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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이,보라색
작가 : Riley
작품등록일 : 2020.8.1

이 소설은 저에게 많은 '처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여러 '처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건 역시 '첫 소설'인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운명'인데요, 아마 이 후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운명'에 대해 쓰지 않을까 싶어요.
[이,보라색]은 '운명'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를 궁금해하며
써 내려갔던 저의 첫 중편소설입니다.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읽어주실 분들께도 미리 인사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11
작성일 : 20-08-18 19:48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7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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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것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가져온다. 어딘가 존재할거라는 믿음으로 평생을 찾던, 색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의 연애가 내가 태어난 날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다가, 한 순간에 갖가지 근심들이 줄을 섰다. 침대에 누워, 싱글거리다 미간에 주름을 만들다를 반복하다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월요일까지 쉬는 날이니까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침대와 한 몸이 될 작정이었다. 하지만 봄의 전화가 나를 일으켰다.

 -언니, 지금 몇 신데 아직 자? 몇 시에 올 거야?

 -응? 내가 너희 집에 가기로 했었나?

 -그건 아닌데, 언니 와야 할 텐데. 두고 간 거 있잖아.

 -내가? 뭘?

 -지갑.

 벌떡 일어나 대충 준비하고 봄의 집으로 향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에서의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창밖을 바라보기엔 충분했다. 덥지 않아도 창문을 열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열어 놓은 버스 창으로 흘러 들어온다. 봄과 준수는 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살갑게 내 끼니를 챙겼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생각 없다고 하곤 거실에 앉았다.

 “차 마실래? 언니가 만든 케이크도 남아있어.”

 “아니야, 물이나 한 잔 줘.”

 물을 들고 오는 봄의 색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경쾌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통통거린다. 물 잔을 건네받아 한 모금 마시는 내 앞에 앉더니 자신의 색만큼이나 리듬감 있게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본다.

 “뭔데?”

 “언니, 나한테 할 얘기 없어?”

 “내가 아니라 네가 할 말 있어 보이는데. 그냥 해. 뜸들이지 말고.”

 “그 선생님이랑 어떻게 됐어? 궁금해 죽겠단 말이야.”

 “어떻게 되다니? 뭘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일단 지갑이나 줘. 또 놓고 갈라.”

 멀찌감치 떨어져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준수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지갑을 내밀었다. 그러곤 슬그머니 봄의 옆에 앉았다. 둘은 서로에게 눈짓을 했고, 봄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금요일 오후에 파이를 사러 갔어. 계산을 하면서 언니 얘기를 했지. 그랬더니 에그타르트도 하나 주시더라고. 그 다음은 언니도 알지? 언니 생일 얘기를 했더니 많이 놀라는 눈치였어. 순간 나도 실수했나 싶었어. 얼른 파이를 담아서 가게를 나섰지. 그런데 그 분이 따라 나와서 나한테 부탁을 하는 거야.”

 “너한테 무슨 부탁을 해?”

 “내일 언니를 만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달라고.”

 금요일 밤부터 어제 밤까지의 모든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조금 부자연스러웠던 일들의 답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지갑을 준수씨가 가지고 있던 거야?”

 “내가 시켰어. 언니가 뭘 흘리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니까.”

 조용히 있던 준수는 고개를 푹 숙여 사과했다. 나는 사과할 일은 아니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언니 차례야. 그래서 어제 어떻게 됐어?”

 “어쩌다 내 연애 문제에 이봄이 끼어 든거지?”

 “빨리 얘기나 해.”

 “어제 저녁에 만나서 같이 저녁 먹고, 직접 만든 케이크 선물 받고, 만나보기로 했어.”

 봄과 준수는 마주보더니 서로 껴안았다. 그러곤 박수까지 쳤다.

 “근데 언니는 왜 이렇게 무덤덤해? 안 좋아?”

 “그런가? 아직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연애가 너무 오랜만이기도 하고.”

 첫 수업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한 달간 이상우와 나 사이에 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싶어 하는 봄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봄에게 우산을 빌릴까 잠깐 고민했다. 마침 마을버스가 왔다. 그냥 버스에 올라탔다. 항상 앉는 자리에 앉아 오른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넣으려고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 넣기 전에 괜히 지갑을 한 번 열어보았다. 티켓이 보인다. 어제 일을 보고해야 할 또 다른 대상이 떠올랐다. 태영에게 해야 하는 연락을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미루고 또 미뤘다. 오후 세 시에는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쉬어야 했다. 오후 네 시 반에는 태영이 막 퇴근한 시간이라 배려해야 했다. 오후 다섯 반에는 일요일 저녁이니까 가족들이랑 식사를 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오후 일곱 시가 다 되어서야 더 이상 가져다 댈 핑계가 없어졌다. 메시지를 보냈다.

 -퇴근했어? 저녁은 먹었고? 통화 가능해?

 답장이 오지 않고 전화가 울렸다.

 -일찍도 연락한다. 어제 그렇게 가버리고는.

 -미안해. 진짜 미안해. 퇴근했지? 저녁은 먹었어?

 -응. 지금 집이야. 저녁도 대충 먹었고.

 -피곤하겠다. 남들 쉴 때 못 쉬는 직업이라 힘들겠네.

 -너의 이상해씨도 마찬가지잖아.

 -아, 그러네. 하하.

 -어색하게 웃지 말고 그냥 할 말 해.

 -어제 급하게 선생님한테 가야 해서, 제대로 설명도 못 했어. 미안해.

 -그건 말 안 해도 알고. 그 다음은?

 -선생님 만나서 잘 얘기했어.

 -전부 다 얘기해. 숨기지 말고.

 -만나 보기로 했어. 잘 됐지?

 -그것도 대충 예상하긴 했다. 나도 어제 이상해씨 만났거든.

 -뭐?

 -이보라 네가 내 선물 거부한 거니까, 이상해씨 색은 말 안 해줄 거야. 그리고 뷔페 나랑 가기로 한 거니까 내일 시간 맞춰서 나와라. 그럼 내일 보자.

 태영은 한 여름 소나기처럼 한 바탕 쏟아 붓고 그쳤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비처럼 쏟아진 말들을 털어낼 시간이 필요했다. 이상우에 대해서도 디저트 뷔페 얘기도 다시 해야 한다. 옆에 내려놓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부재 중 통화가 있었다. 이상우였다. 이상우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태영과의 연락을 또 한 번 미뤘다.

 

 오후 네 시, 우산공원 벤치에서 대기 중이다. 분명 쉬는 월요일인데 출근한 것 같다. 혼잣말로라도 투덜거려야 할 만큼 불만이 가득했지만, 확실히 아쉬운 쪽은 나였다. 잘못한 것도 있고, 잘 보여야 하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만 해도 광화문광장에서 개천절 행사가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마무리 되었는지 휴일답게 고요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와 하늘을 바라봤다. 잔뜩 흐리다. 제발 비만 오지 않았으면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비가 내려도 태영이 우산을 씌워줄 것 같았다. 한참 기다린 것 같은데 태영이 오지 않아 휴대전화 전원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12분. 언제 오냐고 메시지를 보내려다 대신 사진첩을 열었다. 지난번에 여기서 태영을 찍은 게 가장 최신 사진이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태영 머리 위로 비를 내리게 했다. 우산조형물에는 손잡이 부분에 손을 그려 넣었다. 이 사진은 저장해두고, 다르게 그리기 시작했다. 태영의 왼손을 길게 늘려 우산조형물 손잡이 부분을 잡게 하고, 우산 안에 나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게 했다. 이 사진도 저장해두고 먼저 저장한 사진을 다시 열었다. 이게 더 ‘나’였다. 나는 누군가의 우산 속에 있기보다, 누군가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가족관계에서도, 친구사이에서도, 선후배관계에서도, 연인사이에서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로 저장한 사진을 다시 열고 삭제할까 했다.

 “이거 나야?”

 언제 왔는지 내 등 뒤에서 태영이 말했다. 얼른 사진을 닫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만들어 태영을 보다 금세 눈에 주었던 힘을 뺐다.

 “관찰 대상은?”

 “오늘은 없어. 내일은 있을 거야.”

 “그럼 정말 디저트뷔페 가자고 부른 거야?”

 “응. 오늘 같이 가기로 했잖아.”

 “태영아, 남태영. 나 좀 봐줘라. 내일 선생님이랑 둘이 갈게.”

 “싫어. 나도 거기 가보고 싶었단 말이야.”

 “오늘 내가 저녁 사줄게. 응?”

 “빨리 일어나. 들어가게.”

 “그럼 내일 셋이 가자. 대신 넌 우리 아는 척 하지 말고 혼자 먹어.”

 “너 사람이 그럴 수 있냐? 그럴 거면 동생이라도 데려와. 넷이 가. 네 명까지 입장 가능하니까.”

 “아! 민주씨! 민주씨까지 넷이 가면 되겠다!”

 “여기서 황민주씨가 왜 나와?”

 “민주씨가 디저트뷔페 간다니까 엄청 부러워하더라고. 내일 넷이 같이 가자. 대신 둘이 알아서 먹어. 우리 방해하지 말고. 알았지?”

 끝까지 툴툴대는 태영을 어르고 달래서 길 건너에 있는 건물 지하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먹는 동안에도 고집을 피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 예상과 달리 태영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이제 곧 도착하신대요? 완전 궁금해요. 오늘 남태영씨 만나는 것보다 과장님의 그 분 보는 게 더 신나네요.”

 오늘은 더 통통거리는 오렌지인 황주임이다. 우리는 무리 없이 시간 맞춰 퇴근하고 우산공원에서 이상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영은 휴무이지만 VIP 투숙객 때문에 오후에 잠시 출근해서 호텔에 있다. 여섯시 반에 로비에서 모여 디저트 뷔페가 열리는 2층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내 옆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황주임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지갑에서 티켓을 꺼냈다. 입장할 때 꺼내기 쉽게 가방 안주머니에 옮길 참이었다. 잠시 티켓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티켓 한 장으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어젯저녁 태영과 헤어진 후 G에 갔다. 변경된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있는 그대로 말했다. 이상우는 실망한 눈빛을 보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밝게 웃어보였다. 마감시간까지 조금 기다렸다 우리 집까지 걸어갔다.

 -공식적인 첫 데이트인데 아쉽긴 하네요.

 -진짜 진짜 죄송해요. 민주씨가 태영이한테 관심 있다고 자리 마련해달라고 해서, 그것도 해결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미안해요.

 이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상우의 오른팔을 잡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이상우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얼른 팔을 잡은 손을 내려놓았다.

 -왜 잡았다 놓는 건데요?

 이렇게 말하며 내 왼손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잡았다. 섭씨 20°의 초가을 밤을 그렇게 걸었다.

 “과장님, 저기 오시는 분인가요? 귀엽게 생기셨다. 그래도 남태영씨가 더 제 취향이긴 해요.”

 황주임을 팔꿈치로 슬쩍 치고, 얼른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안 늦었죠? 안녕하세요, 이상우라고 합니다.”

 나한테 한 번 웃어보이고는 황주임에게 인사했다. 인사가 길어지려는 황주임을 제지하고, F호텔로 향했다. 정문을 지나 로비에 들어서니 사복차림의 태영이 서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태영에게 소리 없이 인사했고, 태영은 황주임과 이상우에게 소리 내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민주씨. 또 뵙네요, 이상우씨. 일단 이동할까요? 이 쪽으로 오세요.”

 내 옆에 있던 황주임은 승강기에서 내리면서 자연스레 태영 가까이로 이동했다. 나는 이상우와 함께 태영과 황주임의 뒤를 따랐다. 입구에 서 있는 직원에게 티켓을 꺼내 보여주고,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우리 넷 모두 자리하자 직원이 다가와 디저트 뷔페 이용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올해의 디저트 뷔페는 ‘프티 가또’를 주제로 기획되어, 총 30가지의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식당 안쪽으로 이동하면 중앙에 케이크들이 진열되어 있는 원형 테이블이 있고 각 케이크들마다 이름이 적혀 있으니, 테이블 위에 있는 케이크 리스트에 체크해서 주문하라고 했다. 케이크와 함께 1인당 차 한 잔이 제공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주문서에 목록이 있어 함께 주문하면 됐다. 황주임이 제일 먼저 일어나 태영을 이끌고 케이크가 진열된 곳으로 움직였다. 나와 이상우도 뒤를 따랐다. 앞서 가던 황주임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얀색의 커다란 삼단 케이크 스탠드를 갖가지 색의 크고 작은 케이크들이 채웠다. 제일 아래층이 보통의 테이블 높이였고, 제일 위층이 149㎝인 봄의 키만 했다. 아래층과 중간층에는 케이크들이 가득 채웠고, 맨 위층은 다양한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하얀색 꽃과 초록 잎사귀를 배경 삼아 노랑, 주황, 파랑, 보라색 꽃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리시안셔스, 파란색 델피늄, 주황색 다알리아, 노란색 퐁퐁국화도 보였다. 중간과 아래층에는 낱개의 작은 케이크들이 하나 혹은 두세 개씩 짝을 이뤄 파스텔 접시에, 원형, 삼각, 사각, 하트 홀케이크들은 나무재질의 케이크 스탠드 위에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손에 들고 있는 주문서를 팽개치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황주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휴대전화를 들고 뛰듯이 걸어 돌아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나도 위치를 바꿔가며 홀린 듯 이 크고 아름다운 삼단 케이크를 카메라에 담았다.

 “저 대신 예쁘게 찍어서 공유해주세요. 전 아무래도 색감이 떨어져서 사진을 잘 못 찍어요.”

 “네, 열심히 해 볼게요.”

 이상우의 말에 조금 더 사진을 찍고 있는데, 황주임이 다가왔다.

 “남태영씨 어디 갔어요? 좀 전까지 옆에 있었는데.”

 황주임의 말에 주위를 살폈다. 케이크가 진열된 여기에는 없다. 자리에 돌아가 있나 싶어 봤더니 입구 쪽에서 직원과 이야기 중이었다.

 “동료랑 이야기 중인가 봐. 입구 쪽에 있네.”

 “과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요? 난 안 보이던데.”

 하마터면 태영이 립스틱 같아서 그렇다고 말 할 뻔 했다. 말을 삼키고 대신 한 번 웃어보였다. 우리 셋이 자리로 돌아올 때에 맞춰 태영도 자리에 앉았다.

 “하나같이 다 예쁘고 맛있어 보여서 못 고르겠어요. 과장님은 정하셨어요?”

 “일단 세 개 골랐어. 이름을 외울 수가 없어서 체크해 왔지.”

 “저는 쉽게 먹어볼 수 없는 케이크로 세 개 골랐어요.”

 별 반응이 없는 태영을 동시에 쳐다봤다. 시선이 쏠리자 태영은 급하게 주문서를 보더니 자기 앞에 있는 나에게 내밀었다.

 “난 겹치지 않는 걸로 주문해줘.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참을 고민해 주문한 케이크들이 하얀색 접시에 담겨 나왔다. 음료까지 모두 받고는 또 한바탕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는 테이블에 나란히 줄을 선 12가지 케이크들을 모두 조금씩 나눠 맛보기로 했다.

 “과장님, 오늘 진짜 좋아요. 게다가 여기 딱 전문가님도 계셔서 설명 들으면서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아요.”

 더 이상 통통거리지 못 하게 한 마디 하려는데 이상우가 테이블 아래로 내 손을 잡아 말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슬쩍 눈짓을 하고는 케이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민주씨가 고른 ‘오페라’는 1955년 파리에서 처음 만들어진 케이크인데, 발레 동작 앙트르샤를 보며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나는 이상우를 조심스레 흐뭇해했고, 다양한 추임새를 넣어가며 오늘을 완벽하게 즐기는 황주임을 살짝 동경했고, 유난히 말이 없는 태영을 조금 걱정했다. 몇 가지 더 먹어보겠다는 황주임을 말리고, 일어섰다. 화장실에 들를 사람은 들르고 1층 로비에서 모여 인사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케이크가 묻었는지 손이 끈적끈적했다. 손도 씻고, 화장도 수정해야 했다. 이상우에게 로비에서 보자고 하고는 황주임과 화장실로 향했다. 황주임은 태영에게 작전 실행하러 간다며 먼저 서둘러 갔고, 나는 얼굴이며 옷매무새를 꼼꼼히 점검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태영이 보였다. 나를 보더니 대뜸 손목을 잡고 계단을 통해 호텔 뒤쪽으로 데려갔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또 누굴 관찰해야해?”

 “응.”

 “어디 있는데? 빨리 하자. 민주씨랑 선생님이 기다리잖아.”

 “여기 있잖아. 오늘의 관찰 대상은 ‘나’야. 나 지금 어때?”

 “무슨 소리야?”

 “얘기해 봐. 지금 내 색은 어때?”

 “이젠 별 걸 다 하래. 남태영의 붉은 색은 가끔 노을 같기도 하고, 벽난로가 생각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오늘도 넌 립스틱 같아. 오늘은 좀 유난히 길고 뾰족하면서 움직임도 적어서, 고민이 있거나 좀 우울한 것처럼 느껴져. 오늘 호텔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오늘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난 왜 기분이 별롤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봐. 네가 제일 잘 알겠지.”

 “그렇겠지? 둔보라한테 내가 뭘 바라냐. 이보라, 무슨 생각으로 황민주씨 데려왔는지는 알겠는데, 오늘까지다.”

 “민주씨 때문에 불편했어? 민주씨 마음에 안 들어?”

 “네가 벌인 일이지만 내가 수습할 테니까, 여기까지만 해. 이제 가자.”

 태영을 따라 로비로 가서 다시 넷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이상우에게 태영의 일을 도와주는 게 있어서, 그 일 때문에 잠시 얘기 나눴다고 둘러댔다. 이상우는 태영을 한 번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고는 황주임과 태영에게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왼팔로 내 등을 둘렀다. 나는 왼쪽으로 몸을 살짝 틀어 뒤의 둘에게 손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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