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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네메시스
작가 : 쥐며느리
작품등록일 : 2020.6.29

수많은 별들 사이에 펼쳐진 무한한 공허는 언제나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우둔한 우리는 그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어리석음은 오히려 인류에겐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아니 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태초의 존재들이 우주의 밑바닥에 깔린 혼돈을 유영하고 다니는 광경은 미개한 종족에겐 한편의 지옥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몰라야만 했다. 무지한 것이 더 안전한 셈이었다. 허나 인간들은 날이 갈수록 지식을 갈구했고, 호기심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덮은 어두운 장막을 나날이 거둬내고 있다. 이로써 인류는 자멸의 길로 한발짝 더 다가섰다.

 
2. 계시
작성일 : 20-08-18 15:20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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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철은 좀처럼 강의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 뭔가 가르치곤 있지만, 정작 자신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4.37광년의 거리의 이 항성은... 하...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만 하자. 과제는 이번 달 안에 끝내고.”

 승철은 결국 강의를 일찍 끝내고 말았다. 그가 교수 생활을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하면서 기쁜 얼굴로 강의실을 나섰다. 그런데 이 학생들 속에서 노아는 보이지 않았다. 승철은 의아한 마음에 학생들을 잠깐 불러 세웠다.

 “얘들아 잠깐, 혹시 오늘 노아 본 사람 있니?”

 승철의 물음에 학생들도 잘 모르는 눈치였는지, 서로 얼굴만 보며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요, 교수님. 저희도 못 봤거든요. 아마 오늘은 수업은 아예 빠진 것 아닐까요?”

 한 학생이 대충 대답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승철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노아는 단 한 번도 지각하거나, 결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승철은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핸드폰을 열어 노아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그녀는 답이 없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승철은 자신을 신경 쓰이게 하던 일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설마...’

 그는 부정하고 싶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흘 전에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인류가 마주해야 할 가장 두려운 현실이었다.

 ***

 “타시죠.”

 검은 승합차의 문을 열며 나온 남자는 그 한 마디만의 말만을 꺼냈다. 운동복으로 대충 입고 나온 승철은 얼떨결에 차에 탑승했다. 검은 차는, 그를 태우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내심 불안했던 승철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차 안을 살폈다. 차창은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고, 정자세로 앉아 있는 양복쟁이들은 그를 긴장하게 했다.

 “편하게 앉아계셔도 괜찮습니다.”

 승철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성 요원이 그를 안심시켰지만, 여전히 긴장감을 풀지 않던 승철은 고개만 끄덕인 채 밖이 보이지도 않는 창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는 내내 승철은 자꾸 오른팔을 내려다봤다.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자신의 옷에 도장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던 손자국이 계속 눈에 밟혔다. 그 괴물은 대체 뭐였는지, 왜 형윤이의 모습을 한 건지, 자신이 꿈을 꾼 건지 아님, 진짜로 겪은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그는 혼란스러움에 머리를 싸맸다.

 “도착했습니다. 가시죠.”

 요원의 말에 집중하지 않던 승철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지만, 요원들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문을 열고서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유명한 연예인이 경호원들에게 에스코트를 받는 것과 비슷했다. 승철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쭉 뻗었다. 요원들의 큰 덩치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넓은 뜰과 파란 지붕의 사옥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여긴 청와대 아닙니까?”

 놀란 승철이 그들에게 물었지만, 요원들은 대답 없이 그를 이끌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청와대까지 들어온 승철은 여전히 요원들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깔끔한 복도를 지나, 나무로 된 큰 문 앞까지 온 그들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교수님을 기다리시는 분이 많습니다. 들어가시죠.”

 요원 중 가장 앞서던 사람이 문을 열었다. 문 너머의 공간을 보게 된 승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TV에서나 보던 대한민국의 거물들이 큰 테이블에 모여,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에는 참모총장과 높은 지위의 군인들이, 오른쪽에는 장관직의 국회의원 몇 명과 대기업의 총수들이, 그리고 그 중심엔 대통령이 있었다. 승철은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온 것이었다.

 “아, 도착하셨군요. 여기에 앉으시지요, 박 교수님.”

 장관들 중 한 명이 자신 옆쪽의 빈자리를 내주었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던 그는 얼떨결에 착석하고 말았다. 모든 자리가 채워지자, 왼쪽에 앉아 있던 장교 중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브리핑을 맡은 특수 방위 공군 소속, 참수리 부대의 부사단장을 맡고 있는 여웅민 대령입니다. 이제 모두 모이셨으니, 전 지구적 비상사태에 대한 긴급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승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긴급한 일이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집무실 내부의 모든 이가 승철과 같은 반응을 보이며 술렁댔지만, 젊은 대령의 상관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먼저 시작하기 전에 이 회의는 비밀로 진행되는 것이오니, 다른 이에게 발설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젊은 장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핸드폰 전원을 끈 채 테이블 한가운데에 올렸다. 대강 눈치를 살피던 승철은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것만으론 모자랐는지, 집무실 밖을 지키던 요원 중 한 명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와,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검사했다. 틈이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야 요원은 이상이 없다는 알리는 수신호를 젊은 장교에게 보냈다. 그제 서야 웅민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998년 10월 11일 9시, 미국 항공 우주국, 즉 NASA에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천체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발견해 냅니다. 바로 ‘검은 혜성’이라는 것입니다. 지름이 약 5000km 정도인 이 황흑빛의 혜성은 특이하게도 특정 궤도를 돌지 않고, 여기저기 부유하는 떠돌이 혜성입니다.”

 “그게 이 회의와 무슨 상관이 있죠?”

 이 자리에서 제일 어린 U기업의 총수가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하며 그에게 물었다. 풋내기 총수의 거만한 모습을 잠깐 노려보던 웅민은 다시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이 사진을 보시죠. 22년 전, 최초 발견 당시의 검은 혜성의 위치입니다. 지구와 무려 약 2조km 되는 거리에 있었죠. 다음 사진을 보시죠. 15년 전에 다시 찍은 검은 혜성의 위치입니다. 지구와 거리는 약 1.2조km로, 거리가 좁혀졌을 뿐만 아니라 방향도 지구 쪽으로 꺾였습니다. NASA는 이것을 우연이 아니라 판단, 6개월 단위로 계속해서 주시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1년 전에 다시 찍은 혜성의 위치입니다. 약 230억km, 훨씬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검은 혜성은 계속해서 지구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여 대령, 좀 알아듣게 말하게. 그래서 저게 어디에 있다는 거야?”

 중장급 되는 사람이 웅민의 말을 끊으며 되묻자, 말하기 망설이던 젊은 대령은 상관의 눈치를 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웅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관측한 결과, 검은 혜성은... 해왕성 궤도 안쪽까지 진입했습니다.”

 웅민의 말에 집무실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어떤 이는 비아냥거리며 그의 말을 부정했고, 어떤 이는 침묵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이 정신없는 난리 통 속에 대통령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대령에게 물었다.

 “여웅민 대령,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대통령의 질문에 웅민은 실세들 속에서 잔뜩 움츠러든 승철을 한번 바라보았다.

 “대통령 각하, 송구스럽지만 여기부터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박승철 교수님, 앞으로 나와주시죠.”

 얼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있던 승철은 자신의 이름이 불린 줄도 모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정신 차린 건 옆에 앉은 장관이 툭툭 치며 눈치를 줬을 때쯤이었다. 얼떨떨하게 앞으로 나온 승철에게 웅민은 자신이 들고 있던 자료들을 넘겨주며 한참 동안 설명했다. 둘만의 대화가 끝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승철은 꼭 과제 발표하는 신입생처럼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일단 여기에 있는 자료에 의하면 이 혜성은 적어도 하루에 2AU 정도를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혜성의 속도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길게 잡아야 보름 정도입니다.”

 승철의 말에 어수선했던 집무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망연자실한 사람들은 침묵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거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교수님,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대통령은 엄숙한 태도로 승철에게 다시 물었다. 그 질문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승철을 향했다. 승철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게... 지금까지 모인 데이터에 의하면 ‘혜성의 진행 경로가 수시로 바뀌어서, 불규칙적이고 예측이 어렵다’라고 쓰여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혜성은 지구의 공전주기를 쫓아 움직이고 있어요. 그래서...”

 “그래서 부딪친다는 겁니까, 아닌 겁니까?”

 맨 앞에 앉은 장관이 그를 재촉했다. 그의 손이 점점 떨려왔다. 그는 어떻게든 희망적인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사실을 말해야만 했다.

 “그... 믿기지 않으실 테지만... 검은 혜성은 정확히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충돌 확률은 99.9%입니다.”

 천체 전문가의 결론은 눈앞의 많은 이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두려움을 모르던 군인들의 눈엔 공포가 서렸고, 거만하기 짝이 없던 대기업의 총수들은 시선을 내리깔았으며, 한 나라의 원수는 어떤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진실을 말한 승철은 왠지 모르게 죄인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 알겠습니다. 회의는 여기서 마치는 것으로 하죠.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 대령하고, 박 교수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통령은 급히 회의를 해산시켰다. 총수들은 어서 빨리 돌아갔고, 장관들과 참모총장은 대통령 앞에 모여 논의를 계속해 나갔다. 승철은 자신이 내린 결과에 망연자실한 채,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몇 시간의 회의 끝에 겨우 바깥공기를 마신 승철은 한숨을 크게 들이켰다. 어느새 새벽녘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하염없이 왼쪽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보름, 최후의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슬픈 고민을 되뇌던 그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박 교수님, 자택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홀로 돌아가는 승철을 붙잡은 건, 군용 지프에 탄 웅민이었다. 허탈해진 승철은 마침 잘됐다 싶어 잽싸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가 제대로 탑승한 것을 확인한 웅민은 핸들을 부드럽게 돌렸다.

 포장도로를 달린 지 몇 분이 지났건만 둘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승철은 어색함에 헛기침만 계속 뱉어댔고, 웅민은 정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교수님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군요. 이런 꼭두새벽에 갑작스럽게 호출하고, 브리핑마저 떠넘겨버리는 바람에 많이 당황하셨을 텐데, 어디 편찮으신 부분은 없으신지?””

 굉장히 피곤했던 승철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서 고개를 휘젓기만 했다. 웅민은 그의 태도를 확인하고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제가 선생님을 부른 건, 긴밀히 말해야 할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옆쪽에 있는 가방을 열어주시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승철의 옆엔 웬 가죽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의심 없이 가방을 뒤지던 승철은 안에 있던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한번 내용을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웅민의 부탁에 느낌이 싸해진 승철이었으나, 역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서류철을 열었다. 수많은 종이 서류엔 빼곡하게 적힌 영어들과 함께 여러 가지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몇몇 글들은 말소된 것처럼 검은 줄들이 그어져 있었고, 어떤 문서는 아예 백지상태로 남아있는 것도 있었다. 승철은 어차피 영어엔 젬병이었기에 글들은 대충 넘겨버렸지만, 사진은 이상하게도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정 장소에 체크된 지도들이라거나, 처음 보는 짐승들이 찍힌 사진들, 그리고 그것들을 연구하고 해부한 자료들까지, 굉장히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뭡니까?”

 “22년간 CIA가 모은 자료입니다. 원래는 기밀이라며 다른 국가에 정보공유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절박하니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죠.”

 그들이 탄 지프가 터널 안으로 들어왔다. 차의 내부가 살짝궁 어두워졌지만, 승철은 서류를 확인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사진을 넘겨보던 그는 한 소녀의 사진 앞에 손이 멈춰 섰다. 소녀는 아까 전에 본 짐승들과 함께 깊은 정글 속을 노니고 있었다. 승철은 이 소녀가 낯설지 않았다. 지프가 터널 밖을 빠져나오자, 어두웠던 내부가 환해졌다. 다시금 사진 속의 소녀를 확인한 승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건...!”

 백미러를 힐끔거리던 웅민은 승철을 반응을 보자 자연스레 대답했다.

 “교수님에겐 익숙한 사람이죠? 네, 맞습니다. 사진 속 여자는 ‘서노아’입니다. 15년 전 짐바브웨에서 찍혔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로부터 6개월 이후 과테말라에서, 그다음엔 몽골 평원 한가운데, 그다음엔 시베리아 고원, 로키산맥, 나미브 사막, 심지어 태평양까지, 전 세계에서 발견됐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녀의 발자취가 닿는 곳엔 처음 보는 종의 동식물이 무더기로 발견되는 기묘한 현상까지 일어나더군요. 그것보다 더 이상한 건, 이 여자,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어요. 지금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완전히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신원을 조사해 보니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전부 거짓이었다. 이런 말씀이십니까?”

 웅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되는 비상식적인 소식에 혼란스러워진 승철은 머리를 쓸어내렸다. 이렇게 둘이 비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지프는 어느새 승철의 집에 멈춰서 있었다. 승철이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당기려 할 때, 웅민은 몸을 뒷좌석 쪽으로 돌리며 그를 불러 세웠다.

 “박 교수님,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잘 들으세요. CIA 측은 이 여자가 검은 혜성과 뭔가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제가 소속된 특수 방위 공군도 같은 생각이고요.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모든 정황이 그녀를 가리키고 있죠. 22년 전 최초의 발견,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주기, 새로운 종의 폭발적인 급증까지 전부 혜성과 시기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죠. 그리고 새로 발견된 동물들의 자체적 공명 소리와, 검은 혜성이 내뿜는 정체불명의 파동의 주파수가 서로 일치한다는 결과가 최근에 나오기도 했어요.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우연이라 할지라도 그 여자는 보통의 존재가 아니죠. 그러니 조심하세요. 지금 그녀와 제일 가까운 건 바로 교수님이니까요.”

 ***

 승철의 머릿속에 웅민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승철은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의자에 몸을 딱 붙인 채,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핸드폰을 열어 통화기록을 살폈다. 별의별 번호가 핸드폰의 화면을 메우고 있었지만, 아내와 딸의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면을 아래로 내렸지만, 가족의 기록은 없었다. 승철은 자신의 딸, 소정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아이돌 가수 노랫소리가 그의 귓속으로 들어왔다. 승철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딸이 아직도 아이돌이 좋아한다는 것에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딸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는 것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도 잠시, 노랫소리가 끊기며 전화가 연결됐다.

 “딸, 아빠야! 전화는 오랜만이지? 오늘은 몇 시에 들어와? 아빠가 딸이 좋아하는 치킨 사가려고 하는데...”

 “안녕하세요, 교수님.”

 수화기 너머로 낯설지 않은, 그러나 딸의 목소리가 아닌 것이 들려왔다. 승철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그는 떨리는 숨을 겨우 참으며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서... 노아? 네가 왜...?”

 “아! 이거요? 잠깐 빌린 거예요. 그나저나 교수님도 참 고약하시네요. 남의 뒤를 캐는 사람이랑 만나기나 하고, 이러니 무서워서 살겠나.”

 노아가 이죽거리며 승철을 자극하자, 그는 두려움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전화에 대고 바락 소리쳤다.

 “너, 내 가족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아직은.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마침 심심했던 터라 가지고 놀 거리가 필요했는데, 맘에 쏙 들 정도로 귀여운 인형을 교수님 댁에 있더라고요. 그것만 가지고 갈게요.”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오싹함에 승철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의 침묵에 노아는 가벼운 웃음소리로 화답할 뿐이었다.

 “아이코! 내 정신 좀 봐! 전화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가버렸네? 남은 얘기는 다음에는 만나서 하도록 해요. 지금은 제가 너무 바빠서. 그럼 이만.”

 수신기의 신호 끊어지는 소리가 그의 고막에 울려 퍼졌다. 어딘가 불길했다. 잔뜩 들뜬 그녀의 말들이 뇌리에 박힌 듯 떠나가지 않았다. 새까만 핸드폰 화면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승철의 얼굴만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얼마 안 가 그는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그리곤 내달리기 시작했다. 말끔한 구두는 계속해서 그의 발을 미끄러트렸고, 딱 맞는 정장은 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러나 승철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던진 몇 마디의 단어는 공포의 채찍이 되어 그의 등을 후려갈겼고, 승철은 두려움에 두 다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집에 도착한 승철은 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젖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딸은 방 안에서 핸드폰을 잡고 있을 테고, 아내는 부엌에 앉아 투정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에겐 그래야만 했다.

 “소정아! 여보!”

 승철이 다급하게 그들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다시 불러 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승철은 적막한 집안을 뒤지며 아내와 딸을 찾기 시작했다.

 “소정아! 미희야! 장난치지 말고 대답해, 제발! 소정아! 미희야!”

 그렇게 실성한 듯이 외쳐대는 승철은 딸의 방 앞에 멈춰 섰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두려움을 억눌러가며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오래된 경첩의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의 눈엔 침대 위에 웅크린 채, 흐느끼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승철은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여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도대체?”

 승철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지만, 아내는 인형처럼 힘없이 고개를 까딱거리기만 했다.

 “왜 불러도 대답을 안 한 거야? 소정이는? 소정인 어디 있어?”

 딸의 이름을 들은 그녀는 반응을 보이며 승철의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바라본 아내의 눈은 동태처럼 생기가 없었다.

 “데려갔어... 그 애가... 근데 난 아무것도 못했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걔가 시키는 대로만 했어... 어떡해? 우리 소정이 어떡해? 이대로 영영 못 보는 거야? 내 손으로 그렇게 만든 거야? 어? 말 좀 해줘! 제발!”

 승철의 품에 안긴 아내는 절규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한 두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서글피 울기만 했다. 그들의 슬픔을 이해해 줄 리 없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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