서 눈을 감았다. 벌써부터 지루했다.

 

 3:17.

 용범은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우유 반 잔을 마시면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어제 새벽 2시에 집에 왔지만 그로부터 여전히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고루한 소리를 해야 하는 것과 슬퍼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는 방금 마신 거 반 정도 더 우유를 따르고 단숨에 들이켜며 욕실 쪽으로 가자미눈을 했다.

 하마터면 어젠 피 주는 걸 깜빡 잊을 뻔했었다. 몰래 빠져나오기가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호가 따라붙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겠다고 따라 나온 거겠지만 왜 가는 데까지 동행하려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심리가 화가 났다. 11살짜리 여자아이도 하지 않는 짓을 해대는 것이다.

 그는 싱크대로 컵을 가져갔다. 무심코 던졌다가 하마터면 유리컵을 깨트릴 뻔했다. 현호만 생각하면 기분이 잡쳤다. 자신의 일에 끼어들려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 예전부터 문제로 여겼던 게 틀림없었다. 말이 말이지 외출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누가 막는 것도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가 있어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성가신 녀석이다.

 용범은 욕실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손등으로 문을 툭 밀었다. 문이 벽에 붙은 문콕 방지용 실리콘에 맞닿았다. 그는 깔개에서 서서 가만히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고무통은 입구 반대쪽 구석에 있었다. 그는 세면대로 다가갔다. 수챗구멍에 껴 있는 새카만 머리칼이 보였다. 당연히 자신의 것이었다. 그는 세면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가발을 쓰면 고모처럼 보이지 않을까 했다. 고모부에게 장난을 걸어 볼까 싶었다. 진심으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진짜로 이어지진 않는 게 당연했다. 그는 수염이 푸릇푸릇 난 턱을 쓰다듬었다. 보일러를 켜고 오려다가 고무통으로 진로를 바꿨다. 뚜껑을 열기 전부터 나는 악취는 어쩔 수 없었다.

 뚜껑을 열자 진정 악취의 산실이었다. 잘 겹쳐 놓은 비닐 꼭지도 뚜껑만 닫아 놓으면 봉오리를 열었다. 묶으면 그만이었다. 그 생각을 왜 이제야 했는지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내 말 들려? 아직인 거야?”

 그가 연이어 말했다.

 “아, 며칠밖에 안 지났나.”

 그는 뚜껑을 닫았다. 손도 비누로 씻었다. 그런 다음 보일러를 켜러 갔다. 뜨뜻한 온수에 면도를 하고 세안도 하기 위해서.

 

 용범은 창가에 붙어 서서 커피를 마셨다. 외부에서 온 불청객들이 어떻게 눈치를 채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두 명의 불청객은 적대감이라고는 없는 그의 얼굴을 보고 멍청한 미소를 보였다. 키가 좀 더 큰 다른 한 명은 표정이 없었다. 남의 동네에 왔으면서 기본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복화술을 하듯 말했다.

 “오래 살기 싫냐? 얼뜨기 같은 게.”

 스마트폰이 울렸다. 받지 말까 했지만 저들의 정체를 말해줄 거라 믿고 그는 가서 받았다. 작은삼촌이었다.

 “삼촌, 밖에 누군가요? 혹시 아세요?”

 “복지과에서 왔단다. 됐다고 해도 자꾸 진리를 찾네.”

 “아…….”

 “저번에도 한 번 찾아오더니 또 왔어. 다음에는 경찰 데리고 올 거 같은데 거머리 같은 것들이.”

 “그러진 않을 거예요. 단 자극은 하지 마세요.”

 “자극은 무슨. 가서 줘 패버리고 싶다만 그럴 필요까지 있겠냐. 엄연히 알아서 가정교육 잘 시킬 텐데 말이야 쯥. 나도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고 우리 형님도 그랬어. 초등학교도 못 나온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 다 자식새끼 낳고 잘 먹고 잘살고 안 있냐?”

 “그럼요. 학교가 중요한 건 아니죠.”

 삼촌들은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그들은 빈번히 학력을 줄이는데 이유는 없었다. 열이 받으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 대는 것이다. 유리한 쪽으로 유도를 하려는 건 좋으나 용범이 외지인이 아닌 이상에야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조카인 용범도 처음에는 여러 번 속아서 고모에게 여러 번 물어봐야 했을 지경이었다.

 “학교 선생보단 우리 집안 어른들이 훨씬 똑똑하잖아요?”

 용범이 딴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럼! 아무리 어리다지만 진리도 엑스교도 아니냐? 잡탕 물이 들게 놔둘 수 없어. 저렇게 예쁜 애가 몇 년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냐? 교복 치마 줄여 입고 담배도 물고 술도 물고 남의 자식 좆도…….”

 작은삼촌이 헛기침을 했다.

 용범은 말을 아꼈다. 이해한다는 듯 무슨 말인가 해야 했지만 기가 차서 말았다.

 “진리는 귀여운 아이예요.”

 “그럼! 그럼.”

 “그것뿐인 거죠, 삼촌?”

 “바쁜가 보구나. 그래, 끊으마. 일 봐라.”

 “쉬세요, 삼촌.”

 전화가 끊기자마자 용범은 조소를 날렸다. 진리를 교육해야 한다면 응당 자신이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같은 여자인 해연이 하거나. 고모도 좋을 거 같지만 붙박이처럼 달라붙는 고모부와의 관계 탓에 문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커플을 보면 교육에 지장이 있을 듯했다. 솔직히 말해 금실 좋은 부부란 것도 표면적인 문제였다. 그들도 정상이 아니긴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였다.

 진리는 발달장애자 같은 녀석들과는 다르게 커야 했다.

 

 오래간만에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다. 한산한 이 차선 도로는 이제 질렸다. 그래서 용범은 도시로 가서 마음 가는 대로 차를 몰았다. 점심은 가쓰오 우동으로 했다. 목재로 된 깔끔한 일본식 건물이었다. 식후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였다.

 길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낙인을 찾는 시도는 재밌기도 하지만 피곤하기도 했다. 100명의 사람을 다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죄인을 못 보고 지나쳤다는 생각은 강박을 부른다. 타투나 점, 여러 상황으로 착오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낙인 찾기는 여러모로 피곤한 취미다. 하지만 도보를 하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느린 만큼 마음에도 여유가 있는 데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시비가 걸릴 수도 있는 게 단점이었다. 아마 현호 같은 녀석이 죄인 찾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 얼굴에 멍이 마를 날이 없을 것이었다.

 용범은 거대한 머리의 소유자인 만큼 맷집도 상당했다. 하지만 목이 굵되 짧진 않았다. 몸통도 앞뒤로 두꺼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깨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평균치. 이는 컸다. 눈은 부리부리한 축에 속했다. 그는 흔한 태권도 발차기 한번 해 본 일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싸움에서 진다는 생각은 태어나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었다.

 물론 싸울 일은 없었다. 그는 어딜 가든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싸울 요소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눈웃음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눈웃음은 문화재로 지정받아야 마땅했다. 동물적인 감각에 한해선 위험 순간에 발휘될 요지였다. 여자들도 위험에 처하면 하이힐을 휘두르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현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가 생각이 들 뿐이었다.

 승합차가 회전 교차로를 돌았다. 그는 이대로 뱅뱅이를 돌고 싶었다. 언제라도. 무한히. 멈추고 싶지 않았다. 차가 알아서 멈춰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순간 그는 맥이 풀릴 뻔했다. 번드르르했던 입가의 미소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현호였다. 현호가 웬 여자와 함께 도보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천천히 따라가려고 해도 뒤에 오는 차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먼저 앞질러 가서 길가로 차를 댔다. 차를 세운 뒤에야 영화관 건물을 확인했는데 그쪽으로 가진 않았다. 그들의 목적지는 적어도 그의 차가 지키고 있는 사선 밖에 있었다. 그는 등과 머리를 좌석에 딱 붙인 채 룸미러를 노려보고 있었다. 룸미러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더 선명하게 피사체가 들어왔다. 오늘따라 유리가 새것처럼 빛을 냈다. 막 세제를 뿌린 다음 마른 헝겊으로 빠득빠득 닦아낸 듯이.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네 주제에 여자가 제법 예쁘잖아?”

 정말 그랬다. 여자는 현호 또래로 보였다. 운동복 차림의 현호와는 달리 옷도 잘 입고 있었다. 명품백도 어울리는 거로 하고 있었다. 키로 보자면 평균 키인 현호와 비슷했다. 왜 저런 녀석과 사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순히 아는 사이로 볼 수 없는 것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때문이었다. 거의 같은 폭의 걸음걸이를 보건대 엄청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꿈을 꾸는 것만 같네. 네가?”

 용범의 눈은 여자보다 오히려 사촌에게 가서 박혔다.

 “죽여 버리고 싶단 말이 절로 나오네. 와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

 순간 그는 만약 현승이나 현우가 저 여자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에 잠겼다. 무심코 룸미러의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는 흠칫했다. 꽤 수심 깊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을 봤다. 8월의 샘물처럼 끊임없이 일렁이는 눈빛을. 잠시 죽은 현오를 떠올려 보았다. 오히려 그 재간둥이가 저 여자와 어울릴 것 같았다. 죽은 자에 대한 온정은 아니었다. 아니, 더 이상 평가받을 수 없는 인간이기에 고평가를 해버린 것이다. 저 여자를 따먹고 싶어졌다.

 차에서 내린 용범은 느슨하게 뒤를 밟았다. 들키면 인사를 해버리고 말 일이다. 커플은 지나치는 건물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할 뿐 멈추지는 않았다. 뚜렷한 계획이 없는 듯했다. 마침내 그들이 한 건물로 들어갔다. 5층 건물의 1층에 오락실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고 사이키 조명의 10분의 3쯤 되는 화려한 빛 알갱이가 움직이고 있었다.

 용범은 어떡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왔던 길로 돌아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현호보다는 여자 생각을. 여자보다는 증조할머니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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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달콤한 일상 2020 / 8 / 30 245 0 8118   
24 24. 왕 2020 / 8 / 29 259 0 7748   
23 23. 황혼 2020 / 8 / 29 240 0 7659   
22 22. 가정 방문 2020 / 8 / 28 235 0 6186   
21 21. 가족회의 2020 / 8 / 28 248 0 8543   
20 20. 3인조 2020 / 8 / 27 245 0 6428   
19 19. X교 2020 / 8 / 27 245 0 7727   
18 18. 가족 2020 / 8 / 26 251 0 7125   
17 17. 친구 2020 / 8 / 26 244 0 5975   
16 16. 즐거운 방문 2020 / 8 / 25 247 0 7477   
15 15. 살인 2020 / 8 / 25 241 0 8804   
14 14. 기분 나쁜 눈웃음 2020 / 8 / 24 244 0 10989   
13 13. 과거 2020 / 8 / 24 234 0 4806   
12 12. 만남 2020 / 8 / 23 244 0 6403   
11 11. 눈 2020 / 8 / 23 236 0 11430   
10 10. 여자 2020 / 8 / 22 238 0 13119   
9 9. 족쇄 2020 / 8 / 22 242 0 8803   
8 8. 감미로움 2020 / 8 / 21 252 0 7336   
7 7. 살인범 2020 / 8 / 21 241 0 6946   
6 6. 호문쿨루스 2020 / 8 / 20 240 0 10261   
5 5. 3인방 2020 / 8 / 20 240 0 10430   
4 4. 수집 2020 / 8 / 19 239 0 11997   
3 3. 거식증 2020 / 8 / 19 236 0 7050   
2 2. 가문 2020 / 8 / 18 232 0 7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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