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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5. 3인방
작성일 : 20-08-20 00:11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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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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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상가 3번 출구랬지?’

 부식은 3이라는 숫자를 다시금 확인했다. 하지만 1시 반이 지나도 곽용문은 나타나지 않았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좀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혼이 났었다. 느린 버스를 타고 있을 재간이 없어서 택시를 탔다. 태어나 그렇게 다리를 많이 떨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았다. 그러나 지하상가가 막상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2시가 되도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으니 처음으로 돌아갔다. 마치 인생 일대의 결전을 위해 무사시를 기다리는 코지로처럼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순간 다른 기척보다 수상한 기운을 뿜는 것이 있어 작심하고 쳐다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상대방도 똑같이 그랬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상대가 수줍게 웃어 보였다. 좋은 뜻은 아닌 듯했다. 본 의도야 어떻든 부식의 눈에는 그랬다. 20대 초중반처럼 보이는 깨끗한 피부에 영양기가 넘치는 검은 머리. 90년대 아이돌을 연상케 하는 지저분한 앞머리. 그래도 윗머리를 벼락 맞은 것처럼 괴롭히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가.

 눈은 일단 선했다. 바람막이 재킷에 두 손을 꽂고 있었다. 쪼리를 신은 다리는 길었다. 자신과 엇비슷한 키 같았지만 상대 쪽이 큰 건 눈대중만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잘생긴 얼굴이다. 얼굴 근육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넘쳤다. 웃음이 번진 저 얼굴이 만약 여자였다면 보통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라고 인식했을 터였다.

 “기다리는 사람 있나 보죠?”

 박나리가 말했다.

 “박나리라고 합니다. 사람을 좋아해서 아무 데나 집적대는 편이죠.”

 부식은 눈을 피했다. 그러자 나리는 재킷에 손을 넣은 그대로 날갯짓을 하듯 팔을 털었다.

 “혹시 죄 지은 거 있어요?”

 부식의 눈매가 살짝 비틀렸다. 죄의식 같은 것이 돋아나서가 아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상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나리는 부식의 위아래를 슬쩍 훔쳐보았다. 입이 ‘◠’ 자 모양이 되었다. 눈썹을 띄우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눈꺼풀이 반짝거리는 거 같았다. 그는 마치 장난을 치듯 얼굴을 다른 데 돌리는 척하다가 눈만 자꾸 움직여 살아 있는 좀비를 훔쳐보았다.

 “이야, 이거 장난이 아닌데.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어요?”

 나리가 즐겁게 말했다. 이러면 좀 친근하게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저쪽에선 기분이 별로인 것처럼 보였다. 알고 보면 원래부터 그랬다. 다락방처럼 어두워 보이지 않은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순 있는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어지러운 거미줄에 숨겨진 알전구 역할이나 해볼까 했다. 그는 날갯짓만 하며 눈썹과 입술을 움직였다. 어린 여자애들이 잘생겼다고 수군거리며 지나가기에 눈인사를 건넸다. 좋아한다. 그는 큭큭 웃을 뻔했다.

 부식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2시 18분. 약속 시간에서 48분이나 지났다. 간밤의 전화가 장난이었으면 좋으련만 그 목소리는 거짓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런 식의 장난 전화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사람이군요? 경제적으로도 힘든 거 같고.”

 부식은 그제야 나리를 쳐다보았다.

 나리가 잘생긴 눈웃음을 지었다. 입을 벌리자 눈부시게 하얀 치아가 부식의 눈에 들어왔다. 어긋남 없는 건강한 치열. 혀는 체리를 먹은 듯 빨갈 것이었다. 입술이 그러는 것처럼. 나리는 혈색이 좋고 영양 관리가 잘 된 사람이었다.

 “누굴 기다리는 모양인데 핸드폰으로 뭘 하질 않잖아요? 핸드폰은 기본적인 기능 이상은 하지 않는 거 같네요. 인터넷, 뭐, 노래 정도는 들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 말하며 나리가 자신의 흰 손목을 가리켰다.

 “시계가 없어요. 저야 귀찮아서 안 하는 거지만 아저씨의 경우는 다르죠. 안 그런가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창피하게 탐정 흉내를 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니까.”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 귀찮게 하지 마세요.”

 “이야 말하는 거 보니까 되게 신기하네. 아저씨 혹시 명함 있어요?”

 부식은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까 핸드폰에 뭐 이상한 거 있던데……?”

 나리가 말했다.

 부식은 무심결에 핸드폰을 꺼냈다. 한순간이었다. 핸드폰을 낚아챈 나리가 자기 스마트폰에 전화를 넣었다. 원하는 걸 획득한 그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뺏은 것을 돌려주었다.

 “무슨 짓을……?”

 부식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들었다.

 나리는 실실 웃으면서 턱만 젖혀 올렸다. 입꼬리를 크게 찢으며 기다렸지만 아무 일 없자 큭 웃었다. 낯선 물체에 살금살금 다가가는 고양이처럼 상대의 얇은 복부를 툭툭 찔렀다. 그리고 엉덩이부터 뒤로 길게 빼며 물러났다.

 “최부식이?”

 백화점 건물 방향으로 이어지는 쪽에서 곽용문과 이민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찬물을 맞은 듯 현실감을 확 느낀 부식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들의 한 해 후배인 문윤재는 보이지 않았다. 185의 장신에 항상 성냥을 물고 다니는 그는 어딜 가든 보안관으로 통했다. 저 둘과는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 특히 160인 이민수와 있으면 개그 콤비가 따로 없었다. 홀쭉이와 뚱뚱이. 민수까지 붙여 놓으면 짝짝이 불알과 홀쭉한 좆 기둥처럼 보일 터였다. 일단은 대물 분류에 들어간다.

 민수는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몸은 상당히 다부져서 마치 동으로 된 장식물을 보는 듯했다. 말수는 별로 없는 반면에 주먹은 대단히 외향적이었다. 얼마나 수다쟁이냐면 분노조절 장애를 의심케 할 만큼 폭력적이었다. 때리는 데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눈을 감은 채 해가 뜬 하늘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멋있겠답시고 하는 행동으로 오해했다.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민수의 수면 장애에 관해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날을 샐 때가 부지기수였고 5일 동안 통합 8시간만 잔적도 있었다. 그런 요인으로 10대 소녀처럼 예민한 주먹의 소유자가 된 게 아닐까 하는 게 부식의 생각이었다.

 “성형이라도 했냐? 영화배우가 다 됐네.”

 민수가 말했다.

 용문이 땅이 꺼져라 웃었다. 그는 갈색 우편 봉투 접은 걸 들고 있었다. 무겁진 않은 모양인지 간편하게.

 부식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몸에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허전했다. 심지어 그는 심장마저 없는 남자였다. 영서가 죽을 때 그는 뭘 했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거리를 좁혀 오는 두 사람에게 압도되어 거의 숨도 쉴 수 없었다. 만약 총이 주머니 속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살인자가 되는 길을 택했을 터였다. 그저 뻑뻑한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만 주면 되었다.

 용문이 어깨로 부식을 살짝 쳤다.

 “자리 좀 옮기지?”

 “어디로요?”

 부식이 말했다.

 “어디로래!”

 용문이 크게 웃었다. 민수는 파충류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부식이 먼저 자리를 떴다. 그 뒤를 이 인방이 뒤따랐다.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시장 근처인데도 순대국밥집은 한산한 편이었다. 테이블은 열두 개 정도 있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으면 유동 인구와 카운터까지 감시할 수 있었다.

 “아까 짬뽕 먹었어.”

 민수가 말했다.

 “그래?”

 용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까의 우편 봉투는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상태였다.

 부식은 스테인리스로 된 물 잔을 매만졌다. 둥근 외곽선이 문득 위험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실수로라도 눈에 가져가면……. 그는 고개를 숙였다. 기다란 열 개의 손가락들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살 껍데기밖에 없는데 자유자재로 움직여 주는 것도 실감이 안 났다. 그는 인피 아래에 있을 얇은 근육층과 신경 조직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하냐?”

 용문이 말했다.

 부식은 손을 뒤져보던 동작을 멈췄다.

 “예.”

 “SNS, 웹페이지, 통신사, 주둥아리.”

 민수가 말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먼저 SNS와 웹페이지를 활용했지. 너 SNS 같은 거 다 탈퇴했더라? 하지만 친구들이 좀 있더구만. 검색을 하고 하고 또 했지. 네가 중고 카페에서 뭐 판 것도 나오더라고. 그 전화번호는 웬 아줌마가 쓰고 있기에 또 검색을 했지. 네 주소는 대리점을 통해서 찾아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말을 끝낸 용문이 수저를 핥고는 트림을 꺼억 했다. 죽은 빛깔의 입술에서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앞니에는 양념 때와 고춧가루가 그득했다.

 “도망 다니느라 수고했다.”

 민수가 말했다.

 “도망 다닌 적 없어요. 이사를 했을 뿐이지.”

 “다섯 번이나?”

 “왜 그래 민수야. 살기 좆같으면 이사를 갈 수도 있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제대로 도망 다니겠다고 거식증 걸린 안젤리나 졸리 행세를 하고 다니겠냐?”

 “진짜 거식증에 걸렸습니다.”

 수저를 입으로 가져가던 용문이 빵 터졌다. 꼴도 보기 싫은 짧은 목을 가슴에 파묻은 채 죽어라 웃어댔다. 민수는 코를 문지르면서 앞에 앉은 부식을 쳐다보았다. 부식은 어금니를 물었다. 티 나지 않게 하려 했다. 그러나 붙어 있는 살이 없어 어금니 쪽 복근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짝.

 따귀를 친 민수가 제자리에 앉았다. 부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러냐, 민수야. 사람들 보잖냐. 아 진짜 쪽팔려서 밥도 못 먹겠다. 우리가 어디 연예인이냐? 이 자식 이거 스타 기질이 있어 가지고서니.”

 하지만 주둥이에 쌀알만 잘 밀어 넣는 용문이었다.

 본론은 용문의 뚝배기가 거의 비워졌을 때 시작되었다. 민수는 깍지 낀 손을 턱 밑에 댄 채 자세를 잡는 친구를 힐긋 보았다. 국물이 쫄은 그의 뚝배기에는 건더기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씹다 만 깍두기가 생일 케이크의 체리 노릇을 하면서.

 “우리가 너를 모시러 온 이유는 말이야 다 이유가 있어서야. 무슨 이유인고 하니 쓱 빡 쓱 빡. 다 알면서 또 모른 척한다. 에 그러니까 우리 좀 도와달라는 거야. 우린 뭐 거의 피를 나눈 형제 같은 거 아니었냐? 큰 거 하나 가지고 있잖냐. 에 그러니까 이런 거.”

 용문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 이건 아니구나.”

 그가 웃었다. 잇몸 가까이 많이도 포진해 있는 고춧가루는 폭격과 하늘에서 보는 불기둥을 상징하는 듯했다. 부식은 그 더러운 것을 거의 헤롱 대는 기분으로 보았다.

 “윤재 기억나? 그 씨발놈이 너를 얼마나 괴롭혔냐. 또 네…… 그래 여기서 이게 나와야지.”

 용문이 다시 짧고 굳은 새끼손가락을 꺼냈다. 밤빵 같은 곳에 붙어 있는 손가락. 아기 손의 비율.

 “네 이거를 얼마나 괴롭혔어. 너 다 알면서 모른 척했잖아. 그 새끼가 네 애인을 얼마나 따먹고 다녔냐고. 에 그러니까 내가 다 열 받는다 이거야.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닌데 우린 전적으로 네 편이야. 네 편이라서 하는 얘긴 아니고 윤재를 보내는데 너만 한 놈이 없더라. 이쪽에선 한 다리 건너 모르는 놈이 없어서 금방 들통이 난다고. 넌 산기슭 오두막에서 정글도를 갈고 사는 연쇄살인마처럼 혼자잖아? 도와줘라. 솔직히 네가 이 지경이 된 데 윤재 그 새끼만큼 공헌한 놈이 없을걸? 틀린 말은 아니잖아? 네가 폐인이 된 게 우리 때문이냐? 애인이 자살해서지. 애인은 왜 자살했느냐…… 에 그러니까 평소에 많이 따이고 다녔기 때문이지. 누구한테? 문윤재 한테서.”

 부식은 고개를 떨궜다.

 “최부식.”

 민수가 불렀다.

 “예.”

 “부식아? 응? 우리 부식이 가게 하나 해야지. 사장님 소리도 듣고 그래 봐야지?”

 용문이 말했다.

 “저 가게 같은 거 관심 없어요.”

 “나 에, 무에타이 체육관 접은 뒤엔 그쪽엔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 그런데 이종격투기 체육관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거든? 네가 총매니저 해라. 한 달에 들어오는 돈에 20퍼센트는 네가 가져. 체육관 하나만 하는 거 아니다. 대구, 구미 쪽에 먼저 5개 열고 경남 쪽에서 서너 개 열거야. 코너 맥그리거 알지? 아이, UFC는 알 거 아냐? 나도 아는 형님들이랑 아름아름해서 그런 거 크게 만들려고 해. 너 거기 홍보 이사해라. 우린 한배를 탄 거야. 우린 평생 가는 사이야. 부식아? 에 그러니까 사업이 잘되면 연예 기획사도 차릴 생각이고…….”

 부식이 앞니를 달그락거렸다.

 “……저는 아니었어요.”

 “뭐?”

 민수가 한쪽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방관할 수밖에 없었잖아요. 개입할 수 없었어요.”

 “방관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이씨 야? 야?”

 용문이 웃어댔다. 웃음에 트림이 섞여 나왔다. 더러운 테이블을 치우던 아줌마가 힐긋 쳐다봤다가 하는 일을 계속했다. 부식의 시선을 느낀 용문은 뒤를 돌아보다가 일하는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웃어 보이자 아줌마가 얼른 몸을 돌렸다. 50대쯤으로 보이는 알바 아줌마한테까지 추태를 부리는 건 아니었다.

 민수가 일어나 부식이 만지작거리는 물컵을 뺏었다.

 “집중해.”

 민수가 말했다.

 새카만 눈썹 아래의 두 눈이 약을 한 사람처럼 빛을 냈다. 농부처럼 까무잡잡한 얼굴. 갈매기가 날아가는 듯한 주름살. 벽도 부술 거 같은 어깨. 부식이 보기에 그는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는 트로피 같았다.

 “왜 저예요? 전 지금도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다고요. 신경안정제도 드디어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경안정제만 끊은 게 아닌 거 같구만 뭘. 에 그러니까 건강이 최고란 말씀.”

 용문이 낄낄거렸다. 어깨로 툭 쳤지만 민수는 호응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네 범죄를 덮었다.”

 민수가 말했다.

 “네?”

 “그랬지. 이 망할 놈. 은혜를 원수로 갚을 생각을 다 하다니!”

 용문도 동참했다. 마치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아직도 비디오를 가지고 있어. 네가 죽였단 증거는 우리한테 아직도 있다. 우리가 증인인 건 아직도 유효한 문제고, 너의 유일한…….”

 민수가 말을 아꼈다.

 “친구라고 해, 친구. 나이가 무슨 문제야.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우리 정도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지 뭐.”

 “친구다. 배신하지 마라. 이번 일만 끝나면 너도 자유고 우리도 자유다. 윤재가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어.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는 것도 모자라 우리완 연을 끊고 혼자서 사업을 하겠단다. 여자 장사. 그 녀석 술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부식은 침을 삼켰다. 멀대 같이 큰 윤재의 실루엣이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항시 성냥개비를 물고 다니면서 시장 바닥을 누비는 거리의 보안관. 주짓수를 10년 동안 배웠지만 관절은커녕 손가락도 꺾지 않는 타고난 주먹쟁이. 그는 주짓수를 배드민턴이나 핑퐁 정도로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주짓수의 효능을 설파하고 다녔다. 동시에 주짓수 체육관을 돌면서 관장과 코치를 맨주먹으로 때려눕히고 다녔다. 어렸을 적부터 줄곧 해온 도장깨기였다. 그걸 30대 중반까지 했다. 나올 때는 항상 용문에게서 배운 무에타이식 인사다. 나름의 유머겠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던 어느 체육관 관장에겐 체육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명분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는 평소에도 위아래가 없는 듯 살았다. 하지만 술에 취했을 때에 비하면 요조숙녀나 다름없는 평상시의 모습이다. 일단 술에 취했다 하면 아무나 잡고 시비부터 건다. 피떡이 될 때까지 죽어라 밟아대는 모습은 경찰마저 얼어붙게 만든다. 그의 이름이 나올 때면 지구대의 늙다리들이 한숨만 쉬어댄다. 당연히 싸움 현장에 오기 전에 미리 사이렌을 켠다. 제발이지 부탁이니 뿔뿔이 흩어져 달라고.

 그런 윤재지만 형들에겐 깍듯했다. 한 살 위인 민수와 용문과는 소년원에서 만난 사이였다. 처음에는 위계질서를 잡는다고 동생인 윤재를 들들 볶은 듯하다. 그러나 싸움 실력 면에선 둘이 동시에 덤비지 않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체격 때문이 아니었다. 싸울 때의 윤재의 기세는 일본 도깨비 야차가 따로 없었다.

 그들은 호형호제하면서 잘 지냈다. 서로 의지했다. 힘이 들 때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셋 중 현장에 없는 아무개였다. 그랬던 인간들인데 틀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갈색 늑대들 사이에 점박이 늑대가 끼어 있었던 건지 윤재를 없애 달라는 중이었다. 뼈만 앙상한 부식의 형편없는 몰골을 보고도 말이다. 여러모로 잔인무도한 협박이었다. 이건 협박이었다.

 “죄송한데 제가 가면 모든 걸 망쳐요. 오히려 제가 당할걸요? 다치는 게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엄연히 현실적인 이야기예요. 저는 개죽음을 당할 거예요. 형들도 봉변을 당할 테고.”

 “뭐?”

 민수가 목소리를 깔았다.

 “우리 셋이 덤벼도 못 이겨요.”

 부식은 셋이라고 말을 한 자체가 괴로웠다.

 “미친 소리 하지 마. 나 전직 무에타이 관장이라고. 기럭지가 짧다고 무시하기야? 민수는 말이야 몸이 돌덩어리야. 오히려 나보다 쌈 잘한다고. 에 그러니까 네가 있든 없든 우리가 이길 수밖에.”

 용문이 말했다.

 민수는 이런 대화가 못마땅한지 눈이 부신 듯이 있었다. 그가 바라는 건 하나였다. 저 치가 죽든 말든 상관은 없고, 윤재에게 칼침만 성공적으로 놓으면 되었다. 저 치가 아무리 쓸모없는 인간이라도 입 하나는 기가 막히게 무거웠다. 비밀 엄수만큼은 저치만큼 잘 지키는 인간을 보지 못했다. 입마개 계의 스위스 은행이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위에 올라타서 멱살을 잡고 흔드는 윤재의 고함을 버틸 것이었다. 물론 그 정도 되었을 땐 윤재의 옆구리나 어디 한 곳에서 피가 번져야 함은 당연하다. 기습 공격이라면 어린애라도 위협적이다. 할 수 있다. 그가 봤을 땐 저치의 눈은 죽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 생기가 눈에 집중포화가 되어 있었다.

 보인다. 숨겨져 있는 살기가 느껴졌다. 만약 용문이 저런 눈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편한 상대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달밤에 한적한 어딘가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온다면 한기가 내리듯 으슬으슬하게 떨 수밖에.

 “해. 그리고 우린 영영 안녕이다. 돈을 주마. 아직 정확한 가격은 말을 못 해. 3천 정도는 줄 수 있단 것만 알아. 그보단 많을 거다.”

 민수가 부식만 보면서 말했다. 그는 부식의 동향을 살폈다. 부식의 눈이 자신의 어깨 너머에 있다면 다른 뭔가의 관심이 끼어들고 있는 것일 테다. 하지만 아무런 조처가 없는 걸 보니 안전한 상황이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저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겠지. 처먹는 게 없으니까. 에 그러니까 아직도 남은 돈이 있다 이 말씀인 거 같단 말이야. 그 돈 그거 누구한테서 나왔는지 나는 알지. 6천 7백인가 그랬지? 너 우리 알지? 우린 한 푼도 안 바랐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완전 천사 아니야?”

 용문이 말했다.

 부식은 순간 속을 뻔했다. 말싸움을 한 게 아닌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저들은 저 돈의 내역을 나중에 알았을 것이다. 얼마나 치졸한 인간들인가. 그 돈은 고아인 연인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돌아가야 옳단 말인가?

 내 돈이?

 영서의 목소리에 순간 부식은 흠칫했다. 귓가에 쏟아지는 입김이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발생한 감각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네가 하는 거다.”

 민수가 말했다.

 “저는 안 되겠어요. 저는…….”

 “네가 해. 우린 네가 어디 사는지 알아.”

 “부식아 인상 좀 펴라. 네가 하게 되어 있는 일이야. 너도 알잖아? 에 그러니까 좋게좋게 끝내자고. 우리의 비밀이 좀 비밀이냐? 비밀이 진짜 비밀이 되려면 문제를 없애야지, 안 그러냐? 에 그러니까 네가 하라는 거지. 알겠지?”

 용문이 타이르듯 말했다.

 “예.”

 “잘했어.”

 민수가 말했다.

 “부식아 이거 받아라. 이거 받고 네가 나르든 말든 상관없어. 우린 널 믿거든. 우리끼리 얘긴데 누가 사랑하는 사람 세 명을 꼽으라면 그중에 네가 들어가. 서른여덟 먹을 때까지 멋진 놈을 많이 만났는데 넌 거기서 네 번째야! 동생 중에선 두 번째지. 첫 번짼 배꼽 밑에 달린 내 주니어고 두 번째가 바로 너야.”

 부식은 용문이 엉덩이 밑에서 꺼내 주는 갈색 우편 봉투를 받았다. 이제야 사용처가 나왔다. 벽돌 모양으로 볼록한 걸 보니 돈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이 인조와 헤어지고 나서야 갈색 우편 봉투를 열어 보는 부식이었다. 우편 봉투에는 천 원짜리 다발이 들어 있었다. 세보나 마나 십만 원이 넘지 않을 것이다. 웃으라는 건지 농락하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추운 얼굴로 우편 봉투를 둘둘 말았다. 똥냄새가 나는 거 같았다.

 집까지는 겨우 두어 블록 정도일 뿐인데 사람들의 이목을 엄청나게 끌었다. 나뭇가지 같은 것이 걸어 다니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살인을 생각하게 되다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을 해버렸다. 그만큼 답답해서였다. 아줌마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단순히 그의 몰골을 두고 훈수를 두는 거였다. 늘 있는 일이었다. 몸은 가도 눈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는 치들.

 그는 즐비한 건물들을 보았다. 서로 다른 간판을 단 낡은 건물들 사이로 신축 건물이 뻗정다리로 서 있었다. 어울리지 않은 새가 여기에도 있었다. 윤재는 과연 VIP가 된 걸 예상이나 할까. 부식의 생각에 술이니 발설이니 하는 건 명분에 불과해 보였다. 이유는 다른 데 있을 터였다. 돈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아니었다.

 윤재에게 붙어 이 인조를 부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봐야 동점 골을 넣은 거밖에 되지 않으니 문제였다. 일단 살인을 하지 않아서 좋지만 윤재의 종노릇을 해야 할 것이다. 언제가 또 누군가를 죽이라는 의뢰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한 번 맞본 피 맛을 그들은 이렇게 잘 활용한다. 그저 주위에 흔한 쓰레기에 불과한 종자들인데도 말이다.

 다음 날에 용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거실 전화가 울릴 때면 늘 아버지 생각인 걸 보면 일종의 각인 효과다. 부식은 전화를 끊고 몇 초 기다렸다가 욕을 쏟아부었다. 전날부터 배고픔을 몰랐다. 평소의 감각보다 훨씬 생명 유지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죽긴 싫어서 미지근한 물 정도는 마셨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가 가기만을 기다리면서.

 빠를수록 좋으니 이번 주말에 거사를 진행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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