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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지오르고스의 일기
작가 : 현서랑
작품등록일 : 2020.7.31

J. 그녀는 그것을 지오르고스의 일기라 적었지. 모르탈 아이움, 그 옛 시대에 지오르고스가 일궈내어 셀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온 그 신비의 역사를. 이젠 J라는 그 작은 여자아이의 이름이 우리들의 진실 위에 허구성과 함께 덮여질 테지. 인간들은 우리들의 존재를 믿으려하지 않아. 앞선 존재들. J는 우리를 그렇게 부르더군. 인퀴스토 디토스란 신들과 엄연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말이야.

 
나가 V
작성일 : 20-08-14 15:38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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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 21_

 이미 예정됐던 전쟁이었음에도, 전쟁터에 머무른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그 절명과 참상은 강렬해 우리의 걸음걸이에 스며들었다. 따스한 공기는 우리의 주변에서 숨어버려 오전동안 우린 먹구름 아래의 싸늘하고 침침한 공기만을 마셔야했다.

 길잡이인 뤼귀가 없으니 지역의 경계조차 알 수가 없었다. 젖은 땅이 이어지던 중 건초더미를 발견한 말들은 그 먹이 앞에 머리를 숙여 우릴 쉬게 했다. 우린 말들의 긴 식사를 지켜보며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가다듬었다.

 

 

 나가 23_

 어젠 테스미르미드의 국경을 지키는 파수병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를 북의 전황을 피해 내려온 피난민으로 생각했고 덕분에 우린 더운밥을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우린 그들이 일러준 방향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모닥불과 한뎃잠이 지나, 오늘은 내내 웨인우드 땅을 달렸다. 땅이 넓은 만큼 길도 많았다. 우린 마을을 지날 때마다 길을 물어야 했다. 다행히도 테스미르미드인들은 우리에게 친절했다. 뤼귀의 부재가 다분히 크긴 했으나, 그래도 우린 예전에 비하여 썩 나은 행객이 되어 있었다.

 

 

 나가 25_

 티니아 강을 건너 에이브모스의 마을을 지날 때였다. 사람들은 한 소문에 대해 웅성거리고 있었다. 페르미나에 나타난 괴물에 대한 소문이었다. 음침한 산맥을 넘어온 괴물들이 페르미나 곳곳에 출몰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테스미르미드 남동부엔 이미 전쟁터와 같은 주검들이 발견되었다고. 소문은 그렇게 서서히 부풀려지고 있었다. 물론 당장 그 진상은 확인할 수가 없었기에 우린 우리의 경로를 안전한 서쪽으로 조금 옮겨야 했다.

 

 

 나가 26_

 에이브모스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왔다. 테스미르미드의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전쟁에 대한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러나 그 소식들 안에 루크룸의 야경들과 뤼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며칠 간 유독 비망록이 비어있다. 만난 사람들도 많았고, 들은 이야기도 많았다. 이니스와 나눈 대화 또한 많다. 언제부터 내가 비망록에 중대사만을 올렸던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루치노르 협곡에서 겪은 참상에서부터 일까. 정감이 풍부한 서사를 위해 도어테일즈를 나서던 때를 문득 되새기는 밤이다.

 

 

 나가 27_

 폴로니아. 이니스는 과거 우리가 지났던 길을 기억해냈다. 광활한 들 위에 나있는 길의 경관이 잊히지 않았단다. 들이 아름답긴 하나, 내게 있어 들은 들일 뿐이었다. 그녀가 어떤 차이를 두고 기억을 해냈는지에 대해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긴 낮 동안 내 귓가엔 폴로니아 경관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 따라다녔지만, 끝내 난 경관을 달리 보는 그녀의 시선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해질녘엔 삼거리가 나왔다. 그 가운데 길은 과거 우리가 지났던, 폴로니아 왕성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우린 그 가운데 길이 아닌 동쪽 길을 택했다. 완연한 밤이 됐을 땐 운더라는 이름의 마을 이정표가 보였다.

 오랜 여정에서도 기념물 하나 마련하지 않았던 우리에겐 여관에서 머물 만큼의 여윳돈이 있었다. 우리가 운더의 작고 유일한 여관 앞에 들어섰을 때, 바깥에 나와 망아지에게 여물을 주고 있던 여관주인은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우리에게 대뜸 인사를 해왔다.

 

 - 아! 젊은 친구들 어서 오게! 신혼 방을 찾나?

 

 주변엔 마땅히 밤을 지샐만한 곳도 없었거니와 우리 둘은 편안한 잠자리가 그리웠다. 방안에 좁은 침상이 하나뿐인 것을 봤을 때도 우린 마냥 좋아했다. 짐을 내려놓은 우린 여관 뒤편의 샘에서 찬물로 손과 얼굴을 씻어냈고, 이니스는 긴 머리를 풀러 감았다. 그 후 우리가 방으로 가져온 개운함은 전혀 낯선 공기를 만들어냈다. 이니스는 먼저 침상에 누워 벽 쪽으로 몸을 향했다. 그리고 난 그녀와 닿을 수밖에 없는 침상 끝에 걸터앉아 서사를 정리한다.

 

 

 나가 28_

 인퀴스토 디토스, 야경, 괴물.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한 이 서사에 과연 어젯밤 일을 올려야할까 고민했다. 이번만은 억지스레 주제와의 어울림을 떠나보내고 싶다.

 어젯밤. 무거운 적막은 한 자리서 서로 등을 돌려 누운 남녀를 짓눌렀다. 이니스의 등과 엉덩이는 내게 닿았고 난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좁은 침상은 우리에게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억지로 한쪽으로 등을 돌려 얌전히 누워있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가 결국엔 마주보게 될 것이란 걸 침상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린 결국 마주봤고, 이니스는 말했다.

 

 - 편하게 자려고 온데인데 저희 둘 다 더 불편해 하네요.

 

 난 그녀에게 편히 누워라 말했다. 그녀의 손이 내 팔꿈치에 닿았고, 난 내 몸에 딱 붙어있던 팔꿈치에서 힘을 뺐다. 그렇게 마주한 우리가 눈으로 나눈 대화는 이 객쩍은 잉크로 풀이할 수가 없다. 단지 그 눈짓이 서로의 입술을 잡아당겼으며, 서로를 껴안게 했다. 그 밤과 그 침상으로 인해 갑작스레 생긴 정은 아니었다. 여정 내내 그녀와 나 사이에 숨어있던 부끄럼 많은 장작이 뒤늦게 타올랐던 게다. 왜 난 그녀에게 향했던 정을 숨겨야 했을까? 의문은 후회로 변하기도 전에 황홀 아래 덮였다. 우리가 더 격한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니었다. 남녀의 본능을 저버렸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린 어리고 충분했다. 우리가 간직한 화로는 잔잔히 밤을 안아 함께 잠드는 것만으로도 가득했다. 그 밤은 매순간 일정한 줄로만 알았던 시간의 흐름마저 무색케 만들었고, 우린 찰나 같던 어둠을 지나 서로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아침을 맞았다.

 

 

 나가 29_

 어제의 서사가 이른 아침에서 막을 내려버린 데엔 이유가 있다. 난 글씨를 쓰며 그 글씨가 떠올리는 마음의 소리들을 되새겼다. 내가 기억하는 어제의 아름다움은 비망록에 적힌 만큼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깃펜이 자아내는 성취감보다 모닥불 너머의 이니스와의 입맞춤을 바라게 했다. 어젯밤 지명도 모를 그 폴로니아 초원 위에서 우린 다시 함께 잠들었고 이오르라는 취객에게 서사란 뒷전이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니스는 땅에 떨어져있던 깃펜을 다시 잉크통에 담궈 내게 건넸다. 그녀는 내가 할 일을 일깨워줬고 우리의 목적 또한 내게 단단히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동을 재개케 한 그녀의 머릿속도 나와는 크게 다를 바 없어보였다.

 

 - 어르신께…… 들키겠죠?

 

 이니스는 홍조를 띠며 내게 물었다. 그녀도 자기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보는 눈엔 이미 꽃이 피어 향기가 오갔고 뤼귀는 그 냄새를 맡기에 뻔했다.

 곧 우리 시야엔 남부의 수평선이 들어왔다. 해안은 조용했다. 군대도 전쟁도 없었다. 우린 해안선을 따라 동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길게 가지 않아 테스미르미드 병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릴 발견한 한 병사는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를 해왔는데, 그 통제를 뚫고 나서는 데에 우린 적잖은 시간이 할애해야했다. 거기서 이니스가 나서서 했던 말은 꽤나 주요했다.

 

 - 저흰 여러분을 돕는 관료의 친구이며 그분께선 지금 이곳 너머 바다의 최전선에 계실 것입니다. 저흰 그분을 만나기 위해 루치노르의 전장도 지나왔습니다. 만약 저희가 의심된다면 감시를 하셔도 좋습니다. 저흰 그분을 만나야만 합니다.

 

 우린 뤼귀의 이름도, 종족도, 특사라는 직위도 밝히지 않았다. 이니스는 막무가내였다.(그런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테스미르미드군 진영에 들어설 때 우리 뒤엔 감시병이 붙었다. 감시병은 우리 뒤에서 우리가 갈 방향을 일러줬다. 그는 내가 자신들의 진영을 지날 때 펜을 드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이내 우린 군사의 막사 앞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군사 뮈헨 로워드가 머무르고 있었다.

 

 - 돌아오셨군요. 새로운 소식은 있습니까? 특사께선 어디에 계신지요?

 

 뤼귀의 위치는 우리가 물으려 했던 것인데 도리어 그가 먼저 물어온 것이다.

 

 - 예? 저흰 어르신께서 이곳에 계신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니스가 말하자 로워드는 덩달아 어리둥절해했다.

 

 - 그분께서 이곳에 계신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는데요.

 

 그건 그랬다.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로워드는 갈 곳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막사 하나를 내어주곤 우리를 직접 안내해줬다. 이유 없는 친절은 아니었다. 그는 린그노르 북쪽을 훑고 내려온 우리에게 특별한 소식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해줄 것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가 전한 소식들은 모두 그가 이미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는 루치노르에서 일어났던 짧은 전투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 두 야경과 아네이의 강물이 연합군을 도왔다 하더군요. 저희가 이쪽에서 교전을 치를 때도 어느 순간 갑자기 파도가 일어 저흴 도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우연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두 분께서 뭔가를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갑자기 일어난 파도 이야기에 떠올랐던 건 뤼귀가 루멘의 알랭 앞바다에서 딩곤들과 헤엄을 치던 모습이었다. 루치노르 협곡에서 뤼귀는 강물을 일으켜 연합군 진영의 불을 잠재웠다. 이니스도 뤼귀가 일으킨 강의 파도를 봤던 터였다. 로워드는 우리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다.

 

 - 전 파도가 우리 함대의 밑을 지나 적의 배 앞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결코 자연적인 파도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파도는 우리를 돕고 있고 적들은 언더옥포드 해안요새에서 발이 묶여 있습니다.

 

 뤼귀가 일으킨 파도였을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니스도 나처럼 말이 없었다. 다행히 로워드는 우리와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테스미르미드의 부관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지휘관을 찾았기 때문이다.

 로워드가 막사를 떠났을 때쯤엔 이미 밤이 깊어있었다. 우리의 막사 앞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는 다소 산만해보였는데, 이니스는 그를 붙잡고 대화를 구했다.

 

 - 기사님, 파도가 적들을 덮쳤다는 게 사실인가요?

 

 병사는 이니스의 질문을 반겼다. 말하기 좋아하는 둘이 만났다.

 

 - 사실이고말고요. 저도 둘째 날까지는 배에 올라있었습니다. 제 두 눈으로 그 파도를 봤고요.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저흰 그게 우리 선조들의 기적이라고 믿지요.

 

 - 선조들의 기적이요?

 

 - 괴물들과의 전쟁에서 죽어간 위대한 선조들이 해신이 되어 우리를 돕는 것이지요. 실제로 파도가 적함을 덮칠 때 그 너울 밑에서 희미한 사람 형체를 본 동료들이 있습니다.

 

 - 그 형체가 어떻게 생겼다고 하던가요?

 

 - 사람처럼 생겼다는 게 다입니다. 워낙에 빠르고 희미해서 다른 구별을 해낼 수가 없었답니다.

 

 이니스는 병사에게 감사를 전하며 대화를 끝냈다. 병사가 나가고 우리 둘은 서로의 예상을 확인했다.

 

 - 어르신일까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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