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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푸른 잎에 능금
작가 : 목탄
작품등록일 : 2020.8.5

용의 여인이 될 운명을 타고난 능금,
행궁 청소를 하다말고
실수로 세자의 손을 베어버리는 데
지고지순, 능금만 바라보는 홍옥을 남겨둔 채
결국 궁궐로 납치되고 만다.
조선시대 온천과 궁궐 서가를 오가며 벌어지는 용팔이 로맨스,
흑룡과 청룡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을 지어다.

 
6. 고요한 외딴 집
작성일 : 20-08-17 15:36     조회 : 341     추천 : 1     분량 : 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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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잠들어 있구나. 밤 인사를 드리고 비현각에 들린 세자가 능금의 곁에 앉는다. 자세히 내려다보니 손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그제야 비현각 서고를 둘러본다.

 “태생이 그런 것이냐, 놀고먹은 들 아무도 탓하지 않을 것을,”

 좀이 필까 향을 피웠는지 서가가 은은하다. 깜빡 잠들었던 능금이 깨어난다. 어깨 한쪽이 무겁다. 지엄하신 세자저하가 능금의 가녀린 어깨에 기대 잠들어있다. 고뿔이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 이불이라도 덮어드려야겠다. 일어서려는 능금을 화홍이 붙든다.

 “그냥 있어라.”

 호롱 빛에 드러난 얼굴이 참으로 곱다. 궁녀들이 노리개를 사고 비녀를 고르는 데에 다 이유가 있구나.

 “넌 숨결조차 향기롭구나.”

 능금의 얼굴에 붉어진다. 이토록 가까이 있어, 숨까지 들킨 탓이다.

 “어찌 남장을 한 것이냐?”

 “가난 때문입니다.”

 “가난.”

 “사내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벌어먹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시집이라도 가지 그랬느냐.”

 “병든 아비가 있어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랬구나.”

 네 가난이 널 만나게 했구나. 남장을 해도 이리 어여쁘다면, 여인네인 너는 더 아름답겠구나. 아니 무엇을 걸친 들, 너는 수려한 빛이겠구나.

 화홍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능금의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선반이 네게 부족한 게로구나.”

 아무리 못 먹어도 하루걸러 하루 생선을 먹었는데, 여기 와선 고기 구경도 못해봤다. 능금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입에도 대지 않던 야참을 손수 시키는 화홍, 허겁지겁 먹는 능금을 사랑스레 바라본다.

 “체할라, 천천히 먹거라.”

 화홍은 차를 마시고, 능금은 약과를 베어 문다.

 앞으로 네 끼니를 더 신경 써야겠구나. 궁에 와서 더 마른 것을 보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능금이 남은 약과를 소맷부리에 챙겨 넣는다.

 “더 먹지 않고,”

 “두었다 먹으려 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똑 같이 배를 곯는 소란을 챙겨주기 위해서다. 그 마음을 눈치 챈 세자가 빙그레 웃는다.

 “너와 그 아이의 선반을 더 챙기라 하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참으로 소박한 아이다. 내게 더한 것을 해 달라 한들, 거침이 없으련만, 고작 선반을 가지고 이리 기뻐하다니. 그게 네게 마음이 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많이 읽었느냐?”

 “모르는 글씨가 있었는데, 붉은 옷을 입은 나리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나리?”

 별감이 들렀나보군. 아무리 배동이라지만, 비현각을 이리 함부로 드나들다니, 배포가 크구나.

 “앞으로 내게 묻거라.”

 “하지만, 어찌,”

 “스승을 찾으려면, 보고 배울 게 있는 사람으로 해야지. 그 자는 무식하다.”

 모르는 글씨를 척척 알려주었는데, 무식한 거로구나. 그럼, 나는 얼마나 무지렁이인 것이냐. 시무룩한 능금이 고개를 숙인다.

 “부사에게 배울 거라면 무술이나 배워라. 칼 솜씨는 일품이니.”

 칼이 있은 들 기껏해야 비늘이나 긁는 일이 전부인데, 무술을 배워 어디에 쓴대. 아무에게나 다 배우면 되지. 지금 더운 밥 찬 밥 따질 땐가.

 “그럼, 이거는요?”

 능금이 떨리는 손으로 글자를 묻는다.

 “옳지. 그리 묻거라 ”

 세자가 손을 들어 능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앞으로 내게 묻거라, 모르는 것도, 아는 것도, 그리고 널 향한 내 마음도. 다 내게 묻거라.

 

  한밤, 외진 초가에 불이 켜진다. 홍옥이다. 벽에 기대어 시름에 잠기는 홍옥,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호롱을 흔든다.

 “이 곳에 드는 것도 마지막으로구나.”

 때 묻은 세간이며 헤진 이부자리를 둘러본다. 마냥 어리다 여겼는데, 그리 자라 다른 사내의 눈에 든 것이냐. 너를 오래 아낀 내 잘못이다. 너를 함부로 보낸 내 잘못이다. 홍옥이 품에서 은가락지를 꺼낸다.

 “청포로 감은 머리로 쪽을 지고, 예쁜 꽃신을 신겨 각시로 삼으려 했건만, 너는 없구나.”

 어린 능금이 풀을 엮어 반지를 만들던 게 떠오른다.

 “옥아, 다른 여자한테 장가들면 안 된다.”

 “그럼, 총각귀신 된다.”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능금이 홍옥의 손가락에 풀 반지를 끼워준다.

 “넌 사내로 살 텐데. 그럼 내가 계집을 해야 하냐?”

 “내가 크면, 커서 어른이 되면 계집 할게. 그러니까 다른 데 장가들면 안 된다.”

 능금의 신신당부에 홍옥이 얼뜨기처럼 웃는다.

 내가 계집이 되어도 상관없다. 너와 함께 살 수 있다면.

 풀벌레 소리가 고요한 외딴 집을 채운다. 그만 가자, 너도.

 사립을 나선 홍옥이 구름을 불러 벼락을 내린다. 멀쩡하던 초가지붕이 불타오르고, 툇마루가 내려앉는다. 용이 머물던 자리, 용의 여자가 머물던 그곳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진다.

 홍옥이 마을 우물에 멈춰 서서 뼈 한 조각을 던져 넣는다.

 “용의 뼈가 기억을 지울 거다.”

 더는 홍옥을 기억하는 사람도 능금을 추억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죄인이 될 거니까. 더는 우리를 알아선 안 된다. 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산길을 오르던 홍옥이 마을을 향해 꾸벅 절을 한다.

 “그간 고마웠다. 다른 곳은 다 가물어도, 이곳은 흘러넘치리. 그게 용을 모신 값이다.”

 

 바닥에 책을 펴고 앉아, 세자가 열심이다. 흐뭇한 표정으로 세자를 바라보던 스승이 마칠 시간이 되어 묻는다.

 “오늘 따라 열심히 하시는 군요.”

 “제가 언제는 허술하게 하였습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이리 열성적이었던 적은 없지 않았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스승이다.

 “스승님처럼 훌륭해지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오후에 뵙지요.”

 오전공부를 마치고, 세자가 일어선다. 능금을 가르치려면 스승은 아니더라도, 부사보다 부족해서는 안 된다. 능금에게 별감이 무식하다 욕했지만, 문무를 갖춘 대장부이고, 그 지식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모르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시방원을 나서는데, 저 멀리서 연분홍 치마가 보인다.

 “상선.”

 “예, 저하.”

 “그대와 있을 때마다 왜 자꾸 세자빈이 나타나는 것이오.”

 “송구합니다.”

 “그대를 곁에 둔지가 십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설 곳이 어딘지 모르는 것이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상선이 바닥에 엎어진다.

 “상궁이건, 나인이건, 세자빈의 편에 선자가 있거든, 색출해내시오.”

 “명을 받들겠나이다.”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세자빈의 첩자가 아니라, 중전의 첩자인 것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상선이 쩔쩔맨다.

 화홍이 세자빈을 피해 뒷길로 사라진다. 차마 그 뒤를 쫓을 수 없기에 세자빈이 망연히 멈춰 선다.

 “어찌하면 저하의 마음을 붙들 수 있을까.”

 

 소란이 비현각 서고로 날라 온 선반을 보고 능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늘 무슨 잔칫날이냐?”

 “마마님께서 오늘부터는 이리 먹으라 하셨어.”

 그간 생선만 먹었지, 육고기는 먹지 못하였는데, 소고기산적이 떡 하니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참기름에 버무린 나물도 먹음직스럽고. 무엇보다 고봉에 담긴 흰 밥이 끝내준다.

 “이제 가난을 좀 벗나보다.”

 “다 네 덕이다.”

 “식기 전에 먹자.”

 사이좋게 앉아 숟가락을 뜬다. 읽을 책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구나. 소란이 꼭꼭 고기를 씹는다. 밥술을 뜨던 능금이 문득 침울해진다. 가난해서 마음껏 먹이지도 못했네. 이거라도 같이 먹으면 참 좋겠구나. 그리 못 먹였는데도, 훤칠하게 잘 자랐지. 그래도 잘 먹였으면 더 좋았을걸.

 “밥 먹다말고 무슨 생각해.”

 “너, 맛있는 거 먹을 때 떠오르는 사람 없어?”

 “나 먹기 바쁜데 누굴 떠올려?”

 “그 말이 맞네.”

 “넌, 있구나? 누구야? 이 맛있는 걸, 싫은 사람 줄 일은 없을 테고, 정인이라도 되냐?”

 “실없는 소리. 어서 먹자.”

 능금이 산적을 뜯는다. 부드럽고 고소한 게 일품이다. 여기서 나가면, 꼭 같이 먹자. 능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얼마나 맛있기에 울면서 먹냐?”

 “먹다 죽을 만큼 맛있네.”

 “너도 참,”

 소란이 자기 몫을 덜어 능금에게 넘긴다. 능금이 훌쩍이며 소란이 준 산적을 냉큼 받아먹는다.

 

 갓을 쓴 사내가 포대기를 안고 달려간다. 순라꾼을 피해 골목을 달리던 사내가 마을 끝 대나무 깃대가 꽂혀있는 집에 다다른다.

 “이 밤에 무슨 일이시오?”

 장지문을 열지도 아니하고 무녀가 무례하게 묻는다.

 “이 아이 살려주시게.”

 “이미 죽은 아이가 아니오?”

 “죽다니! 살아있네.”

 무녀가 하는 수 없이 불씨를 돋우고,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받는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귀신들이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탄식한다.

 “아무 약도 듣지 않고, 아무 의술도 소용없네.”

 “이 아이의 태몽을 아시오?”

 “초가지붕에 용 두 마리가 날아가는 꿈이라 했네. 한 마리는 검고, 한 마리는 푸른빛이라 했네.”

 “용궁에서 살 팔자로군.”

 “용궁?”

 “아이를 살리시겠소?”

 “살리다마다.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겠네.”

 “그럼, 용왕에게 아이를 파시오.”

 귀신들의 장난 때문인가 힘없이 처져있던 아이가 문득 웃는다. 그 모습이 사무쳐 아비가 운다.

 “그리하면 살 수 있는가.”

 “용왕님이 거두시면 살 것이오. 허나 명심하셔야 하오. 용왕에게 판 아이는 용왕의 것. 아무 날 아무 때에 데려간들, 어찌 할 수 없소.”

 “살 수만 있다면 누구의 아이가 된 들 상관없네.”

 “용왕님께 바칠 제물을 마련하십시오.”

 아비가 젖은 얼굴을 훔치며 일어선다.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그 꿈을 다른 이에겐 말하지 마시오. 천기누설이 될 것이니.”

 “명심하겠네.”

 바닷가 바위에 제물을 올려두고, 무녀가 굿을 한다. 방울 소리가 울리고, 성난 파도가 날뛴다. 먹구름이 몰려드는 가 싶더니, 캄캄한 하늘에 벼락이 치고,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난다. 뭔가를 보았는가, 강보에 싸인 아이가 악을 쓰며 운다. 먼발치에서 아비가 연신 치성을 드린다.

 문득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와 제물을 삼키고, 아이를 쓸어간다. 아비가 혼절하고, 무녀가 넋을 놓는다.

 “정신 차리시오.”

 무녀가 아비를 흔들어 깨운다.

 “아기가 살았소.”

 웬 동자 하나가 아이를 안은 채 서있다. 동자의 푸른 눈이 무녀와 아비를 잠잠히 내려다본다.

 “용을 모실 아이다. 잘 키우거라.”

 동자가 아비에게 아이를 건네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진다. 물속에서 무얼 보았는가, 아이가 방실방실 웃으며 아비에게 안겨있다.

 “참으로 신비하네. 죽어가던 아이가 이리 살다니,”

 “물의 사주인 게요.”

 “물의 사주!”

 “이 아이는 평생 물가에 있어야 할 사주요.”

 아비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친다. 물의 사주면 어떻고 땅의 사주면 어떠리, 네가 살았으면 되었다.

 동이 트는지 하늘 언저리가 붉다. 그날의 기억이 이리 생생한데, 몸도 마음도 벌써 늙어, 이제는 무구를 흔드는 일조차 힘들다. 바닷가 바위에 선 늙은 무녀가 희미하게 웃는다.

 “세월이 무상합니다.”

 “그러게 말이네. 꽃 같은 자네도 이리 늙어, 지팡이를 짚었구먼,”

 “천기를 누설한 죄로 마마님보다 더 늙고 말았습니다.”

 “나나 자네나.”

 “어쩐 일이십니까. 더는 이 년이 도울 일이 없을 텐데요.”

 “안부 차 온 것일 뿐 일세.”

 “이 년이 죽을 걸 알고 오셨군요.”

 이미 병색이 짙어 손 쓸 방도가 없음을 안다.

 “그간 고마웠네.”

 “마마,”

 무녀가 흰 머리를 날리며 중전을 향해 돌아선다.

 “어찌 어정을 막으셨습니까.”

 “무서웠네.”

 “돌이키지 못할 실수를 하셨습니다. 용왕의 아이를 숨기시다니요. 그 분과의 약조를 잊으신 겝니까?”

 “어찌 잊겠는가. 허나, 나는 그 애가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욕심이 과하십니다. 감히 용왕의 아이를 빌어 보위를 탐하시다니요.”

 “그 아이가 없으면 이 나라도 없는 걸세.”

 “그 욕심이 마마를 축생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상관없네.”

 무녀가 중전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운명을 바꿨으니, 저하께도 액이 갈 것입니다.”

 “그 애에게 번뇌가 있단 말인가.”

 귀신들이 중전 주변으로 몰려든다. 스산한 기운에 중전이 옷깃을 여민다. 귀신들이 중전의 귓가에 불길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용이 되어 천수를 누릴 사주를 막으셨으니, 그럴 밖에요.”

 “세자가 죽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귀인이 있어 지상에서의 명이 늘었으나, 복이 박하여 그 마저 잃고, 화를 당하시게 되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부디 저하의 곁을 떠나십시오. 마마와 저하는 상극이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하는 귀인을 잃고 불행해지십니다.”

 “어찌 그 애와 나를 떼어놓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저하와의 연은 어정을 막은 그 날로 끝이 났습니다. 그 연을 자꾸 붙이려 하시니 화를 입는 게 당연합니다.”

 하늘도 참 무정하시구나. 어찌 어미와 자식의 연을 이리도 끊어놓으신다는 말인가. 곁에 있기만 해도 화를 입힌다니, 내 업보가 그리 무겁단 말인가.

 “정령 그 방법 밖에는 없는가.”

 중전이 쓸쓸히 돌아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애가 왕이 되는 그 날까지만 아니 되겠는가. 그리하면 가문이 살고, 내가 살고, 내가 지켜야 할 모든 것들이 안전해진다. 우물을 막으면서까지, 못을 메우면서까지 지킨 보위다. 결코 놓아줄 수 없다. 잠시만 더, 잠시만 더, 그 애가 후사를 보는 그 날까지라도. 나는 곁을 지켜야겠다.

 중전의 욕심을 아는 무녀가 바다를 향해 탄식한다.

 “천기를 누설한 죄는 죽어 갚겠습니다.”

 무녀가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든다. 늙었던 몸이 허물 벗듯 벗겨지고, 희게 물결치던 머리칼이 덧없이 흐트러지고, 어둡던 눈이 물거품처럼 녹아 없어진다. 묵은 육체가 벗겨지자, 은빛 비늘이 찬란한 신지께다. 업보를 다 치룬 신지께 한 마리가 용궁을 향해 헤엄쳐간다.

 “신지께, 명을 마치고 돌아왔나이다.”

 “중전의 목숨을 거두라 했거늘,”

 “곧 축생이 될 몸, 부러 거둘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겸손은 물귀신에게 맡기고 온 것이냐.”

 “이렇게 될 걸 아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 모진 벌을 받고도, 사람을 구하는 것이냐.”

 “천성이라 해두지요.”

 “천성이라, 너를 그리 키운 내 죄도 있겠지. 다시 돌아왔으니 이젠 편히 쉬어라. 공연히 인간 세상에 얼씬대지 말고,”

 신지께가 용왕께 절을 하고 물러난다. 목숨 하나 살린 값이 이리 크다면, 어찌 뭍을 기웃댈 수 있으리. 감히 뭍 것을 사랑한 내 죄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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