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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보라색
작가 : Riley
작품등록일 : 2020.8.1

이 소설은 저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여러 '처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건 역시 '첫 소설'인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운명'인데요, 아마 이 후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운명'에 대해 쓰지 않을까 싶어요.
[이,보라색]은 '운명'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를 궁금해하며
써 내려갔던 저의 첫 중편소설입니다.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읽어주실 분들께도 미리 인사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12.1
작성일 : 20-08-19 22:13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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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국정감사, 검찰수사 등으로 신문사 건물의 전광판은 뜨거웠고, 광장에는 매일 새로운 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엄청난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찾아왔다. 이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나뭇잎 하나 남지 않았는데, 역설적이게도 꽃의 이름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나의 일상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새로 시작된 프로젝트들로 업무가 바빠졌다. 태영은 내 업무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나를 불러냈다. 이상우와는 주로 가게 마감시간에 맞춰 짧게 만났다.

 “보라씨, 저랑 뭐 하고 싶어요? 가고 싶은 곳이나, 해 보고 싶은 일이요.”

 “지금은 떠오르는 게 없는데…, 생각해 볼게요.”

 “매일 늦게 끝나서 미안해요. 제대로 데이트도 못 하고. 저랑 평범한 연애하고 싶다고 했는데 남들 하는 만큼도 못 하네요.”

 “이렇게 손잡고 밤 산책하면서 집까지 데려다주시는 것도 좋아요.”

 “주말에 같이 시간 보내기 힘드니까 아쉽지 않아요?”

 “음, 그건 좀 아쉽긴 한데, 일 때문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싱긋 웃어보였지만 무언가 말을 하다만 느낌이었다. 내가 이상우의 색을 볼 수 있다면, 이럴 때 색을 관찰하고 기분이 어떤지 예측하고 예상한 기분에 맞는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내 연애는 항상 상대방의 감정에 무게중심이 있었다. 나의 감정은 바람을 빼거나 접어서 숨겼다. 연인관계에서만은 아니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적인 모임에서도 그래왔다. 난 언제나 기분을 잘 맞춰줄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런 칭찬에 취한적도 있었다. 스스로 정한 역할에 한 번씩 크게 지쳤는데, 그럴 때면 연인에게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갑작스러워 했고, 이해받지 못 했다. 어쩌면 일반적인 관계에서 벗어난 좀 더 친밀한 사이에서 숨기는 게 있다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 색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연인이 된다면 이 모든 문제가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참 빨리도 연인의 감정을 엿볼 수 없는 상황에 불안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여전히 내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었다. 갑자기 발걸음이 멈췄다. 조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보니 익숙한 골목이었다.

 “벌써 도착했네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좀 더 멀리 살 걸 그랬나 봐요.”

 이번엔 조금 더 환하게 웃으며, 잡은 손을 좀 더 꽉 쥐었다.

 “하고 싶은 일 생각해 보고 말 해줘요. 나도 그럴게요. 잘 자요.”

 “네, 그럴게요. 선생님도 잘 자요.”

 “언제까지 선생님이라고 할 거예요?”

 “이것도 빨리 고칠게요.”

 보라색 대문을 지나 계단 다섯 개를 오르고, 초록색 현관문을 열려다 잠시 멈췄다. 담장너머를 바라보니 느린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 이상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잘 가요.’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너, 민주씨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남태영’ 세 글자가 금기어가 됐어.”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일단 저 여자분. 회색 블라우스에 남색 정장바지, 보이지?”

 “오, 너랑 굉장히 비슷한 색이야. 저 사람이 조금 더 어두운 붉은 색이네. 벽돌로 된 굴뚝같은 느낌? 형태도 좀 각지고 길쭉하거든. 지금 움직임은 경쾌해. 약간 흥분되고 긴장한 것 같아 보이는데, 부정적이진 않고 대체로 긍정적이야. 색이 비슷하니까 기본적인 성향도 너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사람인데?”

 “몰라서 물어? 이기적이고 못 됐지. 빨리 나가자. 네 동료들이 나 여기 취직한 줄 알겠어.”

 “그래, 가자. 집으로 갈 거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줄게.”

 “너도 퇴근하는 거야?”

 “응, 새로 오신 VIP도 문제없으니까 퇴근해도 되겠어.”

 태영이 유니폼을 갈아입는 동안 우산공원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7시가 다 되어 어둑어둑한데도 광장 쪽은 어수선했다. 보통 평일에 이 시간까지 집회가 이어지지 않는데, 최근엔 아니었다. 따로 뉴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광장을 보면 이 나라의 가장 큰 이슈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일도 없어 오늘은 또 무슨 사건이 있는지 기사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었고, 모두가 크게 분노했다. 공원에서 나를 스치는 사람들 모두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한다. 얼마 전 남부지방에 큰 피해를 준 태풍이 생각났다. 자연재해를 일으키지 않는 다른 형태의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자.”

 어느 새 태영이 내 곁에 서있다. 오늘도 태영은 머리 위에 붉은 립스틱을 얹었는데 요즘 그 립스틱은 많이 뭉뚝해져서 곧 새 것을 사야할 것만 같다.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진짜 립스틱이 필요한 거라면 하나 사주고 싶었다.

 “요즘 일이 힘들어? 아님 집에 무슨 일 있어?”

 “왜? 내 립스틱이 뭉개져 보이기라도 해?”

 “아니. 그냥 좀 기운 없어 보여서.”

 “그거야 다 이보라 너….”

 태영의 답을 들으려는데 전화가 왔다. 이상우였다. 태영에게 미안하다 손짓하고 전화를 받았다.

 -일 끝났죠?

 -네, 버스 타러 가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릴래요? 데리러 갈게요.

 -내일 만나기로 했잖아요?

 -오늘도 보고 싶어서요. 보라씨 회사 근처에서 저녁 같이 먹어요.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너의 이상해씨냐? 이쪽으로 온대?”

 “응. 너희 집 어디야? 오늘은 내가 데려다 줄게.”

 “됐다. 갈게.”

 태영은 짧은 인사를 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무래도 뭉툭한 립스틱이 마음에 걸린다. 언젠가 호텔 로비에서 태영을 두고 수군대던 말들도 떠올랐다.

 “야, 남태영.”

 내가 부르자 뒤돌아봤다. 내 목소리가 잘 들릴 만큼 태영에게 다가갔다.

 “너, 이기적이고 못 됐어. 근데, 멋지기도 해. 지금 네가 하는 일 좋아하고 진심을 다하잖아.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신경 쓰지 마. 네 립스틱 가을에 바르면 딱 좋을 것 같은 색인데, 지금 너무 닳아서 쓸 수가 없게 생겼잖아.”

 태영은 소리 내지 않고 활짝 웃었다.

 “그럼 하나 사주던가.”

 이 말을 하고 뒤돌아 걸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태영의 뒷모습을 조금 지켜보다 사무실로 향했다. 정문 유리문 손잡이를 잡고 밀다 멈췄다. 옆 건물 1층에 있는 드러그 스토어에 들어갔다. 직원이 다가와 반기며 찾는 게 있냐고 물었다. 립밤을 사려고 한다 했더니 벌꿀이 들어간 제품을 추천해줬다. 립스틱 형태의 무색 립밤을 하나 골랐다. 계산대로 가려다 옆쪽에 진열되어 있는 향이 거의 나지 않는 핸드크림도 집었다.

 “보라씨랑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저녁을 먹는데 이상우가 말했다. 입에 음식이 있어 대답은 못 하고 눈으로 뭐냐고 물었다.

 “오늘 뉴스 봤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화도 안 나는 거 있죠? 그러고 있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연다더라고요. 우리 같이 가요.”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의미 있는 일이다. 나도 기사로 집회 소식을 접하고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선뜻 좋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망설이자 이상우가 말을 이었다.

 “주말에 약속 있어요?”

 “아니오, 저는 시간 괜찮은데, 선, 아니, 상우씨는요? 토요일에 시간 나요?”

 “좀 일찍 끝내보려고요. 갈 수 있겠어요?”

 “네. 그래요.”

 처음 같이 하자고 하는 일이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불안한 표정이 드러날까 고개를 약간 숙이고 음식을 입 속에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상우는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방을 챙겨 내리려는데 열린 틈으로 립밤과 핸드크림이 보였다. 핸드크림을 꺼내 이상우에게 건넸다.

 “이거, 아까 선…, 상우씨 기다리면서 샀어요.”

 “와, 고마워요. 열심히 바를게요. 내일 봐요. 내일은 보라씨 하고 싶은 일 해요. 뭐할까요?”

 “초 사러 갈까요? 토요일에 촛불집회 가려면 사야하지 않을까요?”

 이상우는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오른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엉뚱한 사람이랑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있나요? 초는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 잘 자요.”

 

 

 황주임과 다음 주에 제출할 제안서를 준비하느라 조금 늦은 퇴근을 맞았다. 남은 부분은 월요일에 차부장과 함께 수정해서 완성하기로 하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와 정문으로 나왔다.

 “요즘 진짜 어수선하네요.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걸 이제 알았어요.”

 “이게 보통 일은 아니지. 벌써 7시 다 됐다. 금요일인데 우리도 얼른 가자.”

 “버스정류장으로 가실 거죠?”

 “아니,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

 “데이트? 이쪽으로 오신대요?”

 “상우씨는 내일 만나기로 했어. 그것도 여기서.”

 “내일 광화문이면 촛불집회 가세요?”

 “응,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그럼 지금은…남태영씨?”

 선뜻 대답하지 못 하고 있는데 황주임이 말을 이었다.

 “이제 괜찮아요. 벌써 한참 지났잖아요.”

 디저트 뷔페에 다녀온 후 몇 주가 흘렀고 황주임은 예전처럼 생기 넘치는 오렌지다. 그래도 태영의 이름을 꺼내는 건 꺼려졌다. 태영과 만나기로 한 곳이 세종문화회관 앞이라 황주임과는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졌다. 주말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려는데 황주임이 나를 붙잡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과장님, 남태영씨한테 아직 아무 얘기 못 들었어요?”

 “무슨 얘기?”

 “음. 아무리 말하기 좋아하는 저라도 이 얘긴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주말 잘 보내세요. 집회 잘 다녀오시고요.”

 “그래, 민주씨도 주말 잘 보내.”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건지 궁금했지만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서둘러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태영은 유니폼을 입은 채 이순신동상이 잘 보이는 높이의 계단에 앉아 있었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 태영 옆에 앉았다.

 “아직 퇴근 아니구나?”

 “응, 오늘은 밤에 끝나. 금요일인데 퇴근이 늦네? 요즘 바빠?”

 “바빠지고 있어. 다음 주는 더 늦게 끝날지도 몰라. 관찰 대상은?”

 “저기, 동상 앞에. 조금 어두운데 보이려나?”

 “보여, Ms.굴뚝. 포토그래퍼야? 오늘도 별 다를 게 없어. 기분 좋게 흥분한 상태인 것 같아.”

 “사진기자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외신기자야. 여기저기서 점점 많이 오고 있어.”

 “너도 바빠지겠네. 너희 호텔보다 시청 앞 P호텔이 낫다고 슬쩍 얘기해.”

 “나대신 얘기 좀 해줘라.”

 “내일 촛불집회도 촬영하려나? 나도 내일 참여하기로 했어.”

 “사람 많은데 힘들어 하잖아?”

 “상우씨가 가자고 해서. 대신 너무 오래 있지는 않으려고.”

 “싫으면 싫다고 얘기를 하지, 너도 참. 내가 가자고 했어 봐. 바로 거절했을 거야.”

 “응. 그건 맞아. 근데,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말? 없는데?”

 “그럼 말고. 민주씨가 무슨 얘기 들은 거 없냐고 하던데. 너 대체 민주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정중하게 대했으니까 걱정 말아라.”

 “네가? 참 그랬겠다. 그럼 난 이만 간다. 고생해.”

 “조심히 가. 난 여기 좀 있다가 굴뚝님 모시고 들어가야 해. 내일도 조심하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가방 속에 있는 립밤이 생각났다.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다시 움직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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