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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2. 가문
작성일 : 20-08-18 04:00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7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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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 메르세데스를 줄곧 쫓는 차량이 있었다. 바퀴 쪽이 흙투성인 흰색 승합차로 지겹도록 번호판을 교체한 차였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28살의 김용범이라는 사람이었다. 굵직하고 한 덩치 하는 남자로 머리 사이즈는 평균치보다 확실히 컸다. 시종일관 눈웃음을 짓는 모양새가 누렇게 뜬 얼굴과 매우 잘 어울렸다. 스치고 지나가는 관계라면 재밌게 생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잠깐 더 김용범에 관해 생각해 보면 입이 무거워질 도리밖에 없을 것이었다.

 메르세데스가 주유소로 들어갔지만 승합차는 그대로 달렸다. 메르세데스의 주인은 50대 남자로 머리가 살짝 벗겨졌다. 안경 너머 능글맞은 눈웃음은 아주 밥맛이지만 용범은 그를 좋아해야 했다. 언젠가는 탈취해야 할 대상이었다. 50대 남자는 곧 죽는다. 눈 밑에 찍힌 낙인을 분명히 봤다.

 X.

 용범은 그 길로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이것저것 수두룩하게 샀다.

 “……원입니다.”

 점원의 말 따윈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얼마든 상관없었음으로 정답게 카드를 내밀었다. 간혹 그의 웃긴 외모를 보고 재밌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발견할 때면 그는 살짝 묵례를 하면서 미소를 주고받았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

 점원이 빙그레 웃으며 몇 번이고 고개 인사를 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용범이었다. 그에겐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어떻게 자신을 내밀어야 남들이 좋아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속상할 일도 머리 아플 일도 없었다. 항상 눈웃음을 짓고 살기 때문에 어딜 가든 사람 좋게 보았다. 살에 파묻혀 있는 눈동자를 모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의 인지로는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얕게 뜬 시선은 불구덩이처럼 늘상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교외에 살고 있었다. 똑같은 집들이 늘어선 그곳은 실거주자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친인척들이었다. 밤이면 깜깜한 만큼 신산한 바람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차고의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대부분 같은 디자인의 노출 콘크리트 집이었다. 듬성듬성 떨어진 집들엔 큰 나무가 하나씩은 있었다.

 담도 대문도 없었다. 마당에는 질 좋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잔디 관리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진입로의 하얀 돌길은 조개 가루에 사금이 섞인 모래사장을 연상케 했다. 가끔씩은 그리로 시체가 끌려다니긴 하지만 대체로 깨끗한 곳이었다.

 장거리를 정리하면서 용범은 습관적으로 흥얼거렸다. 다소 지저분한 부엌이지만 이십대 후반의 남자라면 자고로 이렇게 살아야 했다. 그는 미룬 설거지를 하려다 마음을 바꾸고 음식 준비를 했다. 설거지는 몰아서 하는 게 좋을 듯했다. 고기를 불판에 올린 후 아스파라거스를 대쳤다. 반짝거리는 둥근 접시를 찬장에서 꺼내다 문득 싱크대 유리에 반사된 얼굴을 발견했다.

 나이프에 감기는 고기의 질감이 좋았다. 쓱쓱 잘리면서 따뜻한 온기를 토하는 고기. 오른손에 든 포크로 찍어 누르면서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에 풍미가 돌면서 그는 자연 만족스런 신음을 냈다. 벽면의 책장 한 곳에는 흐리멍덩한 눈을 반쯤 뜬 머리통이 고통스럽게 입을 비틀고 있었다.

 그는 와인 잔을 들어 시체의 머리통에 인사를 건네곤 입으로 가져갔다.

 “혼자 먹어서 미안.”

 그가 장난꾸러기처럼 말했다.

 그러나 머리통이 통 웃질 않으니 시들해질 수밖에. 그는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타입이었다. 충분한 여유를 즐긴 식사와 향긋한 궐련의 조화. 그는 어두운 실내에 서서 창밖의 어둠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달빛이 밝히는 길이 유난히 희었다. 밖에 누군가 있다면 담뱃불을 발견할 터였다. 그는 입을 가만히 두어 담배 연기만 빠져나가게 했다.

 

 바닥에는 뿔이 다섯 개 달린 별이 그려져 있었다. 별은 원 두 개 안에 있었다. 그림은 염소 피로 그린 것이었다. 빨간색 삼각뿔마다 사람 한 명씩 두 발을 모으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두꺼운 초가 그림의 주위뿐 아니라 실내 여기저기 포진한 채 이따금 옷깃에 일렁였다. 별 가운데엔 바닥에 머리를 찧을 정도로 웅크린 가녀린 여자가 있었다. 포박되어 있다고 여겨질 만큼 움직임이 없었다. 금방까지도 머리를 묶고 있었는지 흘러내린 머리칼엔 탄력이라곤 없었다.

 용범은 정장 차림의 남녀들 사이에 있었다. 10대에서부터 50대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곧이어 나무껍질 같은 노파가 앉아 있는 휠체어가 등장했다. 휠체어는 미는 노인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노파의 아들이자, 가문의 실질적 우두머리였다. 노파는 무릎 담요에 구부리고 있는 양손을 포갠 채 시종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은 집안의 내력이었다. 그들 집안은 피비린내 나는 전란에서도 웃었다. 죽음에 임박해도 웃을 수밖에 없는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용범은 입을 다문 채 윗니를 훑어내렸다. 유기물인 혀가 큼지막한 건치를 상대로 유약한 저항을 했다. 혀는 입술 안에서 이빨 곳곳을 쑤시고 긁고 다녔다. 마치 뼈에 닳는 칼끝처럼. 그는 제물을 보았다. 여자는 칼에 맞아 죽은 게 아니었다. 자연사다. 묶어 놓으니 알아서 죽어 있었다. 겁박을 풀어도 저 모양이었다. 여자의 묶인 머리를 풀자 11살밖에 안 되는 사촌 여동생이 자꾸만 땋으려고 달려들었다. 산발해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지금도 안달이 나 있었다.

 여자는 알아서 마을에 왔었다. 자전거를 타고 백팩을 멘 채. 유튜버랬다. 아직 컨셉을 잡지 못한 신출내기 유튜버였다. 당장은 무전여행을 에피소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게 무전여행과 해외여행이라고 했다. 영상은 찍는 것보다 편집하는 게 몇 배는 힘들다면서 싱겁게 웃던 여자였다. 25살이었고 죽기엔 그만한 나이가 없었다. 젊으니 된 것이다. 그녀도 원했던 거 같았다. 그건 어린 사촌 동생들 생각이었다. 어른들은 어찌 되었든 눈 밑에서 낙인을 발견했으니 그만인 것이다. 여자는 절대로 집성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건 운명이었다.

 여자는 엘릭서의 재료였다. 마시면 불로불사가 될 수 있다는 엘릭서. 솔직히 용범은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금술과 부두교를 혼합해 만든 집안의 종교. 원래는 삽살개를 신으로 모셨지만 삽살개교는 아버지 대에 와서 폐지되었다. 그다음에는 꿈에서 신을 만났다는 작은삼촌의 말을 통해 TV교를 설립했다.

 일일연속극이 좋을 거 같다는 고모와 아침드라마가 좋다는 큰숙모의 대립. M방송사의 주말 오전 프로그램이 좋다는 사촌 형들과 아무래도 K방송사가 좋다는 사촌 누나의 대립. 집이 풍비박산이 날 뻔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 TV교의 유일신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레처럼 몰아치는 할아버지의 설파는 모두를 당혹케 했다.

 그리하여 종교를 없애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가족의 구성원들이 하나둘 낙인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종교의 필요성에 절감했다. 왜냐면 낙인이 찍힌 자들을 만날 때마다 집안에 우환이 닥쳤기 때문이다. 매번은 아니었다. 며칠, 몇 달, 몇 년 차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번번이 집안사람들이 죽었다. 팔팔하던 사촌 누나의 약혼자가 추락사한 건 지금까지 의문으로 여겼다. 아무리 파쿠르에 미쳐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용범은 왼손 손목을 가볍게 비틀면서 의식을 지켜보았다. 둥둥 하고 북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북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건 우로보로스였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무한의 상징.

 여기 전 세계의 엑스교 신도들이 모두 모였다. 부두교의 의식을 바탕으로 한 연금술사들의 성스런 밀교. 용범의 경우는 엑스교 신자가 늦게 되었지만 그래 봐야 며칠 차이다. 그는 정비사로 통했다. 회색 정비복을 입고 다닌 게 유례였다. 실은 원래 직업도 정비사였다. 하지만 엑스교의 진리를 깨달으면서 올곧이 성도로서의 생활에만 집착했다. 엑스교는 아직 신생 종교로서 역사로 따지면 10년이 넘었다.

 처음 그는 엑스교에 입문하면서 붉은 수건을 몸에 둘렀다. 제단 위 철망 상자에는 우로보로스가 있었다. 살아 있는 닭의 목을 그 자리에서 따서는 따뜻한 피를 봉헌물로 바쳤다. 생각보다 콸콸 쏟아지는 피가 오목한 그릇을 채워가는 만큼 손가락을 적시는 미온이 성가시지 않았다. 이후 다 자란 염소 한 마리가 목에 놋쇠 종을 달고 등장했다. 나뭇잎을 달인 물로 항문까지 깨끗하게 씻긴 염소였다.

 마법진 안에서 염소는 목이 잘렸다. 멱을 딴 할아버지가 피 맛을 먼저 보았다. 통에 받은 생혈을 한 움큼씩 쥐어 신도들에게 뿌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대부고 제사장이었으니까. 그 후부턴 광란의 댄스파티가 시작된다. 제풀에 쓰러지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거품을 무는 사람도 있고 신경발작을 일으키며 바르르 떠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춤을 그치지 않고 그들 주위, 마법진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신도들은 엘릭서에 미쳐 있었다. 인간 제물은 곧 엘릭서의 재료가 될 만큼. 하지만 용범은 달랐다. 그는 인조인간인 호문쿨루스나 골렘 쪽에 더 관심이 갔다. 왜냐면 자신이 곧 엘릭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현자의 돌로 여겼다. 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말을 안 했지만 제사장 자리에 조부가 있는 것에 못마땅해했던 적이 있었다. 통상 그런 자리라 하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할진대 연장자라 하여 자리를 앗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의 시선엔 조부 또한 증조할머니와 다를 게 없었다. 혈연인 이상 어른으로서 존중을 해 줄 순 있지만 실력 없는 인간이기에 무 쓸모다. 그는 자신의 통찰을 관통하는 수족이 필요했다. 호문쿨루스 또는 골렘이 아니면 그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쏴아악. 승합차를 뒤덮었던 세재 거품이 물에 휩쓸려 나갔다. 고무호스를 든 용범은 빈손을 자꾸만 휘적거리면서 호스를 컨트롤 했다. 휠에서 벗겨져 나온 때가 외계 물질처럼 웅덩이졌다. 공중에 뿌옇게 튄 물보라가 무지개를 그렸다. 실내는 이미 깨끗했다. 무선청소기로 구석구석 빨아 당겼기 때문이다. 세차가 끝이 나자 뭔가를 해낸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건강한 웃음기가 가미된 커다란 머리에 묻은 땀을 닦아냈다. 마치 러시모어산의 대통령 얼굴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는 사촌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5월의 하늘은 무척이나 푸르렀다. 꺄르르 웃는 걸 보니 누군가 잔디에 물을 뿌리는 모양이었다. 저 아이들은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리는 것만 보면 좋아 죽는다. 그는 차고의 미니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들곤 차고 입구에 팔을 얹었다. 비딱하게 서서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마시면서 인상을 되게 썼다.

 스스로도 이런 장면에선 기름때가 진 흰옷을 입은 잘생긴 샌님들을 생각했다. 근육질에 한 성깔 하는. 하지만 용범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평화를 사랑했다. 지금 같은 날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그가 하는 일을 남들이 알면 물론 안 되지만 말이다. 따지고 들면 매우 위험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가 그런 일들을 하는 건 인간 범주 밖에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일가의 멤버들과 같이 단순히 종교에 미쳐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랬다. 그는 가족들을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다. 티끌 하나 없을 거 같은 11살의 여동생마저도 말이다.

 11살의 여동생은 작은삼촌의 딸로 일가에서 가장 어렸다. 당연히 제일 연장자는 증조할머니였다. 96살. 살 만큼 살았다. 언제까지 휠체어에 앉아서 호리병이나 절구처럼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혈혈단신이었다. 부모는 큰삼촌의 소형트럭에 치여 죽었다. 짐칸이 있어 시체 두 구쯤이야 간단했던 모양이었다.

 편육을 포장하듯 둘둘 만 채 수십 킬로를 배회하다 음주단속에 걸리는 바람에 이유 없는 방황이 끝났다. 물론 가족들은 큰삼촌의 편이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논리였다. 용범이야 크게 반하고 싶었다. 그만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큰삼촌을 끝장낼 수 없었다. 큰삼촌은 술에 취한 것도 아니었다. 부모에게 들린 생명보험도 없었다. 사고는 일단락났다.

 부모가 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하필 큰삼촌의 차인 게 경찰은 수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알고 있었다. 그의 부모가 저들의 입으론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자살을 희망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자살 자살하며 엉망으로 입을 나불대는 인간들이었던 걸 몇은 은근히 몇은 대놓고 고통스럽다는 듯 수사관들에게 토로했다.

 고모는 큰삼촌의 인생을 망칠 뻔했다며 도리어 그의 부모를 욕했다. 그와 판에 박은 듯 닮은 고모가 말이다. 닮았다는 이유로 그는 가족 중에서 고모가 가장 좋았다. 반면에 웃음을 달고 다니는 낯짝이 아무리 닮았어도 검버섯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증조할머니는 싫었다. 특히나 유별난 식성은 경악스러웠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날생선을 가져가면 망치로 톡톡 머리를 깼다. 홍시 껍질 같은 감색 피부로 감긴 손은 힘이 없어 번번이 망치질에 실패했다. 생선의 저항도 심했다.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던 것이 점점 분리되다 떡이 되는 과정은 눈 뜨고는 차마 보지 못할 광경이었다. 인간을 분해하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근본이 달랐다. 그녀는 바보처럼 헤헤 웃으면서 고깃점을 몇 개 안 되는 이로 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정수리에 입을 맞춘다. 어머니가 하루라도 더 사는 게 그의 소망이었다.

 용범은 본인이 미남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 마을은 가족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딜 가도 환대를 받았다. 게다가 보통 인간과는 달랐다. 인간계에 계급이 있다. 눈으로 보이는 그런 거 말고. 그라면 반신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는 혼용무도한 세상을 바로 잡고 싶었다. 한땐 세상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좆 같이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결과는 실천하기도 쉬워서 밤잠도 잘 왔다. 피를 볼 만큼 봤고 여자도 충분히 따먹었다. 이 세상에 병신이 좀 많은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옛날의 김용범이 아니었다. 낙인 추적자이다. 그는 죄인들을 삼키는 심판관이었다. 그들이 새롭게 태어나게 도와주는 노여움이었다. 검은 바다에 떨어진 태양이었다. 심연에서 피어오른 메아리였다. 별빛에서 추락한 백일홍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왕이 될 사나이였다. 그리고 뭣보다 우선은 호적 정리가 필요한 듯 보였다.

 

 용범은 룸미러에 비친 자신의 싱글생글한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검토라도 하고 있는 듯이. 자기 얼굴이면서도 자신의 눈매가 어떻게 생겼나 잊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근육이 경직되기라도 한 것처럼 살에 박힌 눈알이 쉽사리 정체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어쨌건 100점 만점에 120점을 줘도 아깝지 않은 눈이었다. 그는 이걸로 많은 걸 잡았다. 얼간이. 사기꾼. 보지. 낙인…….

 이번엔 50대 남자를 잡을 차례다. 그는 핸들을 가볍게 두들겼다.

 선팅을 하고 있어서 밖에선 차 안이 보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용하지 않은 세상인지라 선팅과 승합차의 조합은 불안을 유발한다. 투시 능력이 없는 이상 뒤에 꽉 들어찬 삭막한 자들을 상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정신적 소음이 피차 피곤하게 만드는 결과였다. 50대 남자는 잡혀 주고 용범은 일가로 데리고 가면 되었다. 물론 다른 누구에게도 죄인을 보여선 안 된다. 그는 호문쿨루스 병사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성공한 사례는 없지만.

 그는 차창 너머에 있던 시선을 가만히 앞유리창으로 옮겼다. 하늘에 뜬 해는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장하는 별처럼 어지럽게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그는 시동을 걸어 대로에 있던 차를 뺐다. 멍청한 사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지간해선 그럴 일 없다. 쓸데없는 빚이니까.

 주말에 다시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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